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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65화 (65/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65화

엘리자베스는 프란시스의 눈에 형형하게 살아나는 그 당시의 감정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워 고개를 숙였다. 프란시스가 말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그 아이를 봤지. 눈 속에 반쯤 파묻힌 그 아이를.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켄드릭은 나를 닮았어. 켄드릭은 머리카락도 검고 눈도 검잖니. 그런데 케이는…….”

프란시스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로버트를 닮았어. 무척이나. 로버트의 아이라는 것을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더구나. 나는 로버트를 닮은 그 아이가 파랗게 질려서는 빽빽 울어대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단다. 그 순간 알았지. 나는 저 아이를 죽일 수 없어. 저 조그마한 아이를. 대체 어떤 여자인지 몰라도 얇은 면 같은 것에 아이를 싸놓았더구나. 나는 화가 났어. 이 엄동설한에 아이를 눈 속에 버리고 가야 되는 여자를…… 그런 여자를 범하고 또 버렸던 남자를 내가 사랑했던 거야.”

프란시스의 눈이 빨개졌다. 그녀의 눈에서 메마른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가지고 나간 담요로 케이를 들쳐 안고 저택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엘리자베스는 그제야 케이를 들여온 게 로버트도, 로버트의 가솔도 아닌 프란시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이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가 결국 케이를 살린 것이었다.

“그 뒤로는 매일 매일이 지옥 같았어. 로버트는 케이를 벼룩이라고 부르고 케이를 매일 발로 차고 마구간에서 재웠지. 그럴 때마다 케이는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절대로 눈빛에 굴욕을 갖추지 않았어. 그래. 케이는 그랬단다. 그 점이 정말이지…… 로버트를 닮았어. 그걸 로버트도 아는 것 같았어. 그래서 켄드릭에게는 새 옷, 새 신발을 신기고 케이는 굶기고 매질을 하면서도 케이를 더 사랑했지. 나는 알았어. 나는…… 나는 로버트를 사랑했던 여자니까. 나는 알 수 있었어.”

프란시스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틈을 보이지 않고 말하다가 거기까지 말하곤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마치 너였더라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냐는 듯. 엘리자베스는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프란시스의 말을 들었다.

“내가 사랑했고, 증오했던 남자를 닮은 아이였다. 나는 매일 매일 후회했어. 그날 케이를 죽이지 않은 것을. 그날 나는 케이를 데리고 들어올 게 아니라 케이를 죽이고 도망갔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엘리자베스는 메어오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며 말했다.

“안 그러셨잖아요.”

엘리자베스의 대답에 프란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랬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러고 싶었다는 게 중요하지.”

프란시스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항변하고 싶었지만 프란시스의 다음 말이 엘리자베스의 말을 막았다.

“그래서 이 얘기도 해주지 않으려고 했어. 저택에서 너를 본 날 나는 네가 케이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런 사랑은 사람을 미쳐버리게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 말은 해줘야겠구나. 케이가 나에게 너를 돌봐달라고 했단다.”

“네?”

엘리자베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창 밖을 보았다. 마차가 들어서고 있는 곳이 솔치노 스트리트 근처라는 사실을 엘리자베스는 막 깨닫는 중이었다.

“케이가 나에게 제약 공장과 로킨트 스트리트를 주면서 로버트와 이혼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받아들였어. 그 아이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거든. 절대 그러지 않는 아이란다. 그 아이는…… 내가 자길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걸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아이니까. 내게 등을 보이는 순간 내가 제 등에 칼을 꽂을 거라는 걸 직감으로 느끼고 있지. 그런데 내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어머니라고 불렀어.”

프란시스의 손이 떨려오는 것을 엘리자베스는 보았다. 프란시스는 핏발이 선 눈으로 마차를 스쳐지나가는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감히…… 나를…….”

프란시스가 주먹을 꽉 쥐고는 밭은 숨을 뱉으며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자기는 당분간 멜니아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을 거라더구나. 원하면 같이 가도 좋다고 했어. 하지만 내가 거절할 것을 아니, 로킨트 저택과 제약 공장을 주겠다고 말이야. 로킨트 저택에서 네가 당분간 머무르게 해달라면서 로버트에게는 한 푼도 받지 않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이혼하라고 충고했지.”

엘리자베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제약 공장은 케이가 국왕 폐하께 바친 것이잖아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코웃음을 쳤다.

“로버트는 그렇게 바보 천치가 아니야. 미리 국왕과 말을 맞춰놓았지. 국왕 폐하와 케이 하커의 이름으로 지분을 공유한 거야. 로버트는 ‘경’ 칭호를 받아야 했으니까 재산을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좋지 않았지. 케이는 어찌 보면 로버트보다 사업수완이 좋은 아이란다. 국왕은 그 대가로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 확실한 평민원의 자리 세 개를 얻은 거야. 로버트가 믿음직스러운 사람으로 평민원에 사람을 심어주기로 했으니까. 그것도 로버트에겐 잘 된 일이지. 로버트는 그 자리를 대가로 또 많은 이익을 거둘 거란다.”

엘리자베스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프란시스에게 말했다.

“그럼 케이가 얻는 것은 무엇이죠……? 저택도 공장도 전부 부인께 주고 나면 케이는…….”

