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오늘 아침에 대한 보상인가 싶으면서도 황제를 향해 슬쩍 눈을 흘겼다. 물론 아침보다는
좀 곱게 흘겼다. 선물을 받고 싫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칼리크는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 한눈에도 알 수 있을 정
도였다. 흡족했다.
비밀리 신속하게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자꾸 푸드덕거리며 놀라게 하는, 순하지 않은 갈
색 말에게 마음이 떠났는데 계속 그 말을 탈 이유가 없다.
황실 마구간에 말들이 넘쳐나는데 그중 가장 좋은 혈통을 지닌 말을 벨리타에게 선물했다.
이 백마의 혈통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최고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인을 살리
기까지 한다. 그런 귀한 혈통의 백마를 그녀에게 내주었다. 크게 선심을 썼다.
저렇게 앉혀 놓고 보니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백마 덕에 그 주변이 하얗
게 빛이 나고 있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벨리타의 얼굴도 덩달아 빛이 나니 눈이 다 부셨다.
“고마워요.”
수줍게 인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살짝 발그레해진 그녀의 두 볼
이 그림처럼 예쁘게 보였다. 그 아래 핑크빛 입술이 유혹적으로 벌어져 미소를 짓고 있었
다. 칼리크는 그 유혹에 이끌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앗.
갑자기 다가온 칼리크가 손을 뻗어 자신의 뒤통수를 잡더니 끌어당겼다. 몸이 숙여짐과 동
시에 와 닿은 그의 입술. 불시에 습격당하듯이 그와의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입술만 닿았다 하면 빠른 속도로 달아올랐다. 그는 황제라 그런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러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어 입술을 떼 버렸다. 말 등 위에 앉아
있는 그녀보다 칼리크가 조금 아래 서 있어서 그런지 품 안에 안겨 있을 때보다는 키스를
멈추기가 더 수월했다. 키스가 깊어지기 직전에 입술을 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눈으로 물
었다.
왜 갑자기 키스를 하고 난리예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칼리크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독심술사라 그런지 그녀의 말
없는 물음을 정확히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누가 보는데!”
그의 주장에 벨리타는 주변을 빠른 속도로 둘러보았다. 그의 말대로 다들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하긴, 황제와 황후가 키스를 하는데 빤
히 쳐다볼 시종들은 없다. 다만 아직 황후라는 자리에 완전히는 적응하지 못한 자신이 문
제다.
“고마우면 말로 끝나면 안 되지.”
다들 말로 하던데 이건 또 무슨 고집인지.
“나한텐 절대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알았지?”
대답이고 반박이고 할 겨를이 없었다. 무슨 키스를 힘으로 밀어붙이는지, 사정없이 부딪혀
오는 그의 입술 때문에 맞닿은 부분이 다 얼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뜨거운 열기가 그
녀에게로 전달되어 급속도로 같이 타올랐다. 누가 먼저 신음 소리를 냈는지 이번 역시 알
수 없었다. 역시나 또다시 숨 쉬기조차 힘겨워졌다.
겨우겨우 입술을 뗀 그녀는 가쁜 숨을 그의 입술 위로 가득 흩뿌렸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
다. 지금 그만두어야지 더 진전되었다가는 말릴 수 없게 된다.
말 연습은 하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나, 벨리타…. 감미롭게 제 이름을 속삭이는 그의 목소
리에 속절없이 넘어갔다.
귀가 먼저 녹아내리더니 다시 밀어붙인 그의 입술에 온몸이 흐물흐물해졌다. 이제 말 연습
이고 뭐고 안중에 없었다.
그저 서로의 입술에 열중하느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키스를 너무 잘하는 칼리크 탓
이다. 중독되었다. 경험이 없던 그녀조차도 거침없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칼리크는 자신이 흘리는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중독이다. 절
대 떨어질 수 없게 만드는 그녀의 유혹적인 입술 탓이다. 아무리 핥아도 채워지질 않는다.
더 하고 싶게 만든다.
아… 이 느낌이 너무 좋다.
가슴이 쿵쿵 뛰며 흥분하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황홀해하는 이 느낌은 경험해 본 적이 없
다. 그래서 이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헤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온몸에 에너지가 폭주하듯 뜨거운 열기가 손가락 끝까지 뻗어 나간다. 아… 벨리타. 두 눈
을 지그시 감고 그녀의 입 안에 푹 빠져 있는 칼리크는 자신 안에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마
구 증폭되는 힘을 느꼈다. 그 힘을 그녀의 입술 안으로 몽땅 쏟아부었다.
팍.
뭔가 거대한 것이 칼리크의 등 뒤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오더니 바로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 누구도 본 사람이 없었다. 벨리타 역시 눈을 꼭 감고 사납게 움직이고 있는 그
의 입술을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주변 시종들은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고 있었다. 불
륜 황후를 탐하는 폭군 황제에게 감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둘 용기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
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은 진한 소리를 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입맞춤을 계속하고 있
었다.
쪽.
쪽.
***
쪽.
쪽.
