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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5화 (5/300)

5화

용아병은 당황한 기색을 꾹 억눌렀다.

이스메니오스의 어금니에서 탄생한 영웅적인 존재.

【시험】의 페널티 때문에 약화되었지만, 막 튜토리얼에 진입한 플레이어에게 밀릴 만큼 약하지 않았다.

‘저자에게는 내 검이 닿지가 않는다.’

후웅-!

글라디우스가 허공을 갈랐다.

칼날이 지나간 궤적 사이로 진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나풀거렸다.

그와 동시에 진호는 교묘하게 스텝을 밟으면서 재차 접근했다.

‘가까이 오게 두면 안 돼.’

힘은 용아병이 우위.

민첩은 근소한 차이로 진호가 앞섰다.

하지만 진호에게는 둘의 근력 차이를 뒤집을 만큼 강력한 스킬이 있었다.

[괴력].

빛나던 갑주는 이미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일부이지만, 원시종의 정수를 받아들이면서 강화된 육체로 [괴력]을 펼치니 약화된 용아병의 갑주로는 버텨내지 못했다.

「네 뜻대로만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용아병은 손목을 홱 꺾었다.

무리한 동작을 취해서 뼈마디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 덕에 칼의 궤도를 확 틀 수 있었다.

“응. 거기까지도 내 생각대로야.”

진호는 허리를 숙여서 등 뒤로 날아드는 글라디우스를 피했다.

빈틈투성이인 용아병.

「끝이 아니다!」

또다시 손목을 틀면서 종으로 휘둘렀다.

힘은 조금 떨어졌지만,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치명상을 입힐 수준의 검격이다.

진호가 재차 간격을 줄일 걸 염두에 둔 공격이었다.

한데.

“칼춤이라도 추냐?”

진호는 예상이라도 했듯 한 박자 먼저 몸을 뺐다.

「왜냐. 어째서 내 빈틈을 훤히 드러냈는데도 물러난 거냐!」

“힘들어서 그래.”

팔을 흔드는 진호.

근육이 잔경련을 일으켰다.

[괴력] 스킬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후유증이다.

「처음부터 공격할 의도가 없이 파고들기만 했다고?」

“어. 혼자 쫄아서 칼춤 추는 거 잘 봤다.”

「으으으!」

진호는 이죽거리면서도 팔의 근육을 풀어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대지모신의 가호가 적용 중입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지면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영구적으로 받을 수 있는 버프다.

대지모신의 가호는 있는 힘껏 힘을 쥐어짜 내기에, 자주 사용할 수 없는 [괴력]의 페널티를 약화시켜 줬다.

근력과 체력에서 앞서는 용아병을 상대로 분투할 수 있던 것도 대지모신의 가호 덕분이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유효타를 한 번도 허용하지 않는 진호.

반면에 용아병의 갑주는 원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

콰득!

마침내 진호의 주먹이 용아병의 목덜미를 우그러트렸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근력 수치 + 300%의 피해를 입힙니다.]

너덜너덜해진 용아병이 바닥에 쓰러졌다.

「대전자여. 네 승리다.」

“알아.”

「넌 정말 대단한 전사로구나.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용아병은 말을 다 못한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덜그럭, 여기저기 짓눌려서 반쯤 해체된 갑주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약화되었다고 해도 레벨 50대의 괴물이다.

단숨에 레벨이 하나 상승했다.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레벨은 하나.

어떤 강적을 쓰러트려도, 경험치 바는 100%를 넘지 않는다.

▶ 히든 퀘스트 - 아레스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 보상: 용맹의 증표

[용맹의 증표]

등급: 레전드

분류: 목걸이

전쟁의 신 아레스가 인정한 필멸자에게 내려주는 신물입니다.

사용자의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잠력을 일깨워 줍니다.

*근력 + 15

*민첩 + 12

*정신내성 + 10

*[용맹] 스킬 내장

[용맹]

등급: ★★★

분류: 액티브

정신계열 디버프를 모두 해제해 준다.

“와.”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전설 등급 아티팩트가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나올 줄이야.

탐험가 로렌트한테 들었지만, 이만큼 파격적인 보상을 얻을 줄은 몰랐다.

‘아레스의 보상은 그때그때 다르다고 했으니까.’

시험의 보상은 용아병과의 전투를 어떻게 치르느냐다.

