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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22화 (22/130)

22화 기절할 것 같아서

왜 지금 하면 안 되지?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명색이 부부인데 이 정도쯤

이야.

[약속한 건 꼭 지킬게요.]

벨리타가 그렇게 말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

“칼…리크?”

벨리타가 놀라는 건 당연한 거다. 이 시간에 방문했으니. 아니 들이닥쳤으니. 문을 쾅 닫고

들어왔으니 또 밖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그래도 지루한 것보다는 이게 더 나았다.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노래나 시켜 보려고 뛰어왔는데 이상하게 벨리타의 분홍빛 입술만 눈에 박히게 들어왔다.

쿵쿵.

가뜩이나 몸에 열이 나 죽겠는데 심장까지 거칠어졌다. 달라진 벨리타가 자신에게 계속해

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조금 응해 준다고 뭐가 잘못인가.

“마저 끝내려고 왔지.”

“뭘…요?”

뜬금없기가 그의 특기인가 싶어 벨리타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지

금 얼마나 놀랐는지.

“산속에서 우리가 하던 거.”

난 몰라.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놀람과 당황, 거기에 민망함과 두근거림이 합쳐지니 그녀 안에서 아주 난리가 났다. 얼굴

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느닷없이 나타나 이런 요구를 하다니.

“그걸… 왜 지금…….”

또다시 버벅거리는 벨리타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황궁의 안주인 자격이 있다는 걸 언제 증명했지?”

그래도 매일 만났었고, 노래도 하고 무릎베개도…… 할 말은 많으나 벨리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떨려서. 지금 키스를 하라고 이 밤중에 황제가 쳐들어왔는데 말이 제대로 나

오면 정상이 아니다.

“이번엔 기절하지 말고.”

키스가 아니라 무슨 계약을 하는 것처럼 요구 사항이 덧붙여졌다.

“그것도 황궁 안주인 증명…인가요?”

“당연하지.”

뭔가 사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어 벨리타는 정신을 차려 보려고 애를 썼다. 호랑이 굴

에 들어가도 정신만…….

아! 혹시… 이게 먹힐까?

느닷없는 황제의 요구에 자신도 딜이라는 걸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아주 절실한 딜.

“일주일 다 되어 가는데. 연장을 좀…….”

내 목숨 연장 좀 시켜 주세요. 긴장돼서 죽겠어요.

“그런 건 필요 없어.”

안 해 준다는 말? 그러면서 무슨 키스를…….

“안 죽여.”

네? 지금 분명!

“영원히?”

“네가 죽을죄를 또 저지르지 않으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절대로. 그럼 난 이제 살 수 있다는 소리지?

“뭐 해?”

아. 지금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서 있다. 제 입술

을 뺏으려고. 아니 입술을 갖다 바치라고.

벨리타는 할 수 없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때 산속에서 했던 것처럼.”

“산…속이요?”

이상하게 그때만 떠올리면 무섭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와 나눈 키스만 생

각났다.

“그래. 그때처럼.”

무슨 추가 사항이 이렇게 많은지.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마

자 그녀의 몸이 휙 끌려갔다. 그의 손에 의해.

이건… 그때처럼이 아닌데…….

더 강렬했다.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두 사람이 맞닿은 입술 사이로 회오리바람이 헤집고 지나갔다. 뒤이어 거대한 해일이 밀고

들어와 모든 걸 휘감았다. 그의 펄펄 끓는 열기가 그녀의 입 안을 온통 쓸어 버렸다. 이러

다가 다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벨리타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기절하지

않기 위해.

산속에서와는 너무 달랐다. 그의 입술이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꼭 끌어안고 있는 목도,

얇은 잠옷에 맞닿은 그의 몸도 엄청 뜨거웠다. 이상할 정도로. 아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제 입술을 다 베어 먹을 것같이 그가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절박하게 제 입 안으로

무지막지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키스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모조리 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적시고 또 적시고.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 샘물을 찾듯 그렇게 그는 다급하게 마음껏 적시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들이마시려고 마구 헤집었다.

이제 입술만이 아니라 얼굴을 타고 온몸으로 그 열기가 저릿하게 퍼져 나갔다. 후끈후끈한

그의 열기가 그녀에게도 옮아와 한없이 달궈졌다. 그녀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끈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신음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그 소리가 더 달아오르게 만

들었다. 산속에서 한 키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깊고 진한 키스가 있는 줄 지금 처

음 알았다. 게다가 자신이 그런 키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가 하고

있다는 것이.

온몸이 녹아내리는 키스.

아…….

모든 감각이 그와 맞닿은 곳에만 집중되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쪽.

한 가지만은 똑같았다.

그의 요구대로 숲속에서처럼 똑같이 한 것은.

너무 정신없이 뜨거워 기절할 것만 같기에 입술을 억지로 떼 버렸다.

방 안이 울리도록 쪽 소리가 크게 나며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얼마나 단단히 밀착되

어 있었는지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칠 정도였다.

