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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61화 (261/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61화

오후에 있는 수업에는 학생이 총 네 명이 왔다. 한 명은 아루쉬, 한 명은 알프레드, 그리고 저번 수업에 참여했던 신사 하나와 또 한 명—

패트릭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번에 기초 화학사 강의를 수강하지 못하면 졸업이 어렵게 되었다는 패트릭이 자신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첫 수업 때 출석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제가 그날 감기에 걸려서요…….”

패트릭은 일부러 목을 잠기게 만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안 그래도 학술원 사무실에서 첫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을 전부 낙제로 만든 것은 과하지 않았냐는 얘기를 듣고 온 터였다.

‘아무래도 첫 수업 때는 학생들이 사정이 있었을 수 있고……. 이런 거에 너무 빡빡하게 구시면 앞으로 학생들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엘리자베스는 사무실 직원의 말을 떠올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첫 수업에 오지 않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사무실 직원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패트릭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지막 경고예요. 오늘 수업부터 들어오게는 해주겠지만 패트릭은 이제부터 매일 칠판 정리와 실험기구 세척을 하게 될 거예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패트릭은 입맛을 다시며 불쾌한 얼굴을 했지만 결국은 비굴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패트릭은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엘리자베스는 겨우 4명이 들어앉은 강의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복도 밖에 구경꾼들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칠판에 커다랗게 고대 원자론이라는 글자를 쓰려다가 흠칫 멈췄다.

이 칠판에 불과 며칠 전 커다랗게 그려져 있던 목을 맨 여자의 모습을 잊기가 어려웠다.

물론 낙서를 한 신사들은 잡혀서 전부 정학처리를 당했다고 들었지만 아직 레트니 애비뉴에서의 살인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었다. 이 학술원 안에 평민 여자들을 죽이는 데에 찬동한 자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켜 가며 크게 글자를 썼다.

[고대 원자론]

엘리자베스는 제 글자를 보며 말했다.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그것이 화학의 시작이 되는 질문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겨우 네 명의 사람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도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 네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이는 엘리자베스를 응원하고 어떤 이는 엘리자베스를 동경하며 또 어떤 이는 엘리자베스에게 무관심하고 또 어떤 이는 엘리자베스를 마음속으로 깊이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엘리자베스는 그저 당연히 귀족 남자들의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간 평민 여자에 불과했고 누군가에는 시끌벅적한 염문의 주인공인 여자에 불과했으며, 또 누군가에는 위대한 과학자, 누군가에게는 이오페아 대륙의 오만한 의사쯤으로 보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엘리자베스는 한때 그것이 너무나 궁금했다. 특히나 케이의 마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말이다. 엘리자베스를 향한 마음에 경멸은 얼마큼, 혐오는 얼마큼 들어 있는지, 그리고 사랑과 애정은 정말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은 건지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조각내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누구에게나 천사의 마음과 악마의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에게도, 여기 있는 이 신사들에게도 그랬다. 신사들은 엘리자베스를 협박하는 낙서를 썼고 엘리자베스는 그 낙서를 보는 순간 이곳의 신사들을 당장 모두 죽여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조지 국왕에게 레트니의 마음이 들어 있었음에도 그는 엘린크에 탄저균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숨기지 않았다. 프란시스는 어린 케이를 죽이기 위해 들고 나갔던 담요로 케이를 싸가지고 들어왔다. 윌리엄 조쉬는 수많은 귀족들을 죽이기로 마음 먹어놓고 결국 엘리자베스를 탈출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엘리자베스는 레본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그곳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그러고 싶었어도 그러지 않았다.

수업을 해나가던 엘리자베스는 뒷문에서 서성거리는 신사 두 명을 발견했다. 그녀는 수업을 끊지 않고 대충 손짓해 신사들에게 들어오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들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에게 앉으라고 말한 뒤 기초 화학사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아리토틀입니다.”

“이반 시크나입니다.”

그들의 책은 몇 번 넘겨본 듯 페이지가 우글거렸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책을 예습해왔음을 알았다. 이번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엘리자베스가 바로 책을 공지했으므로 이들은 분명 엘리자베스가 이 수업의 교수임을 알고도 이 책을 예습한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에게 패트릭과 똑같은 벌을 주었다.

“매일 셋이 돌아가면서 칠판을 정리할 거예요. 실험도구 세척도 돌아가면서 하구요.”

“세척이요?”

그들은 패트릭과 똑같이 얼굴을 구겼다. 집에서 설거지도 안 해본, 곱게 자란 도련님들이 분명했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척을 해주시는 분들이 따로 있는데…….”

“이건 벌이라고 말했잖아요? 반드시 장갑을 제대로 착용하고 세척하도록 해요. 괜히 손이 녹아내려도 나는 책임질 수 없으니까. 싫으면 그냥 이대로 강의실 문을 열고 나가도록 하고.”

엘리자베스의 말에 그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엘리자베스는 시무룩한 얼굴이 된 세 남자를 보며 남은 강의를 이어갔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죠.”

