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하러 돌아왔다 185화
케이가 내리자 마차가 떠났다. 마차는 이제 뒷골목이 아니라 환한 바실리 스트리트를 지나며 케이 하커의 알리바이 노릇을 해줄 것이다.
케이는 마차가 떠나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골목 몇 개를 돌고 거리 하나를 건너 웨스트 리오든 교도소 뒷문으로 도착했다. 그러자 담배를 피우던 경사 놈 하나가 케이를 보고 꽁초를 벽에 비벼 껐다. 경사는 어두운 옷차림의 케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경찰모를 눌러쓰고 말했다.
“잭 밀런의 가족이라고?”
경사의 말에 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경사가 헛기침을 했다.
“물건은?”
경사의 말에 케이가 품 안에서 찰랑거리는 주머니를 내밀었다. 경사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슬쩍 주머니를 확인했다. 경사가 아까보다 확연히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시간은 30분이오. 더 주긴 어렵소.”
경사의 말에 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경사가 열어주는 무거운 철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경사가 따라오려고 하자 케이가 경사에게 은화를 내밀며 말했다.
“사식을 들고 오지 못했소. 빵과 우유 정도는 남는 게 있겠지? 담배도 몇 개비 있으면 좋겠고.”
케이의 말에 경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경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은화를 받아들며 말했다.
“내일 죽을 놈 사식도 들고 오지 않았다고? 정신머리가 없구먼. 기다리슈. 여기서 사무실까지 가려면 한참이니까. 여긴 총살 대기자들이나 있는 곳이니까 괜히 움직였다 봉변당하지 말고.”
케이는 경사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사가 들어왔던 철문으로 나갔다.
끼이이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내부에 횃불 하나만 남았을 때였다. 케이는 벽에 고정된 횃불을 들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횃불을 만난 쥐들이 숨을 곳이 없어 벽에 기대어 쌕쌕 숨만 쉬기도 했고, 케이가 채 갈 신지 못한 구두 굽에 토사물 같은 것이 짓밟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감각들보다 케이를 괴롭게 한 것은 단 하나.
교도소 안에서 넘칠 듯이 찰랑거리는 피의 냄새였다.
케이는 머릿속을 바늘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허기의 포화 속에서도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통로 끄트머리에 있는 쇠창살로 된 중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노인을 보았을 때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구역질을 했다.
그러자 노인이 케이에게로 걸어와 케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소? 험한 일을 하다 온 사람이 아닌가보지. 이 정도 냄새도 못 참는 걸 보면.”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들고 온 수레를 내려놓았다. 탁. 나무로 된 수레의 손잡이 부분이 바닥에 닿으며 메아리가 쳤다. 케이는 수레 위에 얹어진 채 짚으로 된 이불을 덮고 있는 저것이 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일 강 근처에서 악어에게 당한 시체들을 종종 주워 팔아치운다는 노인은 남의 죽음으로 먹고 사는 인간이긴 했어도 약속은 지키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노인의 부업이었고 노인의 본업은 챙길 가족이 없는 수용자의 총살당한 시체를 처리하는 대가로 교도소장에게 몇 푼씩 받아 챙기는 것이었다. 총살당한 시체만 해도 하루에 열 몇 구씩이고 그 중 절반은 버려질 가능성이 높으니 짭짤한 수입일 터였다.
케이는 노인에게 품 안에서 경사에게 준 것과 비슷한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신경 끄고 꺼져. 얼굴은 확실히 알아보기 힘든 거겠지?”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짚을 걷었다. 그러자 흉측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시체가 그 안에 있었다. 케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케이는 얼른 팔 안쪽의 여린 살로 제 얼굴을 막았다. 썩어가는 살점과 피의 냄새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케이는 그 사실 때문에 구역질이 나왔다.
“얼굴은 물론이고 성한 데가 없소. 이 교도소에는 흉악한 놈들이 많으니 서로 싸우다 그렇게 됐다 셈 치겠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돈을 챙겨 넣었다. 케이는 노인이 시체를 내려놓고 나가는 것을 끝까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노인은 쇠창살로 된 문을 열며 말했다.
“당신의 가족을 잘 살리기를 바라오.”
케이는 노인의 말에 뭐라 대답할지 몰라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노인이 나가고 케이는 시체를 들쳐 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멍해졌다. 시체가 두려워서는 조금도 아니었다. 다만 시체에서 풍기는 이 달콤한 향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케이는 거적때기를 걷어내고 다시 시체의 얼굴과 몸을 확인했다. 여기저기 짐승이 물어뜯은 듯한 끔찍한 모습을 보며 케이는 악어에게 공격당하는 한 사내의 처절한 몸부림을 떠올렸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내. 하지만 케이는 지금 짐승 앞에서 무력한 사내가 아니라 악어에게 자꾸만 공감하고 있었다. 얼마나…… 얼마나 달콤했을지.
케이는 이를 악물었다.
케이가 시체를 챙겨들려고 할 때였다. 어두운 쇠창살 너머로 뭔가가 움직였다. 케이는 고개를 들어 그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잠에서 깬 수용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교도관? 케이에게는 어느 쪽도 좋지 않았다.
케이가 서둘러 시체의 손을 잡았을 때였다. 뒤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직선으로 나 있는 통로 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인간. 어딨어?”
케이는 예상보다 경사 놈이 빨리 돌아왔음을 깨닫고 시체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케이가 돈으로 매수한 다른 경사의 말로는 잭의 위치는 저 끝에서 세 번째 방이다. 저 방 안에는 3명의 수용자가 있었는데, 그 3명 중 하나는 눈이 멀었고, 또 하나는 몸이 성치 않았다. 그리고 경사가 그들 둘을 아예 깊게 재워놓기로 했다.
