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하러 돌아왔다 204화
켄드릭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감사하지 않는 케이가 ‘배은망덕’ 하다고 했다.
케이는 그 말을 들으며 켄드릭이 집을 팔아 도박을 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스스로를 저주했다. 켄드릭이 도박에 빠지게 두었어야 한다. 그러다가 돈을 갚지 못해 어느 날은 팔이 잘리고 어느 날은 다리가 잘리고 종래에는 하일 강에서 이름 모를 시체로 떠오르게 두었어야 한다.
왜 그러지 못했나.
망할.
망할 케이 하커.
너는 추악한 주제에 착한 척을 하고 싶어 하지.
“총 안 내려? 내리라고! 난 그냥 너한테 돈 몇 푼 받으러 온 거야! 그거 하나 못 받아? 내가 순순히 너한테 엄청난 재산을 허락해줬는데?”
켄드릭의 말에 케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어차피 넌 죽은 목숨이야. 시체한테 돈을 주는 사람은 없어.”
“내, 내가 왜 죽은 목숨이야!”
켄드릭이 소리를 꽥꽥 지르는 사이에 토비가 케이의 등 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 제가 잘못했어요……. 총 저 다시 주세요. 제가 할게요. 뭘 하시려고 하든 제가 할 테니까…….”
“닥쳐라, 토비.”
케이는 단호하게 말하며 켄드릭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를 죽이는 건 내가 할 일이야.”
켄드릭은 케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켄드릭은 점점 케이가 정말로 자신을 쏠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켄드릭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봐…… 케이……. 왜 이래……? 나 네 형이야. 알잖아. 우린 핏줄이라고. 너 핏줄이 뭔지 몰라……?”
케이는 켄드릭이 뒤로 물러나는 만큼 켄드릭을 쫓아 걸어갔다.
“알아. 잘 알고 있어. 켄드릭. 핏줄이란 맘대로 이용하고 부려먹겠다는 뜻이야. 그러다가 쓸모없어지면 버리고 치워버리겠다는 뜻이야. 내가 너한테 그럴 것이듯이.”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파열음이 공기를 갈랐다. 켄드릭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켄드릭의 어깨 바로 옆으로 총알이 스쳐지나갔다. 산탄이 정원 끄트머리의 나무에 맞으면서 산산조각 난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켄드릭이 바들바들 떨면서 뛰기 시작했다. 켄드릭은 정원 밖이 아니라 실내로 향했다. 케이는 켄드릭을 노리고 한 발을 더 쐈다.
탕!
빗나간 탄환이 맞춘 바닥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켄드릭이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어어어어엄마아아아! 엄마! 엄마! 살려줘요! 살려줘!”
켄드릭이 축축한 바지춤을 쥐고 현관문에 도착해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케이는 총을 쥔 그대로 프란시스를 노려보았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켄드릭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흑흑……. 저 미친 새끼……. 저 미친 새끼 좀 어떻게 해봐! 저런 또라이를 우리가 일찍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아버지도 돌아버린 거 아니야? 엉? 그러니까 벼룩 새끼한테 전 재산을…….”
프란시스는 싸늘한 눈으로 케이를 보았다. 케이는 무서우리만큼 변화가 없는 표정으로 프란시스에게 말했다.
“난 그 새끼를 죽여버릴 거야. 그 다음에 당신이 나를 죽이든 말든 그건 상관 안 해. 비켜.”
“케이 하커.”
프란시스는 조용히 말했다. 케이는 다시 켄드릭의 등을 조준한 채로 천천히 걸어왔다. 프란시스는 그런 케이를 바라보며 켄드릭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켄드릭이 중얼거렸다.
“내가 진짜 앞으로 잘 할게. 나도 저 새끼처럼 돈만 있으면 이렇게 안 살아…… 알잖아……. 내가 귀족 새끼들도 아니고 돈 없이 이 좆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살라고. 저 새끼가 하커 저택을 못 팔게 막아놨다니까? 그리고 매달 저택을 유지할 생활비만큼만 지급하게 해놨어. 절대 다른 데에 돈 못 쓰도록!”
“생활비…….”
프란시스는 켄드릭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켄드릭을 내려다보았다. 프란시스는 켄드릭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프란시스는 눈물로 범벅이 된 켄드릭의 얼굴을 소매로 훔쳤다. 켄드릭이 프란시스에게 애절하게 말했다.
“엄마…….”
프란시스는 그 말을 듣더니 케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프란시스는 켄드릭을 자신의 뒤로 보냈다. 프란시스는 케이와 켄드릭 사이를 막더니 말했다.
“넌 내 자식을 죽일 수 없어, 케이.”
프란시스의 말에 케이가 산탄총을 살짝 내렸다. 케이는 프란시스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차피 저 새끼는 도박장에서 팔 다리가 잘려서 제명에 못 죽을 거야. 그런데도 저런 새끼를…….”
“알아. 알고 있어, 케이.”
프란시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케이를 보았다. 프란시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케이는 이를 악물었다.
핏줄.
그래. 핏줄이라는 게 이런 거라는 거지.
케이가 자조하고 있을 때였다. 프란시스가 뒤로 돌았다. 그러더니 켄드릭의 손을 잡았다.
“일어나라……. 일어나, 켄드릭…….”
프란시스의 손을 잡은 켄드릭이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프란시스는 제 아들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켄드릭의 팔목을 쥐었다. 그러곤 품 안에서 작은 총을 꺼냈다.
탕!
“으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가 저택의 벽에 튀었다. 켄드릭의 몸이 무너졌다. 프란시스는 제 손에 들린 작은 총을 바라보며 무너져 있는 켄드릭에게 말했다.
