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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53화 (53/130)

53화 오늘 밤 나한테로 오겠소?

“나는… 언제 쯤 이렇게 달려 볼 수 있을까….”

혼잣말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뭘 그런 걸 걱정해. 나와 같이 타면 되지.”

이젠 말도 예쁘게….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자 생각도 멈추고 말았다.

쿵쿵쿵쿵.

엄청난 진동과 함께 빠르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조금씩 진정되어 가던 그녀의 심

장을 지배했다. 갑자기 손이 바르르 떨렸고 바로 눈앞에 있는 그를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숨을 고를 시간을 주지 않는다. 늘 그렇다. 지금도 그렇다. 얼굴이 순식간에 붉

어져 고개를 더 들 수 없었다.

제 손등에 겹쳐져 있는 그의 손이 너무나 뜨거웠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거센 진동과 손

등으로 느껴지는 뜨거움으로 손 전체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

이 시원하게 불고 있는데도 손부터 뜨거워진 열기가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당신하고 같이 있으면 더워.”

나도 더워요. 당신 목소리가 더 뜨거워서.

제 머리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퍼지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눈을 마주치기가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이 분위기를 안다. 그가 만들어 내고 있는,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는 이 분위기

를 너무나 잘 안다. 그다음 뭐가 올지도. 그래서 더 쳐다보질 못하겠다. 그의 입술이 내려

올 테니까.

그의 손이 가만히 올라왔다. 그리고는 바람에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또 한 올 한 올

귀 뒤로 넘겨 주더니 손등으로 턱선을 따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또 이런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한껏 고조된 긴장감 때문에 갈 곳 잃은 그녀의 눈동자가

어색하게 방황하기만 했다.

“벨리타….”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먼저 녹이더니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리고는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서서히 내려왔다. 그녀의 입술을 향해 감질나게 조금씩, 애를 태우듯이 조금

씩 조금씩 내려왔다.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숨결이 서로에게 부딪쳤다. 절로 그녀

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점점 조여 오는 몽롱한 긴장감에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

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입술이 아니라 그의 코끝이 닿았다. 제 코끝에. 가만가만 더듬고, 쓸어내리고, 비벼대는 코

키스가 이렇게 짜릿할 줄 몰랐다. 뜨거운 키스를 나누기 전의 서막 같은 느낌이었다. 두 사

람의 성적 긴장감은 점점 더 높게 치솟아 올랐다.

아….

바로 지척에 보이는 그의 입술이 너무나 섹시해 보였다. 그녀의 입술은 조금 더 벌어진 채

바르르 떨었다. 이젠 닿고 싶다. 하고 싶다. 저 강인함을 입 안에서 다 맛보고 싶다. 더 이상

은… 못 참겠다.

덮쳤다. 그녀가 먼저 그의 입술을 덮쳐 버렸다. 어렵지 않았다. 워낙 가까이 있어 그냥 입

술을 조금 앞으로 내밀면 되었다. 그가 바로 앞에서 너무 유혹을 한 탓이다. 감질나서 죽느

니 그냥 먼저 해 버렸다. 입술이 닿자마자 화산이 폭발하듯 거세게 불이 붙어 버렸다.

칼리크….

마음을 결정하고 나자 거부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의 입술을, 그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정 속에 빠져 정신이 아득해지고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 전부 점령당한 입술

은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닳고 닳아서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그가 달려드는지 그 힘이 무시무시할 정도였

다. 그의 황홀한 움직임에 넋이 나가 모든 걸 그 흐름에 맡겨 버렸다.

너무 뜨겁게 달궈져 입 안에 불이 난 것 같았다. 이렇게 뜨겁다간 정말로 녹아 버릴 것 같

았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 입술을 더 꼭 붙이며 그의 현란한 움직임을 다 받아 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휘감아 버렸다.

음….

칼리크는 처음으로 그녀가 키스를 되돌려 주기 시작하자 거친 신음 소리를 흘리며 더 다

급하게 파고들었다. 입술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더 꼭 끌어안으며 온몸이 밀착되게 만들었

다.

아… 이 느낌.

이 부드러움도 온기도 열정도.

다 갖고 싶다.

더 갖고 싶다.

지금 허락된 그녀의 입술을 한껏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계속되는 갈증에 칼리크는 애끓는

신음만 하나 가득 쏟아 냈다. 갈증이 너무 심해서 온몸에 열이 났다. 미열처럼 나던 것이

점점 뜨거워졌다. 용광로가 달궈지듯이 자꾸 달아올랐다. 어떻게 이 열기를 다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한없이 치솟았다.

히이잉.

갑자기 흑마가 움직였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이놈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했다. 너무 오

래 했다. 미안하다.

흑마가 기다림에 지쳐 움직이자 겨우 입술을 뗀 두 사람은 잠시 아쉬운 눈빛을 교환했다.

열기가 묻어 있는 눈빛 사이로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갔다.

벨리타는 정확히 느꼈다. 칼리크가 단지 남자의 들끓는 욕정에 휩싸여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절절한 마음까지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에 넘어간다. 아니, 거의 넘어갔다.

