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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하러 돌아왔다 37화 (37/297)

파혼하러 돌아왔다 37화

앰버 플래스의 하늘하늘한 드레스에 엘리자베스가 묻힌 말똥 자국이 남았지만 앰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잡아 당겨 제 몸에 딱 붙게 했다.

“앰버 플래스! 내 태양, 내 별, 내 달!”

그러자 얼굴에 말똥을 치덕치덕 묻힌 남자가 앰버를 보며 느끼하게 말했다. 남자의 옆에 있던 멀대들이 남자에게 손수건을 내밀었지만 남자는 거부했다.

“그 구두닦이 놈이 나한테……!”

남자는 엘리자베스를 노려보며 분노해 소리쳤지만 차마 ‘똥’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앰버의 뒤에 있던 여자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솔라티오. 세상에. 내가 내 종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도록 하지요. 어서 고개를 숙여라, 올리버.”

앰버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의 팔을 꽉 잡았다. 솔라티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종자? 무슨 종자 말이지? 앰버, 여긴 기사들이 돌아다니는 백 년 전 왕정이 아니야. 당신처럼 아름답고 솜털 같은 기사도 없고 말이야. 이 솔치노에서는 나 솔라티오가 왕이고, 군주야. 당신은 내가 지켜야 할 레이디지. 기사가 아니라.”

마치 앰버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솔라티오의 말에도 앰버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솔라티오. 레이디에게도 종자는 필요한 법이에요. 당신에게 종자가 필요하듯이요.”

앰버는 그렇게 말하며 부채로 솔라티오의 양 옆에 선 멀대들을 가리켰다. 그 말에 멀대들이 불쾌한 얼굴로 씩씩거렸지만 솔라티오가 그들을 저지했다. 그 사이 앰버가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켈토에서 건너 온 손님이 오늘 켄터베리 홀에서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어요. 공연장 분위기가 좋다면 켄터베리에 투자를 좀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당신이 내 종자를 별 것도 아닌 일로 붙잡아두면 내가 노래에 집중할 수 있겠어요?”

앰버의 말에 솔라티오의 얼굴색이 살짝 변했다. 켈토에서 건너온 손님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이 활짝 펴졌다가 ‘별 것도 아닌 일’이라는 말에는 얼굴이 구겨졌다.

“별 것도 아닌 일이라니. 앰버! 내 여인! 저 자식이 내 얼굴에…….”

“똥을 먹였죠.”

앰버의 말에 여자들이 킬킬거리며 웃는 것은 물론이요 지나가던 행인들마저 힐끔거리며 솔라티오를 보았다. 솔라티오의 옆에 있던 멀대들마저도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솔라티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앰버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놓고 솔라티오에게로 걸어갔다. 그러곤 향수를 뿌려둔 노란 손수건을 솔라티오에게 내밀었다. 솔라티오는 막상 앰버가 걸어오자 흠칫 당황한 얼굴을 했다.

“솔라티오. 솔치노에서 제일가는 홀의 주인장은 겨우 이런 일로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진정한 군림은 자비에서 나오는 거예요.”

앰버의 말에 솔라티오가 이를 뿌드득 갈며 엘리자베스를 노려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뒤로 물러나다가 무희들의 품에 폭 안겨버렸다. 무희들은 엘리자베스를 받아들고는 자기들끼리 신나게 엘리자베스를 놀려댔다.

솔라티오는 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더니 엘리자베스에게 손가락 욕을 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이 구역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보고 다녀야 할 거다, 꼬맹이.”

솔라티오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떨어진 은화와 금화를 주워서 제 눈 가까이 가져다 댔다.

“네 주인이 너한테 과분한 처우를 해주는 모양이지. 하지만 일단 이 홀에서 들어온 돈은 전부 내 것이야. 불만 있나, 앰버 플래스?”

솔라티오의 질문에 앰버는 고개를 저었다. 솔라티오는 금화와 은화를 챙겨 넣고는 야비한 들개처럼 몸을 잔뜩 부풀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앰버는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자베스에게 돌아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쥐고 말했다.

“가자, 올리버.”

얼떨결에 종자 올리버가 된 엘리자베스는 무희들의 푹신한 살점에서 떨어져 나와 앰버와 함께 켄터베리 홀의 로비에 있는 커피 하우스에 들어갔다.

* * *

솔치노 스트리트의 행인들이 전부 보이도록 창을 막아두지 않은 커피 하우스에는 신사복을 입은 남자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똥으로 더러워진 손을 꾸역꾸역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로 앰버를 졸졸 쫓다 물었다.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죠?”

삼삼오오 모여서 투표권이며 의회, 해상 무역 따위에 대해 떠들던 남자들은 앰버가 커피 하우스를 걸어 들어오자 일제히 시선을 앰버에게 던졌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 같이 끈적끈적하고 기분이 나빴다. 로킨트의 펍에서의 앰버도 노동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그곳에서 앰버 플래스는 여제처럼 군림하는 모습이었고 이곳에서 앰버 플래스는 시장통에 나온 생선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앰버를 바라보면서도 신사가 레이디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에스코트를 하기 위해 다가오지는 않는 신사들을 바라보았다. 전부 비단이나 벨벳으로 된 옷에, 상아로 장식된 케인, 금단추 등을 달고 있는 부유한 평민, 혹은 귀족들로 보였다.

