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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202화 (202/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202화

로킨트에 도착하자 정말 고향에라도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토비가 그간 쌓인 옷가지들을 담은 가죽 가방을 내려주자마자 뛰듯이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콜린이 반가운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맞이했다. 엘리자베스도 콜린이 반가워 웃었다.

“다시 보니 반가워요.”

콜린은 엘리자베스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얼굴이…….”

“아, 이건 뭐 그 고생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닌데요…….”

엘리자베스는 입맛을 다시며 제 뺨을 매만졌다. 그 사이에 문 안에서 메리가 불쑥 얼굴을 드러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메리는 엘리자베스에게 달려들어 엘리자베스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정신없는 손길에 넋이 나가는 것 같은 얼굴로 끌려  다녔다.

“대체 얼굴이 왜 이렇게 마르셨어요? 그간 대체 왜 저택에 안 오셨구요. 그렇게 큰 일이 있으셨으면 바로 저택에 오셨어야죠. 얼굴에 이런 숯검댕이는 왜 묻히고…….”

“이거 숯검댕이가 아니고 그냥 눈 그늘이야…….”

“그럴 리가 없어요. 이리 와보세요.”

“으악! 메리!”

엘리자베스는 팔을 휘적거리며 메리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서 벗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응접실로 들어간 엘리자베스는 잠시 굳어졌다. 응접실 소파에 프란시스가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를 따라 들어온 메리가 그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마님이 아직 주무시고 계시네. 깨울게요, 아가씨.”

“아니, 아니야.”

엘리자베스는 대답하고는 프란시스에게로 걸어갔다. 엘리자베스는 며칠 사이에 수척해진 프란시스의 얼굴을 보았다.

그간 오며가며 소식도 들었고 케빈은 심지어 프란시스가 공장에서 사무를 보기도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프란시스의 얼굴을 이렇게 보니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프란시스…….”

엘리자베스가 중얼거리자 프란시스가 무거운 눈꺼풀을 힘들게 들어올렸다. 눈을 뜬 프란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왔구나. 드디어 왔어. 세상에, 얼굴이 왜…….”

엘리자베스는 제 뺨에 닿는 프란시스의 차가운 손가락을 느꼈다. 엘리자베스가 프란시스의 손가락을 만지며 물었다.

“왜 여기서 주무셨어요? 위에 가서 주무시지…….”

“어? 아니, 자려고 한 게 아니고…… 요새 자꾸만 졸려. 일어나기가 힘들어, 엘리자베스. 그래도 오늘 오전에는 공장 사무실도 갔다 왔어. 다들 토닉워터 시음해보고 좋아하던데? 건강해지는 맛이래.”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가 무기력 증세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걱정이 되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짐짓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요. 우리의 건강음료, 토닉워터가 세상을 지배할 거예요. 온 대륙에서 잘 팔릴 거라구요.”

“그럼 좋겠구나. 다들 고생 정말 많이 했어. 케이가 투자를 한다지?”

프란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약간 비틀거리는 프란시스를 부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그러라고 했어요.”

프란시스가 엘리자베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그 녀석은 네 말을 참 잘 들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케이 하커가?

엘리자베스는 그 말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고 프란시스와 함께 식탁으로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프란시스는 식탁에 앉더니 엘리자베스를 향해 말했다.

“어, 왔구나. 문 좀 열어주겠니?”

와? 누가……?

엘리자베스는 의아하게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케이 하커가 서 있었다.

케이 하커는 엘리자베스를 보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엘리자베스는 중얼거렸다.

“네가 왜 여기에…….”

“어딨어?”

케이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낮게 읊조렸다. 엘리자베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어딨어?”

엘리자베스가 말하자 뒤에서 프란시스가 일어났다. 프란시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케이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왔니? 앉아라. 식사 전이지?”

케이는 프란시스의 부름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스쳐 지나 프란시스에게 걸어갔다.

“뭡니까?”

“뭐가?”

프란시스는 케이의 분노한 얼굴 앞에서도 태연자약하게 메리에게 스프를 떠오라고 부탁했다.

“아프다면서요. 곧 죽는다면서요?”

프란시스는 케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까 그럴 뻔했어. 메리? 대신 대답해주겠어? 아까 내 송장을 치우는 줄 알았다고 했지?”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와 케이의 대화를 들으며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프란시스가 케이를 속여서 엘리자베스와의 식사 자리를 만든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이마를 긁적였다.

‘젠장…….’

엘리자베스는 눈 밑에 잔뜩 내려온 눈 그늘을 만지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손가락으로 마구 비볐다.

“예? 아니, 저는 잘…… 어…… 그게 그러니까…….”

메리가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사이에 케이가 황당하다는 듯이 프란시스를 노려보았다. 케이는 분노한 얼굴로 프란시스에게 말했다.

