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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148화 (148/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148화

몰록은 믿을 수 없는 도약력으로 케빈의 시야를 벗어났다. 케빈은 잠시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진 채로 비틀거리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케빈은 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감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빈이 다시 몰록을 발견한 것은 몰록이 청사 외벽을 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케빈은 외벽에 있는 우툴두툴한 파편들을 타고 올라가는 몰록에게 다시 총을 쏘았다.

펑!

총을 쏘자 총알의 궤적이 초록색으로 공기 중에 남았다. 하지만 몰록을 맞추지 못했다.

몰록은 붉은 눈으로 케빈을 보며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케빈은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부랑자 몇을 발견했다. 케빈은 그 쪽을 돌아보다가 몰록 역시 그쪽을 돌아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케빈은 그제야 몰록의 행동 원리를 떠올렸다.

피 냄새.

엘리즈는…… 아니, 저 괴물은 피 냄새를 쫓는 것이다.

지금은 의회 청사 안에서 짙게 흘러나오는 혈향에 취해 저쪽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케빈은 드디어 엘리즈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괴물이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병을 전염시키면…….

재앙이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라고.

케빈은 뛰었다. 청사 쪽으로 뛸수록 거대한 파편들이 자신을 막아섰지만 케빈은 그 파편들을 오르고 또 올랐다. 두 발로 파편을 오를 수가 없어서 두 발, 두 손을 다 썼다. 장갑 안으로 날카로운 파편들이 파고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피가 나는 쪽이 나았다.

피가 나야 몰록이 자신을 돌아볼 테니.

케빈은 의회 청사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위쪽을 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펑!

다시 초록색 궤적이 공기 중에 진하게 남았다. 이번에는 몰록이 지탱하고 있던 파편 중 하나가 맞았다. 파편이 폭발하자 잔해가 케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케빈이 손차양을 만드는 사이 몰록이 소리를 냈다.

“끼잉!”

몰록은 마치 주인에게 맞은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더니 다른 쪽 파편에 몸을 지탱하고 매달려서 케빈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케빈은 몰록이 멈추지 않고 올라가는 것을 보며 의회 청사 위로 올라갈 방법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인간이 청사 건물 위쪽까지 올라가기에 그나마 적합해 보이는 장식용 계단 같은 곳이 드러났다. 아마도 외벽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던 것일 텐데 건물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것 같았다.

구석구석 난간이 부서지고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니기에도 좁아 보였지만 케빈은 그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이것보다 좁아터진 플랫의 외부 계단도 잘 올라 다녔던 케빈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위에서 자꾸만 자신 쪽을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내는 괴물이 있다는 사실에 걸음을 늦추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케빈이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이제는 더 이상 계단은커녕 붙잡을 것도 없는 외길이 나왔다. 첨탑처럼 생긴 의회 천장에 빗길로 만들어둔 작은 홈이 있는 난간 같은 공간이었다. 케빈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몰록이 대각선 방향에서 천장으로 기어오르기 위해 낑낑거리는 게 보였다. 케빈은 그 자리에 서서 몰록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격을 배워놨어야 했다. 총 같은 값비싼 물건을 소지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니긴 했다만…….

케빈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괴물을 노려보았다. 탄환은 총 3발을 쐈고 3발이 남았다. 약실에 탄환을 더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남은 탄환도 3발밖에 없다. 그걸 어설프게 지금 집어넣느니 남은 3발이 케빈의 목숨과 이 의회 아래에서 싸우고 있을 군인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운명을 지켜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케빈은 고르게 숨을 쉬며 손이 떨리지 않도록 몸의 진동을 다스렸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니 그나마 손의 떨림이 약해지는 느낌이 났다. 케빈은 몰록이 기어 올라오길 기다렸다.

몰록의 몸이 충분히 기어 올라올 때까지…….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탕!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몰록의 어깨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케빈은 저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날아오는 총알을 가볍게 피해버린 몰록이 케빈을 보며 포효했다.

“크으으으으!”

몰록이 분노한 듯 이빨을 드러내자 케빈이 저도 모르게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번에는 손이 벌벌 떨린 탓에 아예 다른 쪽 난간에 총알이 빗맞았다.

몰록이 천장 위로 뛰어오른 것은 한 순간이었다. 케빈은 다시 총을 쐈다.

탕!

그러나 이번에도 빗나갔다. 몰록이 케빈에게로 도약할 준비를 하며 근육을 웅크리는 게 보였다. 케빈은 공포에 질린 채 벌벌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안의 탄환들을 꺼냈다.

그러나 몰록이 도약하는 속도와 케빈이 떨리는데다가 장갑까지 낀 손으로 탄환을 하나하나 꺼내는 속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케빈은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크으으으!”

엄청난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케빈은 차라리 마지막 한 발을 남겨뒀다가 자신의 머리에 박아버릴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저 이빨에 갈기갈기 찢기느니 그쪽이 나았을 텐데…….

케빈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케빈이 눈을 떴다. 그러자 거기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케빈은 몰록을 몸으로 쳐낸 채 씩씩거리고 있는 다른 몰록을 보았다. 자신을 덮치려던 거대한 몰록보다 약간 작은 몸집을 가졌으며 허벅지 근처에 찢어진 옷을 매달고 있는 몰록이었다. 케빈은 몰록의 허벅지에 달려있는 옷감을 보고 중얼거렸다.

“엘리즈……?”

그러자 몰록이 뒤를 돌았다.

아니, 그것은 몰록이 아니었다.

’엘리즈야!’

케빈은 확신했다. 몰록의 눈과 케빈의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뒤에서 다른 몰록이 몰록, 아니, 엘리즈의 어깨를 물었다. 케빈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보호용 장갑을 빼고 탄환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인체에 약간의 해가 있겠지만 별 수 없었다.

