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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151화 (151/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151화

케이가 더 세게 케빈의 멱살을 쥐고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케빈은 얼굴이 하얘져서 말했다.

“이제 그만! 그만요! 어어? 나 지금 발이 땅에서 뜬다니까?!”

케빈의 외침에도 케이는 조금도 손에서 힘을 풀지 않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어딨지?”

케이의 말에 케빈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케빈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케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기억 안 나요?”

케빈의 말에 케이가 손에서 힘을 살짝 풀었다. 때를 놓치지 않은 케빈은 잽싸게 버둥거려 케이의 손에서 풀려났다. 그러자마자 얼른 땅바닥에 붙은 케빈이 케이를 노려보았다.

“컥…… 컥……! 하긴…… 기억이 나면 지금 엘리즈나 걱정하고 있을 리가 없죠! 본인 몸뚱이나 걱정해야 될 판에…….”

케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케이가 자신의 몸을 보았다.

팔을 잘라야 할 거라고 했던 엘리자베스의 말은 기억했다. 케이 역시 살아남더라도 팔 하나는 잃고 말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케이의 몸은 멀쩡했다. 케이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들어 보이며 의아하게 여겼다.

혹시 지금 이게 환각인가? 팔 다리를 잃고도 여전히 팔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느끼는 자들이 있는 것처럼, 케이는 잘린 팔을 환시로 보고 있는 걸까?

케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오른팔 소매를 걷어보았다. 멀쩡했다. 케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처럼 검게 썩어들어 가고 있지도 않았고 고름과 피가 섞여 끔찍한 냄새가 나지도 않았으며…….

상처조차 남지 않았다.

케이는 자신의 팔을 보며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겨우 이틀 만에 썩어들어 가던 팔이 나을 리가 없다. 케이는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의 팔을 보던 눈을 옮겨 케빈을 보았다.

“환시로군.”

“뭐요? 어어, 잠깐. 잠까아아아안!”

케이가 막무가내로 협탁 위에 놓인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들었을 때였다. 케빈이 눈치 빠르게 케이의 손목을 막았다. 하지만 케빈의 힘보다 케이의 힘이 당연히 거셌고 케빈은 또다시 방바닥에 처참하게 나동그라졌다. 케빈은 케이의 손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고 외쳤다.

“당신은 감염됐어요!”

케빈의 말에 케이의 손이 멈췄다. 케빈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다급하게 케이의 손에서 페이퍼 나이프를 빼앗아 들었다.

“아유, 진짜! 뭔 놈의 성질머리가……. 우리 엘리즈가 불쌍하지. 우리 엘리즈만!”

“닥쳐.”

“네.”

케이는 케빈을 노려보았다. 케빈은 거구의 사내가 보내는 무시무시한 눈빛에 몸을 옹송그리고 대답했다.

“감염이라는 게 뭐지? 똑바로 말해.”

케이는 더 이상 이 조그마한 녀석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 의향이 없었다.

“진짜…… 진짜…… 기억 안 나요? 괴물한테 물린 거 말이에요.”

케빈은 케이의 강렬한 눈빛을 피하며 더듬거렸다. 케빈의 말에 케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괴물.

케이는 그제야 꿈과 현실을 서서히 분리해나갔다. 그러니까 그 비현실적으로 맑은 하늘 아래에서 몸을 드러냈던 흰색 털의 괴물이 자신을 물었던 것까지가 현실인 것이다.

케이는 괴물의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것만 같던, 그 눈동자.

케이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 괴물.”

케이는 방을 가로질러 거울 앞으로 갔다. 그러자 금세 한 여자의 잔상이 어른거렸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거울을 노려보고 있던 그 아름답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몰라 안타깝던…….

‘엘리자베스.’

케이는 거울 속에서 금방이라도 그 얼굴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케이가 보는 거울 속에는 케이만이 있었다. 케이는 단추를 뜯어내듯 풀어냈다.

