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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70화 (70/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70화

엘리자베스는 귓가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디트리히 폰의 목소리에 서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엘리자베스는 솔치노 뒷골목에서 보았던 광기어린 붉은 눈을 떠올렸다. 그 괴물이 정말 디트리히 폰일까?

엘리자베스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몰록은 원래 인간이었다.

그러나 몰록이 된 인간에게도 기억은 남아 있다.

그리고 아마도…….

괴물이 되기 전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괴물에게 물린 인간에게 전승된다.

엘리자베스는 숨을 헐떡거리며 손에서 힘을 더 확 풀었다.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남자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수상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반응속도가 남자를 압도했다. 그녀로서도 놀라울 수밖에 없는 속도였다.

엘리자베스에게는 남자가 흉기를 뽑기 위해 재킷 안에 손을 넣는 행동이 아주 느리게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그 느릿한 남자의 손가락을 붙잡아 잡아당겼다. 남자의 손가락에서 우두둑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엘리자베스는 최대한 남자의 몸에서 피를 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피를 더 본다면 자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인권을 운운한 주제에 괴물이 되었던 디트리히 폰처럼 자신도 괴물이 될 것이다. 토비 앞에서 괴물이 되는 것만큼은 절대 사양이었다.

“이 미친년! 야! 잡아!”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달려들려는 남자를 발로 찼다. 살살했는데도 남자가 뒤로 나자빠지며 입술 사이로 피를 흘렸다.

장기 손상은 아닐 테다. 놀란 나머지 저 모자란 자식이 제 혀를 깨문 것이겠지.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할.

피 냄새가 난다.

엘리자베스는 팔 안쪽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피 냄새를 너무 많이 흡입한 뒤였다.

엘리자베스는 아찔해지는 머릿속을 억지로 붙들어 매며 바닥을 기는 토비를 일으켰다. 그러나 남자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들 중 누구도 죽이지 않고 도망갈 방법을 궁리했다. 이들의 목숨이 아까웠던 게 아니라 이들을 죽임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두려웠다.

엘리자베스는 토비에게 속삭였다.

“토비, 내가 셋을 세면 마부석으로…….”

그때였다.

쾅!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엘리자베스는 놀란 눈으로 소음의 진원지를 찾았다. 남자들과 토비도 엘리자베스처럼 소음이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새빨간 화염이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저거 어디야?”

남자들이 웅성거렸다.

엘리자베스는 남자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토비에게 속삭였다.

“토비, 마부석으로 올라가.”

엘리자베스가 말하는 사이, 남자들이 중얼거렸다.

“경찰청이야. 대장이 진짜 저질렀어.”

엘리자베스는 남자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경찰청이라고? 경찰청에 누가 있지?

엘리자베스가 토비를 마부석까지 부축하고 있을 때였다. 남자 중 하나가 두 사람을 보고 소리쳤다.

“도망간다! 잡아!”

남자들이 그 말에 두 사람에게 다시 돌아섰을 때였다. 토비가 품 안에서 딱딱하고 아름다운 물체를 꺼냈다.

토비는 망설이지 않았다. 토비는 자신을 진창에 처박았던 남자의 다리를 노려 총을 쐈다.

펑!

귀가 아린 폭발음과 함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남자들이 쓰러진 이에게 달려들었다.

엘리자베스는 놀란 눈으로 토비를 보았다. 토비는 엘리자베스의 부축을 뿌리치고 엘리자베스를 마부석으로 올렸다. 토비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가씨! 말을 몰 줄 알죠? 경찰청으로 가요! 클레몬트 공작부부를 노린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은 실수였다.

토비는 엘리자베스를 태우기가 무섭게 말들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흥분한 말들이 엘리자베스를 태우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안 돼! 토비!”

엘리자베스는 멀어지는 토비를 보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토비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뒤에선 귀를 찢는 파열음이 여러 번 들려오다 멎었다.

펑! 펑! 펑!

“젠장할…… 젠장할!”

엘리자베스는 뿌예진 시야로 고삐를 꽉 쥐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남겨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 * *

엘리자베스가 경찰청 앞에 도착했을 때는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로 인해 아까와 같은 날카로운 본능이 엘리자베스를 파고드는 사이에도 엘리자베스는 경찰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길 간절히 기도했다.

엘리자베스는 정신없이 불을 끄는 보비들 사이로 걸어갔다. 보비들의 뒤에서는 부랑자들이 잔뜩 모여 불구경을 했다. 그들은 손을 뻗어 손바닥을 데우며 웃었다.

“따뜻해. 킥킥…….”

엘리자베스는 보비들을 뚫고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부랑자들 속으로 섞여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부랑자들 중 한 명의 모포를 빼앗았다.

“뭐하는 짓이야. 이 봐!”

부랑자가 저항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쯤은 가뿐하게 제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엘리자베스는 뛰었다. 경찰들이 보이지 않을 쪽으로 뛰었다.

아니,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다리 근육이 그녀에게 놀라운 도약력을 선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괴물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악물고 경찰청과 옆얼굴을 면하고 있는 건물의 외벽을 타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바닥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엘리자베스는 순식간에 외벽을 기어오른 뒤, 이 건물과 경찰청 사이, 어린 아이 하나가 누울 정도의 공간을 보았다.

