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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게 찍힌 민폐 황후 입니다-2화 (2/130)

2화 폭군 황제

얼어붙은 그녀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을 다시 쉬기까지 시간이 걸렸

다. 겨우 삐걱대는 목을 힘겹게 돌려 겁나는 시선을 던지자…….

굵은 나무에 황제의 기다란 검이 공포스럽게 제대로 퍽, 박혀 있었다. 그 끝에는 시커먼 뱀

한 마리가 꿰뚫려 축 늘어진 채 지지직거리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개소리 말라는 소리다.

그녀는 무지막지한 공포 속에 오로지 살기 위해 목소리를 내어야만 했다. 실패한다면 저

뱀이 저보다는 나을지도. 그래도 저 뱀은 머리가 몸통에 붙어 있기나 하지. 자신은 그냥 댕

강이다. 어떻게든 이 또라이 황제를 진정시켜야 한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없던 용기까지 모두 끌어모아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칼리크. 우리는 부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여 오는 긴박감에 그녀는 힘겹게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제가 당신의… 아내… 아닌가요?”

애절하고 가녀린 목소리가 그녀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점점 더 무서워지는 황

제의 표정을 보니 이제 다 틀린 것 같았다. 저 뱀처럼 자신도 당장 죽을 일만 남았다. 땅에

엎드려 숨죽이고 있는 그녀의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온몸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날 것 같다. 여기서 죽는 걸로.

원작을 바꿀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 애초에 죽기 직전에 빙의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얼마

나 고통스럽게 죽을지 그것이 가늠되지 않아 그녀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후다닥.

바스락.

저벅저벅.

이상하게도 엎드려 있는 그녀의 귀로 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왔다.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그녀는 그저 시체처럼 숨죽인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고개 들어.”

두려움과 공포, 그 비슷한 부류의 모든 감정을 다 품은 채 그녀는 겁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죽는 건가.

목이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아 덜덜 떨며 고개를 든 그녀는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폈다. 그

런데…….

이상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황제를 빼고는.

그러니까 이 숲속에 황제와 그녀, 단둘만 남아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아무도 없을 때 죽이려 하는 건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살벌함이 조금은 누그러진 듯한 분

위기로. 숨 쉬는 공기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혹시 자신만의 착각인가 싶어 그녀는 여전히 숨죽이며 앞에 서 있는 황제만을 뚫어지게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내 아내였나?”

그녀는 다시 황금색으로 돌아온 황제의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어디 증명해 봐.”

“네?”

증명? 무슨 증명?

“네가 황궁의 안주인 자격이 있다는 걸.”

그녀는 그저 두 눈만 껌뻑거리며 황제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했다.

그럼… 지금 죽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 말은… 같이 황궁으로 돌아간다는 말?

그녀에게는 황궁으로 돌아가 증명을 해 보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녀는 일단 깊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꿇어앉아 있었는지 다리가 마비된 듯 아무런 감

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편하게 옆으로 앉으며 다시 한번 안도의 깊은숨을 토해 내

려는 순간.

불시의 습격을 하듯 황제의 얼굴이 코앞으로 스윽 다가왔다. 커다랗게 떠진 그녀의 두 눈

에 거칠면서도 음침하게 잘생긴 황제의 얼굴이 아리도록 박혔다. 당황까지 더해 더 떨리는

눈동자로 그녀는 황제가 던질 다음 말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증명해 보라 했는데?”

“네? 지…금요?”

황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나?

황제의 집요한 시선을 멍하니 바라보다 곧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뭘… 어떻게 증명을…….”

천하의 벨리타가 그걸 왜 묻냐는 듯, 황제의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니까… 여…기서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겁나게 묻는 그녀의 두 눈동자는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

아….

너무나 거칠었다. 황제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이 온통 다 집어삼켜지는 것 같았다. 강철같이 단단한 그의 가슴에 짓눌리듯

안겨 칼날같이 강렬하고 얼얼한 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녀의 여린 입 안이 무자비한

공격으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처음에 뭘 어떻게 증명하라는 건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황제가 요구했다. 부

부의 맹세를 해 보라고. 이 소설에서 부부의 맹세로 통하는 키스. 이걸 하라는 소리였다.

원래 둘이 부부이긴 하지만, 처음 보는 남자에게 대뜸 키스를 하라니. 이런 행위가 그녀에

게는 익숙하지 않아 단순한 입맞춤조차도 큰 용기를 내야 했다. 죽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그가 원하는 건 뭐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가 재촉하자 남자와 키스는커녕 제대로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한 그녀는 부끄러움과 어

색함으로 다가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이 낯선 남자의 입술에 새처럼 쪽, 하고 입을 맞추었

다. 그렇게 그녀의 첫 키스가 이루어졌다. 이내 입술이 떨어졌지만.

장난해?

그녀의 눈에는 황제의 표정이 딱 그랬다. 분노와 어이없음을 모두 섞어 놓은 그의 표정에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그녀의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그것을 놓칠 황제가 아니었다. 바로 황제의 고개가 비스듬히 미묘하게 기울어졌다.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는 듯한 눈빛을 던지며, 아니 기괴한 동물을 보는 눈빛인가? 이해할 수

없다가 아닌,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한 황제가 선뜩한 눈동자로 다시 재촉했다.

똑바로 해 봐.

왜 그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리 선명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좀 더 잘하면 살 수 있는 건가?

