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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58화 (258/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58화

엘리자베스는 괜히 순무의 꼬투리를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

“그야…… 네가 맘에 들었으니까…….”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있으니 더 창피해져서 소리쳤다.

“네가 너무 맘에 들어서 네가 하는 말이 잘 안 들렸단 말이야!”

엘리자베스가 짜증스럽게 순무를 내던지고 주방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케이가 엘리자베스의 팔을 잡아서 얼른 돌렸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뚱한 얼굴을 보다가 그녀의 뺨을 잡고 그녀의 입에 입을 맞췄다.

“가지 마…….”

“아, 몰라…… 놔줘……. 놔달라고!”

엘리자베스는 푸드덕거리며 케이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어깨를 꽉 쥐고 엘리자베스의 허리를 안은 채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렇게 사람을 단단히 홀려 놓고 그냥 나가면 안 되지.”

케이와 엘리자베스의 허리 아래가 맞붙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촉감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케이의 허기나 갈증 같은 것이 엘리자베스의 몸을 원하는 것처럼 자꾸만 옷 안으로 느껴졌다.

엘리자베스가 빨개진 얼굴로 케이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넌 절대 모를 거야.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

케이는 대답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를 가만히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빨개진 얼굴을 숨기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안아줘.”

엘리자베스의 중얼거림에 케이의 목과 귓가가 새빨갛게 변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자꾸만 18살의 기억이 엘리자베스의 몸을 지배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았던 갈색 머리카락, 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에게 매료되었던 순간. 그 기억. 엘리자베스에게는 그만큼 은밀하고 내밀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케이에게 그 기억에 대해 털어놓고 나니 발가벗은 것처럼 부끄러웠다. 창피함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차라리 케이가 그런 엘리자베스의 몸을 덮어주길 원했다. 케이의 욕망이 엘리자베스의 욕망을 가려주길 원했다.

케이는 어린 소년들도 욕망에 휩싸이곤 한다고 말했지만 엘리자베스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어린 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자베스 역시 케이를 처음 본 순간 강한 욕망에 시달렸다.

엘리자베스를 깔보고 경멸하는 듯한 그 갈색 눈동자. 엘리자베스는 매일 밤 그 갈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을 자신의 발아래에 엎드리게 하는 꿈을 꿨다.

그가 엘리자베스의 앞에 무릎을 꿇는 이유는 다양했다. 어느 날은 동경이었고, 어느 날은 찬미였으며, 어느 날은 사랑이었지만…… 또 어느 날은 욕망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안아달라고…… 어서…….”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재촉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케이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엘리자베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서?”

케이의 질문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의 허리를 제 다리로 감싸 안았다.

엘리자베스의 고갯짓과 거의 동시에 케이가 엘리자베스의 옷을 움켜쥐고 단숨에 뜯어내버렸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허리를 다리로 끌어당기며 추위에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케이가 자신의 옷을 벗어서 엘리자베스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머리카락을 쥐고 케이의 입술을 삼켰다. 엘리자베스가 조급하게 다가오자 케이는 조금 뒤로 몸을 뺐다.

“가만히…… 가만히 있어.”

마치 경고하는 듯한 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의아한 눈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때, 케이가 엘리자베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케이의 몸이 낮아진 순간 그의 숨결이 엘리자베스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곳에 닿았다. 엘리자베스는 반사적으로 허벅지를 움츠렸다. 하지만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다리를 꽉 쥐고 놔주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케이를 내려다보며 당황한 눈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케이……!”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허무하게 흩어졌다. 엘리자베스가 케이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그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지만 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치심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열기가 눈앞에서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엘리자베스의 다리가 축 늘어지자 케이가 엘리자베스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는 엘리자베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강렬한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보는 것 같아서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입술을 매만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 좀 봐……. 응?”

케이의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흔들렸다. 케이가 엘리자베스가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보며 낮게 웃더니 말했다.

“나 버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눈을 뜨고 케이를 노려보았다.

“난 대답 안 했…….”

엘리자베스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케이는 그런 엘리자베스를 보며 또 웃으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웃기가 힘들었던지 침만 삼키며 엘리자베스의 빨개진 뺨과 턱, 귓불 따위를 입술로 끊임없이 괴롭혔다.

엘리자베스의 몸이 뒤로 밀려나지 않도록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받친 케이가 말했다.

“대답 안 했다고? 그럼 날 버리겠다는 거야……?”

케이는 엘리자베스를 내려다보며 웃는 것도 같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같은 눈빛을 해보였다. 그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 엘리자베스의 이마에 삐져나온 잔털을 귀엽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정리해주며 말했다.

“나 버리지 마.”