“다들 내 공연을 보러 온 거예요. 엘리자베스. 스스로를 내 팬이라고 칭하는 자들이죠.”

엘리자베스는 도무지 팬의 시선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신사들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앰버가 가리키는 곳에 앉았다. 그곳은 커피 하우스에서도 발코니 쪽으로 행인들과 커피하우스 내부의 신사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테이블이었다.

엘리자베스가 그곳에 먼저 앉으려고 하자 앰버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종자는 주인을 먼저 앉히는 법이에요.”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알아듣고 앰버의 의자를 빼주었다. 그러자 앰버가 의자에 앉으며 엘리자베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고마워요, 올리버.”

엘리자베스는 새빨개진 얼굴로 앰버의 허락을 기다리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그 모든 행위를 커피 하우스 내부의 신사들이 바라보았다.

“왜 이런 곳에 앉는 거예요? 원래 가수들을 시선을 받는 걸 즐기나 보죠?”

엘리자베스가 질색을 하며 앰버의 입술이 닿은 뺨을 닦아내자 앰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켄터베리 홀에 있으면 나는 어디에서나 구경거리예요. 굳이 구석자리에 앉을 필요가 없죠.”

엘리자베스는 뒷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밀담 속에 간간히 섞여 들어오는 더러운 비속어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분장실에 있으면 되잖아요. 켄터베리 홀은 음악을 파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앰버.”

다른 것을 파는 곳이 아니라.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겨우 삼켰다.

그러나 앰버에게는 삼킨 말이 들린 듯했다. 앰버가 올리버에게 줄 에그 크림 한 잔과 와인 한 잔을 주문 한 뒤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귀족 아가씨께서 켄터베리 홀 여가수의 도움을 받아서 자존심이 상한 것 같네요.”

앰버는 그렇게 말하며 팔 한 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녀의 팔에는 엘리자베스가 묻힌 말똥이 묻어 있었다.

앰버 플래스는 어떻게 말똥이 묻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할까? 침대에서 잘 때조차 귀한 보석과 아름다운 드레스로 치장할 것 같은 여자가 말이다.

엘리자베스는 앰버의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느끼곤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고마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고마워요, 라는 말을 너무 늦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앰버는 쓰게 웃으며 종업원이 가져다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앰버의 표정을 살피다가 멜니아의 이민자들이 마신다는 에그 크림을 숟가락으로 떠서 살짝 맛보았다. 충격적으로 단 맛에 아까 솔라티오한테 당해 쑤시던 관절 마디마디에 피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켄터베리 홀에 혼자 와봤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군요. 그러니까.”

앰버는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것을 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의 눈이 엘리자베스의 복장이며 긴 금발을 숨긴 모자를 훑었다. 엘리자베스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중얼거렸다.

“사정이 있어서요.”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케이가 당신이 여기에 온 걸 보면 기꺼워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니까요.”

그 말은 앰버 플래스가 케이에게 자신을 여기서 만났다고 이야기하겠다는 뜻일까? 엘리자베스는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어깨를 느끼며 앰버를 보았다.

“얘기하지 않을 거죠?”

“글쎄요. 조금 있다가 테시톤이라는 멜니아 사업가랑 케이가 함께 여기에 오기로 하긴 했어요.”

여기? 켄터베리 홀에?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엘리자베스는 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솔치노 스트리트를 걷는 무희들을 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케이 하커도 앰버 플래스를 이 홀에서 처음 만난 걸까? 아까 본 그런 무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솔라티오처럼 느끼한 말을 하며 무희들과 앰버 플래스를 제 여자라고 칭하는 케이는 도무지 엘리자베스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알 수는 없었다. 눈앞의 이 여자가 여성 노동 운동가인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나.

엘리자베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케이도 이곳의 고객인가요?”

“우리는 홀에 오는 분들을 고객이 아니라 관객이라고 불러요, 엘리자베스.”

앰버의 목소리에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앰버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홀에서 무희들에게 관객 이상으로 돈을 주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사람들은 패트론이라고 불러요.”

앰버의 눈동자가 가라앉아 있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다음 말을 꺼내는 데에 살짝 망설이며 물었다.

“그럼 케이는 당신의…… 패트론인가요?”

그 말에 앰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내게 돈을 주냐는 의미라면…… 네. 뭐, 가끔 줘요. 하지만 그게 케이가 내 패트론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나는 패트론이 없어요. 나는 무희가 아니라 가수예요, 엘리자베스. 무희라고 해서 모두 패트론을 가지는 것도 아니구요.”

앰버의 얼굴에 서린 닳고 닳아버린 어떤 감정을 옅게나마 느꼈을 때,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가 어떻게 앰버에게 가닿는지 정확히는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앰버의 얼굴에 보이는 감정이 엘리자베스가 케빈이 자신을 그저 귀족 아가씨쯤으로 여겼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모양의, 그러나 빛깔만 다른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내 말은…….”

엘리자베스가 입을 떼자 앰버가 먼저 입을 열어 엘리자베스의 변명, 항변 같은 것을 막았다.

“나와 케이는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사람이에요. 그 말은 당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죠. 케이가 내가 창부의 자식이라는 말을 하던가요?”

창부라는 적나라한 말을 할 때 앰버의 얼굴에 예의 그 감정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으나 곧 가라앉았다.

“우리는 이 커피 하우스에서 만났어요. 케이는 당신처럼 옷에 말똥을 칠한 마부 소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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