그녀는 살기 위해 다시 한번 그의 입술 가까이 다가갔다.

쪽.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그녀의 선에서는 아주 오래 입술을 맞대고는 떨어졌다.

하!

바로 황제의 입에서 짧은 그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비웃음이 확실하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 이게 아니라… 입 안으로…… 어휴.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벌써 얼굴이 후끈거리고 뇌가 쪼글쪼글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저 입술에.

조금 진정되었던 제 입술이 다시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100M 높이에서 번지 점프를 하는

심정으로 그녀는 또다시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갖다 대었다.

싸늘하게 식어 있던 그의 입술 위에서 가만가만 제 입술을 움직이자 조금은 온기가 돌았

다. 입술마저도 단단한 그를 진정시킨다는 생각만으로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윗

입술을 가만히 물었다가 다시 아랫입술도 조심스럽게 물고는 입술을 떼고 그를 겁먹은 눈

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계속해.

다행히 그의 눈빛에서 분노가 서서히 사라지고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읽었다. 그것에 용기를 얻은 걸까? 그녀는 다시 다가가 이번에는 그의 입술을 살며시 핥았

다.

위…아래… 또…….

놀랍게도 굳게 다물어져 있던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다음을 해야 하는데…… 갑자

기 용기가 사라졌다.

다시 용기를 내기 위해 침을 꼴깍 삼킨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입술 사이로 소심

하게 자신의 혀끝을 내밀어 그 안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그의 입술이 조금 더 벌어졌

다. 마치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 주는 것처럼. 조…금만 더 들어가 닿는 부위를 가만가만 쓸

었는데 갑자기 뭔가가 움직였다. 소심하게 움직이는 자신의 혀를 그가 확 휘어 감았다.

앗!

너무 놀라, 그 감촉과 감각에 너무 놀라 바로 입술을 떼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동그랗게

뜬 짙은 토파즈 색 그녀의 눈동자를 사로잡은 그의 금빛 눈동자가 최면을 거는 것처럼 움

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눈을 떼지 않은 채 서서히 다가가는 그의 눈에 달빛을 받아 촉촉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입

술이 들어왔다.

천사.

방금 달빛을 타고 내려온 듯한 순수한 천사의 모습.

아닌 걸 뻔히 아는데도 속을 만큼 대단한 그녀의 외모.

이 벨리타가 어떤 여자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지금 그런 사실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저 입술을 맛보고 싶다는 느낌.

대단한 여자다. 외모 하나는.

모든 것을 다 덮어 버릴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는 저 외모.

그는 손을 올려 그녀의 뒷머리를 한 움큼 쥐며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다. 다른 한 손으

로도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아 자신의 몸에 밀착시켰다. 말랑하게 와 닿는 그녀의

육체가 그의 피를 더 끓게 만들었다.

다른 놈들하고 어떻게 했든 말든.

그는 바로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침범해 마구 헤집었다. 달콤함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맛보면 맛볼수록 부족

하고 갈증이 나 그의 움직임을 더 사납게 만들었다.

그의 낮은 신음 소리가 그녀의 몸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처음 들어 보는 이 남자의 은

밀한 신음이 갑자기 온몸의 세포를 깨우며 지나갔다.

저절로 그녀의 팔이 올라가더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에게 답하듯이 황제의 두 팔에

힘이 가해져 한 치의 틈도 없이 두 사람은 밀착한 채 더 깊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또 저절로 입 안에서 얌전히 공격만 당하고 있던 그녀의 부드러운 혀가 움직였다. 훅, 하고

들이마시는 그의 숨소리가 그녀의 귀에 기분 좋게 들렸다.

얼마나 끈끈하게 서로를 향해 움직였는지 입 안이 흐물흐물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언

제 죽을 위험에 처했냐는 듯 그녀는 후끈 달아오른 몸으로 입 안에서 그와 단단하게 얽힌

채 가쁜 숨만 흘렸다.

아!

순간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무슨 힘이 생긴 건지 뒷덜미를 누르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며 입술을 간신히 떼어 냈다. 그러나 멀리는 떨어지지 못했다. 손바닥 하나 차이로 떨어진

두 사람은 뜨거운 입김을 토하며 아주 가까이서 서로의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물론 그의

눈동자는 잔뜩 불만스럽다는 듯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미치겠다. 이 미친 몸…….

몸 따로 뇌 따로.

그녀는 밭은 숨을 내쉬며 이 육체에 지지 않으려 정신을 끌어모으려 했다.

몸이 기억한다. 남자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래 자신을 되찾고 싶어졌다. 낯선 남자와 이러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이 몸의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처음 보는 남자다. 거기다 흥분

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 남자와.

그것도 조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 남자와.

이게 말이 되냔 말이다.

미쳤다. 돌았다.

아니 처음부터 이런 불륜 황후, 민폐 덩어리 방탕한 벨리타로 빙의한 자체부터가 미친 상

황이었다. 지금도 들썩거리고 있는 이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신의 뇌가 원망스러웠다.

“저…….”

더 이상은 참아 줄 수 없다는 듯 다시 다가오는 황제를 향해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

한마디를 다급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것도 허

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에게로 사정없이 밀어붙여졌다.

누구 맘대로 멈춰.

죽고 싶어?

제 귀에만 들리는 황제의 목소리가 그녀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다시 그에게 끌려 잠시

멈추었던, 심하게 충격적이었던 깊은 키스에 그녀는 속절없이 빠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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