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126화 (126/130)

126화 이번엔 죽여 버린다

황제가 전투 중일 때는 신수는 옆에 붙어 있는다. 더 이상 해안가를 공격하지 못하고 황제

곁에서 주인을 보호하며 싸웠다.

치열한 전투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더 이상 싸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다시 작은 배로 돌아간 적들은 날이 밝기까지 숨

을 고르기 시작했다.

적들의 많은 수가 죽어 나갔고 카르탄 군도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기세로는 막강했지만,

아직 숫자상 카르탄 군이 밀린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분명 이번에는 총공격할 것이다. 우리 쪽 병력을 보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밀어닥칠 것이

다. 호랑이 신수가 막지 못하는 쪽으로 밀려 들어올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카르탄 군

병력이 많이 적다.

이 넓은 해안가는 수심이 얕아 작은 배가 가까이 들어오지 못한다. 군사들이 허리까지 차

는 곳에서부터 수백 보 물속을 걸어와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지칠 터. 그러니 어제

그 해안가 마을로 침략하려고 했던 것이다. 거긴 해안까지 수심이 깊어 작은 배를 바짝 댈

수 있고 물속을 걷는 거리가 짧았다. 그러니 물속을 걸어 다가올 때를 이용한다.

작전 명령을 한 뒤,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

동이 트자마자 적군들이 탄 작은 배들이 수도 없이 다가왔다. 미리 해안가에 배치되어 있

는 카르탄 군, 방패를 앞세운 1열과 그 뒤에 화살 부대를 포진해 놓았다. 그들이 배에서 내

려 물속을 걸어 들어올 때를 노릴 것이다.

적들이 물살을 가르며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카르탄 군의 화살이 맹렬히 공격을 가했다.

해안가에 당도하지도 못한 채 물속에 꼬꾸라지는 적들로 인해 해안가 바닷물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변해 갔다. 끝도 없이 몰려오다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적들의 시체가 바닷물에

밀려 둥둥 떠밀려 가는 사태가 지겹도록 이어졌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또다시 후퇴.

몇 시간 후, 다시 재무장하고 다가오는 적군들은 불화살을 쏘는 배들을 앞줄에 포진해 놓

고 공격하는 사이 나머지 병력이 해안가로 당도할 수 있게 작전을 바꾸었다.

카르탄 화살 부대가 절반은 막아 내고 절반은 상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모든 병사들이

달려들어 적군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물살을 가르며 들어온 적들이 지쳐 있는 상태라 카르탄에게 유리하긴 했다. 한쪽에서는 신

수가 막아 대고 뚫린 곳은 황제와 병사들이 전투를 벌였다. 적들의 수장들도 다 덤벼들어

황제를 노렸다. 그러니 신수는 적을 막는 것을 포기하고 황제 곁에서 보호를 했다.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져만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들이 불리해졌다. 해안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적들은 다시

바다 쪽으로 도망치며 후퇴하였다.

서로가 지쳐 가는 시간 싸움이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몰려오진 못할 것이다. 동이 틀 때까지 시간을 확보했다.

카르탄 군에서도 숨을 고르며 어둠을 반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유리해지기 때문이

다.

다른 때보다 동이 트는 것이 더 빠르게 느껴졌다. 그만큼 긴장감이 팽배하다는 증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야가 확보되자 한동안 숨을 고르던 적들이 총공격으로 끝낼 작전인지 가

장 많은 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마 부대가 합류하긴 했어도 수적으로 열세인 카르탄이 그들에게 밀렸다. 신수와 황제가

종횡무진으로 활약을 하고 있으나 수적으로 너무 많았다. 그들도 현저히 지쳐 가고 있었

다. 해안가를 넘어와 그 뒤로 펼쳐진 드넓은 들판까지 전투가 번지듯 이어졌다. 자꾸 적들

이 육지 안쪽으로 진군해 들어왔다.

뜨거운 해가 머리 위에 떠서 따갑게 그들을 내리쬐었다. 피비린내가 온 들판을 지배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적들이 한발 한발 자꾸 안쪽으로 전진해 들어왔다. 이대로는 한쪽이 뚫릴 상황이었다. 위

험에 직면했다.

칼리크는 명령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

“후퇴하라.”

적절한 후퇴도 작전이다. 적들의 길목을 막으며 뒤의 군사들부터 들판 끝 언덕 위로 피신

하게 했다. 신수와 황제가 가장 끝까지 남으며 남은 군대를 일단 후퇴시켰다.

후퇴한 군사들은 언덕 위에서 일제히 활을 쏘아 대며 적들의 진군을 막아 냈다. 신수의 도

움으로 황제까지 언덕 위로 날아 피신하자 아래쪽 들판에서는 적들의 함성이 귀가 아플

정도로 들려왔다. 이겼다 이거다.

잠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선물로 주겠다.

칼리크는 다시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길을 터 주어라. 그리고 잠시 쉬어라!”

자신들 뒤로 회군한 대군이 조용히 밀려오는 것이 보이자 지금까지 죽어라 싸운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카르탄 군이 언덕 위에서 함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들판에 깔려 있던 적들의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뭐지?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잠시, 모두가 한순간에 얼어붙

고 말았다.

더한 함성이 울려 퍼지며 언덕 위를 넘어 들판 쪽으로 끊임없이 흘러넘치듯 밀려오는 대

군을 보고는 사색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지쳐 있는 군사가 아닌 힘이 바짝 들어

간 생생한 군사들과 맞붙으며 뒤로 뒤로 밀리던 적들은 계속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카르

탄 군의 위세에 이미 사기가 꺾이고도 남았다. 들판이 다 꽉 차도록 카르탄 대군이 밀려오

고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적들은 대군의 손에 속절없이 쓰러져만 갔다. 대세는 기울었다.

