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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11화 (211/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11화

공장의 사장으로 보이는 사업가들은 저마다 시가를 한 대씩 물고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방직기 앞에서 젠체를 하며 농담을 하고 있었다. 사업가들은 자기들끼리 껄껄거리면서 웃다가도 한 번씩 숨을 고르듯 조용해졌고 그럴 때면 뭔가를 계산하듯 눈알을 굴렸다.

엘리자베스는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미리엄의 모자와 재킷, 스카프를 한 엘리자베스가 지나가자 사업가들은 엘리자베스를 노동자쯤으로 여긴 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엘리자베스는 그 시선 속을 지나며 기계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와 석탄 냄새를 맡았다. 거기에 신사들의 위스키 냄새와 시가 냄새가 옅게 섞여들었다. 결혼생활 내내 케이에게서 나던 냄새였다.

엘리자베스는 비슷비슷한 옷을 입은 신사들을 보며 케이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4층 난간 근처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지 왕자의 축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귀족들의 착석은 시작된 듯 의자는 반 정도가 찼다.

엘리자베스는 모건이 앉아 있는 자리를 보았다. 거기엔 앰버는 보였지만 케이로 추정되는 신사는 보이지 않았다. 3층에 있을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매캐한 4층의 공기를 벗어났다.

3층에 도착하자 식품에 관련된 수많은 부스가 있었다. 엘우드 밀과 루이 교수님이 있을 우유 저장법 부스는 저 중간쯤에 있을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급할 것 없이 천천히 둘러보며 부스에서 파는 식품들을 맛보았다. 철로 만든 통에 과일조림을 담은 것부터 시작해서 공법을 바꿔 단 맛이 더 많이 나게 만든 포도주까지.

3층에는 음식 가게 주인 같기도 하고 과학자 같기도 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차라리 토닉 워터 부스를 약학이 아니라 식료품으로 신청해서 3층에 차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다녔다. 3층에는 엘리자베스가 생각할 때 토닉워터를 사고 싶어 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갖가지 음식들을 맛보다가 우유저장법 부스로 갔다. 부스 근처로 갈수록 인파가 늘어나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느라 애를 먹었다. 마침내 엘리자베스가 우유저장법 부스가 있을 만한 곳에 도착했을 때, 엘리자베스의 눈은 동그래졌다.

“주, 줄을 서세요! 한 분씩 오십시오, 한 분씩!”

엘리자베스는 저 멀리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치고 있는 루이 교수님과 주변 사람들을 휘휘 둘러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우유저장법 부스에 몰려든 거라고?

엘리자베스는 우유저장법 부스의 성공이 놀랍기도 하고 입맛이 쓰기도 했다. 토닉워터는 완전히 망하고 있는데.

엘리자베스가 루이 교수님에게 가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 부인 하나가 엘리자베스의 팔을 턱 잡았다.

“아저씨! 줄 서야죠!”

엘리자베스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뒤에서 또 다른 손길이 엘리자베스를 잡아챘다.

“어디서 새치기야!”

“줄 서라는 말 못 들었어요?”

엘리자베스는 뒤로 마구 빨려가다가 어느새 인파 밖으로 밀려났다. 그때였다. 엘리자베스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낚아챘다. 엘리자베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보았다. 그러자 거기엔 굳은 표정의 엘우드 밀이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들어 엘우드 밀을 보았다.

“서, 선생님은 부스 안 지키고 뭐하세요?”

“이제 막 부스로 돌아가는 길인데?”

엘우드 밀은 들고 있는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시음용 우유 벌써 다 떨어졌어요?”

“응. 짐마차까지 갔다 오느라 진땀 뺐다.”

엘우드 밀의 목소리는 어쩐지 가라앉아 있고 생기가 없었다. 그리고 진땀을 뺐다고 말은 하는데 엘우드 밀의 이마에는 땀이 조금도 맺혀 있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사소한 것들은 차치하고 당장 이 부스의 성공 비결이 궁금해 엘우드 밀을 추궁했다.

“대체 이 부스는 어떻게 이렇게 흥하는 거예요?”

“몰라? 그냥 시음용 우유랑 비스킷을 냅뒀더니 비스킷 먹으려고 어린 애들이 엄청 많이 오던데? 그러니까 그 엄마들이 따라 오고…… 그러다 사업가 몇이 와서 계약을 하고 가고……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엄청나게 몰려들었어.”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비스킷이라고……. 엘우드 밀은 골똘히 생각에 빠진 엘리자베스에게 물었다.

“것보다 케이 하커는 만났냐?”

“케이요? 왔다갔어요?”

엘리자베스는 엘우드의 말을 듣고 하고 있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케이가 이 근처에 있나? 엘우드 밀이 그런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아니. 왔다가진 않았어. 입구에서 우연히 만났어.”

“입구에서요? 왜 안 들어오고 거기에 있는데요?”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입구 근처 무대에 앉아 있는 앰버를 떠올렸다. 그쪽으로 가는 건가? 엘리자베스는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날 사람이 있나 보지.”

“…….”

엘리자베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때 엘우드 밀이 말했다.

“나 디트리히 폰에 대해 기억난 게 있다.”