그의 머릿속엔 아직도 엘리자베스의 코르셋을 풀어내던 메리의 손길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케이는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얗던 엘리자베스의 여린 살들을 기억하며 거울 속의 자신을 뚫어지게 보며 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검고 탄탄한 근육들이 거울 속에 비쳤다. 케빈이 소리 질렀다.

“으악! 안 보고 싶다! 너무 안 보고 싶다!”

셔츠를 아래로 떨어뜨린 케이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이빨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한 어깨, 총이 관통한 자국이 없는 등, 자상의 흔적도 없는 허벅지, 그리고 무엇보다 썩어들어 가던 살들이 전부 싱싱한 새 살로 교체된 팔.

케이는 자신의 벗은 상체를 노려보다가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있는 케빈을 보며 삐뚜름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대체 무슨 장난질이지, 케빈 퍼킨.”

그제야 케빈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케빈은 케이의 벗은 상체를 보고 잠시 움찔했다가 금세 놀라운 얼굴로 케이에게 걸어갔다.

“와……. 어제보다 상처들이 더 많이 회복되었잖아요. 엄청난 속도인데요?”

마치 재미있는 과학 실험이라도 발견한 듯한 눈동자에 케이의 눈썹이 꿈틀했다. 케빈은 눈을 빛내며 케이에게 걸어가다가 케이의 그런 표정을 보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장난질 아닌데요?”

“그럼. 나한테 실험이라도 했어?”

“이런 실험이 가능하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까? 교수들 다 엿 먹으라고 하고 홀램브로로 떠나든지…….”

“이제 수수께끼는 그만!”

케이가 성난 멧돼지처럼 소리를 지르는 통에 케빈이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났다.

“……말했잖아요. 감염됐다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어…… 그게…… 솔직히 저도 잘 몰라요. 자세한 것은 사실 엘리즈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엘리즈는 지금 경찰청에 있고, 그게 아니라 해도 애초에 이걸 엘리즈한테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고…….”

“경찰청?”

케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케빈이 또 케이가 소리를 지를까 봐 무서워 벌벌 떨며 말했다.

“네. 의회 청사 안에 갇혀 있던 귀족 나리들, 평민원 국회의원들 전부 경찰청으로 불려가서 조사받고 있어요. 당연한 일이죠. 사실 지금 우리도 이렇게 큰 소리로 대화하면 안 되는 게, 이 저택 밖에도…….”

케빈은 중얼거리며 커튼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커튼을 걷어내고 창밖을 보다가 얼른 다시 커튼을 쳤다. 마치 저택 1층에서 뭔가를 본 것 같았다.

“……보비들이 지키고 있다구요! 당신이 이렇게 일어나 돌아다니는 걸 보면 보비들이 당장 당신을 경찰청에 끌고 가고 싶어할 거예요.”

케이는 그제야 자신이 국왕의 어깨를 찌른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도 레본의 국왕인데, 이토록 기억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다니. 케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국왕은 어떻게 됐지? 조지 왕자가 국왕이 되었다면 선왕이려나. 여튼 레트니 말이야.”

케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벽에도 보비의 귀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죽지 않았어요. 컬로든 궁에 있죠. 상처는 깊지 않았다는데, 듣기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나 봐요. 패혈증 쇼크가 온 건지…… 아님 심리적인 문제인지……. 어쨌든 이틀 동안 궁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의사란 의사는 전부 궁으로 몰려갔구요.”

케이는 케빈이 서 있는 커튼께로 갔다. 케이가 커튼 줄을 잡자 케빈이 다급하게 손을 잡았다. 케이는 그것을 더럽다는 듯 뿌리치고는 천천히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정원을 지키고 있는 보비들이 열 명쯤 보였다. 케이는 서둘러 커튼을 다시 닫았다. 그러고는 케빈을 노려보며 물었다.

“엘리즈는 괜찮은가?”

“괜찮지 않을 게 뭐예요. 당장……. 당장은 말이지만…….”

“아까부터 당장은, 지금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무척 거슬리는데.”

케이가 말을 이어가기 전에 1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메리가 호통 치는 소리와 함께 보비들이 뭔가 딱딱하게 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케빈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케빈이 케이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당신 몸이 나은 건 전부 감염 덕이에요. 감염이 당신의 체세포 회복 능력 같은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거라구요.”

