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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60화 (260/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60화

“탄저균을 닭에게 주사한다고요?”

왕립병원의 의사 브레드는 엘리자베스의 말을 듣고 기겁하며 주변 주민들이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엘리자베스는 브레드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실험은 철저히 통제될 거니까요. 그리고 탄저균을 맞은 닭이 바로 사람들에게 전염력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에요. 약화시킨 탄저균을 맞을 거니까.”

엘리자베스는 브레드에게 몇 번이나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녀는 브레드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왕립병원 의사씩이나 되면서 과학적 실험에 대해 꽤나 무지하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자베스가 알기로 왕립병원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시험에 문제점이 많아 보였다. 레본에서도 이오페아 다른 나라들처럼 서민들을 위한 국립 대학교가 많이 만들어지고 또 의과 대학이 설립되어 의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다면 브레드 같은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리 왕립병원 측에 허락을 받아둔 닭장 안의 닭 중 세 마리는 분리형 축사를 설치한 1층에 있는 작은 창고방에 옮겨두었다.

엘리자베스의 실험 계획은 간단했다. 병사들에게서 탄저균을 추출해 엘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균을 약화시킨 후, 닭에게 주사한다. 탄저균이 충분히 약화되어 있어도 닭은 1,2일이면 폐사할 것이다. 폐사하면 땅에 매복된 균을 가지고 실험을 반복한다.

일주일. 아니, 이제 6일이면 이오페아 각지에서 연합군이 도착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뭔가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고, 전쟁이 시작된 후라고 해도 당장 엘린크 성 이남의 군대를 전부 물리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실험은 계속되어야 했다.

엘리자베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브레드에게 간호사 몇이 다가와 신문을 내밀었다. 신문을 받아들어 읽은 브레드가 놀란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기사가 났네요. 엘린크 성에 탄저균이 퍼지고 있다는 기사예요. 간호사들 가족들이 지금 연통을 보내고 난리가 났나 봐요. 이런 기사가 나는 거 괜찮은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기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조지 국왕이 탄저균 얘기를 알리겠다고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공표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성 내부에서는 가축과 농작물의 거래 및 섭취가 일절 금지되어 주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있다…….”

브레드는 옆에서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브레드가 기사 헤드라인을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찼다.

“닿기만 해도 전염? 공포의 탄저균, 엘린크 성의 전운에 영향을 미치나? 뭐 이딴 기사가!”

브레드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레드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브레드의 품 안에 있던 닭이 푸드덕거리며 난동을 부렸다.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닥치고 그냥 앉아 있어요, 브레드 선생!”

“네? 아, 네…… 엘 선생님.”

엘리자베스는 브레드에게서 신문을 빼앗아 들었다. 늦은 조간신문인 듯한 이 신문 첫 페이지에는 아마도 신문사가 어디서 싼 값을 주고 고용했을 화가가 그려놓은 끔찍한 탄저균 환자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신문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며 뒤에 있던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이런 기사를 들고 병원 안까지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예요? 환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구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간호사들이 기가 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미 병동에는 신문이 쫙 퍼져 있는데요……?”

엘리자베스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재빨리 닭들을 축사 안에 가둬놓고 손을 씻고 장갑과 마스크를 한 뒤 병동으로 올라갔다. 간호사들의 말대로 병사들의 병동 근처에서 환자는 물론이고 의료진들이 그 신문을 들고 서 있었다.

환자들은 화난 얼굴로 의료진들에게 소리쳤다.

“저 병사들이랑 우리랑 같은 건물에 있으라는 거야? 병사들이라며? 나라를 지켜야 되는 인간들이잖아? 당장 내보내! 막사 같은 데에서 지내든지 아니면 무기를 들고 전선으로 돌아가라고 하라고! 저 병사들, 가만 보면 한가하게 노는 게 꾀병일지도 몰라!”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항의에 꼼짝없이 곤란한 얼굴로 손만 휘적거리고 있었다. 급기야 한 환자는 병동 안으로 난입해서 들어가려고 했다.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그마아아아안!”

엘리자베스는 제 몸 어디에서 그런 커다란 고함 소리가 튀어나왔는지 신기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고함에 모두가 엘리자베스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병동에 들어가려던 환자를 손가락으로 콕 집어서 말했다.

“방금 저 병사들이랑 같은 건물에 있기 싫다면서요! 그런데 거길 왜 들어가요?!”

“뭐, 뭐야. 당신 누, 누구야?”

환자는 엘리자베스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바람에 엘리자베스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차림새를 흘끗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옷도 이상하게 입고 의사야, 간호사야 뭐야?”

엘리자베스는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의사예요! 그런데 지금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잖아요? 같은 건물에 있기 싫은데 왜 거길 들어가냐구요. 그리고 환자분들은 같은 건물에 있기 싫으면서 저 병사들보곤 성으로 돌아가라니. 그게 말이 돼요?”

