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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120화 (120/130)

120화 최고의 아침

벨리타가 싫어하는 일은 다신 안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절대로 알몸으로 유혹한 것

이 아니다. 그런데… 유혹하고 싶었다. 유혹되기를 바랐다.

지금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벨리타에게 무한한 감사를 할 뿐이었다. 고맙소. 벨리타. 약속

한 대로 당신을 위해 이 한 몸 다 바치겠소. 당신이 상상한 그 이상으로 평생 잘하겠소.

감사와 사랑, 애정과 경배의 시선으로 칼리크는 그녀의 모습을 보듬었다.

짧은 시간에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올랐더니 벨리타는 온몸이 흐물흐물 젤리가 된 것만 같

았다. 몸이 나른하면서도 충만된 느낌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행복하기로는 칼리크가 더했다. 소중하게 더 소중하게 그녀를 쓰다듬으며 감사하고 또 감

사했다. 잃어버린 사랑에 애끓던 자신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부여안고 후회

와 자책만 하던 자신이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천국은 맛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기적처럼

다시 주어졌다. 벨리타가 다시 천국으로 이끌어 주었다.

내가 이룬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 벨리타.

내가 사는 이유. 벨리타.

당신으로 인해 내가 살고 의미가 있다.

너무 벅찬 감동으로 칼리크는 다시 그녀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키

스가 점점 깊어지고 진해졌다.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천국을 향해 뜨겁게 날아올랐다.

***

두 번 사랑을 나누고 곯아떨어져서 그런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두 사람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사이 유모가 살짝 다녀간 것도 물론 모른다. 한 침대에 계시는 두 분을 발견하고는 바로

문을 닫고 조용히 물러갔다. 시녀들에게도 다른 일을 하라 지시하고는 모두가 다 자리를

비켜 드렸다.

눈을 먼저 뜬 벨리타는 바로 가까이에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거친 얼굴로 밤새 자신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했구나.

오래간만에 다시 맛본 열정적인 밤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눈부신 햇살이 참으로 따사롭게

와 닿았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훈훈해졌다. 몸도 마음도 무척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지금

까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이젠 내려놓고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조금은 낯설었다. 황후궁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방향의 뷰가

보였다. 멀리 마구간이 보이고 저 너머 숲길까지 보였다. 여기도 나쁘지 않았다.

낯선 것이야 적응하면 되고. 이 방도 마음에 들었다.

스윽.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나. 뒤에서 자신을 안아 드는 그의 존재에 살짝 놀랐다. 언제 일

어났나….

“무슨 생각해?”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로 다정히 묻는 칼리크의 존재가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커다란

존재가, 강하고 든든한 존재가 자신의 뒤에서 단단하게 받쳐 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가 고개를 내려 드러난 그녀의 어깨 위로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모닝 키스 대신인가. 그

것만으로도 짜릿함이 온몸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그의 입술이 잘게 입맞춤을 계속하며 그

녀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전율이 일며 가슴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의 입술이 드디

어 그녀의 귀까지 점령했다.

잠시 그녀의 귀가 호강했다. 다정하고 부드럽게 입을 맞춰 주며 나지막이 속삭여 주기까지

했다. 그윽하게 빠져드는 목소리로.

“최고의 아침이오.”

그녀도 같은 마음으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아침은 처음이오.”

너무 행복해서 쓰러질 것만 같소. 앞으로 나보다 더 행복하게 해 주겠소.

“아침이 아니라 점심도 훨씬 지났어요.”

장난기가 발동한 벨리타는 슬쩍 분위기를 바꾸었다. 이러다간 다시 침대로 직행할 것 같았

다. 너무 늦게 일어났더니 배도 고팠다. 그는 더 고플 것이다.

서로 피곤했는지 가장 많이 자고 일어난 날이었다. 몸은 개운해졌는데 시장했다.

“우리 황제궁으로 갑시다.”

칼리크는 벨리타와 준비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황제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종장이 알아

서 준비를 다 해 놓았을 것이다.

만찬장에서 따뜻한 음식으로 시장기를 달랜 칼리크는 시종장과 다른 대신들에게 오늘 하

루 완전히 푹 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찾지 말라고.

회의는 급한 것 없으니 다음으로 미루기까지 했다.

다 좋은데 꼭 이런 말을 같이 있을 때 하니 문제다.

부끄러움은 옆에서 같이 있던 벨리타의 몫이었다. 발그레해진 두 뺨을 감추기 위해 먼 산

만 바라보았다.

물러가는 시종장도 대신들도 폐하의 환한 모습에 흡족해하며 두 분의 행복한 하루를 빌어

드렸다.

***

첨벙.

역시 이곳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처음 부부가 된 곳. 온천탕.

이곳에서 우리의 첫날밤이 이루어졌다. 격했지만 환상적이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가장 높은 곳까지 비상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했으니 새 출발도 여기서 하는 것이 옳다 여겼다.

