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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193화 (193/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193화

엘리자베스는 신문을 읽어내려 갔다. 그 사이에 엘우드 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말이다…… 너 사실…….”

[윌리엄 조쉬의 재산은 먼 친척에게 상속되었으나 작위는 몰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무분별한 귀족원의 세습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낸 조지 왕자는 상원의 세습제를 전면 개편하기로…….]

엘리자베스가 읽는 신문 그 어디에도 윌리엄 조쉬의 시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윌리엄 조쉬의 목이 걸린 사진도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신문을 펼쳐 들었다. 그때 엘우드 밀이 신문 끄트머리를 슬쩍 쥐었다.

엘리자베스는 의아한 눈으로 엘우드 밀을 보았다. 엘우드 밀이 말했다.

“너 나 좋아하냐?”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머리가…… 많이 아프세요?”

엘리자베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엘우드 밀은 오히려 더욱 의심스러운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아니야……?”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불쑥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전부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붉히며 엘우드에게 말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진짜 이상한 사람인 거 아세요?”

“흥.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이상한 거. 기억을 잃어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쌓인 이 논문들 전부 나한테는 한 입에 케이크 털어 넣기처럼 손쉬운 걸 보고도 내가 그걸 모를까? 난 완전 천재야. 기억을 잃어버렸는데도 천재라고! 누가 봐도 평범할 수가 없지. 난 이상한 사람이야! 이상한 천재!”

엘리자베스는 엘우드의 자만심과 이상함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기억을 잃은 사람의 성격이 과거와 이렇게까지 똑같아질 수가 있는 걸까? 교회당 앞에서 보았던 엘우드 밀은 예민해 보이긴 했어도 이렇게 재수가 없지는 않았는데. 자신이 갸흐통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의 엘우드 밀은 예전 엘 선생의 재수 없는 모든 부분을 닮아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와 별개로 엘우드가 펼쳐놓은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는 홀램브로 학술지처럼 지금 이오페아 대륙의 최첨단 과학 논문이 실려 있는 책들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엘우드 밀이 이 모든 책들을 이해한다는 게 놀랍지 않았다. 엘우드 밀이 이 모든 과학적 논증을 이해하거나 혹은 미리 알고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엘우드 밀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니까.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학문이었다. 1년 전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이라고 여겼던 논리조차 1년 만에 거짓으로 밝혀질 수도 있었고, 사기에 가깝다고 여겨지던 가설들이 사실은 정설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니 없던 국기가 만들어지고 갸흐통이 전쟁 상태로 돌입한 먼 미래에서 온 엘우드 밀이 이 지식들을 보면 당연히 낡아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뭐 그리 이상한 건 아닐 수도…….”

“선생님!”

엘리자베스는 엘우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엘우드가 주변을 보며 엘리자베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선생님이 아니라 사서님이거든? 그리고 그럼 대체 어제 그 남자가 왜 나한테 네가 내 여자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한 건데?”

엘리자베스는 엘우드의 말에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케이 하커가 엘 선생님을 때리면서 네 여자니 뭐니 그런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났다. 동시에 자신이 케이에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했는지도…….

엘리자베스는 붉어진 뺨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건 케이가 그냥 뭔가를 오해한 거예요…….”

엘우드 밀은 엘리자베스의 붉은 뺨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닌 것 같은데? 아아, 됐고. 하여간에 나 좋아하지 마라. 나는 너처럼 무시무시한 애는 싫다.”

“뭘 보고 그렇게 확신하시는 거예요? 그 나이까지 독신으로 사신 주제에 뭘 안다구.”

“내 나이가 왜! 근데…… 나 나이 많냐? 어제 내가 거울을 봤는데 보니까 너무 어리고 예쁘던데? 거의 요정 수준이야. 이렇게 잘 생기고 예쁘고 똑똑한데, 왜 내 이름이 갸흐통 책에 없는 거냐?”

엘리자베스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이마를 짚었다. 엘우드 밀이 한 평생을 독신으로 산 데에는 몰록을 쫓아다니는 것 외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엘우드 밀의 손에 잡힌 신문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접어서 품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신문을 빼앗기고 항변하는 엘우드에게 말했다.

“하…….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구요. 저도 선생님처럼 이상한 남자는 싫거든요. 에단 밀러의 소고가 담긴 협회보, 선생님이 가지고 계세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엘우드 밀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펼쳐져 있는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책들의 바다 속에서 한 책을 건져 올렸다. 엘리자베스가 그것을 받아들려는 순간 옆으로 막 밀어둔 책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러자 저 뒤쪽에 서 있던 사서가 화난 얼굴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엘우드 밀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저 재수 없는 자식. 또 이쪽으로 오잖아?”

또 한바탕 소란이 일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오늘 늦기 전에 저랑 저기 앉은 저 남자랑 같이 벨룬타 공원 뒤쪽에 있는 약초상이 모여 있는 시장에 갈 거예요. 선생님도 같이 가실래요? 그냥 지금 나가요. 원자설에 대해선 내일 알려주면 되니까.”

엘리자베스의 말에 엘우드 밀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럼. 가자.”

엘리자베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뒤쪽에서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아루쉬를 보았다. 곧 아루쉬가 시선을 눈치챈 듯이 고개를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걸어갔다. 뒤에서는 사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당신 내가 분명히 경고했는데…….”