칼리크는 언덕 위에서 이 광경을 남김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

그렇게 만 하루 동안 그들을 진압했다.

사흘 뒤, 칼리크는 사령관들에게 뒤를 맡기고는 다시 황궁으로 향했다.

적들은 고작 몇만의 군사들만 살아남은 채 몇 안 남은 군선을 타고 도망쳐 버렸다. 수평선

너머 사라진 적들을 지켜보면서도 긴장은 늦추지 않았다.

미리 보낸 두 명의 군사가 에단 쪽과 황제 쪽으로 나누어 진군하게 대군의 사령관들에게

황제의 지시 사항을 전했다.

에단 쪽이 먼저 진압이 되었다. 승리를 하고 다시 만난 그들에게서 찬사를 넘어선 경배가

터져 나왔다. 특히 에단은 황제에 대한 경외감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기마 부대를 비롯해 어찌 카르탄 대군까지 합류하게 만들었는지, 그 깊은 혜안에 황제의

용안을 감히 마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황후마마께서 계획하신 큰 그림이었다.

에단은 황제에 이어 황후에 대한 경외감도 더욱더 높아졌다.

이것이 바로 벨리타의 그림이었구나.

황제 또한 그녀의 계획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아직 완전히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 군대를 일부 그 해안 일대에 포진해 놓은 채 회군시키

고 전쟁의 뒷수습을 해 나갔다. 황제로서 할 일은 거의 끝내고 마음이 급해진 칼리크는 다

시 신수에 올라탔다.

많은 이들의 존경과 환호를 받으며 그는 황궁으로 날아갔다.

이젠 다 끝났다.

로카 왕국도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신수가 발현된 황제의 힘을 이젠 그들도 정확

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염원하던 제국 통일을 이루었다. 황제 자리도 굳건히 지켜 냈고. 아니 원래부터 그

의 것이었다.

꿈꾸던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다.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이제 벨리타와 행복한 길만 걸으

면 된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그는 황궁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날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너무나 큰 환희와 행복으로 그의 가슴은 터질 듯 부

풀어 올랐다.

벨리타.

내가 왔소.

황궁에 내려선 그는 한걸음에 벨리타를 찾아 달려갔다. 벨리타의 이름을 부르며.

그런데.

황궁 안이 뭔가 이상했다. 불안한 공기가 가득 내려앉아 있는 것이 그의 등을 서늘하게 만

들었다. 왜?

이상하게 황궁 안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벨리타는 어디 있느냐?”

시녀들과 시종들까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를 섬뜩하게 만들

었다.

“그게….”

“어서 고하라.”

그의 목소리가 마구 떨리며 갈라졌다.

“황후마마께서 황도로 나가셨다가 사라지셨습니다.”

“뭐어?”

뭐라고?

지금 뭘 들은 거지?

“그게 무슨 말이냐?”

그의 쩌렁쩌렁한 호통에 황제궁 벽이 흔들릴 정도였다.

“황도의 다친 이들을 살피러 어제오늘 나가셨는데….”

“그래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오늘 갑자기 습격을 받으시고…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셨습니다.”

순간, 그의 몸이 비틀거렸다.

누가? 그런 끔찍한 일을.

이제 쿠로도 없는데.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이젠 더 이상 이곳에 불길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는데.

도대체 누가?

칼리크는 온몸의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황궁 모든 수비대가 데인과 부기사단장의 지휘 아래 모두 황도 근처 산속을 샅샅이 뒤지

고 있다 한다. 그래서 이리 텅텅 빈 느낌이었던 것이다.

칼리크는 머리의 피가 솟구치는 바람에 시야까지 흐릿해졌다. 아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런 짓을 한 놈이 누군지…….

그때 보좌관이 서둘러 다가왔다.

“폐하. 호위군 말에 의하면 금발에 이국적인 인상의 남자가 황후마마를 끌고 갔다 합니다.”

“뭐라?”

바로 떠올랐다. 이런 짓을 할 놈이.

바로 에무르.

분명 로카 왕국에서 쳐들어올 때 그 많은 군선 중 하나에 에무르가 타고 왔을 것이다. 그가

지휘를 했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 못 한 것이 제 불찰이다.

처음 에단 일행을 구하기 위해 날아갔을 때, 군선 한 척만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이상했

었다. 전쟁에 집중하느라 그냥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서로 싸우게 해 놓고는 그 틈에 에

무르 그놈은 군사 일부를 데리고 황궁으로 곧장 올라왔던 것이다.

에무르 이놈!

벨리타를 어서 구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를 모른다. 이미 데인이 황도에서 가까

운 항구와 수로는 다 막았다고 한다. 벨리타가 납치를 당한 지 서너 시간 흘렀다고 하니 그

럼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터. 벨리타를 끌고 산으로 도망을 쳤을 텐데 황도와 연결된 산은

수없이 많았고 지형이 험한 곳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로?

막막했다. 암담했다. 신수를 타고 모조리 뒤지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모두 수색하기엔 산

들이 너무 많았다. 에무르라면 공식 수로가 아니어도 배 하나 띄울 방도는 다 세워 놓았을

것이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벨리타. 지금 얼마나 무서울지. 아….

조금만 더 일찍 오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정도였다.

에무르를 그때 살려 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버렸어야 했다. 이

지긋지긋한 놈. 이번엔 죽여 버린다. 그때 못했던 것을…….

아!

칼리크는 눈을 번쩍 뜨고는 서둘러 신수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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