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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132화 (132/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132화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너는 정말로 내가 너를 죽일 것 같아?”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케이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둡고, 목격자도 없고, 총도 있어.”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냐는 문제가 아니라 할 것 같으냐는 말이었어.”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총을 들어서 가만히 보았다.

“혼자서 탈출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런가? 그럼 내가 뒷문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기회를 주지.”

케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케이는 때로는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간절히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프란시스처럼.

엘리자베스는 다시 성냥을 꺼내려고 품 안을 뒤지는 케이를 보며 말했다.

“프란시스 말이야……. 괜찮아 보였어?”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가 성냥을 찾던 것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잘 몰라. 계속 자기만 했어. 이제 나가서 확인해야지.”

잠깐 시장에라도 나온 것 같은 말투에 엘리자베스는 이상하게 안도가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케이가 준 총을 다시 케이의 손에 돌려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프란시스는 의지가 강하니까.”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가 물끄러미 그녀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총을 들지 않은 쪽 손을 잡았다.

“가자.”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고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걷기 시작하려고 할 때,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오래된 문의 경첩이 열리는 소리.

엘리자베스는 숨마저 멈췄다. 이 통로에 문이 있던가? 엘리자베스가 그 소리가 뒤에서 들린 것 같은 느낌에 뒤로 돌았다. 케이가 조용히 엘리자베스의 앞으로 걸어가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 엘리자베스는 케이가 꾸미는 것이 무엇이든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 뒤쪽이야.”

엘리자베스가 속삭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계단 뒤쪽에 있는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냈다.

케이가 그 누군가에게 총구를 겨눴다. 엘리자베스는 계단 뒤에서 튀어나온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케이가 총을 쏘지 못하도록 다급하게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윌리엄 경!”

엘리자베스의 목소리에 긴장한 표정의 사내가 대답했다. 애써 웃으며.

“엘리자베스 양.”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그는 윌리엄 조쉬였다.

케이는 윌리엄의 얼굴을 확인하고도 총구를 내리지 않다가 엘리자베스가 윌리엄에게로 걸어가자 총구를 내렸다. 엘리자베스는 윌리엄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어디서 나온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묻자 윌리엄이 계단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옛날 선조들께서는 늘 뒷구멍으로 다니는 걸 좋아했소.”

윌리엄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 같은 한량들도 뒷구멍을 좋아하죠.”

엘리자베스의 말에 윌리엄이 킥킥 웃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케이가 단숨에 두 사람에게로 걸어왔다. 그러곤 윌리엄에게 물었다.

“이쪽으로 가면 뒷문이 나오는 걸 알고 있소?”

“그럼. 알고 있으니 도망쳤지.”

“뒷문이 열렸는지 잠겼는지는?”

케이의 질문에 윌리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케이에게 도리어 질문했다.

“성냥이 있소?”

윌리엄의 질문에 케이가 순순히 품 안에서 성냥을 내어주었다. 그러자 윌리엄이 성냥을 켰다. 그 작은 빛만으로도 통로가 다시 환해진 느낌이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와중에도 윌리엄이 톱햇만은 챙겨 달아난 것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 자의 위장은 혁명가인가, 한량인가.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생각할 때 윌리엄이 따라오라는 듯 앞서 걸으며 말했다.

“뒷문은 폭발로 잠겼을 가능성이 있지만, 뒷문 쪽으로 가다보면 더 은밀한 문이 나오는 다른 길이 있소.”

그 말에 케이가 엘리자베스를 제 뒤쪽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위험한 길은 아니겠지?”

케이의 말에 윌리엄이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끔찍이도 아끼나 보군요. 서로 말입니다.”

윌리엄의 말에 케이도, 엘리자베스도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엘리자베스가 그 어색한 침묵을 깨고 퍼뜩 생각난 사실에 말했다.

“솔튼 빌리스, 커피하우스에서 그자와 당신이 같이 있는 걸 봤어요. 윌리엄 경. 솔튼 경이 왜 저러는지 짚이는 게 있나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윌리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글쎄요. 모르긴 몰라도 솔튼 경이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건 적절치 않은 표현 같소. 그자는 희대의 사기꾼이라기보단 사업가이고, 사업가가 뭔가를 하는 이유는 뭐겠소.”

엘리자베스는 윌리엄이 어느 순간부턴가 벽을 더듬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돈.”

누군가가 솔튼 빌리스의 다이너마이트를 사기로 한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제야 밖의 폭도들이 단순히 솔튼 빌리스의 일당이 아님을 깨달았다.

솔튼 빌리스는 그저 피고용인일 뿐인 것이다. 저 폭도들은 솔튼 빌리스를 고용한 그 누군가의 일당이겠지.

엘리자베스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철컥.

엘리자베스는 윌리엄 조쉬가 벽을 더듬다가 열쇠 같은 것을 끼우는 것을 보았다.

잠깐.

열쇠라고?

윌리엄 조쉬가 왜 이 의회 청사의 비밀 문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걸까? 뒷문이나 비밀 통로 같은 것도 알고 있고?

물론 의회 청사의 설계도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앰버가 말해주었다.

‘솔치노의 내 친구들이 조금 도와줬어요. 국회의원 나리들은 의회 청사에 이런저런 뒷구멍을 만드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그런 곳으로 내 친구들이 나리들에게 필요한 걸 갖다주는 것도 좋아하시고.’

