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하러 돌아왔다 75화
3일 전이면 엘리자베스가 솔치노 뒷골목에서 조의 손가락을 물었을 즈음이었다.
“……악어한테 공격을 당한 것 같았어. 안 그러면 그렇게 손가락이 너덜거릴 이유가 없지.”
엘리자베스는 잔뜩 굳은 어깨로 들고 있던 절개도구를 꽉 쥐었다. 그 순간, 잭과 환자는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엘리자베스의 손에 들려 있던 절개도구가 박살이 났다. 절개도구가 돌에 떨어지면서 섬뜩한 금속성이 들려왔다.
그걸 목격한 것은 케빈뿐이었다. 케빈이 놀란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공허한 눈으로 케빈을 마주 보았다. 케빈은 엘리자베스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렸으나 케빈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환자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솔치노 뒷골목 깡패들한테 많이 맞아봐서 알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건 그럴 수 있어도 그렇게 너덜거리는 건 사람의 힘으로 안 돼. 악어처럼 커다란 짐승들의 턱 근육쯤 되어야 그렇게 사람 손가락을 아작 낼 수가 있다고. 사람 손가락이라는 게 보기엔 약해 보여도 생각보다 강해.”
엘리자베스가 환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케빈은 여전히 엘리자베스의 옆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비척거리며 도망나오니까 털이 수북한 악어가 강둑에서 기어 올라오더라. 그러면서 남자를 다시 물어서 강으로 데리고 가려는 것 같았어.”
환자의 말에 잭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털이 수북이 난 악어가 어디 있어? 헛소리 하네. 공녀님. 이 인간 헛소리 듣지 마쇼. 이 인간이 솔치노 뒷골목에서 사기 치다가 걸려서 들어온 거라니까.”
털이 수북이 난 악어.
그 말은 헛소리인 게 맞았다. 엘리자베스는 그게 악어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의 이름은 악어가 아니다. 그것의 이름은—
몰록.
순간, 섬뜩한 생각이 그녀의 뒷골을 치고 지나갔다. 엘리자베스는 얼른 눈으로 건너편 강둑을 살폈다. 아까 잭이 악어라고 말했던 그 거대한 그림자.
‘알고 있지 않나. 같이 가자. 너의 피 냄새를 맡고 왔다. 동족이여.’
엘리자베스는 섬뜩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달콤했던 혈향을.
엘리자베스는 몰록이 자신의 피 냄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잭이 가리킬 때만 해도 분명히 보였던 악어는 이제 어슴푸레 하게 밝아오는 빛 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악어였을까. 아니면 동족의 피 냄새를 좇아 온 몰록이었을까.
엘리자베스는 몸에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느꼈다. 그녀는 환자의 다음 말을 채근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게 선생과 무슨 상관이 있죠?”
엘리자베스의 말에 잭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환자가 빨랐다. 환자가 입을 여는 순간 엘리자베스는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엘 선생님…….’
“그러니까 갑자기 뒤에서 총성이 들리는 거야. 뒤 이어서 손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를 다른 남자가 잡아채더니 그 악어한테 한 방 크게 먹였어. 난 물론 그 선생인지 뭔지는 본 적이 없지만 정말 엘프처럼 잘생긴 사내더군. 총을 잡는 폼은 어설펐지만 적중률은 뛰어났어.”
환자의 눈동자가 빛났다.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총알은 튀어나갈 때마다 초록색 빛을 뿜어냈고 악어는 끔찍한 소리를 내었지. 정말 집채만 한 악어였는데……. 나는 당연히 사내가 이길 줄 알았어. 악어가 점점 수세에 몰리더니 도망가는 것 같았거든. 사내는 일부러 강으로 도망갈 수 없게 강을 등지고 악어를 골목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더군. 정말 이제는 마지막 한 방만 남겨둔 상황이었어.”
잭이 환자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소설을 써요. 소설을…….”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초조한 기분으로 환자의 말을 들었다. 입술이 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초록색 발광물질.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이전 생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괴물의 질긴 가죽을 뚫을 수 있는 특수 물질이다.
독약 성분 같은 것일까?
엘리자베스는 붉은 눈을 한 몰록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할 준비가 된 엘우드 선생을 떠올려보았다. 그녀가 아는 엘 선생님이라면 몰록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랬어야 한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사람은 엘이 죽었다고 하는 것일까? 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환자가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갑자기 악어가 불쌍한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면서 사내의 발밑을 기었어. 그 순간 사내가 갑자기 총질을 멈췄어.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아있던 남자가 소리쳤지. ‘선생님! 쏴요! 쏴요!’ 그래. 분명히 들었다니까. 선생님이라고 했어. 선생님이라니. 뒷골목에서 그런 수상한 총질을 하는 자들끼리 쓰기에는 적절치 않은 호칭이지 않나!”
엘리자베스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예상하는 것이었다. 엘은 그것을 직관이라고 불렀다. 연역적 추론, 특히나 가설 설계의 과정에서는 과학자의 심장도 뜨겁게 뛰어야 한다고, 엘이 말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꿈속 디트리히 폰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꿈이기 이전에 디트리히 폰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디트리히 폰은 엘우드를 분명 ‘형’이라고 불렀었다. 그 말은 두 사람이 친밀한 사이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사냥꾼이 사냥감 앞에서 평정심을 잃을 만큼.
