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하러 돌아왔다 61화
이틀 동안 엘리자베스는 경찰청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들어가자마자 엘리자베스에게 배정된 방은 창고 방이었다. 칼몽 여관보다 못한 곳이었다. 창고로 쓰던 방인 것처럼 빈 책장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엘리자베스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곳에 있는 철창으로 막힌 창문에서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똑똑. 식사가 되지도 않는 첫 끼니를 비우고 경감 앞에서 취조를 받고 다시 방으로 들어오자 곧 두 번째 끼니를 보비가 내려놓으러 들어왔다.
엘리자베스는 보비들이 바닥에 내려놓는 말라비틀어진 빵을 주시하며 보비들이 나갈 때까지 구석 자리에 숨어 있었다. 몇 번 보비들이 엘리자베스의 치맛자락을 휙휙 들추며 낄낄거리는 일을 당하고 난 뒤에 생겨난 경계심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일은 없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때만큼 드레스를 입고 다녀야 하는 여자라는 게 치욕스럽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케이가 사준 값비싼 드레스는 이제 그저 엘리자베스를 추행하기 딱 좋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충격으로 인해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기지도 못했던 첫 끼니와 달리 두 번째 끼니는 첫 끼니보다도 더 상태가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구석구석 곰팡이가 핀 빵을 허겁지겁 먹었다. 겨우 한 번의 취조를 받았을 뿐인데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취조의 내용은 별 게 없었다. 보비들은 놀라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보비들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클레몬트 공작부부가 평소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는데, 그들의 행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가?”
경감으로 보이는 자가 처음 그렇게 물었을 때 엘리자베스는 그 경감에게 물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나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경감이 피식 웃었다.
“맘대로 하슈.”
경감이 웃자 뒤에 서 있던 보비 두 명도 따라 웃었다. 엘리자베스는 저들이 왜 자신을 비웃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경감은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같은 질문을 했던 것이다. 단어만 바꾸어서 말이다.
“클레몬트 공작부부가 도박과 파티를 즐기느라고 여러 군데에서 빚을 썼다고 하는데, 평소 부부의 행실에 대해서 아는 바가……?”
경감은 엘리자베스의 표정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으며 펜을 들고 말했다.
“없겠지.”
엘리자베스는 낄낄거리는 두 명의 보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질문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같은 말, 같은 질문을 열 번째쯤 들었을 때 경감을 노려보며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경감이 들고 있던 조사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취조.”
“같은 말만 계속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취조예요? 당신들은 취조를 이런 식으로 하…….”
엘리자베스가 황당해져서 소리 지르자 경감이 들고 있던 조사지가 끼워진 철을 아예 벽 쪽으로 쾅 소리가 나게 던져버렸다.
“그럼! 어떡하나? 당신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왕족이시라 내가 감히 손도 댈 수가 없는데? 우리 취조가 원래 어떤 식인지가 궁금해? 어이! 존슨! 밖에 잡아온 강도 두 명 데리고 들어와!”
엘리자베스는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경감을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이 자들이 자신을 아무리 겁주려고 해도 겁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은 존슨이라고 불린 경사와 다른 경사가 피투성이가 된 앙상한 남자 두 명을 데리고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살짝 꺾였다. 엘리자베스는 뼈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남자 두 명의 이마와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저 상처들이 어떻게 난 것인지 금방 알았다.
‘리오든 보비들은 아주 유명해요. 손톱을 뽑는 고문을 한다구요. 그리고 바보가 될 때까지 때리구요. 없던 죄까지 전부 토하게 해서 자기들 실적 올리는 데 쓰는 거죠. 그래서 과일이라도 하나 훔치다 들키게 되면 잽싸게 가진 돈을 털어서 보비한테 줘야 해요.’
엘리자베스는 전생에서 구제원의 환자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제 손톱들을 몇 번이나 조몰락거렸다.
경감이 말했다.
“어이. 여기 있는 이 아가씨가 우리 취조 방식이 궁금하다는데. 견학 좀 시켜드려. 존슨.”
“견학이요?”
존슨은 경감의 말에 키득거리며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몽둥이를 꺼내어 앙상하게 마른 남자 중 하나를 엘리자베스의 앞에 무릎 꿇렸다.
엘리자베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엘리자베스의 코를 찔러왔다. 엘리자베스는 피 냄새가 자신의 식욕을 자극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하며 존슨이라는 자를 노려보았다.
“잘 보슈. 이게 우리 취조 방식이니까.”
존슨의 몽둥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앙상하게 마른 남자는 저 일격으로도 뇌진탕으로 쓰러질 게 분명해보였다. 존슨이 팔을 크게 들었을 때,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클레몬트 공작 부부는!”
엘리자베스가 소리치며 경감을 노려보았다. 경감이 피식 웃었다. 그러곤 존슨에게 턱짓했다. 존슨의 팔이 제자리로 조용히 돌아왔다.
