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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34화 (234/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34화

“아, 진짜!”

에드워드가 분노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윌슨이 케이의 뒤에서 케인을 들고 나타나 에드워드에게 케인을 내밀었다. 에드워드는 케이를 노려보다가 윌슨의 케인을 잡고 일어났다. 윌슨은 에드워드의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노동조합이라니. 그건 우리 훌륭하신 국왕 폐하의 생각인가?”

윌슨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수줍은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건 제 생각이에요. 주식을 나눠준다는 건 케이의 생각이고 노동조합을 허락해준 건 조지 폐하시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그야…… 단순히 주식을 쪼개 가지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엘리자베스는 지난 생에서 케이가 이끄는 하커 사 공장이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나눠준 일에 대한 소문이 남부까지 퍼졌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모든 공장장과 사장이 케이와 같을 수는 없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어 만들어진 혜택은 또 개인의 악의에 의해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공동체의 힘은 개인의 선의 따위보다 강하다.

그게 바로 조합이다.

레본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던 ‘조합’이란 사실 엘리자베스가 고안해낸 개념이 아니었다. 이미 이웃나라 선더렌에서는 길드의 발전된 형태인 거대한 노동조합이 파업뿐 아니라 공정한 임금 거래, 1일 8시간 노동, 아동 노동 금지 등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면 사측은 반드시 협상에 임해야 했으며 레본에서 자본가들이 흔히 하듯이 파업에 임한 노동자들을 대신할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와 손쉽게 노동력을 교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노동조합은 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법인처럼 주식이나 돈을 굴릴 수 있는 것이다. 즉 미리엄의 말대로 노동조합이 퀴닌 공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주식을 가진 개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주식을 팔아치우거나 혹은 주식이 있어도 협박이나 공갈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힘 있는 ‘우리’가 버티고 있다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제가 노동조합 얘기를 했다고 한들 조지 국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이걸 실천할 수 있었겠어요. 레트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우린 반드시 레트니가 돌아오는 걸 막아야 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댁도 말했다시피 전쟁이라는 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우. 하지만…….”

윌슨은 엘리자베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이 악수를 청하는 것임을 알고 쑥스러워하며 손을 뻗어 윌슨의 손을 잡았다. 윌슨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댁의 말대로야. 실패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실패조차 하지 않는 것이지. 이제부터 이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갈 거요. 리오든에서 피어오르는 공장 매연을 보면 적들은 알게 될 거요. 리오든의 국민들이 얼마나 단합되어 있는지.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윌슨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엘리자베스 역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리자베스의 손에 윌슨의 거친 손이 닿자 엘리자베스는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엘리자베스는 거대한 공장 부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공장에서는 계속해서 철가루가 날리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 강철 같은 의지가 적을 찌르는 칼날이 될지 우리에게 돌아올 갈고리가 될지, 아직 용광로에서 끓고 있는 쇳물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었다.

* * *

켄터베리 홀 앞에 거의 도착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마차에서 내리며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 켄터베리 홀 1층에 있는 커피하우스까지 뛰려고 했다. 그때 케이가 엘리자베스의 머리 위에 제 재킷을 벗어서 얹어주었다. 케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엘리자베스의 얼굴 근처에 재킷의 팔을 꽉 묶고는 웃었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부활절에 나눠주는 천에 둘러싸인 달걀 같군.”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눈을 치켜떴다.

“뭐?”

케이는 마부에게 이만 가보라고 손짓했다. 마차가 떠나고 케이는 모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맞으며 서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에게 재킷을 같이 쓰자고 말하며 묶인 옷을 풀었다. 그러곤 엘리자베스가 발뒤꿈치를 들고 케이에게 재킷을 뒤집어씌웠다.

케이의 머리 위에 덮인 재킷은 당연히 엘리자베스에게서 멀어졌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쪽으로 재킷을 당기자 당연히 재킷은 케이에게서 멀어졌다. 케이는 그 한심한 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키득거리며 재킷을 엘리자베스의 턱 밑까지 당겨 묶었다.

“우리 둘이 같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왜 안 되지?”

“내가 너보다 커도 한참 크다는 생각을 못 했어?”

“……그 정돈가?”

엘리자베스는 턱을 치켜들고 케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커다란 눈동자와 동그란 콧잔등과 입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래. 어제도 봤잖아.”

케이의 입술이 가늘고 긴 호선을 그리는 것을 바라보며 엘리자베스는 어젯밤 자신의 무게를 지탱해내던 케이의 거대한 덩치를 떠올렸다. 그는 엘리자베스를 짓누르지 않으려고 자신의 무게감을 조절하는 것 같았지만 케이의 몸은 압도적이었고 엘리자베스는 그에게 매달려 허덕거려야 했다.

쪽—

가볍게 케이의 입술이 엘리자베스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마차를 타고오지 않은 노동자들 몇이 입구를 통해 걸어가며 키득거리는 것을 보았다. 엘리자베스가 다급하게 케이에게 말했다.

“저기 사람들이 있잖아…….”

케이는 그들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엘리자베스를 끌고 비가 떨어지는 골목길 처마 아래로 갔다. 케이는 벽돌 벽에 엘리자베스의 등을 기대게 하려다가 먼저 손을 짚어보았다. 그러고는 손에 묻어나는 먼지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케이는 자신이 그 벽에 등을 기대어 서서 엘리자베스를 당겼다.

“이리 와.”