엘리자베스가 끔찍한 기분으로 주먹을 꼭 쥐고 있을 때 환자가 안광이 번뜩이기까지 시작하는 눈으로 손까지 써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사내가 정신을 차린 듯 얼른 총을 다시 겨누려고 했지.”
환자는 스스로가 엘이 된 것처럼 총까지 겨누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어.”
환자의 고개가 하일 강으로 돌아갔다. 엘리자베스도 조용히 흐르는 강을 환자와 함께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의 손에 땀이 흘렀다.
“악어가 선생을 몸으로 치받아버렸고 선생의 몸은 종잇조각처럼 밀려나기 시작했어. 선생은 하일 강 쪽으로 떠밀려갔어. 악어에게 밀려서 말이야.”
거기까지 말하자 환자의 눈빛에서 느껴지던 강렬한 감정들은 서서히 흐려져 갔다. 환자는 마치 생기를 잃은 식물처럼 몸을 천천히 수그렸다.
엘리자베스가 고요한 하일 강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게 끝이야.”
잠시 침묵이 돌았다.
엘리자베스는 끝이 보이지 않는 더러운 하일 강을 바라보았다.
그게…… 끝이라고?
저 안에, 저 아래에, 엘 선생이 있을 수도 있다고? 나를 살릴 치료제와 함께?
잭은 환자의 멀쩡한 등짝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이봐! 어디 공녀님한테 반말이야!”
잭의 말에 환자가 툴툴거렸다.
“내가 무슨 귀족이야? 숙녀한테 매너를 지키게?”
잠깐.
악어에게 밀려서 하일 강으로 갔다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의문점을 떠올렸다. 몰록이 과연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환자는 분명 강 쪽에서 악어가 나왔다고 말했지만 강 속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만약에 엘 선생이 죽지 않았고, 조와 헤어지기만 했다면?’
엘리자베스는 환자의 말을 듣는 순간 약간의 희망적인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 희망적인 기분은 금세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희망은 조의 죽음에 대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자라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얼마나 치졸하고 비열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느끼며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한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케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케빈이 의아한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손 좀 잡아줄래?”
“공녀님…… 있잖아요…….”
“앞으로는 공녀님이라고 부르지 마. 이제 공녀도 아니니까. 이제 그냥…….”
엘리자베스는 하일 강을 보며 엘 선생이 자신을 부르던 이름을 떠올렸다.
‘엘리즈.’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이 너무 귀족적이라는 이유로 엘 선생님이 그녀에게 붙여준 또 다른 이름. 그 이름은 엘리자베스의 이전 생과 지금의 생을 나누는 분기점이 되어주었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엘리즈. 그래. 엘리즈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
엘리자베스의 말에 케빈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곤 엘리자베스가 내민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을 맞잡아주었다.
“엘리즈. 방금 그 절개도구 말인데요…….”
“조금. 조금만 있다가……. 있다가 다시 물어볼래?”
엘리자베스는 케빈에게 그렇게 말하곤 그를 보았다. 그러자 케빈이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는 케빈의 손을 쥐고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위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환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진짜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되어야 할 시간이었다. 엘리자베스 클레몬트가 아니라 엘리자베스가, 엘리즈가 되어.
그녀가 소리쳤다.
“여기! 여길 봐요!”
그녀는 환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꽥꽥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제 해산해야 할 시간이에요! 남아있는 사람들은 상처가 깊지 않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그제야 환자들이 하나 둘씩 바위 근처로 모여들었다.
엘리자베스는 동이 터오는 탓에 환자들의 얼굴이 서서히 또렷히 보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물집은 절대로 터트리면 안 돼요! 그냥 두면 없어지니까 괜히 물집을 터트렸다가 감염되면 큰일 나요. 아주 작은 물집이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언제든지 목이 계속 따끔거리고 호흡이 가쁜 기분이 들면 다시 경찰에게 잡히더라도 반드시 병원으로 가야 해요! 그리고 지금부터 화상 치료에 꼭 필요한 연고와 치료제 이름을 불러줄 거예요! 길거리 돌팔이들이 약을 팔려고 들거든 반드시 이 이름을 확인해야 해요! 여러 개를 불러줄 테니까 그 중에 몇 개라도 기억하고 있어야 해요! 알겠죠?”
엘리자베스는 화상에 필요한 연고와 물약 이름을 천천히 읊었다.
엘리자베스가 어려운 말을 하기 시작하자 환자들은 전부 긴장한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환자들은 엘리자베스의 말이 중요한 기도문이라도 된다는 듯이 열심히 입으로 엘리자베스가 말한 약 이름을 따라했다. 엘리자베스는 그걸 보면서 기분이 점점 더 더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자신은 누군가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면서 동시에 입으로는 이들의 의사인 양 행세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불과 몇 시간 전에 제 부모가 죽었고 제가 사랑하는 이는 제 부모가 죽는 데에 일조했다.
내 약혼자였던 남자는 자신과 파혼하고는 다른 여자와 먼 땅으로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놈을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은 상황이건만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여전히 케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제 얼굴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찡그렸다.
개 같은…….
정말 개 같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