칼리크는 이곳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까지 꼼꼼

히 자신이 닦아 주는 것. 그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간지럽다며 벨리타가 자꾸 웃음을 터트

렸다. 이 넓은 온천탕이 울릴 정도로 웃어 대는 벨리타의 모습이 너무 감격스러워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재결합한 것에 대한 어색함과 쑥스러움은 금방 사라지는 것인가 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와 이러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예전 기억과 경험이 다시 소환되어서 그런지

금방 적응했다. 그와 자연스럽게 물장난을 치고 웃는 지금, 이 순간이 평화로웠고 뜨거웠

다.

안정이 되고 평온한 가운데 뜨거운 열정과 기분 좋은 짜릿함이 퍼져 갔다. 두 가지가 합쳐

지니 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오롯이 이 순간만을 즐기고 만끽할 수 있었다.

이젠 위험과 위기는 지나갔다. 두 사람이 꽃길만 걸으면 된다.

칼리크가 더 노력할 것이고 그녀는 다 받아 줄 마음이 있다. 이제는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

이, 존중해 주고 더 행복하게 해 주는 사이가 되고 싶다.

“거기 간지러워요.”

벨리타가 이렇게 간지러움을 잘 타는지 지금 처음 알았다. 손을 대려고 해도 까르르 웃으

며 몸을 피하려고 했다. 장난을 치듯, 놀이를 하듯 계속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발가락 사이사이 손으로 문질러 주자 또 한 번 자지러지듯 웃음을 터트리는 벨리타가 너

무 사랑스러워 다시 안아 버렸다.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웃느라 벌어진 그녀의 입술에 달려들 듯이 깊은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메아리치듯 울리

던 그녀의 웃음소리도 잠잠해지고 두 사람을 휘감는 온천물의 소리만이 자박자박 들려왔

다.

첫날밤이 치러진 침상으로 벨리타를 옮긴 칼리크는 온몸으로 숭배하듯이 그녀를 사랑했

다. 다시 이런 날을 선사해 준 벨리타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배하듯 빠짐없이 입을 맞

추었다. 공들여 아낌없이 제 사랑을 그녀에게 온통 쏟아부었다.

벨리타는 계속해서 사랑한다 제 귓가에 메아리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가장 황

홀한 천국에 올라섰다. 그곳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그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을

메워 나갔다. 아니 더 넘치게 주고받았다.

다시 황제의 방에서 곯아떨어진 두 사람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누가

보아도 부러워할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들의 표정이었다. 그렇게 천국 같은 시간이

두 사람을 감싸며 조용히 흘러갔다.

***

“당신 입을 옷들부터 서둘러 준비시켜야 하겠소.”

그건 그렇다. 황후궁이 몽땅 다 타 버렸으니 당장 필요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

의 드레스까지.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왜?”

드레스 룸을 다 채우고도 넘치게 드레스를 가지고 있던 벨리타였다. 전보다 더 많이 해 줄

생각이었다. 가지고 싶은 건 넘치도록 다 주고 싶었다.

“당신이랑 있으면 옷이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대번에 칼리크의 입이 찢어졌다. 그렇긴 하지. 오늘도 거의 옷을 입히지 않고 계속 품고 있

었다. 이러면 옷이 별로 필요 없긴 하다.

그는 미소를 짓다 말고 분위기가 이쪽으로 흐른 김에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음…. 내가 생각해 보았는데….”

칼리크는 조금 주저하듯이 말을 건넸다.

“무슨 생각이요?”

그의 가슴에 안겨 벨리타가 곱게 눈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황후궁이 없어져서 다시 짓긴 하겠는데… 그러면 또 따로따로 지내게 되고… 다 지을 때까

지 작은 별궁에서 지내야 하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 헤어져야 하고….”

말이 길어졌다.

이렇다는 건 벨리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조심스럽다는 말이다.

그녀는 그가 주섬주섬 꺼내 놓는 말들을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

는지, 그가 지금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그의 목울대가 꿀꺽 크게 움직였다. 이런 그의 반응이 재미있어 그녀의 뺨에 볼우물이 예

쁘게 쏙 들어갔다.

큰마음을 먹은 듯 비장한 표정을 한 채 그가 그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굳

어 있는 것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음…. 지금 여기가 불편하오?”

“아뇨. 아주 편해요.”

그냥 결론을 말하면 되는데도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럼 우리 여기서 같이 지낼까?”

얼마나 눈에 힘을 주고 있는지 괜히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긴장해 있는

그의 앞에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억지로 참아 냈다.

“방을 합치자는 소리인가요?”

그가 여전히 긴장한 눈으로 고개만 두 번 끄덕였다.

그녀의 볼우물이 더욱 깊어졌다.

“오늘부터 계속 이 방에서 같이 지내자는 말이죠?”

또다시 끄덕이기만 한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몰라 몹시 두근거리는지 숨소리도 불규

칙하게 흘러나왔고 그의 벗은 가슴이 그로 인해 들썩거렸다.

“당신 하는 거 봐서요.”

그의 긴장한 얼굴이 점차 풀려 가기 시작했다. 장난기 서린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

보다가 그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소?”

그가 은근히 그녀 위로 몸을 겹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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