갓 바벨탑에 들어온 플레이어가 용아병을 상대로 승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히든 퀘스트의 목적은 용아병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전투하는 ‘과정’ 그 자체인 셈이다.

아무래도.

저 호구, 아니 위대한 전쟁신께서는 내가 제법 마음에 든 것 같은데.

보상을 받자, 아레스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히든 퀘스트도 끝났겠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 더 이상 머무를 명분이 없었다.

“또 봅시다. 위대하신 전쟁의 신이시여.”

좋은 보상도 챙겨 줬겠다, 립 서비스도 잊지 않고 했다.

불청객도 떠나갔겠다.

이젠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아레스의 보상은 부수적인 목표.

이 신전에 온 진짜 목적은 바로 용아병의 사체였다.

* * *

용아병의 사체.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약화되었다곤 해도 정수는 진짜니까.

회귀 전에도 종종 겪은 일이다.

탑 시스템의 개입으로 약해진 괴물들을 쓰러트려도, 포식을 할 때 페널티가 전혀 없었다.

나는 용아병의 사체 위에 손을 얹었다.

[용아병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전설]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체력 + 15]

[맷집 + 20]

[마력 + 17]

[스킬 - 용의 심장이 추가됩니다.]

배를 가득 채우는 포만감.

용아병의 정수가 몸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흐흐흐.”

[포식]의 진정한 가치는 스텟 흡수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한 생물체의 정수 포식을 100% 완료하면 능력치뿐 아니라 특수능력도 흡수할 수 있다.

상대의 능력을 얻는 것!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반복적인 훈련이나 학습, 또는 스킬 북으로 스킬을 획득한다.

반면에 난 괴물을 쓰러트리기만 해도 고유 스킬들을 빼앗을 수 있다.

난 새로 추가된 능력을 확인했다.

[용의 심장]

등급: ★★★★★

분류: 패시브

심장을 코어 삼아서 마나를 축적한다.

숨을 쉬기만 해도 마나가 회복되며, 마나 운용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마력 + 30

*마나 소모 -20%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옵션이다.

마력이 30 늘고 마나 소모도 줄어들었다.

지금이야 내 마나 수치가 평범한 플레이어보다 월등히 높아서 티가 안 나는 옵션이지만.

[포식] 능력으로 여러 스킬을 얻으면 큰 힘이 될 옵션이다.

한데, 시스템 음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용아병의 ‘용의 심장’이 포식 능력에 공명합니다.]

[포식 사용 시 마력 스텟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비슷한 성질을 지닌 스킬끼리는 공명을 일으킨다.

스킬 계수가 늘어나거나.

아니면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기도 한다.

일명 【시너지】 효과다.

무리해서라도 용아병에게 도전한 것.

포식을 사용할 때 조금이라도 손해를 안 보려는 의도였다.

얻을 건 다 얻었고.

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모래가 쏟아졌다.

……저걸 다시 올라가야 한단 말이지?

땅바닥에 발을 붙인 채, 괴력을 사용하면서 힘껏 도약했다.

* * *

나는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올라오는 과정에서 모래를 온몸에 묻혔지만, 얻은 게 많다 보니 기분이 좋았다.

‘다음 목표는 황무지 외곽에 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돼지만 한 크기의 초록색 점액질을 발견했다.

슬라임, 황야의 청소부다.

바로 발견하다니.

“운이 좋군.”

용아병에 이어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정수다.

천천히 거리를 좁히자, 슬라임이 몸을 내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눈코입이 안 달려 있으니 어디가 얼굴인지 모르겠네.

20미터.

10미터.

그리고 3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슬라임이 꿈틀거렸다.

‘초보 플레이어가 상대하기에는 까다로운 적이다.’

몸 전체가 점액질로 된 괴물.

충격을 흘려보내기에, 물리 저항력이 꽤 높다.

효과적으로 슬라임을 사냥하려면 화염이나 전격 계열 스킬, 혹은 장비가 있어야 한다.

나한테는 둘 다 없지만.

공략할 방법은 있다.

슬라임과의 거리를 1미터까지 좁혔을 때.

“츄르르릅!”

기묘한 소리와 함께 점액질로 된 몸뚱이를 넓게 펼쳤다.

슬라임의 주공격 수단은 용해액.

적을 자신의 몸뚱이에 쑤셔 넣고 소화해 버린다.

