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거칠었지만 소중하게
오늘 밤은 그 끝이 다를 것이다. 이미 각오하고 온 벨리타는 첫날밤을 향해 문을 열기 시작
했다.
두려웠던 마음과 긴장된 몸이 그와 닿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열
기에 휘감겨 그가 이끄는 대로 믿고 따라갔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막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두니 그가 다르게 느껴졌다.
더 선명하고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존재가, 몸이, 입술이 그녀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
게 만들었다. 오로지 여기에만 집중하고 빠지게 했다.
칼리크… 당신을 믿어요. 내가 한 선택도 믿고요.
온천물에 몸은 따끈해지고 속은 후끈, 입술은 화끈, 미칠 것 같았다. 벨리타는 모든 걸 다
풀어 버렸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의 입술 아래, 손길 아래 꽁
꽁 잠가 놓은 빗장을 스스로 열어 버렸다.
칼리크는 그녀의 굳은 몸이 자신에게 친밀하게 감겨 오자 그녀를 안은 채 그대로 일어났
다. 탕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와 한쪽 끝에 마련된 시원한 침상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면서도 잠시의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조금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몸이 한껏 달아올랐다. 이걸 풀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았다. 이렇게 들끓는, 제어할 수 없는 열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벨리타는 자신이 침상에 눕혀지는 걸 알았다. 하지만 키스를 되돌려 주며 그의 목을 더 꼭
끌어안았다. 그에게 오늘 온전히 자신을 다 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도 그를 온전히 다 갖고
싶다.
둘만의 세상. 열정. 열기. 열망. 열애.
모두 주고 모두 가질 것이다.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그녀를 달래듯이 차곡차곡 불을 지폈다.
그러면서도 아주 빠르게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 낸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그녀의 몸이 계속해서 바르르 떨며 신음을 흘렸다. 저도 모르게 손으로 제 입을 막으며 나
오려는 신음을 참으려 했다. 누가 들으면….
“괜찮아. 벨리타….”
그의 뜨거운 숨결과 함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의 꼭 감은 눈을 뜨게 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열기와 열정이 휘몰아치고 있는 금색 눈동자가 오로지 자신만을 내려다보고 있었
다.
입을 막은 자신의 손을 떼어 내는 그에게서 뜨겁게 타오르는 애정 어린 눈빛이 쏟아졌다.
그가 소중하게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걸 모를 수 없는 애틋한 그 눈빛에 그대로 그를 향해
문을 활짝 열었다.
벨리타….
내 아내.
칼리크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애틋한 단어가 ‘아내’라는 걸 서른 살을 앞두고 처음
알았다. 이제는 좀 더 많이 부르리라. 아내…. 몸에 퍼지고 있는 열기와는 또 다른 뜨겁고
먹먹한 감정이 훅 치고 올라왔다.
아….
처음이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접근하던 그는 벨리타가 모든 걸 열어 버리자 점점 절실하
게 움직였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열어젖힌 뜨겁고 황홀한 세계로 그들은 질주하기 시작했다.
***
문밖에 서 있던 시종장은 속으로 흐뭇해했다. 드디어 두 분이 합방을 하신다. 늘 잠자리까
지 도맡아 준비해 왔기에 그 어떤 여인도 침대나 이 온천탕에 불러들이신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 지금. 그 뜻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두 분이 부부이시니 이 얼마
나 바람직한 상황인가.
얼마든지 마음대로 여인들을 부를 수 있는 폐하이신데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으셔서 선
황을 닮아 그러신가 보다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다.
선황께서야 금슬 좋은 부부 사이였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혼자셨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저 혈기 왕성한 나이에 홀로 지내시다니. 혹 남자를 좋아하시나,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자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도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 분이 지금….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모두 다 달라진 황후마마의 공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황후마마. 폐하를 위해 계속 이렇게만 해 주소서.
헉.
지금 무슨 소리가.
공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여인의 가냘픈 신음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정확히는 문
을 통해 새어 나왔다.
이런.
이 영광스러운 소리를 신하 된 자로서 듣고 있는 것 자체가 중죄다.
흠흠.
시종장은 이미 얼굴이 벌게져 있는 기사들에게 손짓을 하고는 그들을 이끌고 지하에서 나
와 입구에 대기하게 했다. 물론 지하로 통하는 문은 직접 굳게 닫았다. 이러면 완벽하다.
폐하. 즐거운 시간 되소서.
시종장은 황제궁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월이었다. 폐하 내외분께도 저 만
월처럼 모든 것이 충만하시길 소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폐하의 침실을 둘러보러 그쪽
으로 향했다.
***
따뜻한 물 속에서 나른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어루만져 주는
그의 손길에 심신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살짝 졸음이 밀려왔다. 기운이 다 소진된 듯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지만 마음만은 충족되고 행복했다.
조금 전까지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계속해서 넘나들었다. 다 쓸려 내려갈
것 같은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다가도 뜨거운 열기를 품은 강한 바람이 그녀를 높이 날려
버렸다.
