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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24화 (24/130)

24화 어젯밤 키스

이게 뭐를 뜻하겠는가. 이제 폐하 한 분에게만 관심을 준다는 말 아니겠는가. 어쩌면 모든

방황을 끝내고 정착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러니 팍팍 밀어드릴 거다. 아닌 놈들하고도

밀어드렸는데 이번에는 다름 아닌 폐하다. 이 한 몸 다 바쳐 도와드릴 거다.

“폐하는… 하암…… 밤새… 잘 잤… 하암…… 써요.”

헙! 유모는 빠른 속도로 얼굴이 벌게졌다. 놀라기도 했지만 이런 말을 자신이 들어도 되나

싶었다. 높고 높으신 황제 폐하의 옥체에 관한 말을 이렇게 표현하는 마마도 참…….

하품을 하며 말을 한 탓에 유모의 귀에는 ‘폐하는 밤새 잘 서요.’로 들렸다. 그래서 놀란 것

이고.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유모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벨리타는 고민 중이었다.

이제 안 가도 되나?

안 죽인다고 했으니 이젠 통과된 건가?

그럼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딱히 황제가 매일 오라는 말은 취소를 안 했으니 가야 할 것도

같고, 괜히 갔다가 왜 왔냐고, 그건 이제 끝났다고 하면 어쩌나 싶고, 그래도 약속을 했으

니 가야 할 것도 같고. 아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점점 안 가도 될 것 같다로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 키스가 작용했다. 생각만 해도 쑥스러웠다. 이러니 어떻게 바로 얼굴을 마주 봐? 얼

굴이 다시 달아오르며 저절로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폭 내쉬어졌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지금 폐하 생각하세요?”

벨리타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기도 했고.

유모는 입술을 오므리며 더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 좋아했다. 발그레한 얼굴로 한숨까지

쉬시는 마마의 모습은 첫날밤을 치른 뒤 쑥스러워하면서도 남편을 보고 싶어 하는 새색시

황후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팍팍 밀어드려야지.

이런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연애를 처음 하시는 마마를 위해. 유모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

이 나기 시작했다.

“유모. 나 지금 입맛이 없어요. 안 먹어도 될까요?”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아침으로 먹을 간단한 프렌치토스트와 커피, 디저트가 놓여 있었

지만, 너무 졸린 벨리타는 별생각이 없었다.

“드셔야 하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입맛까지 없으시구나.

이거 상사병 증상 아냐? 벌써 그 정도까지?

“마마. 지금 얼굴이 뜨겁고 열이 나고 가슴도 답답하고 그러시죠? 아무런 의욕도 없고 한

가지만 떠오르고.”

벨리타는 유모 말에 곰곰이 따져 보았다.

격렬한 키스를 생각했더니 안 그래도 얼굴이 뜨겁고 열이 난다.

이 상황에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하지 못해 가슴도 답답하고.

또 너무 졸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오로지 자고 싶다는 생각, 한 가지만 떠오르고.

유모가 원작 벨리타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리 딱 맞춰요?”

유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내 눈이 정확하다.

그다음엔 유모의 손이 바빠졌다. 시녀들도 다 합세하여 정신없이 그녀를 치장해 주느라 분

주하게 움직였다.

“어서 가요. 마마.”

“어디를요?”

뭘 떨어져서 그리워하십니까?

부부신데. 언제든 보러 가면 되죠.

괜히 상사병 같은 거 앓지 마시고 보고 싶을 땐 바로 가는 겁니다.

“어디긴요. 폐하한테 가야죠.”

네?

아직 결정을 못…….

벨리타는 유모에게 등 떠밀려 시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유모는 뭐가 바

쁜지 벌써 저 앞으로 내달려서 사라져 버렸다. 시녀들에게 잘 모시고 오라 말하고는.

후…….

벨리타는 얼떨결에 황제에게 가면서도 손가락만 배배 꼬며 되도록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

다. 마지못해.

***

“이튼 경. 이튼 경.”

유모는 황제 집무실 옆 보좌관실로 급히 들어가며 경을 불렀다.

“어서 오세요. 카넬 부인.”

몇 번 전언을 주고받았다고 조금은 친해져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반가웠다.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 황후마마께서 황제 폐하를 보고 싶어 하세요.”

“네? 지금 중요한 보고가 있어 공작님이 기다리고…….”

“지금 뭐가 중요해요? 황궁 사정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세요? 우리 마마는 폐하가 보고

싶어 상사병 증세가 나타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나서야 해요.”

유모의 단호한 설명에 보좌관은 눈을 껌벅거리며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하긴 그렇다. 오

늘 아침에 들려온 소문도 그렇고. 게다가 상사병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바로 발딱

일어섰다.

“어서 가시죠.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황제의 집무실로 향하는 보좌관은 카넬 부인에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너무 갑작스럽게 바뀌셔서. 이렇게 빨리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안 놀라셨

어요?”

유모는 그 말에 연륜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사랑이 예고를 하던가요.”

