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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3화 (3/300)

3화

아테네.

그리스 문화의 본산이자, 올림포스 신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오죽하면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도시라고 하겠어?’

공항을 둘러보면 여러 인종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인파 대부분은 아테네에 관광을 하러 온 여행객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관광만을 위해 아테네에 온 건 아니다.

일부는 올빼미 모양의 조각상이나 목걸이 장식을 단 채, 무언가를 읊조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승리의 여신 아테나이시여.”

중년의 여인이 올빼미 조각상을 쥔 채, 간절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올렸다.

아테나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수호신이자 승리와 전쟁의 여신이다.

쯧- 혀를 차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빌어먹을 신들한테 빌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을.’

바벨탑이 나타난 이후, 신화 속의 존재로만 여겨졌던 신들이 실존한다는 게 밝혀졌다.

아스 신족, 올림포스 신족, 베다 신족.

그 외에도 여러 신들과 악마가 탑 상층에 머무른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세계는 뒤집어졌다.

문학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각 지역의 토속신앙이 되살아나고, 종교인들의 신앙심 또한 구체화되었다.

‘그 작자들을 믿는다고 해서 떡 하나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냉소적인 미소가 입가를 차갑게 물들였다.

신들은 인류를 굽어살피지 않는다.

손을 내미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인간에게뿐.

‘그 녀석들은 인류가 힘을 합치는 걸 방해했다.’

신들의 눈에 들어온 놈들.

일명 선택받은 자(The Chosen O ne)들은 지구가 탑에 침식되기 시작했을 때, 고신족과 싸우지 않고 신들의 세계와 합류했다.

신들의 세계는 그들에게만 허락된 낙원이었다.

멸망해 가는 지구에서 벗어난 이들은 1만 명 남짓.

70억 인구 중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숫자다.

‘그 녀석들이 결의를 다졌더라면……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패배하는 일도 없었을 거야.’

까드득.

이가 맞물리면서 섬뜩한 소리를 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른 플레이어 중 둘이나 인류를 배반했다.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후- 짧은 심호흡을 내뱉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분노를 식힌 채, 목적지를 찾아 움직였다.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수호신 아테나를 기리는 거대 신전.

그렇지만, 내 목적지는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신급 정수를 둘 이상 받아들일 수 없으니.

이왕이면 급이 가장 높은 신의 정수를 포식하는 게 좋겠지?

그래서 고른 게 바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이다.

지진에 휩쓸려서 무너진 탓에 남아 있는 건 기둥 16개뿐이지만.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외형을 유지중인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 보면 허전하게 느껴졌다.

‘뭐, 그래도 정수는 남아 있을 거니까.’

풀로 뒤덮인 제우스 신전 터를 느긋하게 걸었다.

킁, 킁킁.

원시종과는 다른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오래 전, 무수한 사람들의 신앙심이 향했던 곳.

제우스에게 헌정된 공간인 만큼 잔향이 유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허리를 숙여서 바닥을 만져 보았다.

풀이 깔린 흙더미를 조금 파내니 대리석으로 된 바닥이 드러났다.

은은한 기운이 느껴진다.

신의 ‘격’이 녹아 있는 정수다.

곧바로 포식을 전개했다.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막대한 힘.

과연.

이만큼 강한 격을 지닌 정수는 회귀 전의 경험을 통틀어 봐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왕이라는 호칭은 허명이 아닌 모양이다.

[대지모신 가이아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신화]

잠깐, 뭐라굽쇼?

하마터면 너무 놀란 나머지 지면에서 손을 뗄 뻔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

올림포스 신족을 포함, 여러 신족들의 어머니가 되는 신이다.

대지의 신격, 혹은 대지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

‘그래. 말 그대로 상징이야.’

올림포스 신족을 숭배한 고대 그리스인들조차, 가이아를 숭배하진 않았다.

가이아는 신적 존재라기보다 대지라는 ‘개념’에 가까운 존재다.

음, 그러니까……. 땅을 걸을 때마다 감사를 표하지는 않잖아?

‘바벨탑에서도 가이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는데.’

제우스를 숭배한 신전에서 가이아의 정수를 흡수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뜻밖의 변수.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히려 좋아.’

가이아의 격은 최상위로 분류된다.

제우스조차도 수많은 신을 낳은 대지모신에 비해선 격이 떨어졌다.

더 높은 신비와 위계.

생각지도 않은 기연이 찾아왔다.

스아아아!

막대한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들어왔다.

대지모신의 정수를 마주하는 순간, 마치 거대한 해일이 날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거…… 위험한데?

‘잘못하면 기운에 내가 잡아먹힌다.’

가이아의 정수.