처음에는 대답을 잘 하던 두 남자도 강의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필기를 하느라고 바빴다. 엘리자베스는 원하는 진도를 나가기 위해 자꾸만 6명의 학생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수업 진도에 다급해지자 처음에 느꼈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엘리자베스는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방금! 말해줬잖아요?! 아니 이 정도도 못 외우면서 주기율표는 어떻게 외우는 거예요……? 대체 화학을 왜 하고 싶었죠? 아마 이 정도는 화학 전공자가 아니라 수학 전공자들도 알고 있을 거예요……! 혹시 머릿속에 뭔가 하나가 들어가면 다른 하나를 밀어내는 기계가 장착되어 있나요?”

엘리자베스는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을 느끼며 90분의 수업을 마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00분쯤 되었을 때 청소부가 복도에서 계속 힐끔거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엘리자베스가 칠판에 분필을 쾅 하고 내리쳐 부러뜨리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진도는 나가야 하니까 오늘 불러주는 페이지 전부 외워 와요! 시험에서 낙제하면 다음 수업엔 못 들어오는 줄로 알고요!”

엘리자베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6명의 남자가 다 잠시 멈칫했다가 소리높여 대답했다.

“네!”

그렇게 수업이 끝났을 때는 90분 전 엘리자베스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불안감이나 두려움 따위는 분노에 밀려나 전부 사라진 뒤였다.

* * *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설명을 한 번에 못 알아들을 수가 있죠? 기초 과목이잖아요!”

엘리자베스가 소리를 지르자 아루쉬가 놀란 눈으로 엘리자베스에게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애원했다.

“……그 기초 과목을 다시 듣거나 아니면 안 들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죠……. 엘리자베스, 지금 무척 무시무시한 기운이 온몸에 흐르고 있어요. 그거 알아요?”

“온몸이 뜨겁긴 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아루쉬가 픽 웃더니 엘리자베스의 팔목을 잠깐 잡았다. 엘리자베스가 놀라서 팔을 빼려고 하자 아루쉬가 제 입술에 검지를 대어보이더니 엘리자베스의 손가락 중지와 검지를 꽉 눌렀다.

아루쉬는 눈을 꼭 감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아루쉬가 눈을 뜨며 손을 놔주자 엘리자베스는 손이 뜨끈뜨끈해진 느낌과 함께 아까 지끈거리던 머리가 맑아진 기분을 느꼈다. 엘리자베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주문 같은 걸 외운 거예요? 마법적인?”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아루쉬가 곤란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난 치료술사지 마법사가 아니에요, 엘리자베스. 그냥 에테르의 기운이 막혀 있는 곳을 치료술사들이 보통 풀어주는 방법 중 하나에요. 뜨거운 약초를 올리거나 아니면 긴 막대기로 누르는 건데, 지금은 약초도 막대기도 없으니까……. 그냥 나의 기도와 함께 눌러준 거죠. 그걸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제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루쉬가 엘리자베스를 빤히 보며 살짝 웃었다.

“당신은 뭔가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면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확 사라지고 희망이 피어나요. 그게 당신의 힘이에요. 힘.”

엘리자베스가 수줍게 웃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왕성한 지식욕이 언제나 억눌러야 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클레몬트 공작부부는 엘리자베스가 궁금해하는 게 너무 많아서 여자로서의 인생이 불행할 것이라고 그녀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게 맞는 말인 줄 알고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아루쉬는 엘리자베스가 가진 지식욕이 엘리자베스에게 희망을 불러들인다고 말하고 있었다.

‘넌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말을 떠올렸다. 엘리자베스의 세상은 약간이나마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엘리자베스는 기어코 또다시 희망을 자신의 내면으로 불러들였다.

아루쉬가 말했다.

“아, 그래서— 프란시스에게도 뜨거운 약초를 팔과 다리의 연한 살에 올려두는 걸 추천해요. 약초를 달인 물을 많이 마시다보면 오히려 에테르가 흩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약초를 올려두는 걸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제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아루쉬를 보았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네. 간단해요. 오늘은 내가 가서 직접 프란시스에게 해주고 내일부터는 엘리자베스가 해요. 그러면 되죠?”

엘리자베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 *

케이는 학술원 앞에서 엘리자베스를 기다리다가 아루쉬와 함께 나오는 엘리자베스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특히나 아루쉬가 때때로 엘리자베스의 손을 주물럭대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의 눈빛에서는 금세 이성이 사라졌다.

“……케이 하커 씨.”

아루쉬는 정중하게 케이에게 인사했다. 케이는 아루쉬가 잡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엘리자베스와 눈이 마주쳤다. 케이는 당장 엘리자베스의 팔을 자신 쪽으로 당기려다가 엘리자베스의 눈을 보곤 그대로 굳었다.

엘리자베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도 늘 말씀하셨어. 내가 걱정된다고. 내가 인생을 망칠까 봐 걱정된다고. 그런 말로 날 가둬두셨지. 너도 다를 바 없어.’

이 정도의 참견도 엘리자베스에겐 구속처럼 느껴질까?

케이는 턱에 힘을 잔뜩 주고 아루쉬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루쉬는 케이의 인사를 받고는 열린 마차 문으로 엘리자베스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엘리자베스가 아루쉬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르려고 할 때였다. 케이가 마차 문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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