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9화 (9/300)

9화

30미터 길이의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곳.

레인보우 아일랜드의 서부에 위치한 삼림 지역이다.

“키익…….”

삼림 지역을 지배하는 우두머리, 분노 유인원이 고개를 떨궜다.

푹! 박종원은 분노 유인원의 목덜미에 박힌 칼을 뽑았다.

“이야, 역시 화랑 길드의 유망주 박종원 님은 달라도 다르시군요.”

“저 분노 유인원의 숨통을 일격에 끊을 줄이야.”

“방금 기술, 쾌진격 아니었어? 3성 스킬을 저렇게나 능숙하게 다루다니.”

“3성 스킬을 익힌 것도 놀라운데 정확한 타이밍으로 급소를 찌르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팀을 맺은 플레이어들은 입을 모아 박종원을 칭송했다.

한국 1위 길드인 화랑에서 키워 낸 유망주.

착용한 장비들은 하나같이 저 레벨 구간에서 손꼽히는 최상급 아이템들이다.

유망주에 걸맞은 뛰어난 실력과 고성능 장비가 더해지니, 튜토리얼 첫날에 분노 유인원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정작,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박종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당신은 현재 0층, 레인보우 아일랜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필드 보스

거대 뱀 네시 - 생존

늑대왕 서린 - 생존

딥 슬라임 - 사망(사냥한 플레이어: 유진호)

재생성까지 163:52:19

분노 유인원 – 사망(사냥한 플레이어: 박종원)

재생성까지 167:59:31

…….

*포인트 획득

1위 - 유진호(407점)

2위 - 박종원(131점)

3위 - 정신호(63점)

4위 - 오지원(53점)

5위 - 이도영(45점)

박종원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1위가 아니라고?’

131점.

순위권에 들어온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점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표현은 본인에게도 포함되었다.

랭킹 1위인 유진호와 비교하면 2배나 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三 자로 된 주름이 박종원의 이마를 뒤덮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는 일반 괴물을 사냥하면 1점, 보스를 사냥하면 100점을 얻는다.

그가 단번에 2위까지 올라간 것도 분노 유인원을 사냥한 덕분이다.

‘유진호라는 녀석.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수로 400점을 벌은 거냐?!’

박종원은 탑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을 되짚었다.

오지원이나 정신호, 이도영은 모두 자신처럼 유력 길드의 후원을 받는 플레이어였다.

진호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참 동안 생각했지만, 유진호라는 이름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길드의 지원도 안 받았고 딥 슬라임을 사냥했다고?’

허허- 박종원은 실소를 흘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박종원 플레이어,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니다.”

고개를 좌우로 젓는 박종원.

그를 부른 플레이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분노 유인원의 사체로 다가갔다.

‘이대로는 곤란해.’

화랑 길드는 이번 튜토리얼 스테이지에 많은 것을 투자했다.

박종원이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곧장 아래로 추락한다.’

화랑은 투자한 만큼 결과를 요구한다.

바로 전 기수에서 주목받던 신인 하나가 튜토리얼에서 큰 실수를 했고, 그 이후 지원을 모두 거뒀다.

길드에서 지원한 장비는 모두 빚으로 넘어가서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도 없는 신세.

까드득.

박종원의 어금니가 갈려 나갔다.

그는 메마른 눈으로 랭킹 창을 다시 바라봤다.

‘유진호라고 했지?’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제쳐야 할 경쟁자다.

박종원은 그 이름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스테이지 현황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 *

“크르릉! 컹!”

“아우우우!”

실버 팽 무리가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들었다.

자식들.

너무 반겨 주는 거 아니냐?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합니다.]

불쑥 튀어나온 손톱에 마나를 부여, 정면으로 휘둘렀다.

공중에 새겨지는 푸른 궤적.

핏방울이 한발 늦게 허공에 흩뿌려졌다.

“크릉!”

“컹! 컹!”

실버 팽 무리는 내 주위를 감싸면서 포위하더니, 날선 어금니와 발톱을 추켜세웠다.

무리 사냥에 특화된 진형.

근데 말이에요. 나도 그 발톱 있거든?

[갑피를 사용합니다.]

[날카로운 손톱에 마나를 불어넣습니다.]

