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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3화 (3/130)

3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하!

키스하다 기절한 여자는 처음이다. 하긴 여자와 키스를 언제 했었나, 기억이 가물거릴 정

도로 오래전이었다.

결혼식에서 시늉만 해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다른 것에 미쳐 있었다. 이 정

도로 열정적인 키스를 해 본 것보다 온몸이 뻐근해질 정도로 흥분한 것이 더 그를 흥미롭

게 했다. 그것도 이 벨리타한테. 그녀의 입 안에 푹 빠져 신음까지 흘리며 탐닉하다 억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몸이 축 처졌기 때문이었다. 숨을 고르며 그녀를 내려다보자 좀 전보다 더 하얗게

변한 얼굴에 여기저기 그어진 생채기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마치 흠집 난 인형처럼. 갑자

기 그의 눈이 찌푸려졌다.

흠집이라…….

그래도 이 상태로 축 늘어져 기절한 벨리타의 외모는 변함이 없었다. 여리디여린 천사 같

은 외모. 자세히 보니 입술은 표 나게 부어 있었다. 찡그려진 그의 눈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키스 좀 했다고. 쯧.

숨을 쉬는 걸 확인한 그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이제 어쩐다……. 돌아가긴 해야겠는데.

이 여자를 데리고 내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 그로서는 잠시 그것이 고

민거리로 작용했다. 오늘따라 벨리타가 워낙 이상하게 굴어 흥미를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

다.

하지만 그동안 어땠는가. 정략으로 맺어진 관계. 문제만 일으키던 황후. 차라리 없는 게 나

은 존재 아니었던가. 그런데 바로 오늘. 그녀를 죽일 명분이 생겼다.

황후의 자리를 위태롭게 한 죄. 자신과 황실을 모욕한 죄. 그러니 벌써 죽였어야 했다. 지

금 여기 팽개치고 가도 뜻은 이룬다. 들짐승들의 요긴한 먹잇감이 될 터.

그는 마음이 달라질까 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물러가라는 황제 폐하의 눈짓에 산 아래 집결해 있던 군대, 황실 근위대 중 정예 부대인 호

위군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주군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늦으신다.

근위대 대장인 안톤은 거구의 몸을 말 위에서 움직여 지상으로 내려섰다. 다들 같은 생각

일 것이다.

분명 골칫덩어리 황후를 죽이고 내려오실 계획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죽였을까.

뻔하다. 목이 달아났겠지.

그동안 황후가 그 어떤 짓을 저질러도 황제 폐하가 묵인해 주었지만 이런 식으로 도망을

치며 황후 자리를 욕되게 한 죄는 즉시 처형감이다. 황실의 명예를 떨어뜨린 자, 그대로 사

형이다. 안톤과 모두의 눈에도 좀 전의 황후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지만, 불륜 황후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죽어 마땅한.

감히 황제 폐하에게!

얼마나 기고만장하게 굴었는지 안톤은 더 잘 알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폐하를 모셨으니.

이렇게 그림자조차 싫은 존재는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최악의 황후에게 저런 미모를 주시

다니 신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처음 했었다. 아무리 뭇 남자들을 홀리는 미모라고 해도

안톤의 눈에는 그저 사악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이제 그 얼굴도 볼 일 없겠지만.

거룩하고 위대한 폐하에게 누가 되는 존재. 없어져야 할 존재.

이제 뜻은 이루어……

헉!

갑자기 주변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대기하고 있던 모든 군사의 눈동자까지 얼어붙

었다. 물론 안톤은 더했다. 지금 눈으로 뭘 보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홀로 장대하게 내려오실 줄 알았던 황제 폐하가. 혼자가 아니셨다. 게다가 두 팔로 황후를

안고 걸어 내려오고 계셨다. 환영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안톤은 몇 번이고 눈을 껌벅거렸지

만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다가오는 폐하의 모습에 더 뻣뻣하게 굳어져 버렸다.

아무 말 하지 마라!

황제의 시선을 받은 안톤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뜻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충성을 맹세하는 안톤은 황제가 말에 오르는 걸 도왔다. 황제가 말에 오

르면서도 두 팔로 안은 황후를 그대로 앞에 앉히더니 자신의 망토로 꼼꼼하게 감싸 다시

안는 걸 무표정으로 봐야만 했다. 황제의 품에 단단히 감싸인 황후의 머리끝이,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가 삐죽하게 나와 있는 걸 보던 안톤은 모든 감정을 죽인 채 모두에게 명령

했다.

“황궁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든 말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고 가장 뒤에서 엄호하듯 안톤은 말

을 몰았다.

황후가 살아 있다. 그것도 폐하 품 안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안톤은 황제에게 다른 계획이 있을 거라 굳게 믿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여느 때보다도 더 밝은 달빛이 환하게 길을 밝혀 주고 있었

다.

***

으…….

온몸이 찌뿌둥하다. 그녀는 눈도 뜨지도 못한 채 무거운 몸을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그러

나 바로 윽, 소리를 지르며 팔다리를 움츠려야만 했다. 여기저기가 심하게 당기고 쑤셨다.

화끈거리고 쓰라린 곳도 많았다. 살며시 눈을 뜬 그녀는 제일 먼저 자신의 몸 상태부터 점

검했다.

왜 이렇게 아픈… 앗!

팔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걸 확인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눈에 들어온 주변 풍경들

에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여기…… 뭐야?

자신이 누워 있는 커다란 침대와 으리으리한 방 안. 눈에 보이는 것마다 화려하고 고급스

러운 물건들. 박물관에 왔나 싶을 정도로 처음 보는 격조 높은 인테리어. 한국은 당연히 아

니라는 걸, 그리고 여기가 황궁이라는 걸. 저절로 알 수밖에 없었다.

