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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27화 (27/130)

27화 또 다른 유혹인가?

하하하하.

쿠로는 제 저택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좋을 수가. 저한테 신수

가 발현된 일 다음으로 좋은 일이었다. 방금 심어 놓은 첩자한테 들은 정보다.

황제의 백마가….

크크크.

바로 알아차렸다. 선대의 사자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쿠로였다. 자신의 말 신수가 백마를 집

어삼켰다는 것에 온몸이 터져나갈 듯한 희열이 솟구쳤다. 그래서 울음소리도 내고 더 오래

발현되었던 거다. 그리고 그날 캑캑거리던 것도 삼켜 버린 백마가 신수 안에서 요동을 쳤

으니 그런 것이었고. 백마도 제 주인 황제를 닮아 아주 지랄 맞은 모양이다.

하하하하.

계속 이런 일만 일어난다면 아주아주 살맛 날 텐데. 말 신수는 황제의 백마를 가두고 자신

은 황제를 가두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미리 맛본 것 같아 지금 이 순간 세상이 제 발아래 있는 것 같았다.

날아갈 듯한 쿠로는 지금은 마음대로 끄집어낼 수 없어 보이지는 않는 자신의 신수를 향

해 중얼거렸다.

사랑한다, 신수야! 잘했다. 아주아주 잘했다.

황제한테 말이 아주 많다. 이참에 다 삼켜 버리고 쑥쑥 크거라.

으하하하.

다시 온몸이 충만된다. 에너지가 모이고 있다. 그 느낌이다. 좋다. 더 좋다. 또 신수가 나오

려는 징조다. 점점 빨라진다.

이러다 매일 나올 수도 있겠다. 처음에야 이렇게 용을 써야 한 번씩 발현되는 신수가 익숙

해지면 힘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다. 또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격노했을 때

는 신수가 스스로 발현해 주인을 보호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너무 행복했다.

아! 이렇게 되고 보니 괜한 짓을 했다. 불 지르지 말걸.

오늘 같은 날 죽은 그년이 있었다면 그리로 당장 달려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아쉬움에 쿠로

는 살짝 후회하고 있었다. 그날 제 신수까지 그 지랄을 떠니, 이런 사연도 모르고 열이 있

는 대로 받아 문전 박대 한 그년의 집을 불 지르게 시켰던 건데.

에이. 조금 참을걸.

그래도 쿠로는 그까짓 일로 지장받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년은 자신과 교접을 하고 나면

며칠은 앓아눕는다고 투덜거렸다. 심한 열병에 걸린 것처럼. 다른 여자들은 아무 말 없었

는데! 그게 다 돈을 더 받아 내기 위한 개수작임을 누가 모를 줄 알고. 이젠 죽고 없으니 그

런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쿠로는 지금 느끼는 희열을 그대로 안고 얼른 마차를 대기

시켰다.

전에 그 여자는 조금 지루했다. 그럼 세 번째 여자로 가면 되지. 아니면 또 네 번째.

발걸음이 마치 춤을 추는 듯 가벼웠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흘리며 쿠로는 산뜻한 동작으

로 대기하고 있는 마차에 올라탔다.

***

회포를 아주 거하게 푼 뒤, 사랑스럽고 예뻐 죽을 것 같은 자신의 신수와의 만남을 가지고

다음 날 기분 좋게 세 공작을 만나고 있는 쿠로는 기분이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왜 벌써 나온 거요? 아픈 건 괜찮소?”

아직도 귀에 붕대를 하고 있는 산티노 공작에게 쿠로는 입으로만 위로했다.

“네. 괜찮습니다. 제 할 일은 해야죠.”

또 중요한 일도 있고. 누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옌슨 공작. 후계자 발츠는 찾으셨습니까?”

치료하느라 저택 안에 처박혀 있었는데도 산티노 공작은 모르는 게 없었다. 옌슨 공작은

씁쓰레한 표정으로 말투만은 정중하게 내뱉었다.

“찾다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다 알고 있는데 시치미는. 산티노 공작은 속으로 비웃었다.

“후계자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다고 들어서요.”

“나도 들었습니다.”

옌슨 공작은 두 공작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다.

“누가! 그런 말을!”

아차 싶은 옌슨 공작은 분노를 다스리며 얼른 다시 우아한 톤으로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제 후계자는 여행 중입니다. 워낙 배움에 호기심이 많아 각 나라를 보고 배우라고

제가 보내 주었습니다.”

다른 두 공작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기 바빴다. 퍽이나.

그들 옆에서 쿠로는 그들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제 안의 희열 속에 있느라. 서

로 뭐라 떠들어 대든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머릿속은 서로 다른 그들이었다.

***

하!

빌어먹을 황제가 또 집무실에만 있단다. 지난번은 방에 틀어박혀 있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도 또?

모두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그를 위해 길을 터 주었다. 왜냐? 뒤에 신수가 따라오고 있

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3일 만에 또 나왔다. 하늘이 이제 내 편이다.

지난번처럼 황궁 근처 으슥한 곳에 세운 마차 안에서 여자와 거사를 치렀다. 그리고는 제

몸에서 나온 신수를 대동하고 황궁 안으로 으스대며 들어섰다. 이젠 푸르스름하게 빛이 나

는 제 말 신수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보라고 사람 많은 곳은 다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황제 나가신다. 다들 비켜라.

