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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25화 (25/130)

25화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잘못 말하면 에무르와 도망친 사

건이 오히려 별거 아닌 일이 될 것이다.

“그 키스요.”

확 말해 버리니 왜 그리 부끄러워 했나도 싶었다.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막… 막 키스했을 때요. 당신이 잠들기 직전, 봤어요.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황제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벨리타가 알아차려도 할 수 없다. 그만큼 그에게는 중요한 일

이었다. 처음 나타나고는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발현되지 않았던 신수다. 그 잠깐이라도.

“어…떤 모습이었지?”

“너무 컸어요. 제 방을 가득 덮을 정도로. 사납긴 얼마나 사납게 생겼는데요.”

당신 닮아서.

차마 이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자신의 말을 듣고도 황제가 침묵한다. 별말이 없다. 안 믿

는 듯도 보였다. 정말인데.

황제는 말문이 막혀 할 말을 잃은 것뿐이었다.

그렇게 거대하다니, 게다가 사납기까지. 그럼 성체다.

쿠로의 신수처럼 망아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다 완성됐다는 말이 된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믿고 싶었다. 얼마나 피 말리게 고대하고 기다렸던가.

하지만 거짓말이라면 하루 만에 번복할지도 모른다. 죽이지 않는다는 그 말을.

“우리 두 사람 정도는 한입에 삼켜 버릴 정도로 컸고요. 그 부리부리한 눈동자는 황금빛…

… 아! 당신 눈동자랑 똑같았어요.”

황제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바람에 그의 가슴이 크게 꿈틀거렸다.

가슴이 벅차다. 이게 다 사실이라면 자신의 신수가 이미 완성된 채 곧 제대로 발현된다는

말이 된다. 새끼 호랑이라도 발현되기만을 소원했는데 이미 성체라는 말이 그의 가슴을 부

풀게 했다. 선황의 검은 늑대가 그 정도 크기였다. 방 하나를 다 뒤덮을 정도로, 사납긴 얼

마나 사나웠던지.

지금 벨리타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말해 준다. 진실이라고.

아직 한 번도 자신의 신수를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

금까지 그의 모든 고민과 고난을 다 토해 내듯이.

이제 나오기만 하면 된다.

망아지 같은 것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신의 신수가.

보고 싶다. 자신의 눈동자와 똑같은 호랑이 신수의 모습을.

벨리타는 뭔가 더 자세히 설명해야만 할 것 같아 계속 기억을 쥐어짜 냈다. 황제의 표정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시시각각 변해 갔다. 좋은 징조라 여기고 그녀는 또다시 말

을 이었다.

“당신 등 뒤로 뭐가 팍 터지는 듯 퍼졌어요. 순식간에 방 안 가득. 점점 선명해지고 나서 그

게 호랑이인 줄 알았어요. 호랑이 줄무늬까지 똑똑히 봤어요. 입을 크게 한 번 벌리면서 기

지개를 켜는 것처럼 저를 향해 눈을 부라리더니 사라졌어요.”

사실 그대로 정밀 묘사를 들어갔다. 그녀의 말에 황제가 흡족한 표정을 짓는 듯 보였다. 다

행이다.

“이 정도면 중요한 일인가요?”

조금 자신 있게 물을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자신에게 엄청 집중하며 만족해하고 있었으니

까. 아니, 행복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녀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제 판단이 맞았는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기뻐하는 것 같았는데….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황제의 손이 몇 번 들썩거린 것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그 어떤 말도 없었다.

“시원한 홍차 마실까?”

네?

갑자기 지금 왜 홍차가 나오나 싶었는데 바로 그 말뜻을 알아차린 벨리타의 입술에 그제

서야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네. 큰 잔으로요.”

너무 긴장해서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탄다. 후……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녀는 두 손을 가

슴 앞에서 꼭 쥐며 자신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황제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자꾸 나아가려고 하는 자신의 손

을 제어하느라 힘들었다. 그의 숨소리는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거칠어지기만 했다.

벨리타가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나 싶었다. 외모야 알아줬지만 오랫동안 아무 관심

도 없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만져 보고 싶어서 그의 손

이 근질근질해졌다. 손을 제어하자 눈이 말썽이었다. 그녀의 입술에 콕 박혀 떨어지지 않

는 눈이.

듣기만 해도 너무나 황홀한 말을 하는 저 입술에 닿고 싶었다. 뭐가 저리도 하나같이 다 예

쁜지. 흠을 잡을 구석이 없었다. 지난밤 정열적이었던 키스를 저 입술에 했다는 것이 그를

뜨겁게 만들었다. 벨리타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고 그녀의 입술에 몸이 뜨거워졌다. 지금

여기서 하면 안 되나? 자신의 침실이 아닌 것이 그렇게 원통할 수가 없었다.

아니지.

왜 안 되지?

난 황제인데! 이 여자는 내 아내고! 장소가 무슨 상관이지?

벨리타는 갑자기 손을 내민 황제가 저를 확 당기는 힘에 무방비 상태로 끌려갔다. 처음 여

기에 빙의했을 때처럼 남자 무릎에 앉게 된 벨리타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누구랑 비교해?