케이가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이라는 프란시스의 말과 지금 한 말은 전면적으로 배치되었다. 왜냐하면 프란시스의 말대로라면 케이는 얻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프란시스가 엘리자베스를 빤히 보았다.

“너.”

프란시스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마차가 멈춰 섰다. 엘리자베스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마차가 멈춘 곳을 보았다. 솔치노 뒷골목에 있는 화려한 호텔이었다.

“그게 무슨…….”

“너의 자유를 이뤄주었잖니. 너를 국왕으로부터, 하커 가문으로부터, 클레몬트 공작가로부터,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풀어주었지.”

프란시스의 말에 엘리자베스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쩌면 이 호텔에 있는 사람은…….

“너의 남자는 나의 남자보단 나은 사람이길 바란다. 엘리자베스. 1318호야.”

프란시스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떨리는 손으로 마차 문을 열었다.

“내가 말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겠니? 나도 늙은 것 같구나. 이 이상 그 녀석의 미움을 사는 건 피곤할 것 같아.”

엘리자베스가 프란시스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복소복 쌓인 눈 탓에 마차들이 지나다니면서 냈을 마차 바퀴의 궤적이 모두 덮여 버렸다.

엘리자베스는 그저 하얗기만 한 순수한 백지 같은 길에 발을 내딛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듯한 길에는 엘리자베스의 발자국만 새겨졌다.

* * *

엘리자베스는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어 나무 문 앞에 섰다.

1318호.

엘리자베스는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꿈속을 유영하는 기분으로 문고리를 세게 당겼다가 놓았다.

쿵!

엘리자베스는 처음에는 한 번 문고리를 당겼다가 놓고 오래 기다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속에 조급증이 생겨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두 번, 세 번, 아니, 몇 번이고 세게 문고리를 당겼다가 놓았다. 그러자 곧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엘리자베스는 살짝 문에서 물러났다. 문이 벌컥 열렸다.

엘리자베스는 문틀에 기대어 선 사람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앰버.”

엘리자베스를 보는 앰버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앰버는 벨벳으로 된 가운 자락을 여미며 말했다.

“엘리자베스.”

앰버는 망설이다가 슬쩍 뒤를 보곤 말했다.

“케이를 찾으러 왔군요.”

엘리자베스는 앰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술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앰버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목소리의 주인은 곧 방 안에서 구둣발로 걸어 나왔다.

케이 하커.

예배당에서 봤던 단정한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잔뜩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셔츠 단추를 몇 개쯤 풀고 위스키를 병 채로 들고 있었다. 케이는 느슨한 표정으로 엘리자베스를 보더니 천천히 위스키를 마셨다.

케이가 팔을 들자 케이의 바지에 고정되어 있던 멜빵이 어깨 아래로 살짝 내려갔다. 앰버는 곤란한 얼굴로 케이를 보았다.

엘리자베스가 마땅한 말을 고르는 사이에 케이가 위스키로 젖은 입술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엘리자베스는 케이의 말에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이 나쁜 자식. 감히 나한테 그런 걸 묻다니.

엘리자베스는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 참고 대답했다.

“할 말이 있어.”

그러나 목소리 끝이 떨려오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무슨 할 말?”

케이는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케이를 노려본 앰버가 얼른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호텔 문을 닫으며 말했다.

“추우니까 일단 들어와요.”

“이 방에 외부인을 들이는 건 좀 곤란하지 않나?”

케이가 그렇게 말하며 앰버를 보았다.

그러곤 엘리자베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삐뚤어진 미소를 지었다.

“우린 지금 혁명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 왕정을 깨부수고 방탕한 귀족들을 싹 다 처형시켜버릴 계획을 말이야.”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제 목에 손가락으로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앰버가 미간을 찌푸렸다.

“케이…….”

케이는 앰버의 만류에도 상관없다는 듯이 소파에 퍼져 앉더니 술병으로 엘리자베스를 가리켰다.

“걱정 할 것 없어. 저 귀여운 공녀님도 다 아는 얘기야. 심지어 그걸로 나를 협박하려고 들었지.”

케이의 말에 앰버가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방금 전까지 치밀어오르던 격정적인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앰버에게 말했다.

“맞아요. 알고 있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앰버가 할 말을 찾지 못한 얼굴로 찬장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찬장 문을 열었다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찬장 문을 닫았다.

“담배를 사러 내려가야겠어.”

앰버의 말에 케이가 소파 옆에 있는 협탁에서 담배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

“그건 네가 피우는 거고. 내가 피우는 건 없잖아.”

“까다롭긴.”

케이는 술에 취한 게 분명해 보이는 몸짓으로 담배를 내던졌다. 앰버는 그런 케이를 무시하고 소파 뒤쪽에 있는 옷걸이에서 모자와 코트를 꺼내 입었다. 그러곤 엘리자베스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둘이 이야기해요.”

엘리자베스는 앰버에게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앰버는 그대로 그녀를 스쳐지나갔고 곧 방 안에는 케이와 엘리자베스만이 남았다. 케이는 목이 타는 듯 위스키를 또 벌컥벌컥 마시더니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너한테 권할 의자는 없어. 침대에 앉든지, 아무데나 앉아.”

엘리자베스는 그런 케이를 노려보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앉을 생각 없어.”

케이는 결연한 표정의 엘리자베스를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왜. 당장이라도 날 죽여버리고 빨리 호텔에서 도망 나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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