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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36화 (236/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36화

“하,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뭔가 말하려고 하자 앰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엘리자베스의 귓가에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아요. 좋은 분위기 깨지 말자구요.”

앰버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앰버를 위태롭게 보고 있는 미리엄과 미리엄과는 달리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에릭의 등 뒤에서 앰버의 노래를 기다리는 남자들을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앰버가 노래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눈을 빛내며 앰버를 보고 있는 이 노동자들은 전부 앰버가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또는 이제 이어지는 전쟁을 위문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식품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여기 모인 남자들은 전부 전쟁에서 총 칼을 들지는 않아도 총 칼을 만들기 위해 모인 전사들이었고 앰버는 홀의 여가수니까.

하지만 사실 앰버는 이들을 위문하기 위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들의 승리의 선봉장에 선 장군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앰버는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자신에게 꽃과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에릭은 그 모습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엘리자베스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에릭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앰버는 장미꽃 하나를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에 꽂았다. 검은 드레스와 붉은 장미꽃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녀는 무대 뒤에 있는 밴드에게 뭔가를 말하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홀에 오면 보통은 멜니아 노래를 들려드리는데 오늘은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 것 같아서…… 다른 노래를 골랐어요. 다들 오페라를 들어본 적 있나요?”

오페라?

엘리자베스는 앰버의 말에 조금 놀랐다. 오페라하우스는 귀족들의 사교의 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켄터베리 홀처럼 평민도, 귀족도 드나들 수 있는 이런 가게와 오페라하우스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추문이 있는 남자나 여자는 쉽게 드나들 수 없게 관리하기도 했고 때로 왕족들마저 직접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오페라를 부른다니.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모인 곳에서.

아니나 다를까 오페라라는 말에 남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엘리자베스의 뒤에서 남자들이 외쳤다.

“오페라는 무슨! 그냥 하던 포크나 해!”

“차라리 춤을 추든지.”

저열한 말들이 오고 가는 사이 엘리자베스는 눈으로 케이를 찾았다. 차라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케이는 없었다.

앰버는 무대 위에서 오페라 <카르멘>의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아름다운 여자가 한 남자의 인생을 예기치 않게 파멸로 이끄는 내용.

오페라라는 말에 흥미가 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노동자들도 설명을 듣고서는 조금 눈을 빛냈다. 아름다운 무희들이 잔뜩 무대 위로 올라와 캉캉춤을 추거나 앰버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줄 거라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불안한 눈으로 앰버를 보았다.

카르멘이라니. 매혹적인 얼굴, 눈빛, 그리고 목소리. 거기에 머리에 꽂은 꽃까지. 앰버와 카르멘은 정말이지 잘 어울렸다. 엘리자베스도 오페라 <카르멘>을 본 적이 있었다.

귀족들의 가식 넘치는 미소에 둘러싸인 채, 패트론의 욕망의 대상이 되던 오페라 여가수는 하바네라라는 가장 유명한 유혹의 노래를 부르며 치마를 흔들어댔다. 그러면 신사들은 점잖은 척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은밀히 제 급사를 불러내어 급사에게 돈을 주고 가수의 분장실로 꽃을 보내도록 했다.

그 꽃은 상징적인 의미였다. 신사들에게 수많은 꽃을 받은 여가수는 그 중 가장 맘에 드는 꽃을 보낸 신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될 것이고, 그 신사에게 화대를 받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신사는 가수가 깨기도 전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여가수는 다시 무대 위의 꽃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그 꽃은, 여가수는 그저 하룻밤을 장식할 꽃에 불과하다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무대 위의 앰버도 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엘리자베스는 3층의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케이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피하는 것을 보았다. 엘리자베스를 피한 케이는 뒤에 있는 에드워드에게서 커다란 위스키 병을 들고 한 입 털어마셨다.

엘리자베스는 그걸 보곤 얼른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선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이 나면 다 같이 무대 위로 올라와도 좋아요. 아니, 반드시 그래주면 좋겠군요. 비앙카! 붉은 천을 가져다줘!”

엘리자베스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등 뒤에서 앰버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당신들의 건배를 위하여…….1)

엘리자베스는 수동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떻게 작동시킬지 몰라 헤매다가 그 첫 소절을 듣고 놀라서 뒤를 돌았다.

그건 카르멘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건…….

투우사의 노래였다.

앰버는 노래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눈빛이 변했다. 비앙카가 가져다준 붉은 천을 두른 앰버가 그것을 망토처럼 두르고 뒤로 펄럭였다.

세뇨르, 세뇨르, 군인들과…….

그 순간 현악기를 연주하는 남자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힘차게 반주를 얹었다.

우리 투우사들은 잘 어울리죠!

앰버의 다음 소절에 비앙카와 여자들 몇이 붉은 망토를 입고 남자들 사이로 걸어갔다. 자신들이 바로 투우사들이라는 듯이.

그들의 춤은 카르멘처럼 매혹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았지만 충분히 격정적이었다. 무희들의 춤에 남자들이 당황해 놀라는 사이에 무희들이 망토를 벗어 남자들의 머리를 덮었다. 에릭도 그 중 하나였다.

