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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101화 (101/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101화

프란시스는 엘리자베스가 도착한 후 2시간쯤 지나서야 눈을 떴다. 목이 타는 기분에 눈을 떠서 방문을 열고 나온 프란시스는 복도에 쪼그리고 있는 형체를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악!”

“으악!”

그러자 그 형체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프란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양초를 그 형체 가까이로 가져다댔다. 그러자 양초 빛이 눈부시다는 듯이 잔뜩 찡그린 엘리자베스의 퉁퉁 부은 얼굴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프란시스는 옷도 벗지 못하고 문 앞에 쪼그린 그녀를 보곤 놀라서 소리쳤다.

“너 왜 여기에 있었어? 무슨 일이야.”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프란시스 옆을 지키려고요…… 쓰러졌다면서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놀라서 말했다.

“여긴 옆이 아니잖아. 방문 앞이지.”

프란시스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잔뜩 부어서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지그시 감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방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명치 사이를 지그시 문질렀다. 그 즈음을 누가 뾰족한 것으로 스윽 긁고 간 듯이 따끔거렸다.

“왜. 왜 무서웠니?”

프란시스가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엘리자베스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런 프란시스를 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프란시스의 시선을 피했다.

“내가 죽을까 봐?”

프란시스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울컥해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엘리자베스의 외침에 프란시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벽에 뒤통수를 대었다.

“세상에……. 엘리자베스…….”

“제가 잘못했어요. 프란시스한테 투정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 밥 먹자고 할 때 같이 먹는 건데, 로킨트 저택에도 매일 매일 올게요. 월급은 안 주셔도 돼요. 저한테도 돈 나올 구석이 있어요. 제가 콜린한테 이야기해뒀으니까 새로운 메이드를 구해서 프란시스 옆방에 둘게요. 그러니까…….”

“메이드?”

프란시스는 엘리자베스의 말에 벽에 뒤통수를 댄 채로 고개만 살짝 움직여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반응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네. 프란시스를 돌보고 저택도 더 깨끗하게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잖…….”

“……날 감시하겠다는 거구나.”

프란시스가 차갑게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말에 움찔했다.

프란시스는 비릿한 미소를 띤 채로 복도에서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달빛이 천장에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로버트도 그랬지. 내가 미쳐버렸다면서, 내가 손목을 그을 때마다 내 옆에 메이드를 한 명씩 늘렸어. 하지만 보다시피 손목을 그은 숫자만큼 메이드가 늘어날 뿐이었지.”

프란시스는 그렇게 말하며 가운 소매를 걷어 제 손목을 보여주었다.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손목에 난 상처들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프란시스는 그런 엘리자베스를 가만히 보다가 엘리자베스의 뒷덜미를 헝클이듯 쓰다듬었다.

“예뻐라. 우리 아가.”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말에 다시 또 울컥 울음을 터트렸다. 프란시스는 엘리자베스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이국의 사람들이 말하듯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너랑 케이 둘 다 내 아들 딸로 태어나겠니? 아이고, 그럼 곤란한가. 두 사람이 이어질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너와 케이에게는 다음 생이 있다면 훨씬 훌륭한 어른으로써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코끝으로 뚝뚝 흐르는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을 닦아낼 여력이 없었다.

“나한테 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럼 지금보다는 더 성숙한 사람으로 나이를 먹을 거야. 내 후세에게 더 훌륭한 삶을 물려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

프란시스는 달빛이 만들어내는 무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니 아쉬워도 지금부터라도 잘 살아야겠지. 죽지 않고 잘 살아야겠지. 그러다 보면 또 어느 날엔 지금보다 성숙해지겠지.”

프란시스는 달빛이 만드는 무늬를 따라 시선을 쭈욱 옮겨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엘리자베스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엄마. 엄마는 영원히 거기에……. 혼자 있어.”

프란시스의 눈에는 분노와 체념,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프란시스의 눈을 붉어지게 만든 것은 단 한 가지 감정이었다.

사랑.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려워 방에 들어오지도, 복도를 떠나지 못하는 작은 강아지 같은 여자애를 향한 미약하고 꺼지지 않는 사랑. 이 예쁘고 여린 영혼은 사랑 받아본 적이 얼마 없어서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를 잘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 몰랐던 것이다. 케이의 사랑도. 지금 프란시스의 사랑도.

프란시스는 케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잡혀 갔을 때, 케이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그렇게 말했던 순간을 프란시스는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눈시울이 새빨개진 녀석의 얼굴을.

그 녀석이 언제 그렇게 굴욕의 표정을 갖추었던가.

켄드릭에게 맞고 마구간에서 자고 똥을 온몸에 발랐어도 굴욕이란 단어를 모르는 듯 굴던 그 녀석이 언제 제 자존심을 모두 찢어 바닥에 버렸던가.

언제부터인가.

“감히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마라. 난 널 죽이지 못해서 죽고 싶은 사람이야.”

프란시스의 말에 케이가 조소하며 말했다.

“그래도 죽이지 않으셨잖아요.”

“죽이지 못한 거야.”