‘놈의 용해액은 쇠도 녹이지.’

용해액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야 가능한 일이다만.

한 번 싸우면 장비 내구도를 엄청나게 깎아 먹기에, 초보 플레이어에게 기피 대상으로 분류된다.

‘슬라임이 까다롭긴 해도 무적은 아니야.’

피자를 만들 때 쓰는 도우처럼 넓게 펼쳐진 슬라임.

중심부에 자리를 잡은 초록색 돌멩이가 망막에 비쳐졌다.

지금이다.

콰직! 주먹을 내지르자 초록색 돌멩이가 일격에 산산조각 났다.

괴력을 쓸 것도 없었다.

“츄르릅?!”

넓게 펼쳐진 슬라임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면서 그 자리에 쏟아졌다.

[경험치 2.1%가 올랐습니다.]

“난적이라고 해도 요령만 알면 충분하거든.”

슬라임은 사냥감을 삼킬 때만 핵을 노출시킨다.

놈이 핵을 드러내는 건 약 1.5초 정도.

그 타이밍을 노리면 초심자도 슬라임을 쉽게 죽일 수 있다.

실패하면 피부가 조금 녹겠다만.

이젠 정수를 포식할 시간이다.

망설임 없이 초록색 점액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슬라임의 핵을 부수면 용해액도 증발하기에, 다칠 일은 없다.

[슬라임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일반]

돼지 크기였던 점액질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쪼그라든 슬라임의 사체.

동물의 가죽을 벗겨 낸 것처럼 껍데기만 남아 버렸다.

[포식한 정수: 3.1%]

[근력 + 0.1.]

[체력 + 0.2.]

괴물 하나를 포식해서 얻은 능력치는 0.3 포인트.

레벨을 올렸을 때의 보너스 포인트 말고도 스텟을 올릴 수가 있다.

거죽만 남아 버린 슬라임 사체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네임드인 용아병과 달리, 평범한 괴물은 반복적으로 사냥해야 100%를 달성할 수 있다.

손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이 허기는 더 많은 정수를 포식해야 채워질 것이다.

거죽만 남은 슬라임 사체에서 손을 떼었다.

지금부터는 [포식]의 시간이다.

* * *

나는 황무지를 돌면서 슬라임을 찾아다녔다.

이 근방이 슬라임의 영역이었는지, 다른 녀석들도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츄릅!”

슬라임의 몸뚱이가 허물어졌다.

바닥에 쏟아진 초록색 액체.

나는 반복적으로 슬라임의 몸뚱이에 손을 쑤셔 넣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슬라임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용해가 추가됩니다.]

[용해]

등급: ★

분류: 패시브

먹는 행위에서 흡수 효율을 올려준다.

용아병 때와 마찬가지로 괴물의 고유 스킬을 획득했다.

흡수 효율을 조금 올려 주는 스킬을 어디에 쓰냐고?

‘세상에 나쁜 스킬은 없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용해.

설명만 놓고 보면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옵션을 지녔다.

음식물을 먹을 때 흡수율 좀 올라가면 어디에 쓰겠나?

과거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포식] 능력의 진가를 알아내기까지는.

[슬라임의 ‘용해’가 포식 능력과 공명합니다.]

[흡수율 증가가 포식에 더해집니다. 포식 효율이 10% 증가합니다.]

포식과의 시너지!

시너지 효과는 스킬의 등급을 따지지 않는다.

엇비슷한 스킬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래서 슬라임의 정수를 먼저 얻었다.’

내가 괜히 슬라임 정수를 최우선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란 말씀!

회귀 전의 지식.

바벨탑을 오르는 중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쌓은 경험이다.

갖가지 괴물의 정수가 서로에게 어떤 시너지를 일으키는지.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정수가 무엇인지도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럼 딥 슬라임을 사냥하러 가볼까.’

딥 슬라임.

슬라임의 변종이자, 황무지에 출몰하는 희귀종이다.

희귀종.

괴물 중에서 특수한 능력이나 비범한 전투력을 지닌 놈들을 말한다.

플레이어들은 희귀종을 속된 말로 ‘보스 몬스터’라고 불렀다.

‘녀석의 정수에는 쓸 만한 스킬이 각인되어 있다.’

꼬르륵.

마침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입맛을 다시면서 딥 슬라임이 있을 만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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