속으로 통쾌하게 외치며 쿠로는 의기양양하게 궁 내부로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 망아지 같

던 말 신수가 이제는 어엿한 어른 말의 몸집만큼 커졌다. 두 사람이 올라탈 수 있을 정도

로. 아. 그보다는 조금은 작은가? 어쨌건 그 정도로 커졌다. 그러니 쿠로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주인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날아서 뛰어다니는 신수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자. 똑똑히 보라고. 칼리크. 네가 안 나오면 내가 보여 주러 간다.

“지금은 황제 폐하께서 중요한 업무…….”

“비켜라.”

집무실 입구에서 자신을 막고 선 보좌관을 쿠로는 손으로 확 밀쳐 버렸다. 쿠당탕, 그의 힘

에 밀려 보좌관은 저만치로 나가떨어졌다.

어디서 감히. 진짜 황제한테 가짜 황제를 들먹이며 길을 막아!

만족스러운 얼굴로 쿠로는 집무실 문을 양손으로 힘차게 활짝 열었다.

“요란하군.”

문이 쿵 닫히는 소리에 황제가 읽고 있던 서신을 내려놓으며 쿠로와 그의 신수에게 눈을

돌렸다. 이미 집무실에 들어와 공중에서 원을 그리듯 빙빙 달리고 있는 말 신수가 제법 커

진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안에.

내 백마가.

히이이이잉.

황제는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백마의 울음소리. 주인을 보고는

저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백마의 소리.

미안하다. 아직은 널 구해 줄 수가 없구나.

히이잉.

히이잉.

한 번도 힘든데 연속해서 말 신수가 소리를 내자 황제는 다시 눈을 번쩍 떴다.

그럼 그렇지. 쿠로 이놈이 옆에서 신수를 부추기고 있었다. 자꾸 말 울음소리를 내라고. 저

놈을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는 소문이 날까.

“제 신수가 많이 컸습니다. 황.제.폐.하.”

말 안 해도 안다. 눈은 정상이다. 황금빛으로. 붉은빛으로 변하면 널 죽일지도 모르겠다. 말

하는 폼하며 거만 떠는 표정하며 아주 가관이었다.

황제 옆에 서 있던 신검에서 웅웅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지 그뿐 움직이지 않을 것이

다. 신검은 신수 아래다. 신수가 나타난 이상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신수와

함께 있는 그 주인은 죽일 수 없다.

캑캑.

쿠로의 신수가 갑자기 머리를 흔들며 뭔가 목에 걸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큰일이 났더군요. 폐하의 백마가 사라졌다면서요.”

황제의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눈동자도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

다.

저놈이 다 알면서 감히 황제인 나를 능멸해!!!

신수 없이는 자신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 하더니 신수 하나 믿고 제 맘대로 지껄이는 파렴

치한 놈.

“앞으로 잘 지키셔야 하겠습니다. 황제의 애마들을요. 누가 압니까, 또 백마처럼 감쪽같이

사라질지.”

“네 이놈!!!”

황제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짙게 불타올랐다. 그의 두 눈 전체가 시뻘건 색으로 순식간에

확 덮어졌다. 선명한 피 색깔로.

윽.

황제는 짧은 신음 소리를 내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눈이 아팠다. 무언가로 후벼 파

는 듯한 갑작스러운 통증에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몇 번 눈을 깜빡거리며 바로 쿠로의 모습을 찾았다. 여전히 아주 점잖은 척 제자리에 뻣뻣

하게 서 있는 쿠로가 눈에 들어왔다.

겨우 정상으로 돌아온 황제는 다시 쿠로를 노려보았다. 이미 말 신수가 빠르게 쿠로 등 뒤

로 사라지고 있어 황제에게는 말 꼬리만 희미하게 보였다. 그래도 오랜 시간 버텼다. 나날

이 발전하는 것도 안다.

“그럼. 저는 이만….”

허리를 굽히는 둥 마는 둥 인사를 한 쿠로가 여전히 뻣뻣하게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황제

는 비웃음을 날렸다. 신수가 사라지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내빼는 쿠로가 가증스러웠다.

쿠로가 나가고 나자 보좌관이 살짝 절뚝거리며 다가와 중요한 소식을 전했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일어나셨다 합니다.”

황제의 눈동자가 빠르게 황금빛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

3일을 죽어라 아프고 일어났다. 유모의 효과 좋은 약 덕분이었다.

“아직 덜 나은 것 같은데.”

벨리타가 일어났다는 소리에 칼리크가 찾아왔다. 걱정은 했나 보다. 이렇게 빨리 온 걸 보

니.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과 목을 이리저리 만져 보는 황제의 손길에 부끄럽고 어색해 목이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얼굴이 붉어.”

칼리크….

그렇게 자꾸 만지는데 얼굴이 붉어지지 하얘지나요?

“아…파서 그런 거 아니에요. 다 나았어요.”

아!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황제는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나 때문에 그런 거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딴 데를 보며 수줍은 듯 말하고 있는 벨리타가 황제의 눈엔 귀엽게

도 보였다.

이것도 또 다른 유혹인가?

“이 정도 가지고 이러면 첫날밤은 어찌 치르려고?”

앗! 무슨 첫날밤?

여기서 왜 그 말이 튀어나와?

자신을 죽일 것 같이 굴던 사람하고 이 정도로 변화하고 거기다 그런 키스를 하는 것까지

따라가기도 힘들다. 그런데 키스 세 번 하고 잠자리 이야기까지 튀니 그녀는 어이가 없었

다. 무슨 첫날밤을 밥 한 끼 먹자는 식으로 쉽게 말하는 건지 기가 막혔다. 어떻게 하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지금 얼마나 지났다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말을 왜 꺼내!

“우리가 결혼한 지 4년이나 됐는데 첫날밤은 언제 치르지? 늦어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미치겠다.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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