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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67화 (67/130)

67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황궁 안 공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겁게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늘 여기 왜 이래?

황궁 안으로 들어온 쿠로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황궁 안이 너무 조용했다. 시종들

조차 몸을 사리는 것처럼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걸어 다니고 있었고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벙어리가 된 것처럼 떠들고 웃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뭔 일이 벌어졌구나. 보

아하니 그리 썩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분위기가 이리 무겁고 조용하지.

쿠로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황궁 안에서 유일하게 저 혼자 경쾌한 발걸음으로 돌아다녔다.

칼리크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나? 아니면 또 누구 하나 죽어 나갔나? 그놈의 성질머리하고

는. 좀 참는 법도 배우든가.

칼리크가 안 되면 안 될수록, 쿠로의 기분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너만 계속 잘될 이유는

없지. 빨리 석 달이 지났으면 좋겠다. 유클로로 떠나 개몰살당하고 칼리크가 돌아오면 로

카 왕국의 침입으로 황제 자리는 자신의 손에 떨어진다. 그 몇 달을 기다리는 것이 속이 타

고 애가 끓어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반갑게도 저쪽에서 시종 셋이 모여 작게 숙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뭐라도 떠들어

야 내가 정확히 알지. 그는 몰래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자. 그놈이 또 누굴 죽였는지 어디

말해 봐.

“폐하의 백마가 영물이야.”

“그러니 떡하니 돌아왔지.”

“좀 말랐었는데 금방 살이 올랐어. 지금은 예전하고 똑같아.”

말하면서 이것들이 자꾸 앞으로 걸어가는 바람에 거기까지밖에 듣지 못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칼리크의 백마가 돌아오다니? 엄연히 자신의 신수 안에 갇혀 있는

데. 저것들이 뭘 잘못 먹었나, 왜 저런 헛소리를 하는 거지?

쿠로는 골몰히 생각 중이었다. 아!

황궁 안이 이렇게 조용하지 않았다면 박장대소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웃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저런 등신 같은 칼리크를 봤나. 이제 보니 얄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

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그거밖에 안 되는 놈이라.

어디서 몰래 백마 하나 데리고 와서 없어진 백마라고 속인 거다.

클클클.

남들이 듣지 못하게 입술을 꼭 닫고는 작은 소리로 비웃음을 실컷 날렸다. 야비한 놈. 이런

놈이 황제랍시고 온갖 폼은 다 잡고 있으니 나라 꼴이…. 쯧쯧쯧.

쿠로는 곧 자신이 주인이 될 황궁을 남다르게 둘러보았다. 자신의 저택이 이 황궁에서 가

장 가깝게 있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고는 하나, 이렇게 손님처럼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주인이 되어 활보하고 다니는 느낌은 어떨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

다.

곧이다. 곧 그렇게 된다. 그러니 그놈의 신수는 얌전히 처박혀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

야 한다. 여태껏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안심은 된다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신수는 언제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제 맘대로 불러낼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더 시간도 필요하고. 아직 자신도 그 수준까지 되지 않았는데 그놈은 어느 세월에 발현시

켜 연습시키고 성장시키나. 자신이 훨씬 빨리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희망적이다. 그리고

강력한 아군인 에무르가 있다. 그놈이 끌고 올 수백 척의 배도 있다. 하하하.

쿠로는 오래간만에 개운한 기분으로 황궁 안 탐사를 마쳤다.

가만.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찜찜한 뭔가가 떠올랐다.

분명…. 허연 말 하나가…. 공중에 둥둥…. 이런 걸 본 것도 같은데….

에이. 말도 안 된다. 꿈이다.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당연히 꿈이다. 지금 이

기분을 그 무엇도 망칠 수 없다.

쿠로는 간단히 꿈이라고 치부하고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두 번째 밤도 달라진 건 없었다.

이렇게 한 번만 더 밤을 보내면 그들이 돌아온다. 그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다. 혼자가 아

닌 두 사람이라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그 밤을 지새웠다.

세 번째 밤도 똑같이 칼리크를 꼭 안아 주며 쪽잠이라도 자게 다독거려 주었다. 날이 밝고

오후가 되면 틀림없이 안톤이 돌아온다. 그러니 오늘 밤만 잘 넘겨요. 칼리크.

그러면서도 벨리타는 잠들지 못했다. 성공해서 돌아온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느라, 행복한 고민을 하느라 전혀 잘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가슴이 너무 뛰어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벨리타는 숨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라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황궁 입구가

보이는 궁정에서 마냥 서성거렸다.

궁정에는 여러 사람이 나와 있었다. 칼리크는 물론이고 데인과 보좌관, 그리고 황제의 최

측근 대신들만 모였다. 그만큼 중대한 사항이었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시간은 긴장감으로 피와 살이 다 타들어 가듯이 고통스러울 만큼 느릿느릿 지나갔다.