케이는 시체 위에 거적을 넓게 펴놓고 도저히 교도소라기보다는 돼지우리에 가까운 것 같은 이 교도소의 좁은 통로를 걸어 다시 철문으로 걸어갔다. 케이를 보는 순간 경사 놈이 몽둥이를 들고 겁에 질린 얼굴로 케이의 멱살을 쥐었다.
“뭐 하는 거야! 여긴 내일 총살될 놈들이 있는 곳이라고. 당신이 죽어도 책임 못 져.”
책임이라니. 케이는 일부러 경사 놈의 여린 손에 이끌려 벽에 밀쳐내지면서 생각했다. 경사는 자신의 목숨을 책임지게 될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먹은 돈을 토해낼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케이는 얼른 납작 엎드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빠, 빵과 우유는……? 그, 그냥 우리 형을 보는 게 급해서 그랬소.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이에요, 나리…….”
케이는 벌벌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경사가 케이를 벽으로 끌어다 붙인 채로 케이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달빛 아래에서 경사의 땀에 범벅이 된 얼굴이 잘 보였다. 케이는 이놈이 이상하리만큼 겁에 질려 있다고 생각했다.
왜?
케이는 자신의 뒷목과 등짝이 우툴두툴한 교도소 외벽에 갈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는 축축해져가는 등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혈향이 더 고통스러웠다. 왜 내 피가 이런 냄새를 풍긴단 말인가. 왜.
케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때 경사가 케이의 목을 몽둥이로 벽에 몰아붙였다. 케이가 컥컥거렸다. 경사가 겁에 질린 눈으로 물었다.
“너 뭐야?”
“저, 저는…… 해리 밀던이라고…… 잭 밀던의 동생…….”
케이는 경사의 갑작스러운 반응이 조금 의아했다. 케이는 목이 졸려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를 하며 품 안에 들어있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더 먹여야 하는 걸까? 케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경사가 갑자기 몽둥이를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그러곤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너도 몰랐단 말이야?”
“컥…… 커컥…… 뭘요?”
케이가 목이 아픈 척 주저앉아 목덜미를 긁어대며 경사를 보았다. 그러자 경사가 말했다.
“뭐긴 뭐야. 네 형, 한 시간 전에 왕자 전하의 특별 지시로 풀려났다는데. 그걸 몰랐어? 잭 밀던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었냐? 총살 전날 특사라니.”
특사?
케이는 켁켁거리던 것을 갑자기 멈추고 싸한 얼굴로 경사를 보았다. 케이는 단숨에 일어나 경사의 손에서 몽둥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경사의 목을 몽둥이로 졸라 벽에 밀어붙였다. 경사는 놀란 눈으로 허둥지둥 거리던 것도 잠시 케이의 엄청난 힘에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너…… 너 뭐야…… 컥…… 이봐……. 사람 죽어……. 죽는다고!”
“방금 뭐라고 했어? 특사? 누가 특사라고?”
경사가 아까까지 쩔쩔 매던 케이의 돌변한 모습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버둥거렸다.
“……너,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경사의 말에 케이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뒤로 뺐다. 그러곤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몽둥이를 되찾으려고 달려드는 경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경사는 순식간에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벌벌 떨었다. 케이는 그 몽둥이를 벽에 내던지고는 주저앉은 경사의 멱살을 쥐고 벽에 붙이며 말했다.
“네가 누구냐고? 잘 알지. 웨스트리오든 경찰지부 소속 리암 경사. 수용자 가족들 돈 받아 처먹으면서 뒤로는 수용자들 가지고 노는 재미에 맛 들린 쓰레기 씨발 새끼.”
케이는 경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벌벌 떠는 것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널 왜 골랐는지 알아? 더러운 새끼일수록 뒤처리가 깔끔해서야. 더러운 새끼들은 이렇게 들어서…….”
케이는 경사를 그대로 집어 들었다. 케이의 엄청난 힘에 경사는 멱살 채로 끌어올려졌다. 케이는 찐덕한 피를 흘리는 경사의 피 냄새가 조금도 달콤하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런 놈은 편식해야지.
’네 말이 맞아. 시체를 보는 건 그만 둬야겠어. 약속해…… 내가 없어도 잭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잭을 구해내겠다고 말이야.’
케이는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울먹거리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거짓말쟁이.
조지 왕자가 특사로 잭을 내보냈다고?
케이는 평생 자신을 괴롭혀왔던 한 여자의 거짓말에 또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으며 경사의 턱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경사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케이가 중얼거렸다.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 깔끔해지니까.”
케이는 쓰러진 경사를 보며 비틀거렸다. 케이는 얼얼한 주먹을 털었다. 그리고는 경사 놈의 허리춤을 뒤져 열쇠란 열쇠는 다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철문을 열고 어두운 통로 안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케이는 잠시 멈춰 섰다. 하지만 곧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앰버의 말을 떠올렸던 것이다.
’오늘 자정 에밀리의 석방식이 있을 거야. 웨스트 리오든 교도소에서. 너는 그 틈을 타 빠져나오면 돼. 에밀리, 그 여자를 조지 왕자가 풀어주기로 했대. 조지 왕자가 갑자기 특사를 많이 풀었어. 사람들이 도취되길 바라는 거겠지. 잠깐의 승리에. 어쨌든 덕분에 조지 왕자는 평민들의 지지를 얻을 거고. 그 여자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까 생각중이야. 한 수 접고 들어가 준 조지 덕에 그 여자를 사람들이 영웅으로 생각할 거야.’
케이가 다시 뛰듯이 걸어 통로 끝에 도착했을 때는 거적때기 아래에 시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