엘리자베스는 환자가 한 말의 비논리적인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그러자 눈앞의 환자는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럼 어떡하라고! 이 병동에서 탄저에 옮아서 수포에 걸린 사람도 있다고 여기!”

환자는 옆에 있던 한 여자를 가리켰다. 엘리자베스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보았던 학질 환자였다.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엘리자베스가 누구인지 깨달은 듯 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환자가 얼른 말했다.

“말해봐! 응? 넌 4층에 간 적도 없는데 수포가 생겼다며! 그 말은 이 병원 전체에 공기 같은 걸로 막 전염되고 있다는 거 아니야?”

환자의 말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공기…….

엘리자베스는 당장 이 병원을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어째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은 사람들에게 손쉽게 퍼지고 진실은 쉬이 묻혀버리는 걸까? 대체 왜?

엘리자베스는 주변의 반응을 보며 그 학질 환자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전 정말 4층에 간 적이 없는데요……. 근데 갑자기 수포가…….”

엘리자베스는 화가 난 얼굴로 그 여자 환자에게 한 발자국 걸어갔다. 그러고는 묘한 눈빛으로 여자를 쏘아보았다.

“정말 간 적이 없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엘리자베스는 여자를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가 엘리자베스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짓말.”

엘리자베스는 여자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다.

엘리자베스는 여자의 병동에 갔을 때 보았던 군청색의 모포를 떠올렸다. 그건 분명 병사들에게 제공되는 모포였고 병동에서 쓰는 하얀 모포와는 다른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여자가 누군가에게서 그 모포를 얻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게다가 피부 탄저는 피부끼리 직접 접촉을 하지 않는 한 쉽게 전염되기가 힘들었다.

“……거짓말이라뇨?”

“그럼 어떻게 4층에서 일하는 케이스 선생님께 목격될 수가 있나요? 분명히 케이스 선생님이 당신을 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이름을 유일하게 아는 간호사를 가리켰다. 케이스는 자신이 지목되자 화들짝 놀랐다.

물론 엘리자베스의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간호사의 화들짝 놀라는 행동이 마치 목격 증언을 들켜 놀란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신빙성을 높여주었다.

케이스가 놀라는 모습을 본 환자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4층에 간 적 없다며?”

“분명 간 적이 없다고…….”

환자들이 웅성거리며 여자를 압박하자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여자는 분명 케이스 간호사와 마주친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몰아치는 상황이 되면—

불안감은 언제나 진실을 압도한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을 알고 여자를 몰아친 것이다. 어쨌거나 병사의 모포를 두르고 제 병동으로 돌아왔다는 것보단 복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쪽이 나을 것이니까.

여자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저, 저는 그냥 밤늦게 병동을 잘 못 찾아서…… 그래서…….”

여자의 말에 환자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뭐라고 했어요! 병동 안에 들어오거나 접촉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구요! 다들 나가요! 당장!”

의사들의 목소리에 환자들이 기세가 꺾여 돌아가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거짓말을 했던 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는 병동을 잘못 찾는 일이 없길 바라요.”

* * *

하지만 병원에서 있었던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마찰은 아주 작은 갈등에 불과했다.

곧 병원에 기자가 두세 명 정도 찾아왔고 엘리자베스가 탄저균을 체취하는 과정까지도 기자가 찍어가려고 했다. 의사들이 막아섰지만 엘리자베스는 제 얼굴이 조금도 찍히지 않았다고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탄저균을 채취하는 과정에서도 멜린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불안해했다. 아무래도 오늘 기사를 본 모양이었다. 병사들은 당장 밖으로 나가 가족들에게 전보를 치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부리거나 아니면 솔직히 자신들이 죽는 건지 빨리 말해달라고 엘리자베스를 다그치기도 했다.

특히나 조엘은—

“난 이 병동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당장 내보내줘! 내가 왜 저런 새끼들이랑 같이 있어야 돼?”

조엘은 밉살스러운 말을 해서 병동에 있는 모든 병사들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에게 내줄 만한 병동이 있는지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간호사들은 지금 병사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아 조엘을 다른 병동으로 보내는 것은 어렵다고 대답했다.

엘리자베스가 조엘에게 탄저균이 생각만큼 전염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지만 조엘은 끊임없이 난동을 부렸다.

조엘의 난동에 머리가 다 아파왔다. 엘리자베스는 어떻게든 간호사들에게 조엘과 병사들, 그리고 병동 사이에 분리막을 철저하게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엘리자베스는 아까 물러간 환자들이 여전히 1층에 모여서 수군거리는 것을 보았다.

환자들은 이제 병사들을 불안하게 여기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배척하는 상황.

지금 왕립병원 내에서 일어나는 분열이 많은 것의 전조증상인 것 같아 불안해졌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창고 방으로 돌아왔다. 탄저균을 닭들에게 주사하며 엘리자베스는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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