장갑을 벗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몰록끼리의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 몰록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작은 몰록이, 아니, 엘리즈로 추정되는 몰록이 금방 열세에 몰렸다.

딸깍— 그때 케빈이 탄환을 다 집어넣었다. 케빈이 외쳤다.

“엘리즈! 비켜요!”

케빈의 외침을 알아들은 것처럼 작은 몰록이 뒤를 돌았다. 작은 몰록은 옆으로 잽싸게 도약했다. 케빈은 큰 몰록을 노렸다. 탕! 첫 적중이었다. 물론 몰록의 어깨를 맞춘 것에 불과했지만 총을 맞은 탓으로 몰록이 뒤로 튕겨나갔다.

“끼이이이…….”

몰록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케빈은 몰록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걸어갔다. 케빈은 몰록의 심장을 노렸다. 케빈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케빈이 방아쇠를 쏘려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비이이이이인! 이봐아아아아!”

케빈이 집중력을 잃었다. 케빈이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의회 건물 아래에서 케빈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잭과 스윈든이 보였다.

“씨바아아알! 통로가 막혔어! 누군가가 고의로 하는 짓 같아! 대체 언놈인지 수로에 물을 풀고 있어! 내려와서 이 남자 좀 봐줘! 이 남자 상태가 안 좋아! 아까부터 헛소리를 하고……!”

그때 케빈에게로 몰록이 달려들었다. 케빈은 집중력을 잃은 탓에 총을 잘못 쏘았다. 아까운 탄환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제길!”

케빈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순간 몰록에게로 작은 몰록이 달려들었다. 작은 몰록의 발톱 공격에 큰 몰록이 뒤를 돌았다. 큰 몰록이 작은 몰록의 공격을 막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안 되겠는지 작은 몰록이 목덜미를 물었다. 케빈이 외쳤다.

“엘리즈!”

케빈의 외침과 함께 작은 몰록이 큰 몰록을 안고 그대로 의회 청사 천장 난간으로 안간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케빈이 몸을 돌려 그 둘을 피했다. 난간 아래로 그 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이었다.

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케빈이 아래를 보았다. 케빈은 총부리를 아래로 겨눴다. 아직은 먼지 때문에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케빈이 한 쪽 눈을 감고 어떻게든 마지막 한 발을 제대로 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고, 펄럭거리는 망토를 두른데다가 기괴한 얼굴 가면을 쓴 사내.

케빈은 남자를 본 순간 이를 악물었다.

저자는…….

케빈은 총을 쏘는 것을 포기하고 아까 왔던 길로 다시 뛰어 내려갔다. 케빈이 내려가는 동안 사내가 천천히 가면을 내렸다. 사내는 쓰고 있던 까마귀 가면을 옆으로 내던진 다음 산탄총을 어깨에 능숙하게 장착하고 장전했다.

사내의 은발에 가까운 금발과 하얀 피부, 그리고 초록색 눈동자가 맑은 하늘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엘프처럼 생긴 그 사내가 중얼거렸다.

“벌써 두 마리가 되었군.”

사내의 목소리와 함께 사내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사내를 불렀다.

“엘우드 밀! 엘우드으으으으 미이이이이일!”

사내가 살짝 뒤를 돌았다. 그때 먼지 구덩이 속에서 몰록 한 마리가 튀어올랐다. 사내가 총알을 쏘려고 할 때였다.

탕!

“이 미친 삼촌아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케빈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사내는, 아니, 엘우드 밀은 케빈의 총구에서 발사된 초록색 탄환 궤적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 넌……?”

케빈은 엄청난 속도로 잔해 더미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엘우드 밀이 방심한 순간 큰 몰록이 뛰어올랐다.

엘우드 밀이 몰록의 심장을 노려 쏘았다.

탕!

천둥소리 같은 발사 소리와 함께 몰록이 뒤로 나자빠졌다. 파편 사이로 몸이 내팽개쳐진 몰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엘우드 밀은 몰록을 보며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드디어…… 드디어 죽은 거냐, 디트리히 폰.”

엘우드는 잠시 몰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두 번째 총알을 쏠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먼지 구덩이 속에 있는 작은 몰록을 향해서였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아주 약간의 움직임이 보였다.

흰 털.

엘우드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먼지 구덩이 속에서 몰록이 꿈틀했다. 엘우드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케빈이 날아올랐다.

“쏘지 말라고! 이 미친 삼촌아아아!”

탕!

엘우드가 방아쇠를 당겼다. 케빈의 발바닥이 엘우드의 잘생긴 뺨을 강타했다. 엘우드가 쓰러지면서 산탄총을 놓쳤다. 엘우드의 총알이 허공으로 빗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작은 몰록이 뛰어올랐다. 케빈이 엘우드의 몸통 위에 올라탔다.

“씨발, 정신 차리란 말이야! 당신이 지금 누굴 죽이려는지나 알아!”

“누군데! 그리고 너……. 너 그 꼬맹이냐? 네가 어떻게 방사선 물질을…….”

“누굴 보고 꼬맹이래!”

케빈이 호통 치며 엘우드의 뺨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아니, 여러 번. 케빈이 울먹거리며 엘우드의 뺨을 내리치느라 얼마나 걸렸을까. 갑자기 스윈든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케빈과 엘우드의 시선이 돌아갔다.

작은 몰록이 케이 하커를 물고 있었다.

엘우드가 케빈을 밀쳐내고 다시 산탄총을 들었다.

탕!

격발의 굉음이 무너진 의회 청사를 덮고 있는 맑디맑은 하늘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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