밖은 어두운데 높게 트인 넓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달빛이 눈이 부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 다른 이유로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산속 그 끔찍한 사건이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다는 것에.

다시 떠오른 세 글자.

벨.리.타.

꿈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정말로 벨리타로 빙의한 거였어.

이제 어떡하지?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도망치고.

죽을 뻔하고.

키스하고.

앗.

이 부분에서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황제!

그 거칠고 뜨거웠던 입술.

무지막지하게 파고들던 힘.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벌게졌다.

더 이상 그쪽으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저으며 다시 눈을 꼭 감았다. 잠시 심

호흡을 하자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극악무도한 키스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다음 어찌 된 건지, 어떻게 여기에 누워 있는 건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후…….

저절로 끙끙 앓는 시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딸깍.

갑자기 들려오는 문소리에 그녀는 기겁을 하며 자는 척 두 눈을 꼭 감았다. 누군가의 발걸

음이 점점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어나신 거 아니까 얼른 눈 뜨세요, 공주님.”

공주님? 벨리타는 황후 아니었나.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요, 타이르는 것도 아닌 미묘하게 어중간한 목소리를 제 앞에서 내고

있는 귀부인 때문에 그녀는 할 수 없이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그 무서운 황제일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다행히도 아담하게

보이는 부인이 퉁퉁 부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원작

에서는 벨리타 주변 인물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 금방 죽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녀는

처음 보는 이 부인을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벨리타의 파란 눈동자가 탁해지는 걸 본 유모는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자신의 공주님이

행복해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유모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벨리타 공주를

자리에서 가만히 일으켜 주었다. 상처가 벌어지면 큰일이다.

“고마워요. 부인.”

“지금 장난이 나와요?”

제 말에 놀라는 표정을 지은 부인이 타박하듯 나무랐다. 말투가 이상했나?

“이 유모 일찍 죽게 만들려고 자꾸 이러시는 거죠?”

푸근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이 부인이 유모라는 사실에 그녀는 놀라기보다 안도했다.

“공주님 잘못되면 따라 죽을 거니 명심해요!”

그녀는 유모의 강한 어조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목욕물부터 준비할게요.”

유모는 몸이 더러워지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공주님을 위해 새벽인데도 일사천리로 시종

들을 지휘했다.

넓은 방 한쪽에 세워져 있는 파티션, 그 너머에 놓여 있는 커다란 욕조. 시종들이 일일이

더운물을 날라 채워 넣은 곳에 유모가 들어가라 했다. 안 그래도 산속을 헤매고 다녔던 터

라 씻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여러 개라 유모가 이러면 물이 닿아

도 아프지 않다고 다정하게 말해 주며 고바 기름이란 걸 상처 난 곳에 꼼꼼히 발라 주었다.

누가 시중드는 것도 어색하고 더더군다나 벌거벗은 몸을 보여 주기가 심하게 부끄러운 그

녀는 파티션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명하고 여전히 시큰거리는 몸을 따뜻한 물에

살며시 담갔다.

아…….

굽어 있던 온몸이 펴지는 느낌.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손으로 물을 휘휘 저으며

커다란 욕조 안에 둥둥 떠 있는 수십 개의 꽃을 구경했다.

[메리골드예요. 상처 난 곳에 좋은 꽃이라 오늘은 장미꽃 대신 저 꽃을 뿌렸어요.]

욕조에 들어가기 전, 동그랗게 뜬 그녀의 눈을 보고는 유모가 상냥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 장미꽃이고 뭐고 그냥 수많은 꽃이 떠 있는 걸 보고 놀란 것인데 유모는 장미꽃이 아

니어서 놀란 줄 안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몸, 벨리타가 이렇게 살아 있어도 괜찮은 건가? 그럼 원작 소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벨

리타가 죽고 나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스토리대로 가야 하니 시기는 늦춰져도 결국 죽임

을 당하는 건가?

여기서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에 한기가 들었는데 온천물처럼 따뜻하게 제 몸을

녹여 주는 목욕물이 지금 큰 위안이 되었다.

조금은 진정된 상태로 따뜻한 물속에 잠겨 있는 제 몸을 보고 있자니 팔다리에 가로로 그

어진 피 맺힌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이것만 봐도 또다시

서러워졌다. 그런데…….

제 몸이, 보이는 팔다리와 다른 곳이 엄청 뽀얗고 가늘었다. 가슴 또한 신이 빚어 놓은 것

처럼 둥글게 봉긋 솟아올라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자신이 봐도 두근거리는 몸인

데 남자들은 오죽했을까? 이 몸으로 얼마나 많은 남자를 홀렸을지 알고도 남았다.

“마마.”

어?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는데.

갑자기 예쁘장하게 생긴 시녀가 나타나 공손히 인사하는 것에 깜짝 놀란 그녀는 두 손으

로 다급하게 중요 부위를 가렸다. 황후의 목욕 시중을 들러 온 것이겠지만, 아무리 같은 여

자라고 해도 남의 손에 벗은 몸을 맡기는 민망한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들…어오지 말라고…….”

그녀가 말을 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녀는 다짜고짜 입고 있던 시녀복을 훌

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이봐요…… 나 혼자 할 테니까 얼른 나가서…….”

그녀는 할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바로 얼어붙어 버렸다.

다 벗은 시녀가… 다리가… 아니 그 사이가……

이상했다.

뭐가… 달려 있다.

갑자기 뇌가 인지를 못 하는 모양인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숨도 쉬지 못하고 멍하니 거

기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시녀인지 뭔지가 한발 한발 다가왔다. 그런데.

그게…… 덜렁 덜렁.

그제야 뇌가 작동했다. 그게 뭔지!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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