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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158화 (158/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158화

하지만 경사는 곤란한 얼굴로 케이에게 대답했다.

“저놈의 체포는 경감님이 직접 지시한 사안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저 자식, 다른 죄수들의 탈옥을 도왔다더군요. 경찰청 화재 때 도망 나갔다가 붙잡힌 죄수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저 자식이 다른 죄수들의 탈옥을 도왔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경감님이 당장 저 자식을 붙잡아오길 원하셨습니다.”

경사의 말에 케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말은 잭이라는 자가 총살을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했다.

“뭐…… 잠깐 얼굴이라도 보게 해드릴까요?”

경사는 그 와중에도 케이의 손에 들린 수표를 아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케이는 경사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원래 생각한 것의 3분의 1 정도의 금액을 적어 경사에게 내밀었다. 그럼에도 경사는 밝은 얼굴로 웃었다.

케이는 가슴 속에서 분노가 이는 것을 느꼈다. 경찰청 화재 때 저 잭이라는 남자가 다른 죄수들의 탈옥을 도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잭이 아니었다면 죄수들은 전부 타죽었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를 체포하면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다니. 케이는 경사의 순진함을 악의로 느꼈다.

“내 이름은 알고 있겠지. 나머지 절반을 받고 싶거든, 내일 로킨트 저택으로 오게.”

케이의 말에 경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또 다시 가슴 속에 끔찍한 충동이 일까 두려워 경사의 얼굴을 보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케이와 옥색 도자기를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 * *

앰버 모건과 에드워드가 검은 옷을 차려입고 1층에 도착했을 때 엘리자베스는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엘리자베스 양.”

엘리자베스를 본 에드워드가 다소 놀란 얼굴로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입은 검은색 드레스를 가리키며 앰버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멋대로 꺼내 입었어요.”

앰버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가게요? 별로 즐거운 일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앰버가 왜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곳은 로버트 하커의 장례식장이었다. 온갖 귀족과 자본가들이 모여들 테고, 그들 중 케이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를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었다. 그뿐일까. 엘리자베스는 로버트 하커의 끔찍한 죽음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쳐다볼 것인가.

그럼에도—

그곳은 케이 하커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곳에 가야 했다.

“네. 같이 가려구요. 검은 모자를 좀 빌려주면 좋겠어요. 그것까진 차마 뒤지기가 미안해서 못 뒤졌거든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앰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다시 올라간 사이에 누군가가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아루쉬였다.

“메심 마흐.”

아루쉬는 검은색 천으로 몸을 둘러싼 복장을 하고 1층으로 내려와 엘리자베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못 알아들었어요.”

“그렇겠죠. 좋은 밤, 이라는 말입니다.”

아루쉬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은 아침인데요?”

“그렇지만 오늘은 장례식이 있는 날이니까요. 누군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테니, 밤이 아침이 되지 못한 날이지요.”

엘리자베스는 아루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메심 마흐.”

그러자 아루쉬가 옅게 미소를 짓고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엘리자베스는 아루쉬가 현관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잠시 멍하니 보다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을 에스코트하기 위함임을 알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아루쉬의 팔짱을 끼고 현관문을 나서서 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며 물었다.

“지난번에 처치가 아주 완벽했던 기억이 나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아루쉬가 민망한 듯이 살짝 웃고 말했다.

“아마 이오페아에서는 보기 힘든 방식이라 그랬을 겁니다. 우리 땅에서는 이오페아와는 약간 다른 의술을 펼치니까요. 우리는 에테르의 흐름을 이용해 사람을 치료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에테르요?”

엘리자베스가 미간을 찌푸리자 아루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물론 이오페아의 의술이 장단점이 있듯 에테르를 이용한 의술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에테르를 이용한 의술은 총알을 빼내는 것 같은 외과적인 수술에는 큰 효용이 없어요. 하지만 염증 치료나 심인성 질병에는 효과가 있죠.”

아루쉬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때 아루쉬가 엘리자베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그녀는 아루쉬와 함께 마차에 올라서 에드워드와 앰버를 기다리며 물었다.

“혹시 그 에테르라는 것으로 중독 같은 것도 치료할 수 있나요? 심한 우울감을 동반한 중독 증상이에요.”

프란시스를 일컫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아루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런 쪽이야말로 에테르 의술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곳이죠. 그런데 상대가 누구인가요?”

“그분께 먼저 치료를 받으실지 여쭤보고 말해줄게요. 치…… 치료사님.”

엘리자베스는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호칭으로 아루쉬를 불렀다. 그러자 아루쉬 역시 어색한 발음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때 앰버와 에드워드가 마차로 들어왔다. 앰버는 엘리자베스에게 모자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갈까요?”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지난 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꼈을 한 여자를 생각했다.

프란시스.

엘리자베스는 로버트의 죽음을 애도하러 장례식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케이와 프란시스의 고통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식에 가는 것이었다.