케빈이 쓰는 단어들은 케이에게 낯선 것들이었지만 자신의 현 상태가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눈치챘다. 케빈은 메리의 외침과 함께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케이에게 할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어요.”

“부작용?”

“그래요. 폭력적 행동. 끔찍한 허기와 울렁거림. 그리고 어지러움도 있을 수 있구요. 이런 증상들은 특히나 인간의 피 냄새를 맡는 순간 심해져요. 그러니까 반드시 인간의 피 냄새를 많이 맡지 않도록 해야 해요. 앞으로 신체적 능력이 강해지니까 아까처럼 화난다고 막 남 때리고 그러면 안 돼요!”

케빈의 말에 케이가 오만한 표정으로 케빈을 노려보았다.

“지금 무슨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금…… 내가 괴물에게 물려서…….”

케이는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은 괴물의 붉은 눈을 떠올렸다.

폭력적 행동.

인간의 피 냄새에 반응하는 것.

끔찍한 허기.

케빈이 하는 말은 전부 괴물의 행동 양식을 묘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케이는 다급한 얼굴의 케빈을 보며 이상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허기. 울렁거림. 어지러움.

케이는 피식 웃었다.

“괴물이 된다는 얘기가 하고 싶나?”

농담처럼 한 말은 밖으로 내뱉는 순간 조금도 농담이 아닌 울림으로 케이에게 다시 돌아왔다. 케이는 진지한 얼굴의 케빈을 보다 다시 자신의 팔과 어깨를 거울을 통해 살폈다.

케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대체 어떻게 그 커다란 상처가 사라졌단 말인가. 일평생 남아 있을 것 같았던 상처가…….

케이는 거울 속의 케빈을 노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내가 괴물이 된다고?”

케이의 말에 케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비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간 중간 메리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오는 걸로 봐서 메리는 보비들을 막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는 듯했다.

케이는 거울을 보며 실소를 얼굴에 담았다.

이걸 믿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대처였다. 케이는 엘리자베스가 지금 경찰청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녀는 케이와 이제 전혀 상관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케이의 약혼자도, 애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의회 청사에서는 그가 엘리자베스의 보호자였었고 엘리자베스를 그 자리에 평민원 추천인으로 끌어들인 사람도 케이였다. 그리고 케이는 이제 국왕 시해범으로 몰릴 예정이었다.

괴물이 되든 아니든, 엘리자베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빌미도 잡히지 않는 것이 좋겠지.

케이는 재빨리 셔츠에 팔을 꿰기 시작했다. 빠른 손길로 단추를 채우는 사이에 케빈이 말했다.

“당신 팔 상태 말이에요. 그거…… 엘리즈한테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케빈의 어두운 얼굴을 보며 케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지?”

“아니, 그게…… 경찰청에서 보니까 엘리즈는 기억을 못 해요.”

케이는 케빈의 목소리에 담긴 이상한 뉘앙스를 읽었다. 그는 셔츠 단추를 끝까지 잠근 뒤 커프스 링크까지 제대로 달고 베스트를 입기 시작했다. 이제 보비의 목소리가 바로 문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케이가 베스트를 입었을 때 케빈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당신…… 당신을 문 거 말이에요. 엘리즈는 기억 못하더라구요.”

케빈의 말에 케이의 손놀림이 멈췄다. 케이는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천천히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케이는 꿈속에서 보았던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케이가 거친 숨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쾅!

문이 열렸다.

“케이 하커 씨! 일어나셨군요!”

“케빈 씨. 제가 분명히 아직 도련님이 누워계실 거라고……. 어머, 일어나계셨네요?”

‘나는 사실 괴물이야. 하얀 색 털, 황소 같은 몸집, 눈동자는 붉게 빛나는 폭력적이고 위험한 괴물.’

그 순간 케이의 귓가에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쟁쟁 울렸다.

케이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인정해야 했다.

엘리자베스가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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