나한테 악의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땅’이라는 개념을 지녔다.

모든 것을 품는 대지.

가이아의 정수는 본연의 성질대로 ‘나’라는 자아마저 대지에 흡수시키려고 했다.

‘정신 안 차리면 내가 정수에 잡아먹히게 생겼어!’

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가에 감돌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누가 신의 잔향 따위에게 잡아먹힌대?

접촉면을 타고 올라오는 정수를 [포식]으로 악착스럽게 뜯어먹었다.

이따금 마음이 편안해지고 모든 것을 놓고 싶었지만.

회귀 전의 경험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포식을 멈추지 않았다.

가이아의 정수를 집어삼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 감각조차 상실할 만큼 흐릿해진 의식 속에서, 빛을 보았다.

[대지모신의 가호가 스며듭니다.]

[마나 운용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력이 50 늘어납니다.]

[신력이 생성됩니다.]

신력……이라고?!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난 입을 틀어막은 채로 신체 내부를 관조했다.

‘정말로 신력이 자리를 잡았잖아.’

신력(神力).

말 그대로 신에게만 허락된 힘이다.

온갖 이적을 펼칠 수 있는 연료이자, 신의 기원에 따른 ‘권능’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힘이다.

‘이 정도 가지고는 큰 의미도 없다만.’

정수리에 자리를 잡은 신력.

그 크기를 가늠해 보니, 좁쌀만 했다.

또한, 신력이라는 힘은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신화’에 기록이 될 만한 업을 세워야 신력으로 구현할 수 있다.

회귀 전이면 모를까, 현생의 내가 ‘신화’를 쓸 만큼 다이내믹한 삶을 산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신력이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다.

회귀 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신력을 쓸 방도를 하나 알고 있었다.

‘신력으로 마나 감도를 올린다.’

마나 감도.

플레이어가 마나를 ‘인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마나는 스킬이나 장비 사용, 혹은 신체를 강화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소모된다.

가령 [강격]이라는 스킬을 펼치려면 사용자의 ‘마나’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이를테면 육체의 반응속도와 비슷한 개념이다.

마나 감지 → 의지 발현 → 스킬 발동.

플레이어들이 마나를 활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마나 감도가 0.9초쯤 되었던가?’

나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정수리에 자리 잡은 신력으로 정신력을 강화했다.

마나 감응력은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력이 자리를 잡은 곳이 정수리이기에, 영혼의 힘을 강화하는 것쯤은 가능했다.

난 기대하는 마음으로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자극했다.

신체에 머무는 마나가 내 의지에 반응해서 꿈틀거렸다.

‘0.1초, 정도인가.’

나는 손을 꽉 말아 쥐었다.

와.

평범한 플레이어의 수배나 되는 수치다.

회귀 전에는 저 수치를 달성하기까지 수년이나 걸렸는데!

‘시간을 아낄 수 있겠어.’

가이아의 신력으로 강화한 마나 반응속도!

마나 감도는 탑 저층에서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 쌓아 올린 토대는 탑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큰 편차를 만들어 낼 것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

‘바벨탑에서 무공을 익힐 때도 도움이 될 거야.’

내공은 마력과 달리 얻는 과정 및 다루기가 훨씬 까다롭다.

탑을 오르는 과정에서 비급을 손에 넣으면, 회귀 전보다 더 빠르게 내공을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가이아의 정수는 무슨 능력이지?’

상태 창을 활성화해서 추가된 가호를 확인했다.

[대지모신의 가호]

등급: EX

분류: 패시브

가호 랭크: 1

올림포스 신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신족들의 근원인 가이아의 가호다.

대지 관련 스킬 및 정수의 효율성을 늘려주며, 양발을 땅에 딛고 있으면 체력과 생명력 회복 속도를 50% 늘려 준다.

“미쳤네.”

나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두 발을 땅에 딛고만 있어도 상시 적용되는 체력‧생명력 회복 증가.

거기에 대지 관련 정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효율까지 늘려 준다.

1단계 가호인데도 이만한 효과라니, 엄청났다.

‘역시 대지모신은 달라도 다르네.’

가호는 총 3단계로 나누어진다.

1단계는 당연히 최하 레벨.

가호를 강화하려면 해당 신의 마음을 살 만한 위업을 달성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포식]으로 강탈한 것에 가깝지만.

원래 흡수하려고 계획했던 제우스의 정수도, 이만한 가호를 부여해주지는 않았을 거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가호 덕을 톡톡히 보겠어.’

나는 머릿속에 세워 둔 계획을 수정했다.

대지모신의 가호가 있으면 좀 더 과격하게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바벨탑 0층이 열리는 건 보름 후.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진다.

신전 바닥에서 손을 떼는 순간.

