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이젠 당신이 해 봐
앗.
불도저가 따로 없었다. 바로 입술이 밀어붙여지는데 그 힘으로 그녀의 몸이 뒤로 밀릴 뻔
했다. 그가 단단히 잡아 주고 있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목마른 두 사람이 서로의 샘물로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어떻게 그동
안 참고 살아왔는지. 열렬하게 서로를 탐하는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달콤한 내음이
방 안에 계속 퍼지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보고 싶어 했는지 입술로 보여 주고 있었
다. 대단했다. 절절했다. 벌써 다 녹아내린다.
쪽, 하고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렇게 야하고 흥분되는 소리인 줄 진정 몰랐다. 심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가슴이 서로에게 부딪히니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이젠 당신이 해 봐.”
숨 쉬기도 어려운데 말하는 건 더 어려웠다. 그 역시 힘겨운 듯 그 말을 던졌기에 그녀도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준비했다.
“앞으로 하나만 입을게요.”
자신이 은밀히 속삭이고도 놀라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자신도 변해 간다. 그런데
이 모습이 더 좋다.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입이 찢어질 듯 귀에 걸렸다. 한껏 웃던 그가 거기에
하나 더 덧붙였다.
“얇은 거로.”
이번에는 그녀의 입이 귀에 걸렸다. 정말 못 말린다.
잠시도 떨어져 있지 못하겠다는 듯 한 몸이 된 두 사람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뜨겁게
녹아내리는 열기가 방 안에 퍼져 있던 달콤함 위에 더해졌다.
방 안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고 있다. 점점 높아지고 서서히 끓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낮고
높은 신음 소리가 겹쳐지자 끓는 속도가 빨라졌다. 절절히 끓다가 펄펄 끓어넘쳤다. 서로
가 서로에게 마음과 몸을 온전히 다 내주고 있었다.
벨리타….
칼리크….
서로의 이름이 두 사람의 입에서 애틋하게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가자 두 사람은 서로를 느끼며 가만히
숨을 골랐다.
그에게 안겨 땀으로 젖어 있는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어루만지고 있는 벨
리타는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치솟았던 열정도 제 안의 엉켜 있던 고민도 모두 해결이 되
어 몸도 마음도 안락해졌다. 이런 순간도 오는구나. 이래서 남녀 사이는 아무도 모른다 했
나.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칼리크 역시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벨리타의 등을 손으로 천천히 음미하듯이 쓸어내리며
이 작은 몸에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이 조그마한 여신이 이성을 잃게 만들고 다급하게 달려들게 만든
다. 대단한 힘이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 순간은 그녀의 힘에 지배당하는
느낌이었다.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이런 느낌, 허락한다.
벨리타에게만 기꺼이 허락한다.
그녀는 알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를 허락했는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가장 높
은 자리를 내주었다. 아낌없이.
꼬르륵.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벨리타의 배에서 난 희한한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두 사람 귀
에 정확히 들렸다. 머쓱해진 벨리타는 그의 널찍한 가슴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배 안 고파요?”
사실 칼리크가 오늘 밤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저녁을 거의 먹지 못했다.
“고파.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
정말이기도 하고 그녀가 민망해하는 것 같아 무마시켜 주려 그리 말했다. 별 세세한 것까
지 신경 쓰는 자신이 낯설면서도 기분 좋게 여겨졌다. 문밖에서도 그러더니 이제 이런 내
가 자꾸 나올 건가? 벨리타한테라면 뭘 못 하겠어. 다 괜찮다.
두 사람은 더 급한 것을 채우고 나니 음식이 필요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되어 있는
가운을 입고는 테이블로 향했다.
칼리크의 가운이 이 방에 준비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유모 덕이었다. 맨 처음 가지고 왔을
때는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이렇게 긴요하게 잘 사용하게 되다니. 저 가운이 없었으
면 분명 칼리크는 알몸으로 당당히 걸어 다녔을 것이다. 아직 거기까지는… 유모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뭐라도 먹지 그랬어요.”
저 혈기 왕성한 칼리크가 쫄쫄 굶었다니, 안쓰러워졌다. 자신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먹었는
데.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
여기로 뛰어오기도 바빴는데 그걸 뭐 하러 먹어. 시간 아깝게.
“여기 잘 차려져 있네.”
즐거워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도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 유모….
유모에 대한 고마움은 가운만이 아니었다. 아까 배고프면 드시라며 테이블에 하나 가득 식
사를 차려 놓고 나갔다. 아무리 봐도 혼자서 먹을 양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한껏 긴장하고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유모의 선견지명은 정말이지 대단
하다. 부드러운 빵과 음료, 그리고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각종 과일이 두 사람을 위해 놓
여 있었다.