득도를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보좌관이 유모의 눈엔 귀엽게도 보였다.

***

유모가 먼저 준비를 다 해 놓았기 때문에 벨리타는 바로 집무실 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중

요한 개인 접견이 있을 시는 황후라 해도 황제를 만날 수 없다. 순서를 바꾼 줄도 모르고

열어 주는 문으로 들어간 벨리타는 바로 후회했다.

황제의 사나운 눈빛을 보고는.

역시 괜히 왔어.

***

벨리타가 왔다.

정말로 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황제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죽어라 그녀만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목숨을 보장받았으니 어쩌면 예전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하고 있던 차였

다. 도도하고 방탕하고 거만스러웠던 예전으로. 그렇게 된 거라면 아쉬운 생각이 들어 살

짝 얼굴까지 찌푸렸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다.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그것도 이렇게 일찍.

그렇다면!

나다. 이번엔 내가 좋은 거다. 그래서 다른 남자들도 다 내보내고 날 찾아오고 있는 거다.

벨리타가 다른 남자들에게 그랬듯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 번쯤 기꺼이 어울려

줘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어차피 자신은 벨리타가 어떤 여자인지 다 알고 있으니 에무르 같

은 멍청이들처럼 그녀에게 홀딱 넘어갈 일 또한 없다.

어젯밤 키스 때문인지 얼굴을 붉히며 쭈뼛거리고 있는 벨리타의 모습이 흥미롭게 와닿았

다. 다시 온몸이 뻐근해졌다.

벨리타는 등 떠밀려 황제 앞에 서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황제의 얼굴을 보니 별로

환영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은근 서운했다. 딱히 큰 기대를 하고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

전히 변함없이 이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런 진한 키스까지 나눈 사이인데… 잠도 같이

자고…… 비록 손만 잡고 잠만 잤지만, 아니 손은 안 잡았구나. 정말 둘이서 잠만 잤었네.

황제의 날카로운 시선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벨리타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어제 키스가 꽤 좋았다고 쿨하게 말할 수 있는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원작 벨리타라면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은 그런 타입이 아니다.

“앉지?”

여기까지 와서 설마 바로 나갈 건 아닐 텐데 왜 문에 딱 붙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지

황제로서는 답답했다. 자신이 좋으면 유혹이라도 제대로 하든가. 뭘 맨날 쭈뼛거리고만 있

어! 생전 남자 앞에 처음 서 보는 여인처럼 저렇게 구는 것도 은근 불만이었다.

처음 와 보는 황제 개인실을 잠시 두리번거리던 벨리타는 안락하게 꾸며진 소파 하나에

다가가 침착하게 앉았다. 아니 최대한 침착한 척하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

리가 들릴까 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러나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며 괜히 눈치를 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황제가 침묵하고 있으니 더 가시방석이 되었

다.

“로간 공작보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거요. 지금 순서를 바꿔 들어왔으니.”

어휴. 유모…….

왜 그랬어요.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린 벨리타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딱히 급한 용무

도 없는데 너무 준비 없이 왔다는 생각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할 말도 없는데 무슨 중요한 말이 있겠어요?

어떡하나…… 할 말이라도 생각해 오는 건데.

이래서 등 떠밀려 뭘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벨리타는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뭔가 중요

한 말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또 노래를 할 수도 없고……. 그러면 진짜 춤이라도 춰야

하나…….

아! 그래.

중요한 말.

생각났다.

“저…… 칼리크.”

황제는 그녀가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있어 답답하던 차였다. 이제라도 뭔가 말하려고

하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 무슨 말이든 해.

그래야 알지.

다른 남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유혹해 봐.

황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당신 신수…….”

순식간에 황제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하고많은 말 중에 왜 그 말을 꺼내!

그냥 돌려보내야겠다. 황제의 기분이 저 아래로 뚝 떨어졌다.

“혹시 호랑이인가요?”

“뭐어?”

황제는 얼마나 놀랐으면 벨리타가 몸을 움찔 떨 만큼 큰 소리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누구한테 들었소?”

그게 궁금했다. 그건 고위 귀족 몇 명과 황제의 최측근 3명만이 알뿐이었다. 짐작 가는 부

류가 있지만 벨리타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처음 놀람이 가시자 그의 기분은 더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최측근들 중에는 입을 놀

릴 자가 없으니 그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마통단과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동안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설마…….

“그게 아니라…… 봤어요.”

“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내가 봤다고요. 당신 신수 호랑이요.”

황제는 이 말을 믿어야 할지 어째야 하는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섭도록 그녀에

게만 집중했다. 신수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지금 벨리타는 최고의 흥미를

끌어내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 우리가…….”

너무 진하게 키스를 오래 해서…… 그 말을 꺼내기가 엄청 부끄러웠다. 키스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입 안에서 맴맴 돌았다.

“얼른 말해!”

속이 타들어 가는데 뜸을 들이는 벨리타가 답답해 다그치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거짓말만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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