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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508화 (508/508)

508. 북극의 빙하처럼

깡! 촤아악!

“크아악!”

“이놈들!”

파바바밧!

챙챙! 퍽!

“악!”

쿠당탕탕!

그야말로 난장이었다.

북풍단원은 겨울바람처럼 거침없이 휘몰아쳐 왔고, 적랑대주들은 사력을 다해 맞서 싸웠다.

하지만 노도처럼 밀려드는 북풍단원을 언제까지 상대할 수는 없는 상황.

적랑대주 한 명 한 명의 역량은 이제 어지간한 무인들과 맞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해졌지만, 북풍단의 인해전술 앞에서는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퍼엉! 퍼펑!

연신 혁련장을 펼치는 윤종승이 어깨를 들먹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제기랄! 이것들 끝도 없어!”

“힘을 아껴라! 아무리 폭렬갑을 썼어도 마구잡이로 장력을 소모하면 네 몸이 버텨내지 못해!”

당우기가 암기를 던지고 독을 뿌리면서 주의를 주었다.

확실히 상대적으로 편한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은 당우기였다.

다른 이들은 근접전을 펼쳐야 했지만, 당우기는 만천화우와 같은 암기술을 보유한 데다 여차하면 독을 뿌려대니 북풍단원들이 섣불리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윤종승의 경우에는 당우기의 말대로 몸이 버텨내지 못하는 상황.

폭렬갑 덕분에 적은 공력으로 강맹한 장풍을 쏘아댈 수 있었지만, 그만큼 자신의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호신을 위한 운기가 필요했다.

마침 무인 세 사람이 윤종승을 향해 날아들었다.

“얌전히 굴어라!”

“살고 싶다면 저항은 포기해라!”

“이여어업!”

세 사람이 한꺼번에 덮쳐오자, 윤종승은 재빨리 양팔을 들고 쌍장을 내밀었다. 아니, 내밀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깨가 욱신거리면서 왼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읏!”

폭렬갑을 이용해서 무리하게 장력을 폭사했더니 어깨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오른손만 내뻗은 채로 장력을 격발시키니, 달려들던 자의 복부가 터져 나가면서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퍼어어엉!

“크아악!”

하지만 두 사람이 후방과 좌측방에서 지척까지 다다른 상황.

‘제기랄!’

이 상태라면 꼼짝없이 왼팔을 내줘야 한다.

운이 좋다면 깊은 부상을 입고 팔을 잃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남은 싸움에 지장이 생길 터.

“까불지 마라앗!”

두 명의 무인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그대로 윤종승의 왼쪽 어깨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찰나지간 한 줄기 바람이 훅 불어오는가 싶더니, 윤종승의 곁을 스치면서 그대로 북풍단원 두 사람을 덮치는 게 아닌가?

따다앙!

“크웃!”

“큭!”

묵직한 태도에 가로막힌 두 명의 무인이 보법을 밟으며 빠르게 물러났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그들은 윤종승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팽수혁을 보고는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팽수혁이 윤종승을 향해 짜증스럽게 외쳤다.

“힘들면 찌그러져 있어라! 걸리적거리지 말고!”

“제길!”

자존심이 상한 윤종승이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지만, 자신을 구해준 팽수혁에게 거친 말을 뱉기도 어려운 상황.

한편 무아지경 속에서 검을 휘두르던 유현도 이제는 지쳤는지 뒷걸음질을 치면서 일행이 있는 쪽으로 물러났다.

어쩌다 보니 네 명의 대주들이 서로 등을 진 채 옹기종기 모인 상황이 됐다.

한바탕 혈풍이 불었기에 북풍단원들도 조금은 숨을 고르면서 포위망만 좁혀왔다.

북풍단주 설천혁이 입매를 비틀고는 한 걸음 나섰다.

“그만들 항복하는 게 어떤가? 순순히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저 인간이 우리를 잘 모르나 보네.”

팽수혁이 이죽거리며 말하자, 당우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우리가 항복하면 단주가 우릴 죽이려고 할 걸?”