“하지만…….”

“이리 와. 어차피 다들 비를 피하느라 우리를 못 봐.”

케이의 모자 위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 케이의 코와 입술도 적셨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당기고 젖은 입술로 엘리자베스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엘리자베스는 홀린 듯이 케이에게 걸어가 케이의 입술을 적신 빗방울을 마셨다.

엘리자베스가 케이에게 말했다.

“정말 일이 잘 되면 같이 켈토에 가는 거야? 같이 멋진 저택도 구경하고 상점도 가고……?”

엘리자베스는 비스듬히 기댄 채 엘리자베스에게 눈을 맞춘 케이의 모자챙을 톡톡 건드렸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허리를 붙잡고 엘리자베스의 코에 제 코를 비비며 대답했다.

“그래. 켈토에 가면 켄터베리 홀보다 더 커다란 홀도 있어. 네가 좋아하는 술도 잔뜩 먹고 담배도 잔뜩 피워. 멋들어진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젠체하면서 교양 넘치는 대화를 나누든지.”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빵을 뜯어먹는 건?”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뺨을 쥐고 물었다.

“그것도 돼. 하지만…….”

“하지만?”

“나를 먹는 게 더 낫겠지.”

엘리자베스는 켈토를 함께 걷는 케이와 엘리자베스를 떠올려보았다.

유리 제품을 파는 상점이 있으면 같이 들어가 맘에 드는 작은 유리 강아지도 사고 꽃도 사고 따뜻한 빵을 사서 둘이 나눠먹으면서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을.

그때 우리는 몰락한 공녀나 성공한 젠트리도 아닐 테지. 우리의 이름은 클레몬트도, 하커도 아닐 테고.

그 땅에는 왕이 아니라 대통령이 있으니까.

엘리자베스는 켈토의 파란 하늘 아래 차가운 해변의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매캐한 냄새가 나고 뿌연 하늘을 가진 리오든 골목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엘리자베스는 피가 돌아 빨간 케이의 입술을 빨아당겼다. 벽에 손을 짚고 케이의 혀를 가지고 놀던 그녀는 케이의 허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케이의 숨이 거칠어지자 엘리자베스의 숨도 거칠어졌다. 케이의 손가락도 엘리자베스의 허리 아래에서 놀았다. 엘리자베스는 제 몸을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케이의 손에 가쁜 숨을 뱉으며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 빗물이 눈으로 들어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엘리자베스는 수영장의 파란 빛을 받으며 튀어 오르는 나신의 남녀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빗물에 젖은 생쥐 꼴로 골목길에 서서 키스를 하는 지금의 두 사람보다는 자유로워 보였다. 비가 숨겨주는 동안만 짧은 입맞춤을 나누는, 이 위태로운 연인.

하지만…….

하지만…… 그럼 그때는 우리는 우리를 뭐라고 부르나.

클레몬트도 하커도 아닌.

뭐라고 부르나.

‘켈리.’

‘앨버트.’

엘리자베스는 서로를 그렇게 부르는 엘리자베스와 케이를 떠올렸다.

엘리자베스는 눈을 떴다.

빗물이 두 사람의 입술을 번들거리게 했다. 엘리자베스는 단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입안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투둑—

투둑—

비가 양철로 된 지붕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조금씩 옅어졌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금방 또 다시 맑게 개었다. 두 사람의 키스를 가려주던 비는 사라졌다. 엘리자베스는 갠 하늘 아래로 켄터베리 홀로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 에드워드와 앰버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허리에서 손을 뗐다. 케이가 멀어지는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당겼다. 엘리자베스는 케이를 품에 안고 쌕쌕거리며 말했다.

“……케이…….”

“……엘리자베스.”

“케이.”

엘리자베스는 케이를 그렇게 부르며 케이의 머리를 꼭 안았다.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불러야 해.

엘리자베스.

케이.

그게 우리의 이름이잖아.

엘리자베스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그때 멀리서 에드워드의 휘파람 소리가 날카롭게 두 사람을 불렀다. 케이와 엘리자베스는 화들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드워드가 낄낄거리며 소리쳤다.

“나 방금 다 봤다! 빨리 이쪽으로 와요! 케이! 앰버가 노래한대잖아요! 앰버 노래 안 들을 거냐구요!”

에드워드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재빨리 케이를 떼어냈다. 케이는 에드워드를 보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닥쳐!”

엘리자베스는 잰걸음으로 앰버와 에드워드에게 걸어갔다. 뒤따라오던 케이는 앰버를 노려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노래를 부르면 부르는 거지, 다같이 박수라도 쳐야 돼?”

앰버는 엘리자베스와 케이를 번갈아보며 씨익 웃고는 엘리자베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치 케이에게서 엘리자베스를 빼앗아가기라도 하는 모양새에 케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연하지. 일종의 승전가라고. 지금 리오든에 있는 모든 술집이 보비들 때문에 쑥대밭인데 노동자들의 사기 하나 올리겠다고 우리 위대하신 조지 국왕 폐하께서 켄터베리 홀만은 특별히 봐주셨잖아. 그게 다 누구 덕분이야?”

“잘났네, 그래.”

엘리자베스는 앰버의 품에 안겨 그대로 커피하우스를 지나쳐 홀의 입구로 걸어갔다. 홀의 입구에는 신분을 검사하는 이들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앰버와 함께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엘리자베스가 알던 켄터베리 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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