황제다. 에무르 같은 것이 아닌 황제 칼리크다. 그렇게나 진한 키스를 한 칼리크다.

지그시 눌러 오는 그의 뜨끈한 눈빛에 그녀의 가슴은 콩닥콩닥 터질 것만 같았다. 무슨 일

이 벌어질까 이미 예상이 되는 상황이라 더 뛰었다. 그녀의 입술이 참지 못하고 달싹달싹

움직였다.

황제의 시선이 곧바로 그 입술로 떨어지더니 눈빛이 점점 더 짙어졌다.

유혹한다. 벨리타가. 드디어.

오늘만큼은 큰일 한 벨리타에게 선물을 줘야겠다.

그는 다시 어젯밤으로 돌아갔다.

한치의 떨어짐 없이 맞물린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참을 수 없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의 신음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어젯밤의 그 촉감이 맞는지 다

시 확인하는 절차를 황제는 아주 황홀하게 행하고 있었다. 다 맞았다. 아니 더 좋았다. 키

스를 할 때마다 더 좋으니 이것도 미치겠다.

벨리타 역시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꼭 매달려서 그의 키스를 다 받아 내고 있었

다. 그녀를 안은 황제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옥죄어 왔다. 그의 입술은 더 강하게 파고들었

고.

얼마나 오래 키스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끝내고 싶을 때까지 한다. 황제에게 이렇게 감미

롭고 황홀한 시간은 없었던 것 같았다.

아…… 벨리타.

키스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다 녹이는 벨리타.

벨리타는 이런 식으로 남자들을 홀려 왔던 것이 틀림없다. 이번 상대가 자신이 된 것뿐. 지

금 제대로 유혹하고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매력적인 벨리타의 입술에서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었다. 여기가 집무

실인 것이 또다시 한스러웠다.

그래. 오늘 밤이라도.

우리가 치러야 할 것을 치르자. 미뤄졌던 첫날밤을.

황제는 지금이라도 당장 더 갖고 싶은 것을 참아 내느라, 키스 하나만으로 만족하느라 엄

청난 자제심을 발휘해야 했다.

***

휙.

유모는 집무실 문을 두드리려고 올린 보좌관의 손을 빠르게 낚아챘다.

지금 이 사람이! 분위기를 읽어야지.

보좌관은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다음 업무를 보시라고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유모

는 뭐가 더 중요하냐는 눈빛으로 보좌관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의미 있게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놔두세요. 이제야 처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우리는 방해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밀

어드려야 해요. 우리가 힘을 합쳐서.

제대로 알아들은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모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열리지 않는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이 또한 앞으로 많이 볼 광경이라는 걸 숙지

했다. 벌써 달달하고 후끈한 공기가 여기까지 퍼져나오는 것 같았다.

유모의 입가에 너무너무 행복한 미소가 흘러넘쳤다.

***

“내…일도 또 와요?”

한계까지 키스를 하고 잠시 숨을 고른 벨리타는 황제에게 열에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안 오려고 했나? 지금 우리가 만나기만 하면 이러는데?

황제는 기분이 상하려고 했다. 자신을 점찍어 달려들 거면 적극적으로 나와야지 사람 헷갈

리게 만든다. 이것도 다 상대를 안달 나게 하려는 작전인 건가?

“시키지 않으면 안 할 건가?”

스스로 찾아오고 그래야 맞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남편이라 무작정 밀어 낼 수는 없어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그의 요구대로 다 한다

고 약속은 했으니 일단은 해 달라는 대로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내일도 올게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 내 벨리타지.

벌써부터 자신의 것처럼 소유욕을 드러내는 황제였지만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잘 인지하

지 못했다.

***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퉁퉁 부은 로간 공작과 집무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갔지만 벨리타

는 아직도 멍한 상태로 생각에 잠겨 있어 알아보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홍차를 마시지 않고 나왔다.

하긴. 홍차 마실 시간에 키스를 더 했지. 그가.

벨리타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슬며시 피어올랐다.

움푹 팬 보조개를 옆에 있던 유모가 놓칠 리 없었다. 좋은 시간을 보내셨구나, 흡족해하는

유모의 모습 또한 벨리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빙의해서 남편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알게 된 지 얼

마 되지도 않은 남자인데 자꾸 이래도 되는 걸까. 물론 얼굴은 잘생기긴 했지만. 게다가 키

스는 또…….

칼리크는 갑자기 어떤 마음으로 이러는 걸까, 벨리타는 상당히 궁금해졌다.

벨리타를 고민 속으로 빠트린 황제, 칼리크는 도대체 집중할 수가 없었다. 로간 공작이 뭘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데 뭐라 하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황홀했던 벨리타와의 키

스, 그 입술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단한 키스.

다 알고 있는데도 그녀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이러니 다들 빠져드는 거겠지.

그건 그렇고 신수를 봤다고.

남에게만 모습을 보인 게 두 번째다. 언제쯤 내 앞에도 나타날 것이냐. 그의 머릿속은 온통

신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벨리타와는 달리 황제는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칼리크는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키스 하나만으로도 좋을 판인데 신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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