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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64화 (264/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64화

엘리자베스가 왕립병원에 도착했을 때 조엘은 눈을 까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당황한 채 쭈뼛거리는 토비에게 조엘의 몸을 잡으라고 소리쳤다.

“토비!”

“네, 아가씨!”

토비는 뻘뻘 땀을 흘리며 엘리자베스가 시키는 대로 조엘의 몸을 꽉 쥐었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기도를 확보하고 조엘의 눈꺼풀을 뒤집었다. 눈동자의 수축이 느렸다. 탄저균이 혈액으로 침투되어 패혈증으로 발전한 양상이었다.

그로부터 10분은 1시간처럼 지나갔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몸에 가죽 띠를 잔뜩 두르게 만들고 조엘에게 항생제를 주사했다. 소화기 탄저로 인한 패혈증은 피부가 곪아서 온 패혈증과는 약간 다른 항생제를 써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왕립병원에서는 피부에 난 상처에서 온 패혈증으로 여기고 다른 약을 쓴 것이었다.

몸부림치는 조엘을 잡고 약을 주사하다 보니 조엘의 팔에는 멍이 들었다. 토비는 조엘의 다리에 얻어맞아 나동그라졌다. 마지막에는 엘리자베스가 조엘의 뺨을 내려쳤다.

“조엘! 정신 차려요! 이봐! 정신 차리란 말이야!”

엘리자베스가 꽥꽥 소리를 지르는 통에 엘리자베스가 오기 전까지 소란스러웠던 병동 내부가 조용해졌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이 조금씩 정신이 드는 것을 보며 얼른 조엘에게 물었다.

“이봐요. 염소고기, 먹었죠? 빨리 대답해요! 빨리!”

엘리자베스가 다그치자 조엘이 어버버 하며 천장을 보았다. 조엘의 눈은 자꾸만 뒤집혔다. 조엘이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입술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토비가 걱정스럽게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너무 가까이 가시면…….”

“……마녀……. 마녀의 저주……. 조지……. 패배…….”

조엘이 천장을 보며 손가락을 힘없이 움직였다. 엘리자베스는 그걸 보곤 핏발이 선 눈으로 조엘을 노려보았다.

“멍청한 자식!”

엘리자베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에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엘리자베스를 주목했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에게 소리쳤다.

“마녀의 저주가 아니라 폐사된 가축을 먹었기 때문에 당신은 죽을 거야! 무지가 당신을 죽이는 거라고! 멍청하긴! 대체 왜 남의 가축을 막 훔쳐서 먹어요? 잘못된 일을 해놓고 제대로 말도 하지 않고! 마녀라고? 이 세상에 마녀는 없어요! 마녀는 그냥 혼자 사는 여자들을 당신들이 멋대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잖아! 저 리오든에는 나를 마녀라고 부르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그런데 잘 지켜봐요. 이 마녀가 당신을 어떻게 살리는지!”

엘리자베스의 외침에 어느새 조엘의 눈동자가 조금씩 제대로 돌아왔다. 조엘은 엘리자베스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조엘이 하고 싶은 말은 약기운 탓인지 음성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을 노려보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조엘의 몸 아래로 내려왔다. 엘리자베스가 비틀거리자 간호사 하나가 엘리자베스의 팔을 잡았다. 체이스라는 여자였다.

“체이스 선생.”

“네, 말씀하세요. 엘 선생님.”

여자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방금 체이스는 엘리자베스가 한 말에 감명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기운 없이 이마를 짚고 그녀의 장갑을 가리켰다.

“장갑에 구멍이 났네요……? 대체…….”

엘리자베스는 입술을 오므리고 체이스를 똑바로 쳐다봤다. 체이스가 움찔했다. 곧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병동 안을 울렸다.

“위생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미쳤어요? 찢어진 장갑을 끼고 이 안에 들어올 생각을 해요? 다들 나가! 장갑을 며칠씩 끼고 다니면 안 되는 거 몰라요? 다들 나가서 장갑을 새로 끼지 않으면 이 병동은 물론이고 왕립병원에서 다시는 일하지 못하도록 하겠어요!”

엘리자베스의 으름장에, 방금 전까지 엘리자베스의 재빠른 처치에 반한 듯 넋을 놓고 서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씩 달려 있었다.

“실력이 없으면! 날쌔기라도 해야죠! 안 그래요……?”

엘리자베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쫓아냈다.

토비는 엘리자베스의 그 무서운 모습을 보면서 침상 근처에서 엎어진 채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엘리자베스를 올려다보았다. 의료진이 모두 나가자 태도가 돌변한 엘리자베스는 친절하게 웃으며 토비를 일으켜주었다.

“아, 아가씨……. 정말……. 무서우시네요, 병원에서는…….”

“뭐?”

“아뇨. 제 말은 정말 멋있으시다고요.”

“고마워, 토비. 그런데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데……. 너, 마스크랑 장갑을 안 꼈구나……?”

엘리자베스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토비를 내려다보았다. 토비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지, 지금 나가요! 지금!”

* * *

조엘의 정신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자 조엘에게 병사들이 시비를 거는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스는 지난번 간호사에게 비워두라고 얘기해두었던 다른 병동으로 조엘을 옮겼다.

엘리자베스는 텅 빈 병실에 혼자 누워 있는 조엘에게로 걸어갔다.