“어우, 그 미친놈이 우리한테 죽일 듯이 달려들 걸 생각하면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지.”

“동감입니다.”

마지막에는 유현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팽수혁이 입매를 비틀면서 소리쳤다.

“들었냐? 우리 단주가 그런 남자다. 여기서 죽을지언정 단주 눈 밖에 나는 건 사양이야.”

“기어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그쪽이 건네는 권주 받아 마시다가 뒈지는 수가 있다니까 그러네.”

“말이 통하지 않는군. 별수 없지. 너희들의 선택이다.”

말을 마친 설천혁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수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아직도 많은 인원이 남은 북풍단원이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것들이…… 아까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네?”

“진법입니다.”

눈썰미가 좋은 유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당우기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확실히 조금 전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것과는 달라. 우리가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인정한 거겠지.”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가?”

팽수혁의 말에 유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에는 진법을 깨기가 생각보다 까다롭겠습니다.”

“빌어먹을.”

팽수혁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유현과 당우기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확실히 조금 전 북풍단원들이 보인 움직임과는 전혀 다르다.

갑자기 체계가 생긴 느낌이다.

최전방에서 대주들을 포위한 무인들은 복장부터 다르다.

단단한 가죽옷을 착용했고, 비교적 검신이 넓은 편이었다. 공격보다는 방어 위주로 싸우는 자들이라는 게 한눈으로 봐도 알 수 있다.

기수식만 봐도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겹의 무인들이 갈지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고, 네 번째 열부터는 좁은 검신을 든 자들이 서로 엇갈리면서 회전하고 있다.

빙결북풍검진(氷結北風劍陳).

말 그대로 얼음으로 가둬두고 북풍으로 휘몰아친다는 뜻이다.

빙결에 갇힌 상대는 칼바람에 연신 난도질을 당하다가 결국 목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

살고 싶다면 항복해야만 한다.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에 네 명의 대주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니미럴, 이제 어쩌지?”

팽수혁이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그거…… 해보는 게 어때?”

“그게 뭔데?”

윤종승의 말에 팽수혁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윤종승이 팽수혁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도 하나 있잖아.”

“그러니까 뭐가 있냐고!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라!”

“검진!”

“우리가 그딴 게 어디…… 아!”

뒤늦게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팽수혁이 무릎을 탁 쳤다. 다른 대주들도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당우기가 포위망을 좁혀오는 적들을 경계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하나 있긴 있었군. 우리한테도.”

“그러게. 그 이름도 이상한 검진.”

“그래도 단주가 허투루 만들진 않았을 거야. 그거라도 해보는 게 어때?”

윤종승의 말에 팽수혁이 침음을 흘렸다.

사실 적랑대주들에게도 검진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남궁천이 대주들을 모아놓고 검진을 알려준 적이 있으니까.

다만 이름이 꽤나 구린 데다, 워낙 각자의 개성이 강하다 보니 검진 따위는 어지간해서는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동기들로 이루어진 대주들은 실전이 벌어지면 서로 경쟁하듯 싸웠기 때문에 협공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고 나니 지푸라기라도 건져야 할 상황이다.

이대로는 결국 버텨내지 못할 게 분명하지 않나?

“빨리 결정해! 저들이 공격을 시작하면……! 엇!”

윤종승이 재촉을 하다 말고 단말마 비명을 터뜨리며 얼른 쌍장을 뻗어냈다.

콰콰아앙!

폭렬갑에서 강맹한 기운이 터져 나오자, 정면에서 달려들던 무인 두 사람이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하지만 애초에 일선에서 달려드는 자들은 방어에 특화된 자들이다.

보법을 밟으며 가볍게 착지한 그들이 균형을 잡는 사이 이선에서 다시 밀고 들어왔다.

“막앗!”

이번엔 팽수혁이 소리쳤고, 네 명의 대주들이 동시에 각자의 방식으로 방어전을 펼쳤다.

뚜까앙! 쩌엉! 쾅! 따다당!

촤츠츠츠츠!