이게 말이 될까?

엘리자베스는 어쩔 수 없이 아래를 보았다. 망할, 이곳은 4층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어야 했다. 아니, 떨어져도 죽지 않을 거라고 믿는 쪽이 편했다.

그럼에도 그 찰나에 엘리자베스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지옥에 가게 될까? 천국에 가게 될까?

지옥이 좋겠다. 분명 너는 지옥에 올 테니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우두두둑!

엘리자베스의 몸이 경찰청 외벽에 갈려나가는 소리와 느낌이 생생했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4층 창틀에 매달려 3층의 창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유려한 몸짓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미 연기로 가득한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달렸다

뛰고 뛰었다.

몇 개의 방을 만났고, 뜨겁게 달궈진 문고리를 잡았지만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엘리자베스는 발에 채이는 보비의 기절한 몸뚱이를 만날 때마다 보비의 주머니를 뒤졌다. 보비들이 가진 열쇠란 열쇠는 다 빼앗았다. 그리고 보비의 겉옷과 모자를 대충 빌려 쓰고 부랑자의 모포를 찢어 얼굴의 반을 가렸다.

엘리자베스는 지하로 내려갔다.

처음 한 층은 걸어 내려갔고, 나중에는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감각은 살아나는데 고통은 무뎌지는 이 이상한 기분.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괴물이 되어간다는 자각 따위는 뒤로 미뤄놓기로 했다.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지하에 도착했을 때는 지하 통로에서부터 기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줘! 살려줘!”

엘리자베스는 보비들에게서 빼앗은 열쇠들을 중간 통로에 있는 철창에 끼워 넣어봤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 도무지 들어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던 엘리자베스는 뜨겁게 달아올라가는 철창에 손을 댔다. 그러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될까?

되든 안 되든 해볼 수밖에 없어.

엘리자베스가 숨을 들이마시고 철창을 손으로 세게 쥐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요! 여기 사람들이 있어!”

엘리자베스가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굳혔을 때였다. 왜 저 목소리가 익숙하지?

존슨인가? 아니면 경감?

엘리자베스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누군가가 엘리자베스가 들고 있는 열쇠를 보곤 소리쳤다.

“열쇠 내놔!”

엘리자베스는 남자가 철창으로 전력질주해서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잭!”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엉?”

잭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노려보자 엘리자베스가 얼른 보비의 모자를 벗고 들고 있던 열쇠를 흔들었다.

“여기 사람들을 구하러 왔어요. 케빈도요. 근데 열쇠가 뭔지 모르겠어요!”

잭이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공녀님! 여기까지 어떻게! 열쇠 이리 줘봐요!”

엘리자베스는 잭에게 얼른 열쇠 꾸러미를 내밀었다. 잭은 재빨리 열쇠 꾸러미들을 더듬거리다가 맞는 열쇠를 찾아 철창을 열었다.

잭은 열린 철창과 엘리자베스가 내려온 계단을 보더니 잠시 침을 꿀꺽 삼켰다.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두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것으로 잭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은 잭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칫하면 모두가 죽는다.

엘리자베스는 재빨리 모포를 잭에게 내밀었다.

“잭밖에 없어요.”

그 말에 잭의 눈이 흔들렸다.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엘리자베스가 내미는 모포를 로브처럼 휘두르고 말했다.

“공작부부는 1층에 있을 겁니다. 공녀님이 취조 받은 방 건너편이에요.”

잭은 그렇게 말하며 열쇠 꾸러미 중에서 한 열쇠를 뜯어내 엘리자베스에게 내밀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열쇠를 받아들고 잭이 감옥 문을 하나씩 여는 것을 지켜보았다.

공작부부를 살리려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저 케빈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 또 제 마음이었다. 엘리자베스가 그런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을 때 잭이 말했다.

“옆 방 열쇠도 같은 걸 겁니다. 옆 방에 케빈 퍼킨, 그놈이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엘리자베스가 입술을 물었다.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돌았다.

그녀는 날듯 계단을 올라갔다.

연기가 가득 찬 1층으로 올라가니 진입을 시도하는 보비들이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들어오고 있는 정문을 피해 취조실을 찾아 헤맸다. 몇 번 실패를 거듭한 끝에 엘리자베스는 취조실 문 앞에 섰다.

취조실 앞에는 잠긴 문이 세 개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오른쪽부터 문을 땄다.

첫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 방에는…….

쨍그랑!

엘리자베스는 작은 의자로 창을 깨고 있는 소년의 어깨를 쥐었다.

“케빈!”

엘리자베스가 소리치자 소년이 붉은 눈으로 의자를 휘둘렀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소년이 놓친 의자가 바닥에 떨어져 반파되었다.

케빈은 그제야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공녀님! 불이…….”

“나도 알아!”

“불이 나기 전에 옆방에서 총 소리가 들렸어요! 폭발음에 묻힌 것 같지만 분명 총소리였어요! 공작 부부의 비명소리도 들었구요! 폭도들이 아니에요! 분명 보비의 구둣발 소리였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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