그의 열정적인 품 안에서 진정으로 한 몸이 되어 저 높은 곳에서 둥둥 떠다녔다.
지금은 온천물에 둥둥 떠서 그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말해 준다.
괜찮소? 어디 아픈 곳은 없소? 다 괜찮은 거요?
거칠었지만 소중하게 이끌어 준 그에게 감동했다. 행복했다.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그 충족
감에 그녀의 눈꺼풀이 조금씩 감겼다. 너무 긴장해 있었나 보다. 숨어 있던 피곤함이 서서
히 다가왔다.
칼리크는 아니었다. 아직 다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이 욕심이 많은 남자인지 지금 처
음 알았다. 그녀와 이제야 정식으로 부부가 되면서 처음 아는 것도 많아진다.
키스할 때부터 알아봤다. 갈증은 점점 더 일었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고 싶었다. 지
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곳에 도달하고 왔는지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맛봐야 만족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이 저를 의지하며 노곤하게 자신에게 착 감겨 왔다. 피곤도 하겠지. 이런 큰일을
치렀으니. 그런데 누가 한 번으로 끝낸다고 했나. 그녀의 눈꺼풀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걸 보니 안 되겠다.
“벨리타.”
잠이 들려고 하는지 그냥 흘리듯이 대답을 하는 벨리타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살짝
찌푸려졌다. 할 수 없다. 그녀를 그대로 안고 다시 침상으로 향했다. 여기서는 되었다. 장소
를 옮긴다.
비몽사몽인 벨리타를 침상에 눕혀 놓고는 자신의 가운을 입었다. 그러면서도 비너스처럼
완벽하게 조각된 그녀의 자태를 눈으로 더듬었다. 신이 누구보다 더 공들여 빚어 놓은 것
이 틀림없다. 직접 이렇게 확인했으니.
서둘러 그녀를 실크로 된 이불에 돌돌 말아 아기처럼 얼굴만 보이게 감싸 버렸다. 그리고
는 달랑 안아 들었다. 아주 잠시만이다. 그녀가 잠을 취할 수 있는 건. 그때까지만 허용해
주기로 했다.
그녀를 단단히 안고 3층 자신의 침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
벨리타는 너무 편안했다. 구름 위에 누워 있는 듯 폭신한 느낌이 좋았다. 여기서 푹 잘 수
있어서…. 그런데… 무겁다. 갑자기 제 몸을 은근히 눌러 오는 존재 때문에 배 근처가 무거
웠다.
“누가 자라고 허락했소?”
역시 칼리크였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자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때 같으면 귀찮아 비키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천국을 맛보고 온 지금은… 어?
벨리타는 눈을 번쩍 뜨며 바로 코앞에 있는 칼리크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
겠고 자신이 잠이 들었다는 것이 더 황당했다. 그에게 미안해서 황당했다. 그런 뜨거운 대
사를 치르고는 속 편하게 잠이 든 꼴이 되어 버렸다.
“내 침실에서 감히 계속 자다니.”
저와 몸을 포개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칼리크의 표정은 놀리는 표정이었지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미안함에 살며시 미소 지으려는 그녀의 입술에 그가 다가왔다.
쪽.
가볍게 버드 키스만 하고 그가 입술을 떼자 벨리타는 서운한 듯한 표정으로 말끄러미 그
를 올려다보았다.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가 물러서자 아쉬웠다.
“오늘 밤은.”
쪽.
다시 버드 키스만 하고 떨어졌다.
“안 재울 거요.”
쪽.
저런 무시무시한 말을,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 버릴 말을 키스 사이사이에 하니 감질나서
애가 타기 시작했다.
“각오해.”
이번에는 다시 다가온 그의 목을 두 손으로 꼭 끌어안고 진한 키스로 이끌었다. 버드 키스
는 그만. 그가 명령한 대로 이번만큼은 성실히 수행할 생각이다.
다시 이어졌다. 제2막이 올랐다. 처음과는 달리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알아 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다시 끓어오르는 열기를 음미하며 점점 더 깊게 서로에게 파고들었다.
그 역시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밤새, 창밖이 밝아 올 때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자
신의 갈증이 채워질 때까지, 안에서 뿜어져 나오려 하는 뜨거운 열기가 식을 때까지 그녀
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
유모는 폐하의 침실을 처음 와 보았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 침실 문 앞에
서 대기 중이었다. 황제 폐하는 벌써 집무실로 나가셨는데 마마는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마마께서 나오시기만을 기다리며 몇 시간째 이렇게 문 앞에 서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힘
들지 않았다.
“깨우지 마라.”
아침에 저한테 그리 명하시며 저벅저벅 힘차게 걸어가시는 폐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
동과 감명으로 유모는 연신 뒤에다 대고 절을 몇 번이고 해 댔다. 그리고는 조용히 제자리
를 지키는 중이었다.
조금 있으면 점심 드실 시간인데… 이젠 어쩌나…. 단장도 하셔야 할 텐데.
시간이 정오를 향해 가자 유모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