그렇게 살짝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어지럽게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저 혼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섹시한 입술 사이로도 거친 숨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뜨겁

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러다간 이 방 안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다.

장난해?

이것도 똑같았다. 그때와.

다만 다른 건 황제의 두 눈이 그때처럼 위협적으로 협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협박

은 협박인데 부드러운 협박이라 할까, 뜨거운 협박이라 할까.

“기…절할 것 같아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그를 멈추게 했다. 다시 달려들려고 하는 그를.

숨이라도 좀 쉬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제 가슴보다 크게

위아래로 들썩이는 그의 가슴이 더 눈에 띄었다. 그도 자신과 같았다. 그 확인이 그녀를 진

정시키기는커녕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러다 정말 기절할 것 같았다.

“이제 됐지?”

아니요. 아직…….

속으로 그 말도 채 끝내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힘에 다시 끌려갔다. 이번에는 그녀의 뒷머

리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고개까지 마음대로 바꿔 가며 입 안을

끊임없이 탐색했다.

벨리타의 입술이 이렇게 황홀하다니.

산속에서의 키스가 짜릿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때 한 키스 또한 이상하게 흥

분했다는 건 인정했다. 그러나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천하의 벨리타와 한 키스를 뭐 하러

기억하겠는가, 허구한 날 다른 사내들과 이보다 더한 키스를, 아니 그보다 더한 것까지 하

는 벨리타인데.

그때는 지금과 같은 느낌의 벨리타가 아니었다. 다른 여인인 것처럼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

다. 그녀의 입술 또한.

아무리 그녀의 입술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다. 더한 갈증만 인다. 목이 마를 정도로 애가

탄다.

황제의 손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이성은 어디 가고 본능만이 그를 가득 지배했다. 들끓

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그의 손이 벨리타의 몸을 어루만졌다. 모든 곳을 다 움켜쥐고 싶었

다. 다 제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자신이 거의 미친 것 같았다. 이 끓어오르는 열기에.

아!

그가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자 가냘픈 신음 소리가 그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움찔 몸

을 떨며 거부하듯 떨어지려고 하는 벨리타를 한 팔로 제 품 안에 가둬 버렸다.

어딜 가.

움직이지 마.

황제는 벨리타를 안아 들고는 뒤에 보이는 침대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마음이 급했다. 뭔

가 더 필요했다. 더 가져야 했다. 아니, 다 가지라 몸이 지시한다. 그에게 명령하고 휘저어

놓는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뜨거운 입김에 이 방의 공기까지 사정없이 달궈지고 있었다.

벨리타는 온몸이 마시멜로처럼 흐물흐물 침대 위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침대에

눕혀진 것도 알지 못할 정도로 열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키스 하나만으로도 이 정

도가 되다니 이보다 더 가면… 그의 몸 아래에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손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심하게 떨며 맞닿은 입술 사이로 연거푸 신음 소리를 쏟아

냈다. 그녀 역시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칼…리크.

그의 목을 꼭 끌어안은 그녀의 팔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으…….

그의 신음 소리가 또 그녀의 귀를 뜨겁게 했다. 낮고 깊게 파고들어 오는 그의 신음 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았다. 더 듣고 싶었다.

으….

그녀에게 화답하듯 다시 그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맞닿은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영원

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입술이.

그의 숨소리가 거칠고 불규칙하게 쏟아져 나왔고…… 그녀의 몸을 만지던 그의 손의 힘이

점점… 약해졌다.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벨리타는 꼭 감은 두 눈을 살며시 떠 보았다.

칼리크?

그가 이상하다. 얼굴을 심하게 찌푸린 채 숨을 더 헐떡거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뭔가와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괴로운 얼굴로 뭘 쫓아내려는 느낌도 들었고. 이런 진한 키스를 하

다 보일 만한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던 벨리타는 빠르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황제의 상태가 이상하다.

확실했다.

으…윽!

그의 상체가 튕기듯이 움찔하는 순간, 벨리타의 두 눈이 사정없이 커지고 말았다.

헉!

이건…….

온 방 안 가득 퍼진 이것은!

놀란 것도 잠시 바로 사라진 무언가 때문에 벨리타는 또다시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뭘 본

건지…….

푹.

황제의 머리가 제 어깨 위로 털썩 떨어졌다. 그의 무게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얹히자……무

거웠다. 잠시 생각을 멈춘 그녀는 칼리크를 조용히 불러 보았다.

응답이 없다. 뭐…지? 꼬물꼬물 몸을 움직여 그를 제 옆에 눕히고 보니…… 잠이 들어 있었

다. 다시 그녀의 두 눈이 크게 껌벅거렸다.

잠이…… 들어?

이렇게 격렬히 키스를 하다가?

혹 정신을 잃었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맥 빠지게도 잠이 든 것이 확실해 보였다. 지

난번 무릎베개해 주었을 때 들었던 코 고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순간, 뭔지 모르는 실망

감이 훅 밀려왔다.

이렇게 하고는 잠이 들다니. 난 어떡하라고. 무심하기가 금메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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