한 차례 공격을 막아내자, 다시 삼선에서 또 물결처럼 밀려든다.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공격 속에 진짜 칼바람이 숨어 있다.

일선에서 삼선의 공격은 허초나 다름없다. 체력을 빼앗기 위한 눈속임이다.

하지만 사선 이후에서 질러 들어오는 공격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만 한다.

검진이 어지럽게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며 이동하니 누가 일선이고 누가 사선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당장 코앞에서 뻗어오는 검을 막아내기에 급급하다.

한마디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와 네 사람이 싸우는 기분이다.

이것이 검진의 힘이다.

한 명 한 명의 힘은 미미할지라도 서로 약속된 움직임을 펼치는 순간, 열 배에서 스무 배 강해지는 것.

따다당!

암기를 뿌린 당우기가 바닥에 떨어진 암기를 거둬들이며 소리쳤다.

“어떡할 거야! 하려면 빨리 해야지!”

아무리 사천당가의 무인이라지만 독과 암기는 결국 바닥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때문에 당우기는 땅에 떨어진 암기들을 회수해 가며 싸우기 시작했다.

팽수혁은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유현에게 소리쳤다.

“나는 모르겠다! 네가 이대주니까 결정해라! 이번엔 정말로 너에게 맡길 테니까!”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죽고 사는 문제다.

하나 또 중요한 것은…….

“그런데 우린 한 명이 모자라잖아?”

그렇다.

남궁천이 가르쳐 준, 그 이름도 멋대가리 없는 독장도검진(毒掌刀劍陳).

말 그대로 독, 장, 도, 검을 고루 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쨌거나 그 진법은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손우곤 대주가 머리를 맡고, 유현과 팽수혁이 양쪽 날개를 맡는다.

그 뒤로 당우기가 몸통을 맡고, 마지막으로 윤종승이 후미를 맡아야 한다.

이때 상황에 따라서 머리와 날개의 역할이 뒤바뀔 수도 있고, 몸통과 꼬리의 역할이 뒤바뀌기도 한다.

사실 이 진법에 대해서 처음 알려주었을 때는 손우곤이 기립 박수를 칠 정도였다.

실전 경험이 많은 편이었던 손우곤은 단박에 이 진법의 효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실전을 위한 만능 진법입니다. 포위를 당했을 때 퇴로를 뚫기도 좋고, 방어군을 상대로 진격하기에도 적격이군요. 약간의 위치 변화로 그 성질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는군요. 나비처럼 부드럽게 움직일 수도 있고, 벌처럼 쏠 수도 있겠습니다. 서로 다른 무기를 조합해서 이런 훌륭한 진법이라니. 역시 주군이십니다!”

당시 손우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터뜨렸다.

물론 다른 대주들은 손우곤이 지나치게 제 식구 추켜세우기를 한다고 믿었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지금은 남궁천이 만들었다는 그 진법에라도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상대의 어깨를 찔러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 유현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빠르게 명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독장도검진을 펼치겠습니다.”

“윽, 그 이름은 말하지 말지.”

“현재 인원이 부족하니 몸통을 없애겠습니다. 머리는 윤종승 대주가 맡습니다.”

윤종승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좌익(左翼)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우익(右翼)은 팽 대주가 맡으십시오.”

“쳇, 내가 좌익 맡아도 되는데.”

팽수혁이 투덜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좌익은 말 그대로 왼쪽 날개를 맡은 것인데, 상대가 우수검(右手劍)이 많은 만큼 우익보다 더 거친 싸움이 예상되는 위치였다.

“꼬리는 당 대주가 맡으십시오.”

“맡겨둬.”

당우기가 암기 세 자루를 재빨리 던져 달려드는 적을 밀어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팽수혁이 태도를 고쳐 쥐더니 다른 한 손으로 혈염도까지 꺼내 쥐고는 물었다.

“진격 방식은?”

“봉비(蜂飛)입니다.”

“좋아, 해보자고!”

팽수혁의 대답과 동시에 네 명의 대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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