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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32화 (232/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32화

엘리자베스는 윌슨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엘리자베스는 윌슨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인부들의 얼굴을 보았다. 엘리자베스로서는 화난 표정으로밖에 읽히지 않는 찡그린 얼굴들. 엘리자베스는 그들 사이에서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 우선…… 지금 폐하께서는 리오든의 평화와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리오든을 수호하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한 이 별 것 아닌 말 속에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는지 생각하느라 혼란스러웠다.

“……애쓰고 계십니다. 다들 신문을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지금 남 엘린크에는 전선이 형성되어…….”

“말하는 중에 미안하지만, 엘리자베스 경.”

윌슨이 시가를 물더니 웅얼거리며 엘리자베스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말이 너무 길군. 간단하게 합시다. 우리가 임금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불받을 수 있는 거요? 그리고 대충 필요한 선박과 무기의 양이 얼마나 되고? 그래야 우리도 강철을 만들기 위한 시간과 임금을 비교해서 확인할 거 아니요?”

윌슨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버벅거리며 무기와 선박의 양을 말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수군거림은 강도를 더해갔다.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나서서 말했다.

“그 정도 양이면 리오든에 있는 모든 공장을 일주일간 최대로 돌려도 될까 말까야. 그 기간 동안의 임금은? 여기 전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뭘 먹고 사나? 포리지? 공장밥 10년을 먹은 사람들 보고 이제는 무료 급식소나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해라, 그런 말인가?”

그들 사이에 고요히 있던 케이는 남자가 위협적으로 굴자 불쾌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지금은 전쟁 중이야. 남부에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무기를 조달하지 못하면 우리도 구식 총과 칼을 들고 전선에 징집되어야지.”

케이의 말에 남자가 피식 웃으며 껄렁하게 중얼거렸다.

“헛소리. 네놈 같은 자본가들이 총과 칼을 들고 전선에 징집될 일이 어딨어? 우리 같은 돈 없고 힘없는 길거리 인생들이나 고기 방패로 쓰이겠지.”

남자의 말에 동조하는 듯한 이들이 케이를 노려보았다. 에드워드가 남자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남자를 쏘아붙였다.

“케이를 비롯한 여기 모두가 로킨트에서 예닐곱 살부터 같이 일했어. 이제 와서 케이가 자본가가 된 건가? 미친놈들 아니야, 이거?”

“절름발이는 꺼져.”

남자의 말에 근처에 있던 미리엄이 남자의 멱살을 쥐었다. 엘리자베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엄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남자 멱살을 틀어쥐고 말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엉?”

“어이쿠, 이러다가 한 대 치겠네. 케이 하커의 충견들이 여기 쫙 깔린 줄을 모르고 내가 노동자 협회원이랍시고 여길 왔네. 됐어! 이따위 투표라면 나는 안 해! 나는 파업에 한 표를 걸 거니까 그렇게 알고…….”

쾅!

장내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을 때 윌슨이 제 옆에 있던 의자를 걷어찼다. 엘리자베스는 윌슨이 걷어찬 의자가 남자와 미리엄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윌슨은 케인을 들고 남자와 미리엄을 가리키며 말했다.

“떨어져라.”

윌슨의 나지막한 말에 미리엄이 꺼림칙한 얼굴로 남자에게서 떨어지며 중얼거렸다.

“이 새끼가 에드워드보고 절름발이라고 했다고, 윌슨.”

“나도 들었다. 난 머리가 빠진 거지 귀가 없는 게 아니야, 미리엄. 그래서? 에드가 절름발이라고 욕을 먹으면 그때마다 주먹질을 하며 막아줄 거냐? 에드워드! 이쪽으로 와. 네 명예는 네가 지키는 거다. 에릭, 에드워드한테 사과해라. 사과하지 않으면 협회원에 대한 모욕죄로 널 여기서 내쫓을 거다.”

윌슨의 말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에드워드는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에릭이 윌슨에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케이 놈이 헛소리를 하니까…….”

“닥쳐, 에릭! 사과에는 변명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내가 네놈이 이불에 오줌 쌀 때부터 가르쳤다!”

윌슨의 말에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에릭은 귀까지 새빨개져서는 윌슨을 노려보다가 에드워드를 보았다.

“이봐. 그냥 잊어. 흥분해서 한 말이라고.”

에드워드는 에릭의 말에 손가락만 튕겼다. 그러자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는 방금 일어난 게 화해가 맞긴 한지 놀라웠지만 갑자기 에릭이 에드워드의 머리를 헝클이고 두 사람이 악수를 했으므로 그건 화해가 맞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가 에릭의 귓가에 이렇게 말했음에도 말이다.

“개 같은 놈아. 네놈이 또 그런 말을 지껄이면 혀를 잘라서 용광로에 던질 거다.”

에드워드에게 배를 한 대 가볍게 맞은 에릭이 무섭다는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윌슨은 그런 에릭의 등짝을 케인으로 가볍게 때렸다.

윌슨은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질문은 손을 들고 한다. 질문에는 품위가 있어야 하는 거야, 새끼들아.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건 질문으로 안 친다. 알았냐?”

