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66화 (66/130)

66화 나만의 천사

유모는 영문도 모르고, 드레스 자락을 거머쥐고 바쁘게 뛰시는 마마를 따라 죽어라 뛰었

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셨는데 이번만큼은 마마님의 분위기가 달랐다. 급박한 상황

이 터졌다. 한껏 긴장감으로 똘똘 뭉친 마마님이 날아가듯 달려가기 시작했다. 질세라 유

모 역시 빠르게 마마님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칼리크!”

그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 이름 하나만 애타게 부르고는 숨이 너무 차

잠시 호흡을 진정시켜야 했다. 헉헉거리는 그녀의 눈에 놀란 눈을 한 칼리크와 데인 대공

이 함께 보였다.

폐하께서 제1 대공과 긴급한 회의를 하시는 중이라 보좌관은 달려오는 황후마마를 말리려

했지만 얼마나 단호하게 자신을 지나 바로 문을 열고 돌진하던지. 말릴 수가 없었다. 순식

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멍해진 보좌관에게 유모가 다가왔다. 괜찮다고 어깨

를 두드려 주는 유모, 카넬 부인이 고마웠다.

칼리크와 데인은 사막 지도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갑자기 벌컥 들어온 벨리타

에게 이만저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잘됐네요…. 같이 계셔서….”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를 보고는 더 잘됐다

고 여겼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되겠다.

“벨리타….”

멍하게 쳐다만 보고 있던 칼리크는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느

닷없이 들어온 적도 처음이었지만 그녀의 상태가 다급해 보였다. 엄청나게 뛰어온 것이 분

명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여기.”

바로 그녀는 지도의 한 곳을 집게손가락으로 짚으며 강하게 언급했다. 칼리크의 걱정스러

워하는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칼리크와 데인은 대뜸 아무것도 없는 사막 중간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벨리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여기 오아시스가 있어요.”

데인의 입에서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칼리크 역시 얼마나 놀랐는지 벌어진 입술이 다물

어지지 않았다.

침착하자.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알아내야 한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안 그래도 사

막을 어떻게 지날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데인에게 농담으로 오아시스는 안 바라니 조그

만 옹달샘이라도 사막 중간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어젯밤 온실에서 벨리타와 같

이 본 야자수가 떠올라 그런 넋두리도 했었는데 정말로 오아시스라니!

“그게 사실입니까?”

데인도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사실 파악부터 들어갔다.

“있어요. 여기쯤.”

그런 애매모호한 위치 설명은 곤란하다.

“거길 어떻게 찾습니까? 확실치 않은 장소를 찾아 헤매다간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찾는 방법이 있어요.”

황후의 목소리와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더 확실해야 한다.

“어떻게 안 거요?”

칼리크가 핵심을 찔렀다. 벨리타의 말이 사실이려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가 가장 중요했

다. 누군가에게 흘려들었다면 그건 믿을 수 없다. 뜬소문과도 마찬가지다.

“이제야 기억이 났어요. 여기 이곳에 유클로 왕국 왕족 몇 명만 아는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요.”

그다음은 뛰어오면서 머리를 굴려 지어낸 거짓말이긴 하나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었다.

“펠론국에 있을 때 국왕 전하께 들은 것이에요.”

결국, 아버지를 팔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몸의 아버지, 펠론국 국왕을 팔았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다면 사실일 확률이 높다. 펠론국 국왕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클로 왕국의 왕족이 사신으로 왔을 때 아버지께 비밀을 털어놓았답니다. 거긴 왕족만이

알고 있는 장소라고도 했어요.”

그럴싸하게 꾸며 댔다. 이 사실을 펠론국 국왕에게 확인하러 가진 않을 터. 제 말을 믿어

주기만 하면 된다. 자신 혼자 알고 있던 사실이라 하면 절대로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

렇다고 소설을 읽고 이 같은 사실을 알았노라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이렇

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데인과 칼리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승리로 이어지는 길

이었다. 지금까지 이 사막 때문에 유클로를 정복하러 움직이지 못했는데 오아시스가 있다

면 그곳을 중간 거점 삼아 바로 칠 수 있다.

지금 벨리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나 싶었다. 이번 일에 일등 공신이다. 사실이라

는 것만 확인되면 제국 통일의 완성을 그녀 덕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후 노릇을 아

주 톡톡히 해내는 일이었다.

“어떻게 찾아가죠?”

데인도 믿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대안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방법은 유일하게 뚫린

길 말고 다른 길로 진입하는 것인데 온통 주변이 사막이니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중앙에

오아시스가 있다니. 우선 제일 중요한 물이 확보된다. 그리고 군대를 나눠 오아시스를 거

점으로 유클로 성곽까지 방향을 잡고 진군할 수 있다.

그 사막은 모래 늪이 많고 같은 곳을 계속 맴돌게 만드는, 환각의 사막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막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엄두

가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벨리타는 제가 아는 정보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방법과 그 위치를

소상히 설명했다.