“쓸데없이 오라 가라 하지 마세요.”

프란시스는 케이의 눈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죽는 줄 알고 뛰어왔니?”

프란시스의 말에 케이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케이가 뒤를 돌았다. 엘리자베스와 케이의 눈이 마주쳤다. 케이의 두 귀가 빨개졌다.

엘리자베스는 그간 케이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엘리자베스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피했다. 케이는…….

케이는 지금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창피해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마음을 깨닫고 입술을 물었다. 케이 하커가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케이에게 마음을 보여주고 그 마음을 거절당하고 창피해하는 것은 엘리자베스의 몫이었는데.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케이가 현관문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그의 팔을 낚아챘다. 케이가 엘리자베스를 노려보았다.

“머, 먹고 가.”

엘리자베스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케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엘리자베스의 팔을 뿌리쳤다.

“됐어. 둘이서 오붓하게 먹어.”

케이가 막 현관문을 나서려고 할 때 프란시스가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네가 줬던 수표 얘기를 해도 되는 거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불렀다만?”

프란시스의 말에 케이의 몸이 굳어졌다.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와 케이를 번갈아 보다 프란시스에게 물었다.

“무슨 수표요? 투자금이요?”

케이가 프란시스를 노려보았다. 프란시스가 빙그레 웃었다. 프란시스가 엘리자베스에게 다정하게 대답했다.

“그래, 일종의 투자금이었던 셈이지. 조금 일찍 줬지만.”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대답에 갸웃하며 케이를 보았다.

“우리 공장에 미리 투자해놓은 돈이 있어? 그럼 말하지. 다시 박람회 때문에 생산비용을 낼 필요가 없잖아.”

엘리자베스의 대답에 케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프란시스를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식탁 앞으로 갔다. 프란시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앉아라. 난 이제 늙었어. 성질머리 더러운 사내놈이랑 말씨름할 체력 따윈 없단다.”

엘리자베스는 케이가 절대로 식탁에 앉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는 프란시스를 한참 노려보다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엘리자베스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이건 대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 * *

엘리자베스와 케이, 프란시스가 앉은 식탁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프란시스는 두 사람을 불러 놓고도 딱히 두 사람을 대화시킬 의지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다만 엘리자베스에게 자꾸만 음식을 권하고 또 권했다.

“저 진짜 이젠 배불러요.”

“그럼 과일을 좀 더 먹어. 과일을 먹으면 소화가 돼서 고기가 더 들어가.”

“네……?”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가 주는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면서 케이의 표정을 살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 쪽을 돌아보는 일이 없이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케이가 살벌한 눈빛으로 엘리자베스를 쏘아보았다.

“왜?”

“뭐, 뭐가…….”

엘리자베스는 포크로 대구 튀김 표면을 긁어내리며 입맛을 다셨다.

“나랑 밥 먹는 게 싫어?”

케이의 질문에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프란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주방에서 우유를 데워 와야겠어.”

엘리자베스가 프란시스가 자리를 비우는 것을 막으며 말했다.

“메리한테 부탁하시지…….”

“아니야. 메리는 위층 난로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란다. 이거야 원. 다음 달에는 공장 사람들한테 월급을 주고도 남아서 집안일을 도울 사람을 하나 더 고용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프란시스는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쓰는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사라졌다. 엘리자베스는 사라지는 프란시스의 등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케이 쪽을 보았다. 케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눈을 바라보면 뭔가를 말해버리고 싶을 것 같았다.

보고 싶었어.

너무 힘들었으니 안아줘.

……아무 데도 가지마.

엘리자베스는 그런 말들이 머릿속을 휘젓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케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표정이 안 좋네. 그럼 그냥 내가 가지.”

케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리자베스가 케이의 손을 잡았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부드러운 손끝을 느끼는 순간, 어젯밤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너랑 매일 이렇게 같이 밥 먹다간 위장병이 생기겠어.’

두 사람의 신혼시절, 케이는 엘리자베스와의 식탁을 늘 먼저 빠져나갔다. 이유는 대부분 엘리자베스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에게 매일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교 모임에서 만난 귀부인들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고 하루 종일 집에서 울면서 읽었던 연애소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공장에서 뭘 만드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다. 언제나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노력을 한 것은 엘리자베스였다.

엘리자베스는 지금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케이의 기분을 살피다가 종래에는 짜증을 냈다.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거야?’

‘듣고 있어.’

‘듣고 있으면 대답을 해야지. 넌 대답을 안 하잖아. 이건 대화가 아니야!’

엘리자베스가 언성을 높이면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화가 풀릴 때까지 묵묵하게 듣기만 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으로 본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남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케이는 엘리자베스와 대화할 의지가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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