남자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윌슨의 말로 장내의 수군거림이 일절 들리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그 모습을 보며 이곳의 크기만 컬로든과 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사우스리오든 노동자들의 컬로든과 같은 곳이었다. 윌슨은 사우스리오든에서 국왕만큼이나 권위를 갖는 사람인 셈이었고 이 수많은 무례한 청년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이였다.

엘리자베스는 에릭을 비롯해 그녀를 둘러싼 많은 남자들을 보았다. 아까까지는 표정을 가늠할 수 없던 이 남자들이 갑자기 엘리자베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예닐곱 살 때부터 공장에서 스프를 먹으며 같이 컸다는 어린 소년들. 그 소년들은 지금 각자 아내와 자식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른이 될 기회 같은 건 없었다.

케이 하커처럼.

엘리자베스는 그들 사이에 어울러져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를 보며 이곳이 케이의 고향이고, 케이의 세계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윌슨은 가장 신망 있는 지도자인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윌슨을 설득해야만 했다. 이 모든 이들을 설득하기에 앞서서.

엘리자베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임금은 전과 동일하게 지급됩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전쟁이 끝난 뒤 국고를 풀 수 있을 때 지급이 될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근처에서 사람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걸 어떻게 믿어?”

“전쟁이 끝난 뒤라고……? 정말 전쟁에서 이길 순 있는 거고?”

“임금을 떠나서 괜히 레트니한테 수복당하면 부역자라고 끌려가서 포로 생활하는 건 아닌가? 여기가 군수 공장이 되는 거잖아.”

이들의 불만 속에는 두려움이 섞여있다.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의 입이 볼멘소리를 뱉어낼 때, 그들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다리는 초조하게 떨리며 그들의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 케이의 말대로 징집을 당하지 않고 어떻게든 군수물자를 조달해 전쟁을 끝내는 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리오든에 사는 국민으로서는 최우선이었지만 사람들의 논리란 꼭 이성적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남부군에 합류하지 않은 것은 옳은 일인가? 차라리 조지가 아니라 레트니일 때가 나은 점은 없었나? 임금도 못 받고 괜히 포로 생활만 하는 건 아닌가?

엘리자베스는 ‘임금’ 같은 건 그저 두려움이 섞인 불안을 표출해낼 상징적인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가 준비해온 모든 제시안 역시 그들의 이해를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불안을 잠재워줄 수 있어야 했다.

윌슨은 소란스러워지는 장내를 바라보다 손을 들었다.

“분명히 질문은 손을 들고 하라고 말했다! 이 멍청한 놈들!”

윌슨은 장내의 남자들에게 소리를 지르곤 손을 든 채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나부터 질문을 하지, 엘리자베스 경. 댁은 정말 이 전쟁이 승리할 거라고 보나? 조지 국왕의 충신이 아니라 개인적인 의견이 궁금하군.”

윌슨의 질문에 장내에 모인 남자들의 눈이 전부 엘리자베스에게로 쏠렸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대답을 머리로 생각했다.

승리?

엘리자베스는 승리한다고, 단호하게 대답해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 어젯밤 조지 국왕과의 정찬 때 조지 왕자가 보여준 영리한 전략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전략을 이곳에서 술술 풀어놓기는 어려웠고 또 전략이 영리하다고 해서 모든 전쟁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릴 적 아버지의 서재에서 수많은 역사책을 읽었다. 과학책을 읽다가 혼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읽은 역사 속 전쟁은 훌륭한 지략이나 정확하고 분명한 예측 따위로 승리하는 법이 없었다.

변인이 잘 통제된 실험과 전쟁은 달랐다. 거기엔 천재지변부터 시작해 군사들의 사기,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웃나라의 돌발행동 따위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그걸 후대의 사람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변인을 미처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기 십상이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 세계는 크고 작은 수많은 변인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엘리자베스는 입을 열었다.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주변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케이가 엘리자베스를 빤히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그 수많은 변인들 중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들만 추려내 일일이 검사하는 것을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본다면 그런 예측이 들어맞기를 바라는 것은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진 일인가.

그러니—

그러니 엘리자베스가 조지 국왕의 승리를 믿기로 한 것은 그런 불확실한 예측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가 조지 국왕을 믿기로 한 것은 그가 적어도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오든을 지켜내고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내기로 결정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겁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확실히 집니다. 저는 선택을 할 때 후회를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것. 그에 대한 판단이 서면 저는 합니다. 그런데 리오든이 수복당하면…… 네, 여기 있는 몇몇 분들의 생각처럼 우리는 포로로 끌려갈 수도 있고 군수 공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처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리오든은 확실히 수복당합니다. 레트니가 돌아옵니다. 다들…… 평민원이 처음 생겼을 때, 이 나라가 들끓었을 때, 한동안 레트니가 시위대에게 쏘았던 총탄의 소리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엘리자베스는 그때 리오든을 가득 메웠던 총성과 피 냄새를 떠올렸다. 엘리자베스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걸 보고 있는 노동자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며 당장이라도 엘리자베스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싶었다.

<남녀 간의 성교 스킬 50가지>.

케이의 눈앞에 그 낡은 표지가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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