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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52화 (252/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52화

그런 이유로 농노가 아닌 자유인이 된 농부들은 오히려 전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했다. 멜린의 부모 역시 비슷한 경우였을 것이다.

멜린이 말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서……. 아무래도 정말 신의 저주인 걸까요?”

멜린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그 염소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성에 사는 마녀의 집에서 키우는 염소라서요.”

“마녀요?”

“네. 온갖 수상한 가루들을 파는 마녀인데 밤이 되면 그 마녀가 성 안에 사는 어린 아이들을 잡아와서 그 염소에게 먹인다는 소문이 있어요.”

엘리자베스는 멜린의 말에 살짝 웃고 말았다. 마녀가 어린 아이를 잡아간다니. 쉐필드에서도 엘리자베스는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젊은 미혼의 여성이 어린 아이를 가진 어머니를 시기 질투하여 그녀의 아이를 잡아간다는 이야기는 왜 모든 지역마다 있을까?

“그런데 존슨이랑 겐지가 꼭 그 염소를 먹어야겠다는 거예요. 죽은 거니까 뭐 어떠냐고…… 훔치는 것도 아니라고요……. 그래서 그걸……. 같이 들어주기만 하고 난 먹진 않았는데……. 흑…… 흑……. 정말 어떡하죠? 네? 저 정말 저주를 받아 죽는 걸까요? 마녀의 힘이 깃든 염소를 훔쳐서 신께서 노하신 걸까요? 네?”

멜린이 어린 아이처럼 울기 시작하자 옆에 나란히 누워있던 병사 중 하나가 소리를 꽥 질렀다.

“닥쳐라, 멜린! 너 때문에 골이 울려! 이봐요, 의사 선생! 이 어린 놈을 닥치게 할 수는 없나?!”

엘리자베스가 소리치는 병사를 노려보자 병사가 놀란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어이쿠, 의사 선생이 아니고 젊은 아가씨잖아!”

“……지금!”

엘리자베스는 이를 바드득 갈면서 그 병사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이 병동에서 가장 시끄러운 게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

엘리자베스가 기세 좋게 그 병사에게 삿대질을 하자 병사는 조금 움찔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병사는 얼른 엘리자베스에게 소리쳤다.

“이봐! 왜 여자가 병사들 상처에 자꾸 손을 대는 거야? 우리가 신의 저주를 받은 이유가 바로 당신 같은 젊은 여자로 위장한 마녀 때문이라고! 그런데 또 나보고 마녀한테 몸을 맡기라고? 그건 절대로…….”

엘리자베스는 병사에게로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엘리자베스는 종이를 넘기며 병사의 이름을 읽었다.

“아하. 조엘. 당신의 이름이 바로 조엘이군요. 조엘은 마지막 순서로 진료하겠어요! 그동안 반성이라는 걸 해보고 계세요! 당신들은 마녀의 저주 같은 것에 걸린 게 아니니까!”

엘리자베스가 소리치자 조엘이 점점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조엘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뭐, 뭔데?!”

“뭐긴 뭐예요!”

엘리자베스는 멜린의 몸을 일으키고 상의를 벗으라고 한 뒤 수포가 난 팔을 들라고 한 후 수포의 위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가 수포와 병변이 진행 중인 멜린의 팔과 겨드랑이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염소를 먹고 죽은 사람들에게 이런 검은 점이 있었다고 했었죠? 그리고 멜린 역시 여길 보면…….”

엘리자베스는 병변 중 가장 많이 진행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엔 피부가 검게 타들어가는 듯한 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병동 입구 근처에서 제 말을 듣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다니엘을 향해 말했다.

“……여기에도 역시나 검은 점이 있어요. 멜린과 여기에 있는 병사들은 분명히 염소들과 접촉했을 거예요. 염소고기를 먹지는 않았겠지만.”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서 이 접촉 부위에 균이 번식하게 된 거예요. 이 검은 병변이 마치 타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균의 이름이 바로 탄저. 당신들이 걸린 건 바로 피부 탄저에요. 여기 다들 멜린처럼 농부의 자식들이라면 분명히 토마토 따위가 이렇게 곪는 걸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 걸 식물 탄저라고 부르고,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탄저가 있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엘리자베스는 조엘을 노려보았다.

“탄저에 걸린 염소를 도살한 거죠. 마녀의 힘이 깃든 염소가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이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아, 당신이?!”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멜린에게 다시 붕대를 감아주며 대답했다.

“마녀에게만 내려오는 계시를 받았나 보죠. 아니면 과학책을 열심히 읽었거나! 어느 쪽을 믿어도 좋지만……. 어쨌든 현대에 사는 레본인이라면 여자도 과학을 배울 수 있다는 논리적인 사고력을 가지는 게 나을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엘 선생님과 똑같이 간호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거즈를 더 가지고 와요! 장갑을 안 낀 사람은 이 병동이 아니라 이 병원에서 퇴출이에요! 알아들어요?!”

* * *

엘리자베스가 조엘을 진찰할 때쯤엔 엘리자베스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 때문에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마스크를 다른 천으로 간 후 조엘 앞에 앉았다. 조엘은 엘리자베스가 오자 모로 누워서는 엘리자베스를 등졌다. 황당해진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당장 돌아누워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은 코웃음을 쳤다.