그가 먼저 그녀의 입에 알이 굵은 포도 한 알을 넣어 주었다. 그가 더 배가 고플 텐데, 아무
것도 안 먹었고 더 많이 움직…… 그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적응기라 그런
다. 아직 얼마 안 돼서 그런다. 익숙해지고 더 여유 있어지는 날도 오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의 입에 그가 포도를 또 넣어 주었다. 그녀는 그가 더 배고
픈데도 저부터 챙겨 주는 것이 고마워 얼른 복숭아를 잘라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그녀가
내민 손을 좋아라 바라보다 손가락을 핥듯이 복숭아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다. 아… 정말 잘생겼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남자다.
그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꼭 살아남아 훌륭한 제왕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생각 해?”
벨리타가 자신을 자꾸 보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아 보이자 갑자기 쓸쓸해졌다. 이
거 중병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이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사람에 대한 쓸쓸함은 부모님을 생각할 때 외에는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다. 그분들이야 돌아가셔서 안 계시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벨리타는 바로 눈앞에
있다. 그것도 방금 엄청난 사랑을 나누고 난 뒤다. 이런 일을 겪어 보지 못한 칼리크는 자
신의 반응에 당혹스러웠다.
“당신 생각이요.”
바로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당혹함과 쓸쓸함은 언제 있었냐는 듯 바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더 해. 더 많이 생각해. 그거라면 언제든 허락하지.
자신이 늘 먹는 만찬보다 간단한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녀와 같이 먹고 있는 모든
음식들이 그것보다 더 맛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가 먹여 주는 음
식이 더더더 맛있었다. 입은 찢어지게 웃으며 먹으랴 그녀의 입에 과일을 넣어 주랴 그의
입과 손이 바빴다.
행복했다.
행복이라…. 자신의 머릿속으로 그 말이 떠올랐다. 이것도 처음이다. 좋은 기분은 살아오면
서 여러 번 느꼈지만 행복이라. 벨리타와 함께여서 행복하다라. 처음 겪어 보는 느낌, 감정
들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더 다가올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그때 그는 크나큰
걸 깨달았다.
신수! 그랬던 거구나.
자신 안의 성장이 열쇠였다고 생각했는데 그 성장이 행복이었다는 걸. 스스로 행복한 상태
가 되어야만 신수가 발현된다는 사실. 그것도 완성체가. 아버지는 늘 어머니와 함께만 계
시면 행복하셨다.
내가 완성되어야 신수도 완성되는 거였다.
[칼리크. 네 사람을 옆에 두거라.]
꼭 충신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구나. 내 사람… 여인도 포함되는 거였다.
아버지께서 가끔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가 있으셨다. 선황들의 이야기.
4대 선황께서는 간절히 원한 영애와 결혼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부부 사이가 안 좋
아졌고 후궁이 역사상 가장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신수가 발현되는 건 어느 시기건 처음은 나타나도 그다음부터는 주인에게 달렸다
고 한다. 아직 성체로 발현되지 않았으면 끊임없이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 4대 선황의 신수
가 가장 성장이 더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20살 전에 어머니와 약혼을 했고 신
수가 발현되었을 때는 이미 성체였다고 하셨다. 그 후, 완성체로 성장하는 것도 가장 빨랐
고.
자신도 그러했다. 아니, 성체일 뿐만 아니라 완성체로 나왔다. 그러니 처음 발현된 것을 본
세 사람의 말이 맞았다. 그때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는 이리 크진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제 안에서 신수가 성장했을 것이다. 달라진 벨리타를 만나고부터. 이렇게 완성체 신수가
발현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똑같은 세상인데 벨리타가 변하기 전과 후의 세상이, 자신이 느끼는 세상이 너무나 다르게
보였다. 더 힘이 솟고 더 강해진 자신을 느낀다.
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금욕적인 생활을 몸에 익히게 하셨는지 그 깊은 뜻을 이제야 완
전히 알게 되었다. 사실, 왜 신수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시지 않았냐며 더러 원망도 했었
다. 서른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진 탓이었다. 존경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원망을 다
하다니, 자신이 못나서 그랬다. 그릇이 작아서 그랬다.
자기가 가진 그릇의 크기대로 신수가 나온다고도 하셨다. 그러니 아버지께서는 모두 알려
주신 것이다.
아버지보다 한없이 작은 존재인 것 같은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호랑이 신수가 제게서 나왔
다. 더 큰 그릇이 되리라. 호랑이 신수를 마음대로 호령하는 위대한 제왕이 되리라. 그 아
래에서 이 벨리타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녀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지금 자신이 이리 행복하니까.
충분히 배가 불러 두 사람은 좀 씻고 싶어졌다. 지금 온천탕으로 갈 수도 없고. 왜냐? 너무
멀다. 시간이 아깝다. 이젠 아예 온천탕에서 만나야 할까 보다.
“칼리크? 어서 와 봐요.”
그녀가 먼저 파티션 안으로 들어가더니 감탄하는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서둘러 다가가
자마자 그의 입에서도 바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