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
물론 이해는 한다.
지금 무림맹은 반역이 끝난 직후로 그야말로 정신 사나운 상황이니까.
아마 지나가던 거지가 들어와서 잠을 자고 가도 모를 정도로 정비가 안 된 상태 아닌가?
뭐, 이미 거지들이 득실거리기도 하고.
어쨌거나 정체불명의 노인이 도와준 덕에 악후의 체온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천독노는 먼저 찢어진 근육층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구함에서 짙푸른색의 바늘을 꺼냈는데, 이를 본 상우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뭐지? 처음 보는 바늘인데…… 저리도 영롱한 푸른색이라니. 설마…… 비단청록(緋緞靑鹿)의 뼈인가?’
보통 봉합술을 할 때는 동물의 뼈바늘을 많이 이용하는데, 가공하기가 쉽고 내구성이 좋으며 뾰족하게 만들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뼈의 성질상 천연 살균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상처 부위의 감염을 줄여줄 수도 있다.
한데 비단청록이라는 영물의 뼈는 여기에 항독 작용까지 있으니 의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할 도구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상우춘의 추측은 정확했다.
천독노가 든 것은 비단청록의 뼈로 만든 바늘이었다. 그리고 그 바늘에 실을 연결했다.
실은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부드러운 가닥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윽고 그는 찢어진 근육층을 빠르게 봉합해 갔다.
정말이지 혀가 내둘러질 정도의 솜씨.
슥, 스윽. 스스슥.
지켜보던 의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단하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사람의 몸을 마치 공예품처럼 여기는 건가?’
‘그렇다곤 해도 훌륭한 기술이다.’
그들이 내심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있는데, 봉합술을 이어가던 천독노가 멈칫하고는 심장 부근의 한 부위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왜…….”
“쉿.”
의원 하나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주의를 준 천독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심장 부위의 검은 혹 같은 것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끄으윽!”
악후가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신음을 흘렸다.
의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천독노의 눈치를 살폈다.
천독노가 입매를 비틀었다.
“과연. 독을 쓴 것이로군.”
“독이라니요? 대체 무슨 독을……!”
“귀양자(鬼陽滋)라는 독이다. 귀양사(鬼陽蛇)라는 뱀을 잡아 뽑아낸 독이지. 진맥으로는 중독 상태를 알 수 없다는 특징이 있어. 앞으로 맹원 중 이런 환자가 보이면 먼저 귀양자에 중독당했을 수도 있으니, 잘 지켜보아라.”
청랑단주가 귀양자에 당했다면, 다른 무인들도 같은 독에 당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의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개중 한 명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해독제가 없는데요.”
“해독제는 만들면 되지 않겠나?”
“어찌 해독제를…….”
“킬킬. 내가 누구냐? 본좌가 바로 천독노다.”
“아…… 하면 방법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청랑단주 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귀양자에 당했을 수 있으니 넉넉한 양을 만드는 게 좋겠지. 그리고 청랑단주도 살려야겠다면 더 서두르도록 하고.”
“말씀하십시오!”
“귀양자는 흡수되자마자 심장으로 이동해서 기능을 점차적으로 약화시키는 맹독이야. 먼저 해독제의 재료를 불러주마.”
“예, 의원님!”
젊은 의원 몇몇은 이미 천독노를 자신들도 모르게 ‘의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당귀, 설삼 뿌리, 백련화, 용맹초, 녹용, 그리고 백봉령과 천궁을 준비해라. 배율은 이 할 오 푼, 일 할 칠…… 에이! 아니다. 그냥 가져와!”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다행히 불러준 약재가 모두 약천당에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명색이 무림맹 약천당인데 이런 기본적인 약재마저 없다면 정말이지 침대를 엎어버려야 할 일이다.
의원들 몇 명이 빠져나간 사이 천독노는 서둘러 도자기 약방구를 화로에 올려서 달궈두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봉합술에 매진했다.
완만하게 굽은 바늘을 신속하게 놀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을 홀리게 만들었다.
‘마치 바늘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군.’
‘바늘이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보여!’
의원들이 저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토록 천독노를 무시하던 상우춘조차도 이제는 멸시하는 마음도 싹 잊은 채 그저 넋 놓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
굽은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갔다가 가느다란 실을 이끌며 부드럽게 딸려 나온다.
근육층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심장에 난 상처마저 정교한 솜씨로 봉합한다.
그렇게 천독노는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상처를 말끔하게 봉합했다.
근육층에 이어 피부까지.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면서도 섬세한 손놀림이었다.
하지만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천독노는 다시 한번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는 재빨리 그릇에 산삼과 황금, 백출 뿌리, 만년초의 가루를 꺼내 적절한 양으로 배합했다.
그때쯤에 마침 재료를 구하러 갔던 의원들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의원님, 구해 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과연 의원들은 천독노가 지시한 재료를 모두 알맞게 가져온 상태였다.
“잘했네. 그럼 이제부터 이걸 상처 부위에 펴 바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의원들은 천독노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
숨 막힐 듯한 수술 현장에서 다른 의원들은 여전히 손에 땀을 쥐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한 가지.