“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뭐? 지금 내 말도 안 듣고 무슨…….”

“머리가 아파서 쉬는 건데요? 교수님께서도 제가 머리가 아프면 쉬는 시간을 주실 거라고 하셨습니다만?”

“머리가 아픈 사람 표정이에요, 방금 그게? 그리고 어떻게 내가 잔소리를 하려고 하면 갑자기 머리가…….”

“아아, 머리야…… 아이고…… 헛소리를 자꾸 들으면 머리가 아프네?”

“야, 너!”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책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자베스는 얼른 아루쉬에게로 뛰듯 걸어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루쉬에게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내가 알려주는 공부는 여기까지 해요. 아루쉬가 알려주는 치료술은 약초를 직접 만지면서 해야 한다고 했죠? 같이 약초상에 가요.”

* * *

벨룬타 공원까지 가는 길, 엘리자베스는 엘 선생님이 아루쉬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꽤 놀라고 말았다. 평범한 인간들과의 평범한 대화를 도무지 못 견뎌하던 엘 선생은 아루쉬가 알려주는 이국 말이나 이국 문화, 그리고 특히나 에테르 치료술에 관한 개념을 재밌어했다.

“그럼 사람마다 타고난 에테르에도 다 종류가 있다는 겁니까? 일종의 성격처럼?”

“에테르 치료술의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엘우드의 다소 무례한 질문까지도 온화한 표정으로 받아주는 아루쉬를 보며 사실 이 두 사람이 상극인 것처럼 보여도 이 둘만큼 잘 맞는 사람은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물, 불, 땅, 하늘. 에테르의 종류는 이렇게 네 가지이고, 그 중에서도 땅과 물, 하늘과 불은 가까운 것으로 보며 땅과 하늘, 물과 불은 먼 것으로 봅니다.”

엘리자베스는 아루쉬가 말해주는 개념에 엘우드 밀만큼이나 관심이 갔지만 마음 한 편이 불편해서 제대로 아루쉬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윌리엄 조쉬의 목은 누구의 목일까? 진짜 윌리엄 조쉬? 아니면 악어에게 물어뜯긴 부랑자의 목?

엘리자베스가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을 때 에테르에 대해 설명하던 아루쉬가 벨룬타 공원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엘리자베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많네요? 왜 저렇게 모여 있죠?”

엘리자베스는 벨룬타 공원을 지나쳐 가면 약초시장이 나오지만 무너진 의회 청사도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벨룬타 공원 앞에 모여 있는 평민들이 든 팻말을 보았다. 어젯밤 엘리자베스가 행진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봤던 팻말과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빛이 어둠을 몰아냈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팻말을 든 사람이 여자들뿐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남자, 여자, 어린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잔뜩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은 어젯밤 보았던 여자들처럼 밝아 보였다. 마치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군처럼, 그들은 에밀리의 석방과 귀족원 폐지에 도취되어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 안을 채우고 들어오는 이 불안이, 윌리엄 조쉬 때문인지 저 위태로운 도취감 때문인지 몰라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본이 변하고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겠죠.”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언젠가 레본은 망하지 않는다, 변할 뿐이다, 라고 말했던 윌리엄 조쉬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엘우드 밀이 코웃음을 쳤다.

“세상이 변한다는 건 사람들의 착각이야. 외부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야.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이 변하는 거지.”

엘리자베스는 엘우드 밀을 보았다. 엘우드 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엘리자베스에게 손가락을 저어 보였다.

“너 그렇게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꾸 나 쳐다보지 마라. 나는 네 마음에 보답해줄 수 없으니까 말이야.”

“……저기요……. 저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선생님…….”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말하려고 할 때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노동자 하나가 엘리자베스를 치고 지나갔다. 그걸 본 엘우드 밀은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쪽으로 당겨왔다. 엘리자베스가 엘우드 밀에게 팔이 잡힌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그녀를 친 노동자가 자신의 친구에게 말했다.

“윌리엄 조쉬의 목을 보았나? 엉? 그 작자 꼴이 말이 아니더군. 머리가 온통 뭐에 뜯긴 것 같은 게…… 총살도 아니고 교도소 내부에서 죽었다던데. 싸움이 났다더군. 꼴좋지. 제 부모와 형을 죽였다는 것도 전부 유산 때문이 아니겠나. 귀족들이란. 무시무시한 작자들이야, 안 그래?”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어깨를 움츠렸다. 엘우드 밀은 그런 엘리자베스의 움직임을 잘못 해석한 듯 그녀의 어깨를 어색하게 토닥거리며 말했다.

“걱정 마라. 저들은 그냥 화가 난 거니까. 넌 이제 귀족도 아니고.”

엘리자베스는 엘우드 밀을 올려다보았다.

윌리엄 조쉬가 살아서 도망쳤다.

엘리자베스는 안도하다 못해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저도 모르게 엘우드 밀의 손을 잡고 눈물이 맺힌 얼굴로 말했다.

“감사해요. 진짜. 진짜로요.”

“뭐? 뭐가? 방금 내가 감싸준 게? 그 정도야?”

그때였다. 누군가가 엘리자베스를 낯선 호칭으로 부르며 반갑게 걸어온 것은.

“어머! 귀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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