그래서 윌리엄 조쉬 역시 뒷구멍으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이일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윌리엄이 환한 얼굴로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엘리자베스 양이 일전에 주신 충고가 사실이더군요. 혁명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에요. 다만 이 세상을 바꾸는 건 돈뿐은 아닙니다. 엘리자베스 양.”

엘리자베스의 눈이 커졌다.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엘리자베스가 윌리엄 조쉬에게 붙잡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철컥.

철컥.

케이가 윌리엄 조쉬를 겨누고, 윌리엄 조쉬가 엘리자베스의 관자놀이를 겨눈 것은 동시였다.

케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윌리엄은 다 타버린 성냥을 바닥에 버렸다.

치익—

짧은 소리와 함께 성냥이 바닥에서 혼자 꺼졌다.

윌리엄은 케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총은 버리는 게 좋겠어, 케이 하커.”

윌리엄의 말에 케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엘리자베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안 돼.”

엘리자베스는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문고리를 손쉽게 잡아 돌리는 윌리엄을 보며 케이에게 할 말을 찾았다.

난 죽지 않아.

나는 사실 괴물이야, 케이 하커.

내가 3개월 전에 괴물한테 물렸고, 그래서 과거로 돌아온 거고, 나는 이제 3개월 후면 괴물이 돼.

그러니까 내가 총알 따위에 죽을 확률은 낮단 말이야.

이 멍청아.

제발.

엘리자베스는 그 중 어느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간절하게 말했다.

“그냥 도망가…….”

윌리엄이 살짝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열린 문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와 케이의 비릿한 미소가 보였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지.”

저 미친 거짓말쟁이 자식. 안 도망갈 거면서, 그럴 거면서—

엘리자베스는 이를 악물었다.

케이는 조쉬를 노려보았다.

“맞바꿔야지.”

조쉬는 케이의 말에 피식 웃었다.

“케이 하커. 거래라는 건 동등한 걸 쥔 사람들끼리 하는 거야. 당신은 겨우 나의 목숨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

조쉬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의 관자놀이에 서늘한 총구를 더 가까이 대었다. 케이는 그런 조쉬를 노려보더니 천천히 앉아서 리볼버를 내려놓았다. 조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의 소리와 동시에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엘리자베스는 문이 열리고 바로 나타난 계단 위에서 아래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제들의 뒤로 보이는 곳이 아까 자신들이 빠져나온 바로 그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숙하고 화려하며 기만적이었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거대한 샹들리에에는 대체 어느새 걸어둔 것인지 모를 거대한 천이 세로로 매달려 있었고 그 천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빨간 물감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도 주인도 없다!]

그 아래에는 왕좌채로 꽁꽁 묶인 레트니 클레몬트와 국왕을 겨누고 있는 솔튼 빌리스가 있었다.

솔튼 빌리스는 차분한 눈동자로 제 눈앞에 있는 선 위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보았다. 한 사람은 로버트 하커였고, 한 사람은 고위 귀족이었다.

두 사람 다 펜싱용 칼, 에페를 들고 있었다.

솔튼 빌리스는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부터 하루에 두 번, 인민재판이 시작된다. 당신들의 국왕이 했어야 하지만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다.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귀족과 자본가는 이 선 위에서 대결을 하고, 대결에서 진 자는 화형에, 대결에서 이긴 자는 총살형에 처해진다.”

엘리자베스는 지친 표정으로 칼을 들고 서 있는 로버트 하커를 보다가 케이를 보았다. 하지만 케이에게 무슨 말을 할 새는 없었다.

윌리엄이 총을 든 남자들에게 턱짓을 하기가 무섭게 그들이 케이를 포박했다.

“안 돼!”

엘리자베스가 소리를 질렀지만 윌리엄의 억센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 윌리엄은 억센 손으로 엘리자베스를 부여잡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그러길래 이 험한 곳엔 오지 말았어야지.”

엘리자베스는 몸부림을 치다가 윌리엄을 노려보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개새끼. 넌 지옥에 떨어질 거야.”

엘리자베스의 말에 윌리엄이 손으로 얼굴을 쓱 닦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혼자는 아니야.”

윌리엄의 대답 뒤로 솔튼 빌리스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읊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제야 솔튼 빌리스가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마리 안에 적힌 말을 읽을 뿐임을 알았다.

엘리자베스는 솔튼 빌리스의 머리 위에 걸린 붉은 글씨를 다시 보았다.

신도, 주인도, 없다.

빌어먹을 혁명가들.

빌어먹을 개새끼들!

엘리자베스는 윌리엄에게 끌려갔다. 솔튼 빌리스가 말을 이어갔다.

“화형을 막을 방법은 인민의 요구를 듣는 것이다. 인민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왕은 바깥의 군대를 무장해제한다. 둘째…….”

그러나 솔튼 경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레트니가 또 그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톤이 높고, 기계적인 웃음. 레트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회의장는 침묵 속에 잠겼다. 레트니의 웃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레트니가 희번득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싫다. 짐은 한낱 인간이 아니다. 짐은 레본 그 자체다. 짐이 무너지면…….”

솔튼 경이 윌리엄을 보았다. 윌리엄이 비릿하게 웃었다.

시작해.

엘리자베스는 윌리엄의 입모양을 읽었다.

솔튼 경이 말했다.

“결투를 시작하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과거에는 없던 이 끔찍한 혁명과 반역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엘리자베스는 저항하다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발길질을 당하는 케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엘리자베스는 답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은 미래에서 온 재앙, 바로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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