그렇게 오후를 훌쩍 넘어섰다.

이상하다.

올 때가 지났는데.

벨리타는 피가 바짝바짝 마르고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기대와

희망이 걱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왜 이리 안 오지?

벌써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자신이 한 말대로 했다면.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칼리크와 데인의 얼굴도 걱정으로 어

두워져 있었지만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조금 늦나 봅니다. 마실 물은 여유 있게 있으니 큰 걱정은 마십시오.”

데인이 칼리크와 그녀를 위로했다. 걱정은 커졌지만, 아직 더 버틸 물이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해도 돌아올 여력은 된다. 아직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길이 생각보다 험해 하루

정도 오아시스에서 쉬고 돌아오려는 것일 수도 있다.

비록 얼굴은 다들 어두워졌지만, 서로를 위로했다.

그날 밤은 궁정에서 가까운 황제 침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들이 밤늦게라도 돌아오는 소리

를 듣기 위해 궁정으로 향한 창문은 모조리 열어 두었다.

칼리크는 침대에 눕지도 않았다.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창가에 서서 그 밖을 노심초사

쳐다보다가 계속 그것만 반복하며 초조해했다. 벨리타도 그와 같이 서성거렸다. 차마 편하

게 침대에 누울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말발굽 소리를 내며 황궁 안으로 장엄하게 그들

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을 달빛이 무심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늘따라 달빛이 차갑고 서늘하게 느껴졌

다.

***

이러다간 쓰러지게 생겼다.

이틀이 더 지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젠 마실 물도 다 떨어져 갈 것이다. 벨리타는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어지러웠다. 이럴 리가 없는데.

“훈련받은 정예 기사들이니 길을 잠시 잃었다 해도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데인이 희망을 담아 폐하와 황후에게 고했다. 오늘 밤까지 여분의 물이 남아 있다. 그러니

오늘 밤까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아니면 큰일이 났다는 소리다. 잘못될 리가 없는데 이

게 어찌 된 영문인지 벨리타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그녀는 황궁 입

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서 돌아오세요….

“폐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황제의 측근 대신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멀리 떨어져서 황궁 입구 너머만 쳐다

보고 있는 황후를 힐끗 보며 지극히 어두워진 얼굴로 그렇게 운을 뗐다.

“아무리 그들이 정예라 해도 그 악명 높은 환각의 사막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는 물 없이 며칠을 버틸 수 있다 해도 사막에서는 반나절 겨우 버

틸까 말까입니다.”

“오늘 밤을 넘기면 그들은 가망이 없습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황제는 눈을 질끈 감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 외람되오나 황후마마가 그리 똑똑한 사람이었던가요? 아무도 모르는 그런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급작스럽다 여겨집니다.”

대신은 조심스럽긴 하나 할 말은 해야 했다. 어젯밤부터 여기 모인 대신들 모두가 같은 소

리를 했다. 결론은 황후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인물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무리 최근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 해도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은 그 벨리타다. 그런

데 그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의심의 싹이 트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시

간이 좀 남아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오늘 또.

이러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망 없다는 쪽에 가까워지니 모두가 애가

타들어 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가장 염원하는 해결책을 시기상 절묘하게 왜 지금에야 말한 것인지 그것도 의문이 듭니

다.”

그동안 유클로 정복을 위해 얼마나 애타게 방법을 찾느라 노심초사하고 골머리를 앓았는

지 모른다. 그런데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할 때, 딱 맞춰 방법을 제시한 것이 황후다. 사람

이 너무 절실할 때는 믿는 사람의 말을 그냥 듣게 되어 있다. 지금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대신들은 그걸 짚어 내고 있었다.

“더 철저히 조사를 하신 후에 움직이셔야 했습니다.”

“황후마마의 말 한마디만 믿고 그 인재를….”

“그만하십시오.”

보다 못한 데인이 황제 대신 나섰다. 황제의 얼굴은 어둡다 못해 아예 시커멓게 죽어 가고

있었다.

“돌아가서 기도나 하시지요.”

단호한 데인의 말에 대신들이 주춤주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칼리크와 데인

은 아직은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도 불안함은 계속

증폭될 뿐이었다.

궁정에 어둠이 깃들자 벨리타는 자리를 뜨는 대신들의 시선이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그

녀를 향해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고개도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뭘 의심하는

거예요? 소설에 그렇게 다 쓰여 있었단 말이에요.

벨리타는 속이 다 타들어 가 시커먼 재만 남았다. 제발…. 오늘 밤에라도 꼭 돌아와요. 안

톤. 제발요.

칼리크는 밤새 궁정에 나가 있었다. 벨리타에게는 황후궁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하고는. 왜

옆에 있으려고 하는데 돌려보내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는 칼리크의 얼굴도 상당히

굳어 있었다. 그리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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