두 사람은 그녀가 어떻게 그리 자세하게 알고 있는지도 신기했다. 마치 사막을 위에서 내

려다보는 사람처럼 자신 있게 설명한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선명하게 반짝거렸다.

***

바로 오아시스 확인을 위한 원정대가 꾸려졌다. 안톤이 자진해서 나섰다. 안톤만큼 믿음직

한 사람은 없지만, 위험한 길이다. 만약의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막 안으로

벨리타의 말 하나만 믿고 밀어 넣는 것이다.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꼭 성공해

서 무사히 돌아오길 황제는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안톤을 중심으로 정예 부대 4인이 지원해 총 5명이 떠나기로 결정했다. 정보가 새어 나가

지 않도록 밤에 출발해야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오아시스로 갈 때는 밤에. 밤하늘 동쪽 아래쯤 별 세 개가 삼각형을 이루고 떠 있을 겁니

다. 그대로 그걸 바라보며 같은 방향으로 말을 달리세요. 해가 뜨면 쉬고 다시 밤이 되면

달리세요. 두 번의 밤을 달리면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안톤은 벨리타의 말을 외우듯이 집중해서 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의 눈에 여리여리하

게 보이는 황후가 강인한 여전사처럼 보였다.

“확인하고는 낮이 되면 바로 출발해서 돌아오세요. 이번에는 모래 위에 반쯤 묻혀 있는 바

위들이 반짝거릴 겁니다. 그 바위들은 한쪽만 반짝이는 신기한 종류입니다. 바위들이 많이

있을 텐데 반짝이는 것만 따라 달리세요. 두 번의 낮을 달리면 여기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오아시스를 향할 때는 바위의 뒷면이 보이기 때문에 반짝임을 볼 수가 없다. 해가 뜨면 바

위 앞면만 반짝인다.

그러니 해를 등지고 돌아올 때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자세히 설명을 끝낸 벨리타도 칼리

크, 데인과 함께 그들을 배웅했다. 한 사람이 소지할 수 있는 최대치인 물 5일 치 정도를

말에 싣고는 5명의 정예 부대가 출발했다. 그들의 어깨에 제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제대로 돌아오면 지금부터 만 이틀이 지나고 그다음 날 오후면 다시 돌아오게 된다. 만 사

흘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넉넉하게 5일 치의 물을 가지고 출발했다. 오아시스에

당도하면 물 보충을 하면 되니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들이 출발하고 나자 황궁 안 전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오아시스만 확인이 되면 유클로 왕국이 눈치채지 못하게 군사 1/3만 협곡 사이에 놓인 유

일한 진입로로 진군한 뒤 협곡으로는 들어가지 말고 그 앞에서 기다린다.

나머지 2/3 군사들이 오아시스를 거쳐 유클로 왕국의 허리 부분으로 치고 들어가 내륙에

서 국경 접전 지역으로 전진한다.

오아시스에서 유클로 왕국까지는 3일이 걸린다고 벨리타가 알려 주었다. 그들이 협곡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유클로 군대를 안에서부터 치기 시작하면 협곡에 포진되어 있던 적들

이 우왕좌왕, 대열이 흐트러질 것이다.

그때 협공 작전으로 이쪽에서도 돌진하여 일망타진한다. 이것이 데인과 짠 전략이었다. 이

렇게만 되면 유클로 정벌은 2주일이면 된다.

길어야 3주. 뚫리지 않는 철옹성 같던 유클로를 한 달 이내에 정복할 수 있다. 다른 나라를

정복했던 것보다도 시간이 적게 걸리는 셈이다. 그러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

만 하면 황제의 염원인 제국 통일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날 밤, 쉬이 잠들지 못하는 칼리크를 처음으로 그녀가 안아 주었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팔을 가만가만 쓸어 주면서 그녀는 칼리크를 진정시켰다.

아무 걱정 말아요. 내가 아는 정보는 확실한 거니까.

소설에서 자칼단이 은신처를 오아시스로 바꾸면서 비밀리 접수한 이 방법으로 그곳에 터

를 잡는다. 그때 먼저 진을 치고 있던 도적 떼를 소탕하고 나서 그곳에 파오를 치고 자리

잡는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 정확하다.

칼리크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껏 긴장된 가운데 그녀에 대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

을 정도로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신수에 이어 유클로 정복, 나아가 제국 통일까지.

벨리타 덕분에 이 모든 걸 이루게 되는 것이다. 벨리타가 자신에게 다가와 꿈꾸는 부부가

되고 나서 이렇게 크나큰 축복들이 쏟아진다. 정말 천사인지도 모른다. 나만의 천사.

안톤. 어서 돌아오거라. 어서.

그렇게 모두가 긴장되고 긴장된 그 밤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만 갔다.

***

다음 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벨리타 역시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되었

다. 이 일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소설과는 완전 다른 미래가 전개될 것이다. 칼리크는

살아서 제왕이 될 것이고 이 제국을 태평성대로 이끌 것이다. 그 모습을 행복하게 지켜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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