보통은 통이 커다란 남자가 투우사 역할을 하며 부르는 노래를 앰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앰버의 목소리에 담긴 긁는 듯한 소리가 중후함으로, 저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비음이 웅장함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순식간에 남자들을 투우장 안의 소처럼 다루는 무희들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압도되어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뭘 건드렸는지 오래된 수동 엘리베이터의 도르래가 움직이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자베스는 열린 문 안의 케이를 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케이를 안았다.

케이의 몸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기쁨을 위해, 기쁨을 위해 그들은 싸우죠!

앰버는 장군처럼 망토를 펼쳤다. 그 순간 남자들의 눈이 변했다. 엘리자베스는 큰 목소리로 ‘올레!(olé)’라고 소리치는 남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마치 사기가 충전된 군인들처럼 앰버의 목소리에 감화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케이를 올려다보며 초롱초롱한 얼굴로 말했다.

“어디에 갔었어?”

하지만 케이는 얼굴이 굳어진 채로 엘리자베스에게서 나는 진한 체향에 얼굴을 구겼다.

엘리자베스의 입술을 탐하고 싶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체향을 이 자리에 모인 다른 그 어떤 사내도 아닌 혼자서 독식하고 싶었다. 어두운 분장실로 끌고 가 그녀를 맛보고 싶었다.

너를 씹어 먹고 싶다.

케이는 가슴 속을 채워오는 허기와 갈증에 이를 악물었다.

“에드워드가 불러서. 밖에 나가 있을 테니까 조금 이따가 나와. 늦지 않게 나와서…….”

그때 엘리자베스가 케이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축축한 땀이 배어나왔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너 왜……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실내가 더운가 보지.”

케이는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당장 술 냄새라도 맡지 않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 이 홀을 엉망으로 만들고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어질 것 같았다.

네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던, 네 세상을 내가 부술 수도 있을 것 같아.

케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위스키를 타는 듯한 갈증으로 메마른 목구멍에 흘려보냈다.

케이의 병을 빼앗아 든 엘리자베스가 화난 얼굴로 말했다.

“너 이마에서 열도 나잖아!”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몸을 엘리베이터 문에 몰아붙이고 그녀에게서 병을 다시 빼앗아 들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화가 난 얼굴로 케이에게 병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손을 휘저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허리를 감싸 쥐고 큰 키를 이용해 손쉽게 병을 위로 들었다. 두 사람의 몸이 뒤엉키면서 떠밀려진 엘리자베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자베스는 케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놔.”

케이는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열이 나니까. 너 어디 아파? 말해봐.”

“안 아파. 그냥…….”

케이는 자신에게 딱 붙어 있는 엘리자베스의 굴곡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배가 고플 뿐이야.”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것은 용기의 축제니까! 용감한 사람들의 축제니까!

그때, 일시에 홀 내에 있는 망토가 위로 던져졌다. 빨간 망토들이 동시에 위로 던져지는 것을 케이는 보지 못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입술이 벌어지는 것을, 그 안에 붉은 혀가 움직이는 것을, 그것을 보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그녀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엘리자베스의 허리를 당겨 자신의 배에 닿게 하고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젠장…… 참을 수가 없어…….”

케이는 머리를 헝클이며 엘리자베스를 내려다보았다. 차라리 그녀가 전처럼 경멸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랐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러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도 케이의 입술을 탐했다. 두 사람의 몸이 얽혀들었다.

케이가 다급하게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홀의 광경이 엘리자베스와 케이가 한 눈에 볼 수 있게 펼쳐졌다.

엘리자베스는 무대 위에 올라간 남자들과 앰버가 뒤엉켜 신나게 노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뒤에서 목덜미를 따라 키스를 퍼붓는 케이의 숨결을 느끼며 그것을 보았다.

투우사여, 잊지 마라. 그래, 잊지 마.

엘리자베스는 케이에게로 돌아섰다. 케이는 성난 소처럼 엘리자베스의 목덜미와 가슴께를 깨물고 맛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그의 갈색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눈동자가 너를 지켜보고…….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하얀 살결이 드러나는 것을 고통스러운 듯이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입술을 삼키려다가 뒤에 난간을 잡았다. 그 순간, 반동을 이기지 못한 엘리자베스가 난간에 부딪히면서 엘리자베스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사랑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케이는 뒤로 물러났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케이는 팔 안쪽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케이…….”

엘리자베스가 놀라서 케이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케이는 더 뒤로 물러났다. 엘리자베스가 그의 팔을 잡자 케이가 팔을 내렸다. 케이의 얼굴이 고통과 절망, 그리고 분노로 이글거렸다.

“널 먹고 싶어. 널 삼키고 싶어. 널 한 입에…….”

“케이 하커.”

“나는 너를 망칠 거야.”

1) 당신들의 건배를 위하여……. : 조르주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여러분의 건배에 삼가 잔을 돌려드리겠소(Votre toast, je peux vous le rendre)”,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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