벨리타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 어디에건 거부하고 물러서려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

다. 그녀도 원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마음이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터질 것 같았다. 이 뜨거움이 몸 안에 갇혀 사납

게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전혀 다스릴 수 없다는 것도 처음이다. 그

냥 밖으로 쏟아 내고 싶어졌다. 안 그러면 온몸이 정말로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의 눈빛마저 점점 짙어졌다. 황금빛 눈동자가 짙은 감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눈빛이 타

들어 가는 것처럼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 온 감각으로

느껴졌다.

제발… 첫날밤, 이런 말 말고 다른 말로 해요. 그 말 들으면 바로 몸이 굳어질 것 같아요.

벨리타는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서 간절히 소원했다. 무뚝뚝하게 첫날밤을 치르자, 이러지

만 말기를.

“벨리타.”

그래요. 나 여기 있어요.

다음 말을 듣는 것이 떨려 벨리타는 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놓치기 싫은 두 사람의 이 분

위기를 이어 가고 싶었다. 제발… 당신한테 달렸어요.

“오늘 밤 나에게로 오겠소?”

아….

칼리크, 당신은 정말….

그윽한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감동으로 스며들었다. 이젠 거부할 수 없다. 아니, 그 무엇

도 막을 수 없다. 가야 한다. 그에게. 내 발로.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떡였다. 아! 그가 보지 못했나 보다. 너무 살짝 끄덕였던 모양이

다.

“대답해 봐. 당신 목소리로.”

봤다. 그런데 직접 듣고 싶은 거다. 확실한 대답을 귀로 듣고 확인하고 싶은 거다. 미루려

면 미룰 수도 있게, 강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선택하게 해 주고 있는 거다. 이렇게 자상한

사람인데 그동안 이것도 못 알아보고. 내 죄가 크다. 이젠 피하지 않고 뛰어든다. 그녀는

다시 한번 굳은 결심을 하며 입술에 힘을 주었다.

“갈게요.”

그의 황금빛 눈빛이 확 짙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불꽃 같은 늪이 되어 그녀를 휘감았

다. 시선 하나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다 풀렸다. 서 있었다면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가 갑자기 서둘렀다. 말고삐를 당기며 바로 흑마를 출발시켰다.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는

건 당연했고 속도를 어마어마하게 냈다.

기다리고 있던 흑마 역시 제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바람처럼 날아갔다. 이곳으로 올

때보다 더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칼리크도 그녀도… 그 속도에 맞춰 더 거세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끝에 뭐가 있는지 당신하고 한번 가 볼래요.

그러니 당신도 나 놓지 마요. 절대로.

난 절대 안 놓을 거예요.

벨리타는 자신의 다짐을 그에게 전달하려는 듯 그의 허리를 더 단단하게 꼭 붙들었다.

***

“마마? 왜 이리 산발이 되셔서….”

유모는 마마의 모습에 놀라 할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곱게 땋아서 올려 준 마마의 머리가

풀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삐죽삐죽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거의 산발 수준이었다. 게다가

굳어진 마마의 얼굴이 터질 듯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아! 촉이 말해 준다. 폐하구나.

뭘 하셨구나.

유모는 살며시 시선을 돌렸다. 마마께서 무안해하지 않으시게. 그런데 마마께서 다가오시

더니 작게 부탁하시는 말씀에 눈이 번쩍 떠졌다.

뭘 하실 거구나.

정확히는 이미 뭘 하셨고 다시 또 뭘 하실 거구나.

이번엔 유모의 얼굴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두 여자가 볼이 붉어진 채 속삭이는 모습이 누가 봤으면 이상하게 여겨질 만도 했다. 너무

나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속삭이는 모습은 뭔지 알고 싶어질 정도로 은밀해 보였다.

“제가 준비를 단단히 해 드리겠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에.

그럼 지금까지 정말로 잠만 주무셨다는 말씀이다. 마마께서 자초지종을 말씀하시며 도움

을 요청하셨다. 저를 믿고 오늘 거사를 치를 것 같은데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시겠다며

은밀히 부탁하셨다. 이럴 때를 위해 자신이 있는 거다.

서둘러 움직이는 유모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땅 위를 뛰고

있는데도 공중에 떠 있는 듯 마냥 들떠 있었다.

***

처음 와 보는 황제궁 지하.

이곳에 설치된 온천탕으로 칼리크가 초대했다. 벌써 훅 뜨거운 공기가 느껴진다. 아직 문

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하로 내려오는 입구에 기사들이 지키고 있

었고 이 문 앞에도 시종장과 기사들이 완벽하게 지키고 서 있었다.

괜히 그들 앞에서 벨리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안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광

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꿋꿋이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가 갈아입을 옷과 다른 필요한 것들을 담은 커다란 바구니는 이미 유모 손에 의해 온

천탕 안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냥 몸만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앞까지

오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걸음만 걸으면 되는데, 그거 하나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황후마마 드십니다.”

시종장의 목소리가 크게 지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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