조엘은 엘리자베스의 발소리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경계하는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서, 선생님…….”

“아가씨가 아니라 선생님이네요?”

엘리자베스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서야 오늘 간호사며 의사들 중 아무도 엘리자베스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무시무시한 의사다, 라거나 성격 파탄자다, 라거나 겉으론 온순해 보이는데 속에는 늑대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라는 말을 뒤에서 수군거렸을 뿐이었다. 그런 말들은 엘리자베스로서도 별로 반박할 생각이 없어서 무시한 참이었다.

조엘은 상체를 일으키지도 못하고 쿨럭거리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구해주신 게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구해줬다고 하긴 어려워요, 엄밀히 말해서. 전 그냥 제 일을 한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쾅 소리가 나게 통을 내려놓았다. 조엘은 그 소리에도 바들바들 떨었다. 그는 붉어진 뺨을 만지며 말했다.

“……제 뺨을 때리신 것도…….”

“맞아요. 의료적 처치였어요.”

엘리자베스는 통 안에서 거즈를 꺼내어 조엘의 상처를 보았다. 온몸에 균이 퍼진 바람에 상처에서도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엘리자베스는 뜨끈뜨끈한 조엘의 피부를 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죠?”

“네?”

조엘이 어깨를 동그랗게 말았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구요.”

엘리자베스가 또박또박 말했다.

“염소 고기 먹었죠? 소화기 탄저의 증상이었어요. 제때 항생제를 쓰지 못해서 상태가 나빠진 거예요.”

조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어차피 죽을 것 같아서요.”

“뭐요?”

“어차피 죽을 것 같아서……. 그냥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 그놈의 염소 고기를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면서요!”

조엘은 말을 마치곤 연신 기침을 해댔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에게 다급하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조엘이 물을 마시는 것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뒷골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죽을 것 같았다.

그 말이 어떻게 조엘을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거짓말까지 몰고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을 원망스럽게 보았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죽을 확률이 피부 탄저보다 높을 뿐이에요. 항생제를 적절히 투여하면…….”

“그래도 죽을 확률이 높겠죠.”

조엘은 두려움에 떨리는 동공으로 아까처럼 천장을 보았다. 조엘이 또 다시 입술을 달싹였는데 엘리자베스는 이번에는 조엘의 쇳소리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살려주세요…….”

엘리자베스는 이 허무맹랑한 광경 앞에 뭐라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을 느꼈다.

조엘은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죽음을 두려워했다. 조엘은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으면서 신에게는 목숨을 구걸했다.

엘리자베스는 이 비논리적인 두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고 했으나, 죽음이 한 인간에게 주는 절망감에 대한 상념이 마음에 풍랑과 해일을 일으켜 그럴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 역시 죽는다는 상황을 가정한 적이 있었으므로, 죽음이 얼마나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공포를 사람에게 주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한 사람을 엘리자베스는 알고 있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마음이 차디찬 바닥에 놓인 것처럼 외롭고 아팠다.

그녀는 기도하는 조엘에게 더한 욕을 퍼붓는 대신 조용히 병실에서 나왔다. 토비가 엘리자베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비가 밝게 말했다.

“브레드 씨는 방금 돌아오셨어요. 아래층에서 케이 도련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같이 가시죠.”

엘리자베스는 복도 창문가로 걸어갔다. 창문 너머에 마차에 기대어 서 있는 케이가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케이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케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토비가 엘리자베스를 독촉했다.

“빨리 가세요. 너무 늦으면…….”

엘리자베스는 얼른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튀어나가자 토비가 놀란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작게 불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멈추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갔다. 정문 너머로 케이의 어렴풋한 그림자가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허겁지겁 달려서 케이를 꽉 껴안았다.

엘리자베스의 작은 몸이 케이의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니, 어찌 보면 병원 현관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엘리자베스의 몸을 케이가 근력으로 받아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를 꽉 안고는 놀란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내려다보았다.

“왜 이렇게 뛰어? 넘어져.”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마.”

“뭐?”

케이는 모자를 벗었다.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품 안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렸다.

“……죽지 마.”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의 몸이 굳어졌다.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들었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엔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빨개진 얼굴로 케이를 노려보았다.

“죽지 마. 죽지 말라고. 너 죽으면…… 난……. 난 절대 행복하지 않을 거야, 이 멍청아. 프란시스랑 나랑 단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일 같은 건 없어. 네 말대로 나는 프란시스를 돌보고 프란시스는 나를 돌보겠지. 그래서 나는 프란시스에게 때때로 웃는 척도 하겠지.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웃는 일 같은 건 없어.”

풍랑, 해일이 둑을 무너뜨리고 흘러내렸다.

엘리자베스는 침착을 가장하던 모든 가식과 허위를 내려놓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에게 협박이라도 하듯 그의 멱살을 꽉 쥐고 말했다.

“난 매일매일 불행할 거야. 너로 인해, 내 인생은 무너질 거야. 난 절대 행복하지 않을 거고, 불행할 거야. 평생을 널 원망하면서 살 거야. 네가 지옥에 떨어지길…….”

엘리자베스가 숨을 골랐다. 숨소리 사이사이 울음소리가 배어나왔다.

“네가 지옥에나 떨어지길…… 기도할 거야. 그리고 나도 언젠가…… 그 지옥에 떨어지길 기도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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