“그게 그겁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아마 오래 못 살 것 같으니.”

“무슨…….”

프란시스가 케이의 말을 캐물으려고 할 때 케이가 말했다.

“그래도 저한테 일말의 죄책감이 있으시다면…….”

케이는 이가 으스러지도록 턱을 악문 채로 말을 이어갔다. 저러다가 피를 토하지 싶은 표정이었다.

“……엘리자베스 클레몬트를 지켜주세요. 제가 지금부터 그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 겁니다. 그 불행이 그 여자를 덮치지 않고 스쳐지나가게 그 여자를 돌봐주세요. 그거면 이 저택과 공장을 드리는 모든 값을 하시는 겁니다. 어머니.”

“나를 어머니라고……!”

프란시스가 분노한 얼굴로 케이의 얼굴을 때리려고 손을 들자 케이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쥐고 그녀의 소매를 걷어버렸다. 그러곤 손목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상처를 내면서 매일매일 나를 괴롭혔잖아. 당신 스스로를 죽여가면서 나에게 그걸 전시했잖아. 나도 그때 조금씩 죽어갔어. 나도 인간이니까 나 때문에 죽어가는 인간과 한 집에 살면서 나도 조금씩 나도…….”

케이는 붉어진 눈으로 프란시스를 노려보다가 그녀의 손을 놓았다. 프란시스는 케이의 뺨을 세게 올려붙였다.

한 대, 두 대, 세 대, 아니, 대체 몇 대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때렸다. 나중에는 케이의 입술이 터졌는데, 케이는 조금도 프란시스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마 입안이 다 터지더라도 케이는 더 맞을 의향이 있었을 것이다. 프란시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프란시스가 엘리자베스를 지켜주겠노라고, 절대로 엘리자베스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노라고 말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프란시스는 케이를 실컷 때리고서야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를 저택에서 재우고 먹여주긴 하마. 그래야 내 인생을 말아먹은 네놈이 나에게 공장과 저택을 준다고 하니 그렇다고 대답해야지.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 나는 그 여자애를 마구간에서 재울 수도 있고 썩기 직전의 생선을 먹일 수도 있어. 내가 네가 사랑하는 여자를 애지중지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앗아간 녀석이잖니.”

프란시스의 말에 케이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피를 흘리는 입술로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미친놈.

프란시스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끅끅거리며 우는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보며, 이 작은 영혼에게 느끼는 사랑을 느끼며 사실 엘리자베스를 지켜준다는 약속이 어이없게도 자신을 지키는 결과를 낳았음을 깨달았다.

프란시스는 이 사랑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것을 아는 순간 다른 것도 깨달았다. 로버트를 향해 자신이 가졌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랑은 사랑을 주는 상대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등대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늘 파멸로 이끌었던 그 감정은 사랑보다는 욕망에 가까울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조금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프란시스는 실컷 우는 엘리자베스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정신없이 울다가 고개를 들어 프란시스를 보았다.

“네?”

“일어나.”

프란시스는 단호하게 말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날 두 사람은 복도에서 일어나서 프란시스가 서재며 부엌이며 방 안에 숨겨놓은 약초들을 전부 꺼내어 모았다. 프란시스가 자주 읽은 소설책 표지 안에 허브들을 모아놓은 유리병 뒤편에 나중에는 창틀 밑에 붙어 있는 것까지도. 엘리자베스는 그 양에 놀라며 프란시스가 능숙하게 꺼내는 약초들을 바구니에 담아 들고 허둥지둥 프란시스를 따라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원 한가운데에 그 약초들을 전부 모아놓고 태우기 시작했다.

끔찍한 냄새가 났다.

오래도록 인간의 마음에 보관되어 있던 감정들이 내는 썩은 내와 비슷한 냄새 말이다.

“메이드는 고용하지 마. 그런데다가 돈을 쓰는 건 낭비야.”

“저 돈 있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코웃음을 쳤다.

“돈이 생겼으면 보닛이나 새로 사. 나는 이제부터 감시당하면서 살지 않을 거야, 엘리자베스. 나는 내가 나를 돌보면서 살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해. 우리 서로 그렇게 하면서…… 서로를 아껴주자. 돌보는 거랑 아껴주는 건 다른 거야. 돌보는 건 감시하는 거고 집착하는 거고 평등하지 않은 거야. 아껴주는 건…….”

프란시스는 매캐한 냄새에 기침을 뱉으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껴주는 건 같이 하는 거야. 같이 밥 먹고 있는 걸 나눠 쓰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지만 또 화해도 하는 거야.”

프란시스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우리는 아껴주는 걸로 하자. 엘리자베스.”

프란시스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오르는 약초 향기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꽉 쥐었다.

엘리자베스가 중얼거렸다.

“이 연기를 보면 다들 마녀의 집에서 진짜로 약초를 태운다고 할 거예요.”

프란시스는 엘리자베스의 말에 쿡쿡 웃으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라고 하자. 덕분에 귀찮게 구는 것들이 겁먹어서 도망가면 썩 잘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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