실버 팽을 일격에 끝낼 수단이 있는 이상, 전면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

푸아악!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일격에 하나씩. 목덜미나 심장 같은 급소를 손톱으로 찢어버렸다.

[갑피의 내구도가 26% 소모되었습니다.]

[갑피의 내구도가…….]

반면, 실버 팽들의 이빨과 손톱은 나한테 닿지 않았다.

“크르릉?!”

실버 팽 몇 마리가 등을 돌려서 반대로 달려갔다.

패배를 직감하자마자 도주를 선택한 거다.

어이구야.

가려면 가라지.

나는 굳이 도망치는 실버 팽의 뒤를 쫓지 않았다.

동료를 더 불러오면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가 없잖아.

[실버 팽에게 포식을 사용합니다.]

정수를 다 모았다고 포식의 효용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체력과 마력 회복.

[용해]와 [용의 심장]이 빛을 발할 때다.

실버 팽 무리와의 전투에서 소모된 마나는 1/5 정도.

널려 있는 사체들한테 포식을 사용하니 금세 회복되었다.

실버 팽 사체의 가치가 0으로 떨어지지만, 지금은 빨리 강해지는 게 더 중요했다.

몇 번이고 실버 팽 무리를 쓰러트리면서 나아가니, 레벨도 4개나 올랐다.

이쯤이면 그 녀석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우우우!!!”

맹수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늑대왕의 포효에 노출되었습니다.]

[근력과 민첩이 10% 감소합니다. 20초 동안 지속됩니다.]

몸이 저릿저릿하다.

포효의 너프 효과가 적용된 거다.

“양반은 아니군.”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봤다.

늑대왕 서린.

일반적인 실버 팽과 달리, 사람처럼 이족 보행을 하는 늑대다.

신장은 약 3미터.

놈은 실버 팽 40마리를 대동한 채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크르릉. 인간. 혼자다.”

늑대왕의 음성은 변조한 기계음처럼 괴이했다.

“왜, 혼자 있으니까 해볼 만해 보여?”

“크릉, 사냥감. 찢어라.”

실버 팽 40마리가 넓게 흩어지면서 전방위로 압박했다.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는 늑대왕.

놈은 주제에 ‘왕’이라고, 끌고 다니는 실버 팽들이 사냥감의 체력을 빼놓을 때까지 나서지 않는다.

멍청한 놈. 그 오만함이 네 목을 조이게 될 거다.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합니다.]

[갑피를 사용합니다.]

회색 갑피가 전신을 뒤덮었고, 손톱이 쭉 길어졌다.

그로부터 3분 후.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건 늑대왕과 나, 둘뿐이었다.

[갑피]로도 모든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해서 피가 흘렀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상태는 최상이었다.

실버 팽을 쓰러트리는 와중에도 [포식]을 종종 사용했다.

출혈이 꽤 있어서 피를 많이 흘리는 건 위험해도 당장 전투에 지장이 될 만큼은 아니었다.

“폼 재지 말고 덤벼라, 똥개 새끼야.”

나는 오른손을 까딱였다.

* * *

늑대왕 서린은 본능대로 판단했다.

‘왕. 마지막에. 나선다.’

실버 팽 무리가 진호의 기력을 최대한 빼놓았을 때 나설 생각이었다.

부하들은 언제든지 보충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왕의 안전!

늑대왕은 실버 팽 무리가 모두 쓰러질 때까지 전투에 끼지 않았다.

“깨갱!”

마지막 실버 팽이 쓰러지는 순간, 진호가 오른손을 까딱였다.

“폼 재지 말고 덤벼라. 똥개 새끼야.”

“크르릉!”

늑대왕은 다시 한번 하울링을 퍼트렸다.

어깨를 잘게 떠는 진호.

하울링의 너프 효과가 몸을 흔들었다.

지면을 박찬 늑대왕.

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크르릉. 먹이. 많이 지쳤다.’

피로 목욕을 한 진호.

늑대왕은 진호가 실버 팽 40마리랑 싸우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했을거라고 판단했다.

왕인 그조차도 실버 팽 40마리를 상대하는 건 꽤나 힘겨운 일.

진호의 능력이 뛰어나 보이기는 해도, 지친 상태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다.

“크릉!”

늑대왕은 오른팔을 휘둘렀다.