손가락까지 쪽쪽 빨며 식사를 마친 에무르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드디어 거들먹거리며 입
을 열었다.
“이제 당신이 말한 협상이라는 걸 해 볼까?”
여전히 제 앞에서 상전 노릇을 하는 에무르를 억지로 참아 주었다. 쿠로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시종을 불러 에무르에게 맞는 옷을 가져오라 시키자 옆에서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먼저
씻고 옷을 입든가 해야지 무슨 배려도 없는 처사냐 하며. 하긴, 일부는 맞는 말이기에 저자
세로 잘못을 사과하고 목욕부터 시켰다.
얼마나 오래 욕조에 들어가 안 나오던지 혹, 조는 건 아닌가 싶어 시종에게 보고 오라 시킬
정도였다. 그리고는 옷을 갖추어 입고 나와서 한 상 차려오라 명령했다. 또 그렇게 해 주었
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얼마나 게걸스럽게 처먹던지. 물론 탑 지하에서 허접하게 먹은 건 알
지만 왕자인 척 온갖 폼은 다 잡았으면서 허겁지겁 먹는 모습은 개 같았다.
아이스크림 디저트까지 알뜰히도 다 처먹은 에무르가 꺼억, 더럽게 트림까지 크게 내고는
제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렸다. 그리고는 그제야 대화를 해 보겠다는 듯 선심 쓰는 말투로
지껄였다. 그래. 다 참아 준다.
“그러지.”
쿠로는 사악한 뱀이 움직이듯이 에무르 쪽으로 다가갔다.
“당신을 무사히 로카 왕국으로 보내 주겠소.”
그거야 소원하고 소원하던 일. 하지만 에무르는 표정에 드러나지 않게 용을 썼다.
“이러는 이유는?”
역시. 이렇게 핵심을 딱 짚고 나오니 대화하기가 쉬워졌다. 사람 하나는 잘 봤다. 쿠로는
속으로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차차 말하고 지금 더 중요한 건 이거지. 내가 당신,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 절대 잊
어서는 안 될 것이오.”
세 공작이 자신에게 협박하듯 강조할 때마다 비웃었는데 입장이 바뀌니 그 역시 똑같은
짓을 에무르 왕자에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황제라는 자리를 두
고 협상을 하는 중이다. 협박이 아니고 협상! 쿠로의 입술이 사악하게 옆으로 벌어지고 있
었다.
***
“이 백마가 마음에 드오?”
잠깐 숨 좀 쉬고요.
말 연습할 시간을 전부 키스하는 데 써 버렸으니 얼마나 오래 한 건가. 주변 시종들에게 민
망할 정도였다.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다 쓸어 놓고는 방금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느라 말도 못 하겠는데 바로 질문을 하는 칼리크가 얄미웠다. 물론
그의 목소리도 숨 가쁘게 새어 나와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 그래도 대답을 하기 위해서
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크게 들썩거리는 그녀의 가슴으로 시선을 떨어뜨린 칼리크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말 등
위에 앉아 있어서인지 그의 눈높이가 하필이면 그녀의 가슴 높이였다. 그의 미소 때문에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딜 그렇게 봐요!
숨이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그의 시선 때문에 다시 가빠지기 시작했다. 참 짓궂다. 시
선 좀 돌려줘요.
역시 독심술사다. 그가 바로 시선을 옮겼다. 그 위로.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그녀가 빠지기 딱 좋은 늪
처럼 유혹적으로 그윽했다. 다시 그가 유혹한다. 가슴이 진정되기는커녕 더 거세게 뛰기만
했다.
벨리타가 다시 유혹한다. 자신이 촉촉하게 적셔 놓은 입술을 앙증맞은 혀로 핥으며 파란
눈동자가 점점 짙어졌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빛이 나는 파란 눈동자가 매혹적이었다. 방금 끝낸 키스
가 다시 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쑤셔 놓을 수 있다니,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하다니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매번 그렇지만 키스를 하면 할수록 더 새롭게 빠져든
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점심 식사 후 한 시간 정도 벨리타를 위해 빼는 것도 상당히
무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모르겠지만 데인에게 은밀히 부탁한 일이었다. 난감해하면서도 데인은 어떻
게든 해 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데인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키스를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이
제야 알았나 싶을 정도로, 아니 이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왔나 싶을 정도로 푹 빠져 버렸
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한다.
“벨리타.”
또 감미롭게 제 이름을 부른다. 귀가 호강한다.
“네.”
자연 그녀의 목소리도 녹아내렸다. 두 사람 사이 공기만 다른 것 같았다. 달콤한 핑크빛 솜
사탕 같은 느낌이었다.
“이 백마가 마음에 드오?”
그가 다시 묻는다. 입술이 닿지 않아도 눈으로 서로를 느끼느라 정신이 없어 그녀는 대답
을 하지 못했었다.
“그럼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흡족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근사하게 걸렸다. 그 입가를 바라보며 벨리타 역시 화사한 미
소를 지었다.
“내가 이름까지 지었소.”
이름까지 지었다고?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 까칠하고 안하무인인 폭군이 무슨 이름을 지었을
까 궁금해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