“평소 도박을 즐기고 파티를 수없이 열었어요. 돈의 대부분은 빚을 낸 것 같았구요.”
“파티를 수없이…… 수없이라면 얼마나 자주?”
경감이 존슨을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벌벌 떨며 바닥에 웅크린 남자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자주인 게 좋을까요?”
엘리자베스가 경감을 노려보자 경감이 대답했다.
“나에게 묻는 거요? 난 파티를 해본 귀족이 아니라 모르지만 귀족들이야 파티를 좋아하지 않소. 일 년에 100번이면 어떤가?”
엘리자베스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군. 멍청한 경감.”
엘리자베스의 핏발 선 눈동자를 보던 경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경감이 존슨을 보았다. 엘리자베스가 존슨의 몽둥이 앞으로 잽싸게 몸을 던졌다. 엘리자베스의 등허리에 거센 매질이 쏟아졌다.
“어이쿠, 이런. 이건 공녀님이 자초하신 거야.”
엘리자베스는 존슨에게 서너 대를 맞고 바싹 마른 남자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엘리자베스와 똑같이 바닥에 쓰러져 눈이 마주친 남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괜찮아요?’ 이렇게 묻고 싶은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저 이 방 안의 보비들을 전부 잡아먹지 않기 위해 참는 게 괴로울 뿐이었다.
* * *
그렇게 두 번째 끼니를 마쳤을 때쯤, 갑작스럽게 엘리자베스의 방 배정이 바뀌었다. 엘리자베스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왜인지 모르게 눈 한 쪽에 혈관이 터지고 한 쪽 뺨이 잔뜩 부은 존슨이라는 자가 경감 옆에서 엘리자베스에게 꾸벅거리며 연신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죄송…….”
엘리자베스는 존슨의 사과에 조금의 통쾌함도 느끼지 못했다. 이 인간이 왜 갑자기 사과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한때나마 왕족이었던 데다 지금 온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몸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위에서 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한 통속적인 인간. 엘리자베스는 그런 작자에게 사과를 듣는 상황이 조금도 기분 좋지 않았다.
경감은 그런 존슨의 행동을 방임한 주제에 엘리자베스에게 신사처럼 웬 멀쩡한 침실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제 부하가 생각이 모자라 무례를 범했습니다. 레이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수용자들의 건강을 봐주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머무시던 방이니 편히 계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구요.”
엘리자베스는 푹신한 침대며 테이블, 깃펜, 거기에 볕이 드는 창문까지 있는 방을 둘러보았다. 의사 선생의 방답게 소독 도구며 봉합 도구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필요한 거 있어요.”
경감은 엘리자베스의 말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네, 말씀하십쇼.”
“그 남자들, 아까 봤던 그 남자 두 명을 데려와요.”
엘리자베스는 일부러 문 밖에 있는 존슨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경감이 피식 웃더니 존슨에게 말했다.
“이봐. 여기 공녀님이 즐길 놈들이 필요하신 모양이니까 반반한 녀석들로…….”
“그게 아니라 방금 그 사람들을 데려오라구요.”
엘리자베스는 경감을 노려보았다. 경감은 그런 엘리자베스를 잠시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는 경감이 여전히 자신의 우위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절대로 물러서는 시늉을 해보이진 않았다.
“지금요. 당장.”
엘리자베스의 말에 경감이 어깨를 으쓱하며 뒤에 있던 보비 하나와 미소를 주고받더니 존슨에게 말했다.
“데려와!”
* * *
엘리자베스가 두 남자에게 해줄 수 있는 처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소독과 봉합.
아마도 여기에 머물렀다는 의사도 이곳 수용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처치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엘 선생은 제때의 소독과 봉합만으로도 외상의 대부분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들에게 소독약을 들이붓다시피 했다.
“조금 참아요. 끄트머리 살이 조금 썩어서 잘라 내야겠어요.”
“네? 으아아악! 제발! 제발요!”
“아프지 않을 거예요. 신경이 거의 죽었으니까. 사마귀를 지질 때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엘리자베스는 남자를 다독이며 가위를 들었다. 아까처럼 엘리자베스의 코를 찔러오는 피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는데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허기가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왜일까. 이 허기도 어떤 조건 하에 몰려오는 게 아닐까.
엘리자베스는 허기의 주기가 심리적인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여겼다.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전에 결심했던 대로 제 몸에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될지도 모르고 또……. 혹시 치료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엘리자베스는 왕립학술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남과 동시에 제 마음 속에 미약한 희망이 자라나는 것을 느끼며 살짝 웃었다.
우습다.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하자 모든 게 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눈앞의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왜, 왜 웃으십니까?”
“네? 아, 아니…….”
엘리자베스는 썩은 살을 도려낸 것을 거즈에 닦아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살을 도려내는 게 즐거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그, 그냥…….”
엘리자베스가 할 말을 찾아 방황하는 사이에 옆에 있던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엘리자베스 클레몬트 공녀님이시죠?”
남자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남자의 목소리에 담긴 조심스러움이 전염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