엘우드 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엘리자베스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순식간에 없어진 것 같은 기분으로 엘 선생을 보았다. 엘우드가 이렇게 뭔가가 기억이 났다고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 좋은 기억이었어. 믿고 싶지 않은 기억.”

엘리자베스는 굳은 표정의 엘우드 밀을 보았다. 엘우드 밀은 어쩐지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뭐, 뭔데요?”

“말해줘?”

엘우드 밀이 엘리자베스를 빤히 보며 물었다.

“말해줘도 치료제의 행방과는 관련이 없을 텐데?”

엘리자베스는 엘우드 밀의 눈빛에 이채가 도는 것을 바라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엘우드 밀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는데도 기쁜 기색이 하나도 없을까?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우드 밀이 말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상한 주사약을 맞히는 실험실에서 디트리히 폰을 데리고 탈출하는 꿈이었어. 우리는 실험실을 둘러싼 숲을 달리고 또 달렸지.”

엘리자베스는 엘우드 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그런데 숲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탄환이 우리에게 쏟아졌어. 나는 디트리히 폰을 부축해 달리다가 어느 순간부턴가 디트리히가 나를 앞서 달리는 것을 느꼈다. 디트리히는 이상하리만큼 빨랐고 점점 무시무시한 속도를 냈어. 그때였다. 폭탄이 우리 주변에 떨어지고 귀가 멍멍해지면서 우리 둘 다 엎어졌어.”

’피해, 형!’

엘리자베스는 이마를 짚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마치 꿈속의 장면이 제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쾅!

엘리자베스의 귓가에서 폭탄소리가 들렸다. 엘리자베스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주변을 보았다. 그러나 박람회장 안에는 그저 우유를 먹으러 온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넘어졌고 디트리히 폰은 말했지.”

“나는 괴물이 되느니 사람으로 죽을 거야. 날 죽여. 형.”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비릿하게 웃은 엘우드 밀이 말했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냐?”

“…….”

“난 싫다고 했다. 절대, 절대 싫다고 말이야.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레본으로 왔어.”

“선생님…….”

“왜 혼타니스인 내 이름이 갸흐통 가문 인명사전에 없는지, 이제는 알겠다. 내 고향은 갸흐통이 아니야. 이제 알아. 내 고향은…… 미래의 갸흐통이야. 맞지?”

엘우드 밀이 허탈하게 웃었다. 엘리자베스는 엘우드 밀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엘우드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내가 저지른 일의 업보 때문에 내 동생은 괴물이 되어 고향도 아닌 땅을 떠돌게 되었고 너에게는 남은 시간이 2개월 밖에 남지 않게 되었어. 나는 디트리히도 너도 전부 제자리로 돌려보낼 거다. 반드시 그럴 거야. 아무 걱정도 하지 마라. 아무 걱정도…….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슨 짓이든 할 거니까.”

엘리자베스는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엘우드 밀을 보았다. 엘우드 밀의 시뻘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엘우드 밀은 눈물을 닦을 손이 없어 제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고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알겠냐?”

“선생님…… 선생님, 잠시만요…….”

엘리자베스는 뭔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엘우드 밀은 이미 부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가 비틀거리며 일어났을 땐 이미 늦었다.

* * *

엘리자베스는 터덜터덜 2층으로 내려왔다.

‘……선생님이 기억을 찾고 있다.’

지금 상황에 무척이나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엘우드 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머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는 말은……. 자신이 너무 불안하게 생각하는 걸까?

엘리자베스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텅 비어 있는 토닉워터 부스를 보니 별로 힘이 나지 않았다. 반면 심령과학회와 부인약학회는 사람이 여전히 득시글거렸다. 한숨을 내쉰 엘리자베스는 열심히 시음을 권하는 케빈 쪽을 일별하고 난간 쪽에 기대어 1층을 보았다.

1층에는 귀족들이 거의 다 착석을 마치고 젠체를 하며 떠들고 있었다. 4층에서는 시가를 피우는 평민 자본가들이, 1층에서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들이 조지 왕자의 축사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였다.

“아저씨, 천국의 목소리가 들어보고 싶지 않수?”

엘리자베스는 제 등을 치는 손길에 놀라서 뒤를 돌았다. 그러자 심령과학회 부스에서 보았던 과학자 하나가 실실 웃으며 손을 비비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그…… 그…….”

엘리자베스는 남자의 등 뒤로 줄을 잔뜩 선 심령과학회 부스와 텅 빈 토닉워터의 부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남자 쪽을 다시 보며 말했다.

“지, 진짜인가요……? 처, 천국의 목소리라는 거……?”

“그럼요. 진짜죠. 다들 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감동하며 주님께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천국의 실체를 맛보게 해주는 과학기술이야 말로 심령과학회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주님도 울고 가실 사기술이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얼마나 내야 되죠……?”

“목소리를 듣는 거요? 단돈 20페니면 됩니다.”

아까보다 싸졌다. 이것도 일종의 호객술인가 싶어서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엘리자베스는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그녀가 동전을 세다 말고 망설이자 남자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시늉을 하더니 엘리자베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저씨는 내가 줄 앞에 세워드릴게. 걱정하지 말고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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