케이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헐떡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자신의 아래에 깔린 엘리자베스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제 안의 욕망이 자꾸만 부피를 키우는 것을 느꼈다.

돌아버릴 것 같다.

케이는 사실 지금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체향 때문에 몰록으로서의 허기와 갈증이 극대화된 상태였다. 그건 아까 키드니 파이에서 맡은 고기 향 때문에 시작된 허기와 갈증이었다. 케이는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이성의 위기를 자신의 비대해진 욕망이 짓누르고 있는 이 상황이 웃기기까지 했다.

이 여자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 여자를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을 이겨버렸다.

이제는 내가 너를 먹고 싶은 것보다 너한테 먹히고 싶어.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번들거리는 타액을 바라보다가 견딜 수 없는 신음을 흘렸다. 엘리자베스의 금발이 달빛 아래 허공에서 흔들리며 빛났다.

뱃사람들의 혼을 홀리는 세이렌이 이렇게 생겼을까.

케이는 홀린 얼굴로 엘리자베스의 입술 사이에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투박한 손가락을 오물거리며 잘도 먹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손가락을 빨다가 치받쳐오는 케이의 움직임에 잘근잘근 씹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비릿한 냄새가 주방 안으로 퍼져나갔다. 케이의 피 냄새였다.

케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와 동시에 엘리자베스가 제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맛에 놀라서 케이를 불렀다.

“케이 하커!”

당황한 엘리자베스가 케이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케이가 엘리자베스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렸다.

케이는 엘리자베스를 자신보다 위에 올려둔 채로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 다고?”

케이는 혈향이 흘러나오는 엘리자베스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놀란 눈으로 케이를 내려다보다가 또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조금은 풀린 얼굴로 케이를 감싸 안았다.

엘리자베스의 속눈썹에 이슬처럼 맑은 눈물이 고였다. 케이는 제 피 냄새로 가득 찬 엘리자베스의 입술을 기어코 삼켰다. 마치 독주라도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케이의 피는 그 자신의 목구멍을 뜨겁게 적시며 내려갔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었다. 케이는 제 몸 구석구석 그 피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혈관이 수축되었다. 케이의 모든 감각이 순식간에 열렸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숨소리, 솜털의 감촉, 두 사람의 피부가 접촉했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또 붙는 소리 따위를 아주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혀를 빨아들이다가 나중에는 그녀의 입안 곳곳을 제 혀로 핥았다. 그 피가 한 방울이라도 남았을까 하여.

나를 망가뜨릴, 이 달콤한 입맞춤.

케이는 엘리자베스가 헐떡거리며 그의 가슴팍을 쳤을 때서야 얼굴을 떼었다. 케이의 입술 사이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비오는 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는 어린 늑대들처럼 떨었다. 엘리자베스는 조금 훌쩍거리기도 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가 훌쩍거리기를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가 등을 기댈 수 있도록 기둥에 다가갔다.

엘리자베스가 기둥에 등을 대자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운 금발이 제 가슴에 제 땀과 들러붙어 버린 것을 살짝 떼어주었다. 엘리자베스가 케이의 뺨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괜찮은 거야?”

“괜찮아…….”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손가락을 보았다. 케이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엘리자베스가 다급하게 그것을 제 입술 사이에 넣고 빨았다. 케이는 그런 엘리자베스를 보다가 엘리자베스의 아래에서 점점 자신의 욕망이 다시 크기를 키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눈치챈 엘리자베스가 케이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뗀 순간 케이가 그녀의 입술을 다시 삼켰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입술을 맛보고 한참 입안에서 굴리다가 놓아주며 말했다.

“너, 마차에서 내릴 때 네가 어땠는지 알아?”

케이의 질문에 엘리자베스는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케이를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향한 욕망 때문에 이렇게 흐트러졌다는 게, 무척이나 기꺼워 웃었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 엘리자베스의 체향을 맡았다.

이 냄새. 내가 쉐필드에서 온 너의 마차 문이 열리고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맡은 냄새.

그 금발의 인형에게서도 나던 냄새.

그건…… 내 지독한 욕망의 냄새였다.

그리고 동시에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결핍의 냄새이기도 했다.

케이가 말했다.

“넌 인형 같았어. 내가 훔쳐서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데도 여전히 갖고 싶은…… 그런 인형.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는, 그런 인형. 너는 그런 인형 같았어.”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의 허리에 쏙 들어간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엘리자베스가 몸을 휘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를 올려다보며 천국과 지옥에 동시에 빠져들었다.

케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몰라. 내가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너도 절대로 모를 거야. 너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를 가졌었고 나를 굴복시켰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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