양팔을 X 자로 교차하면서 가드를 올리는 진호.

회색 갑피가 피부를 뒤덮었다.

카가각-!

발톱과 갑피가 충돌하는 순간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실버 팽보다 월등하게 강한 힘.

갑피의 내구도가 70%나 깎여나갔다.

정작 늑대왕은 그 성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일격에는. 못 부순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진호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어렵다.

늑대왕은 왼팔을 쭉 올렸다.

[스트라이크 샷]

발톱을 뒤덮은 하얀 기운.

[스트라이크 샷]은 장비의 방어력을 일정 부분 무시하고 상대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스킬이다.

‘이상한 갑피. 다시 한번 써 봐라.’

늑대왕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앞발을 휘둘렀다.

후웅!

발톱은 진호의 갑피 대신 허공을 갈랐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서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진호.

“그럴 줄 알았다.”

진호는 곧장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훤히 열린 늑대왕의 가슴팍으로 파고들고는, 손을 곧게 펴서 쭉 내질렀다.

[날카로운 손톱]

[괴력]

마나를 부여해서 한층 절삭력이 강화된 손톱.

거기에 우투리 설화로 구현해 낸 [괴력]을 실어서 늑대왕의 심장을 찔렀다.

푹! 늑대왕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불로 가슴을 지지는 것 같은 격렬한 통증.

진호의 손톱은 늑대왕의 근육을 찢어 내고 심장 부근까지 파고들었다.

“카오오오!”

몸을 비트는 늑대왕.

심장이 상하는 것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이미 전투에 지장이 갈 만큼 치명상을 입었다.

“왜, 뭐가 잘 안 돼?”

진호는 오른팔을 털면서 이죽거렸다.

“크르르르.”

실핏줄 여러 개가 늑대왕의 눈동자를 붉게 물들였다.

늑대왕은 연신 앞발을 휘둘렀다.

“아파서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카각! 카가각!

진호는 차분하게 [갑피]로 늑대왕의 공세를 하나씩 막아 냈다.

같은 부위에서 갑피를 재생성하려면 1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갑피를 안 생성한 신체부위로 공격을 막고 날선 손톱으로 늑대왕의 피부를 찢어 냈다.

공방을 주고받을수록, 늑대왕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크르르르. 인간. 약하다. 그런데 왜?”

늑대왕은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 샷]을 펼쳤다.

한 번이라도 명중하면 갑피로 보호받는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 샷]이 진호의 몸에 닿을 일은 없었다.

“너 말이야, 싸울 때 습관이 있거든.”

“크르르?”

“스킬을 쓰려고 하면 팔을 쭉 뒤로 빼더라.”

진호는 이미 늑대왕의 스텟 및 스킬 구성을 모두 꿰고 있다.

그가 굳이 회귀자가 아니더라도, 5년 차 플레이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정보다.

중요한 건 정보를 알고 있어도 그걸 몸으로 체화할 수 있느냐, 인데…….

군주급에 올랐던 최강의 플레이어인 진호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다.

“크르르르! 난. 왕이다!”

늑대왕의 은색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럴 리 없다.

부하들을 동원해서 체력도 빼놨건만, 진호의 움직임에선 전혀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투가 이어질수록 호흡이 가빠지는 것은 늑대왕 자신이었다.

“아우우우우!!”

괴성을 내지르면서 돌진하는 늑대왕.

모든 것을 건 최후의 공격이다.

빛살처럼 빠른 속도.

평소의 2배 정도나 되는 돌진이기에, 진호가 피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고마워서 어쩌나. 덕분에 손을 덜었어.”

그 순간.

진호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늑대왕의 동공을 가득 메웠다.

[민첩한 뒷발]

뿔토끼의 능력이 진호의 몸에서 발현되었다.

투콱! 가까워지던 둘의 거리가 일정 간격으로 유지되었다.

진호는 늑대왕이 달려드는 속도에 맞춰 몸을 뺐다.

늑대왕의 힘이 빠질 때 즈음.

“너도 내 먹이가 되어라.”

진호는 아까 낸 상처를 다시 한번 쑤셨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 학살자로 악명이 자자한 늑대왕.

숙련된 플레이어가 최소 2팀 단위로 달라붙어야 확실하게 사냥 가능한 보스 몬스터가 단 한 명에 의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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