쿠르릉!

“지, 지진이다!”

“신께서 노하신 게 분명해!”

포식의 페널티로 남아 있던 신전 터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신전에서 멀어지는 사람들.

나도 그 인파에 섞여서 모습을 감추었다.

* * *

나는 곧장 한국으로 돌아왔다.

계획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얻었기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더 길게 머물러 봐야 돈밖에 더 들겠어?’

군대에서 모은 월급.

미리 받은 학비 대부분을 이번 여행에 털어 넣었다.

잔고가 0은 아니지만, 묘한 위기감에 등골이 싸늘해졌다.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바벨탑을 오르기만 하면 금방 벌 수 있는 돈이다.

주식, 코인 같은 데에 돈을 넣는 것보다 더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쉴 틈은 없었다.

‘튜토리얼이 시작되는 건 매월 1일이다. 시간은 아직 있어.’

남은 기한은 6일.

국내에 있는 신화나 전설, 민화로 유명한 곳을 돌아다녔다.

【신격】이 깃든 유물을 구매하면 편하겠지만.

통장에 남은 돈이 별로 없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어쩌겠어? 발품이라도 팔아야지.

“찾았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면서 중얼거렸다.

며칠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지리산 산 중턱에 위치한 집채만 한 바위.

검은 바위 안쪽에 꿀이라도 숨겨 놓은 듯, 달달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애타게 찾았던 ‘정수’다.

‘운이 좋았어.’

바위에 손을 얹고 [포식]을 사용했다.

[아기장수 우투리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고대]

[포식한 정수: 100%]

[스킬 - 괴력이 추가됩니다]

[괴력]

등급: ★★★

분류: 액티브

사용자의 근력 수치 + 300%의 위력으로 타격한다.

무기의 공격력 증가는 스킬의 계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기장수 우투리.

한반도 각지에 전해지는 ‘아기장수’ 설화다.

3성 스킬이라.

지리산을 오른 보람이 있는걸?

나는 손을 꽉 말아 쥐었다.

* *

마침내 11월의 첫째 날 아침이 밝았다.

결전의 날!

회귀 전보다 훨씬 앞선 상태이니, 튜토리얼 따위는 걱정되지 않았다.

튜토리얼 입장은 10시부터이니, 조금 일찍 나와서 잠실로 향했다.

한국에 생긴 바벨탑은 잠실대교에서 남쪽으로 3킬로미터 정도 아래쪽에 위치했다.

바벨탑 인근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플레이어 협회 인준을 받은 방어막이 단돈 300만 원!”

“튜토리얼의 필수 아이템. 조리와 히트 스킬이 내장된 단검을 500만 원에 구할 수 있습니다!”

“싸다, 싸! 이거 놓고 가면 튜토리얼에서 후회합니다!”

초심자의 지갑을 벗겨 먹겠다는 각오로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

“오빠, 바벨탑에서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풍남중 45기 김남준 파이팅!”

바벨탑에 들어가는 플레이어를 마중 나온 가족과 친구들도 있었다.

비장함이라고는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탑과 세계의 동기화가 50%를 넘기 전에는 미션 중에 사망해도 어떠한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이 없으니.

이때까지만 바벨탑의 초대장을 받으면 복권을 구매한 거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일확천금의 기회.

모두 단꿈에 젖어 있을 거다.

“저 사람, 화랑 길드의 플래티넘 등급 플레이어인 박준석 아니야?”

“플래티넘이면 국내에서 50명도 안 되잖아.”

플래티넘이라.

51층 - 60층 구간에 진입했을 때 그 등급이었을 거다.

[언랭크: 1 - 10층]

[아이언: 11 - 20층]

[브론즈: 21 - 30층]

…….

10층 구간마다 변하는 플레이어의 등급.

10 / 20 / 30층 같은 구간에서는 승급전을 벌여야 한다.

바벨탑이 지구에 나타난 지 10년 되었으니까 플래티넘 등급이면 엄청난 실력자인 셈.

근데 저 이름은 내 머릿속에 없다.

먼 미래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겠지.

기억에 남은 이들은 하나같이 강자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강자’가 아니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고신족의 침략을 막아 내지 못하면 모두 허무하게 죽을 운명인 셈이다.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사람들한테서 관심을 거두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바벨탑 튜토리얼.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기연과 정수들을 곱씹으며 전의를 다졌다.

[바벨탑의 문이 열립니다.]

[탑의 초대장을 받은 분들은 문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구구궁!

대리석으로 된 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젖혀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무저갱과도 같은 모습은 사람의 근본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얼어붙은 인파.

나는 그 사람들을 지나치며 문 안으로 발을 먼저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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