“마녀의 손에 내 환부를 맡기고 싶지 않다니까!”

“하, 참…… 내가 방금 얘기했잖아요? 이 세상엔 마녀 같은 건 없어요. 환부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본인뿐 아니라 이 병동 내의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아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이 힐끔 주변을 보았다. 그러자 조엘은 당연히 다른 병사들의 매운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이 슬그머니 다시 제대로 눕는 것을 지켜보았다. 간호사에게 가위를 받은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붕대를 풀어냈다. 하지만 조엘의 팔에는 길게 난 상처만이 있을 뿐 수포가 없었다.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포가 없네요? 염소를 만져서 온 게 아니라 다쳐서 온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간호사에게 상처를 봉합할 기구를 달라고 한 뒤에 물었다.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조엘이 대답했다.

“그래. 존슨이랑 겐지가 염소를 훔쳐서 달아나려고 할 때 나도 적극적으로 말리다가 울타리에 걸려서 팔이 찢어졌어. 가만히 두니 계속 덧나더니 나중엔 속도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프더군.”

조엘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감염증상이었다.

“울타리가 나무로 된 거였나요?”

엘리자베스가 너덜너덜한 상처의 단면을 보며 묻자 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팔에 소독약을 뿌렸다. 조엘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프잖아!”

조엘의 외침에 엘리자베스가 그의 멀쩡한 다리를 찰싹 때렸다.

“조용히 해요! 나 귀 안 먹었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이 꿍얼거리면서도 조용해졌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에게 진통제를 먹이고 상처를 바늘과 실로 꿰매기 시작했다. 조엘은 봉합의 고통이 시작되자 더 많이 조용해졌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에게 마녀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한 조엘이 짜증나서 더는 말을 걸지 않았는데 조엘이 엘리자베스에게 먼저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왜 다들 염소고기를 안 먹었을 거라고 한 거지?”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말에 눈을 치켜떴다. 하루 종일 환자를 봤던 벌써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에게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생각나 조금 초조해졌다.

“그야 수포와 병변 외에 다른 증상이 크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살아 있잖아요? 탄저에 걸려 폐사한 고기를 먹으면 답이 없어요. 탄저균이 소화기에 들어가면 죽을 확률이 거의 반이라고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표정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동료들이 죽었겠군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잘 죽었지. 겐지, 존슨! 그 멍청한 놈들. 전쟁터에 나가기 무서워했는데 전쟁터는 구경도 못하고 죽다니…….”

조엘이 애써 허세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는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모를 거요. 응?”

“…….”

“거기서 사람이 얼마나 허무하게 죽는데! 포탄을 집어넣다가 잘못 터져서 죽기도 하고, 성벽에서 화살을 쏘다가 고꾸라져서 죽기도 해.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들이 용맹할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오산이오.”

엘리자베스는 조엘의 말에 그의 팔의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울타리에 찢어진 상처를 방치했다가 죽기도 하겠죠. 난 의사예요. 나한테 죽음의 허무함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하긴. 그건 그래. 어쨌든 지금 전선은 완전히 공포에 휩싸여 있소. 검은 점은 물론이고 물에 잎사귀하나만 떨어져도 신의 저주다, 신의 축복이다 양쪽 진영에서 난리들이지. 이게 다 전투가 시작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야. 아직 다가오지 않은 공포만큼 무서운 게 없거든.”

조엘의 말에 저 뒤에서 다니엘이 걸어왔다. 다니엘은 조엘을 향해 무서운 눈빛을 보냈다. 다니엘은 조엘이라는 병사가 괜히 전쟁터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막고 싶은 듯했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엘린크에서의 수성이 벌써부터 흔들리는 사이에, 레트니가 뭔가를 꾸미는 것은 아닐까? 조지 국왕이 레트니의 수를 읽지 못할 만큼의 바보는 아니겠지만 전쟁이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엘리자베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봉합을 마치자 뒤에서 다니엘이 엘리자베스를 불렀다. 엘리자베스는 턱으로 흐른 땀을 닦아내며 다니엘에게로 걸어가기 전에 조엘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당신은 전쟁터에서 다가오지 않은 공포를 느끼며 죽어갈 일은 없어졌네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조엘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조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죽은 동료, 또는 놓고 온 동료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다니엘에게로 갔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케이 하커 씨가 엘리자베스 양이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나를 죽이려고 들 거고, 결투신청이라면 못 받아줄 것도 아니지만 그 끔찍한 고성을 들을 걸 생각하면 벌써 귀가 아프니까요.”

다니엘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는 병동 입구를 나가며 일그러진 얼굴의 조엘을 일별했다. 엘리자베스가 장갑과 마스크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자 의사 하나가 걸어와 말했다.

“탄저라니. 저도 이름은 듣고 있었지만 그런 병이 병사들에게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름만 알고 있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증상을 글로만 읽을 게 아니라 상세한 그림도 찾아봤어야죠.”

“아…… 네, 엘 선생님.”

엘리자베스는 자신 앞에서 머쓱하게 머리카락을 긁는 의사를 보며 헛기침을 했다.

의사가 뜻밖의 말을 했다.

“혹시 이렇게 가끔 와서 저와 다른 의사들에게 조금 귀감이 되는 말씀을 해주실 순 없을까요, 선생님?”

의사의 말에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귀감…… 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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