* * *

엘리자베스를 태운 마차가 리오든 남부 공장지대, 로킨트 스트리트에서 그나마 시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꽤 많은 수의 마차가 잔뜩 모여 있었다.

로킨트 스트리트의 구석에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마차들은 모두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앰버가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교회는 프란시스가 정했다고 하더군요. 요즘 이곳 사제가 다른 교회로 불려가 장례식을 주관할 만큼 장례식이 많아서 다른 곳의 사제를 불러와 하는 거래요.”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서야 수긍했다. 켄드릭이 교회를 정했다면 결코 로킨트에 있는 교회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킨트는 하커가 저택이 있는 곳이며 하커가의 공장들이 줄지은 곳임에도 로버트 하커는 로킨트를 언제나 벗어나고 싶어 했다. 로킨트는 결국 노동자들의 땅이었고 로킨트에 머무르는 이상 그는 귀족의 상류 사회에 속할 수 없다고, 로버트는 스스로 그리 여긴 것이다.

로킨트는 로버트 하커를 일으킨 곳이자 로버트 하커를 주저앉힌 곳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잔뜩 밀린 마차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장례식이 많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그런데 오늘 신문 못 읽었어요?”

에드워드가 앰버 대신 대답했다.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갸웃하자 에드워드가 말했다.

“로버트 하커가 ‘경’ 칭호를 받았어요. 사후에는 경 칭호를 의회의 재가가 없어도 국왕이나 국왕의 대리인이 내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조지 왕자가 로버트에게 경 칭호를 내린 거예요.”

조지 왕자가 로버트에게 경 칭호를 내렸다.

엘리자베스는 이 문장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좋은 징조였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덕분에 로킨트 노동자들까지 장례식에 모였어요. 평민들의 영웅이라는 식으로 기사가 났거든요. 케이 하커에 관한 기사도 났어요.”

엘리자베스는 에드워드가 품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신문을 꺼내주는 것을 보며 앰버를 힐끔 보았다. 이 기사들 역시 앰버와 그녀의 ‘친구’들이 손을 쓴 것이리라. 엘리자베스는 그리 생각하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편, 로버트 하커가 경 칭호를 받게 됨에 따라 케이 하커에 관한 처우 역시 도마에 올랐다. 의회 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자본가들과 귀족들은 케이 하커가 국왕 폐하를 찌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국왕 폐하의 숭고한 희생을 도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했다. 그 증거로 한 귀족은 국왕 폐하께서 결투 전에 케이 하커와 밀담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지 왕자님 역시 케이 하커를 로버트 경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윤허함으로써 이런 증언에 힘을 싣는 모습을…….]

엘리자베스는 기사 위에 있는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기엔 엘리자베스를 감싸 안고 군중 속을 걷는 케이 하커의 사진이 있었다. 아마도 의회 청사에 처음 도착했던 순간 찍혔던 사진인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잔뜩 긴장한 얼굴의 자신과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인 와중에도 오만하고 건방진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지 않은 케이 하커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케이 하커.

이 건방진 자식.

엘리자베스는 케이를 죽여버리고 싶다가도 또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솟구쳐 견딜 수가 없었다.

죽여버리고 싶은데 보고 싶다니. 그건 무슨 마음일까. 살의일까, 애정일까.

엘리자베스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마차가 멈춰 섰다.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들고 신문을 반듯하게 접어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에드워드가 신문을 받아들고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루쉬가 마차 문을 열었다.

엘리자베스가 마차에서 내리자 신식으로 건축된 교회당이 엘리자베스를 맞이했다. 이미 예배가 시작된 듯 안에서는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거대한 규모의 교회당조차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루쉬의 팔짱을 끼고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로버트 경은 레본의 위대한 사업가였습니다. 로버트 경의 덕으로 리오든 남부의…….”

엘리자베스는 교회당에 들어가자마자 눈으로 가장 앞 열을 찾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어깨에 가로막혀 앞 열을 찾기는 어려웠다. 사제는 계속해서 로버트의 ‘영광스러운 삶’을 사람들 앞에서 읊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루쉬에게 속삭였다.

“프란시스와 케이가 보이면 말해줘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아루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는 아루쉬의 팔을 꽉 잡았다. 몇몇 귀족들은 엘리자베스를 알아보고 작게 묵례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인사가 낯설어 흠칫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왜 귀족들이 태도를 바꾸어 자신에게 인사하는지 의아했지만 그런 걸 궁금해할 시간은 없었다. 교회당 내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2층에는 로킨트의 노동자들이 빼곡했고 1층에도 노동자들, 자본가들, 귀족들이 섞여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로버트 하커의 장례식이 당사자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거대한 계층의 화합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스워했다.

계속해서 아루쉬와 함께 앞 열을 향해 걷던 엘리자베스는 그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루쉬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엘리자베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루쉬가 엘리자베스를 의아하게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교회당의 열린 옆문 곁,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엘프처럼 생긴 한 남자 쪽이었다. 그때 엘리자베스가 중얼거렸다.

“……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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