“케이는 절대로 너를 죽일 수 없어. 너를 죽인다면 그건 내가 할 거니까.”
“미친년…… 이 미친녀어어언!”
켄드릭은 피투성이가 된 제 손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안에 있던 엘리자베스가 튀어나왔다. 엘리자베스는 켄드릭의 손을 감싸 쥐었다.
엘리자베스가 경악한 얼굴로 프란시스를 보았다. 프란시스는 총을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그래. 나는 미쳤고, 너도 미쳤지. 우린 다 미쳤어. 그러니 유감스러워하지 말아라.”
“뭘…… 뭘……?”
켄드릭은 헐떡거리며 프란시스에게 물었다. 프란시스는 지친 표정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정신병원에 입원할 거야. 이미 네 자리를 다 알아봤다. 공장 사람들이 널 데리고 오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는데 잘 되었구나. 네가 이미 여기에 와 있다니. 토비! 상처 치료는 조금 있다가 받아도 된다면 공장으로 가서 프레드릭 씨를 찾아. 그 사람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거야.”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소리야! 이봐……!”
엘리자베스는 어느새 달리기 시작한 토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어쩔 수 없네요.”
켄드릭이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엘리자베스가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약병을 꺼내어 나왔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손수건에 묻히고 그대로 켄드릭의 입을 틀어막았다.
“상처가 커서 아무래도 잠시 기절해 있는 편이 낫겠어요.”
켄드릭은 그 말에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켄드릭의 움직임은 몇 초 만에 멎었다. 엘리자베스는 켄드릭이 쓰러진 모습을 보며 잠시 벙쪄 있는 케이와 눈이 마주쳤다.
“뭐 해. 옮겨.”
케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프란시스와 엘리자베스를 번갈아 봤다.
“미리 둘이서 일을 꾸몄어?”
케이의 질문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저었다. 엘리자베스는 지친 얼굴로 의자에 앉아 담배를 찾는 프란시스를 보았다.
“아니. 그냥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잖아. 모두에게 최선이야.”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가 총을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프란시스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케이를 바라보았다.
“방금 네가 말했잖니. 핏줄이란 필요 없으면 버리는 거라며. 엘리자베스 말이 맞아. 이게 최선이야. 켄드릭에겐 팔이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거니 없어지는 게 맞고, 우리에겐 켄드릭이 재앙이니 없어지는 게 맞고. 빨리 옮겨라.”
엘리자베스는 품 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프란시스에게 내밀었다.
“……딱 한 대. 딱 한 대만 피우시는 거예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대.”
프란시스는 엘리자베스의 손에서 담배를 낚아채갔다.
* * *
케이는 켄드릭을 저택 안으로 옮겼다. 프란시스는 어쩐지 담배를 피우면서 생기를 되찾은 얼굴로 엘리자베스가 켄드릭의 손을 치료하는 것을 가만히 구경했다. 오히려 넋이 빠진 것 같은 것은 케이 쪽이었다.
케이는 저택 앞에 서서 토비가 프레드릭이라는 자와 함께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거대한 거구는 가만히 서 있는 법이 없이 계속 서성거렸고 엘리자베스는 창밖에 선 케이의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주시했다.
저 멍청한 자식이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엘리자베스는 켄드릭의 손에 붕대를 감으며 말했다.
“다신 손을 쓰지 못할지도 몰라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바야. 저 녀석에게 손이 있으면 그 손으로 죄를 저지를 테니까.”
프란시스의 대답은 간결했다. 프란시스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한결 개운해진 듯한 얼굴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변화가 조금 놀라우면서도 의심스러웠다. 괜찮은 걸까?
곧 프레드릭이라는 자가 검은색으로 칠해진 짐마차 같기도 호송용 마차 같기도 한 마차를 가지고 왔다. 프란시스는 프레드릭과 뭔가를 이야기하더니 곧 프레드릭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켄드릭에게 말을 걸었다.
켄드릭은 횡설수설하면서도 프란시스와 케이에 대한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죽어서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말이었다. 프레드릭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네 말대로 우리 모두 죽어도 너는 꼭 오래 살 거야. 남부에 있는 우리 병원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야. 자유만 포기한다면 넌 거기서 오래 살 수 있어.”
켄드릭은 그 말을 들으며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프레드릭이 솜씨 좋게 채운 압박기구 때문에 켄드릭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프레드릭은 켄드릭을 짐짝처럼 들어서 옮겼다.
엘리자베스는 프레드릭의 말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정신병원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말 말이다.
레본에서 정신병에 대한 연구는 이오페아 어떤 곳보다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여전히 정신병을 앓는 이들을 학대하는 병원이 많았다. 물론 켄드릭이 그런 곳에 간다고 하여 불쌍히 여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프란시스가 켄드릭의 불행을 어찌어찌 들었을 때 혹시라도 흔들릴 게 걱정될 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한숨을 내쉬며 현관 밖에서 케이가 프레드릭에게 돈을 찔러 넣어주는 것을 보았다. 케이는 프레드릭과 켄드릭을 보내고 나더니 토비와 몇 마디를 나누고 토비의 어깨를 툭 친 뒤에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침 챙겨. 모두 다. 당분간 레트니 애비뉴에서 지낼 거니까.”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너도 잠은 기숙사 말고 레트니 애비뉴에서 자. 기숙사에 있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그 대신 내가 호위를 붙여주지.”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켄드릭은 방금 잡혀 갔잖아.”
“레트니와 조지 왕자는 살아서 이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지. 그들은 너를 이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협상은 없어. 내가 네 연구비를 대는 사람이고, 공장에 돈을 주는 사람이야. 내 말을 다 들어. 메리, 콜린, 토비까지 전부 다 같이 레트니 애비뉴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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