과연 저 천독노가 정말로 죽어가는 청랑단주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왠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천독노가 무림공적으로 낙인이 찍혀서 그렇지, 그의 독공이나 의술 하나만큼은 유명하지 않던가?
어쨌거나 젊은 의원들이 천독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며 약재를 펴 바르는 동안, 천독노는 빠르게 해독제를 만들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졌기에 이번에도 의원들은 무슨 묘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도자기로 만든 약방구에 적절한 배합으로 약재를 넣은 천독노는 약물이 적당히 끓으면서 향기로운 연기가 피어오르자 작은 막대로 저어주었다.
그는 완전히 중화될 때까지 이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이 소독한 상처 부위를 살균된 천으로 덮고 손수 명주 천으로 몸을 감아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악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일단의 검상은 치료가 되었지만 중독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마침내 해독제가 완성되자 천독노는 먼저 악후의 혀 밑에 약을 소량 떠서 발랐다.
이는 혈액 흐름이 빠른 혀를 통해 독소를 빨리 퇴치하기 위함이다.
상처를 이미 봉합한 상황인 데다, 만약 벌어진 상처에 직접적으로 해독제를 바르게 되면 봉합 과정에서 이물질이 남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부득불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하나 여전히 이걸로 끝이 아니다.
천독노는 먼저 손목에 위치한 대릉 경혈에 손가락을 대고 적절한 압력을 가해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런 다음 팔꿈치와 어깨를 지나 가슴의 천지혈까지 기운을 이어갔다. 이걸로 심장의 기능은 꽤나 개선되고 혈액 순환도 훨씬 원활해지리라.
다음으로 그는 가느다란 침을 꺼내 발목에 위치한 해계혈에 이 촌 이 푼의 깊이로 찔러 넣었고, 무릎에 위치한 곡천혈에 일 촌 팔 푼의 깊이로 침을 찔러 자극을 더했다.
“살 사람이 뒈지는 꼴 보기 싫으면 너희들은 두 눈 뜨고 똑바로 보아라. 앞서 내가 기운을 불어넣은 경혈은 귀양자로부터 심장을 보호하고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저어…….”
“뭐냐?”
“내공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
“한심한! 의원이라도 무림맹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냐? 하면 기본적인 내공심법 정도는 익혀야 할 것 아니야! 너희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의술을 펼치는 것도 아닌데, 내공도 없다니! 강호에 몸을 담으면서 내공 한 줌 없는 녀석이 어디에 있어? 그럴 것 같으면 당장 때려치워!”
정말이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되게 나무라는 천독노였다.
하나 잠깐 사이에 보여준 그의 의술은 그아먈로 신의의 경지였기에 누구도 쉬이 반박하지 못했다.
이미 몇 명은 그를 마음속으로 약천당주로 인정하고 있기도 했다.
천독노가 매서운 눈초리로 의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방금 내가 침을 찌른 곳은 다들 짐작하겠지만, 체내의 독소 배출과 관련된 부위다. 한마디로 독소를 몸 밖으로 빠르게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 그리고 이렇게!”
팡!
“……!”
순간 의원들이 눈을 부릅떴다.
천독노가 다짜고짜 환자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컥!”
악후의 몸이 들썩이면서 피가 울컥 토해졌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환자의 가슴을 때리다니요!”
“당장 멈추…….”
“시끄러워! 가만있어!”
천독노가 서슬 퍼런 표정으로 외치자, 너도나도 나서던 의원들이 입을 꾹 다물고는 물러났다.
천독노는 다시 한번 악후의 가슴을 내려쳤다.
파앙!
“쿨럭! 쿠웨에엑!”
고개를 돌린 악후가 시커먼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빛깔이 거무죽죽한 것이 탁혈이 분명했다. 독소 때문인지 고약한 냄새까지 풍겼다.
당황한 의원들의 얼굴과는 다르게 악후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천독노가 입매를 비틀고는 의원들을 훑었다.
“보았느냐? 이렇게 수압 치료를 병행해야 해독제 효과가 빨리 듣는단 말이야. 안 그러면 살릴 수 있는 사람도 죽이는 꼴이야. 알겠어?”
“예, 예!”
젊은 의원들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다고 힘을 실어 두드리면 안 돼. 소리만 크지 실제로는 가볍게 두드린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의원들은 대답을 하면서도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악후의 상태를 살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연신 신음을 흘리던 환자가 이젠 아기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쌔근쌔근 잠들어 있지 않은가?
정말이지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제 천독노가 무림공적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기억 저편으로 까맣게 날린 지 오래였다.
지금 눈앞에는 그저 신의 한 명이 냉엄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기적을 일으킨 천독노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도구들을 챙기자, 의원 하나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저어, 당주님. 저희들은 비단청록의 뼈로 만든 바늘이 없는데 어쩌죠?”
“호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비단청록의 뼈를 알아보다니. 안목이 좋구먼.”
“아, 예! 저는 진호국이라고 합니다.”
“그래, 호구. 잘 들어라.”
“저어, 호구가 아니라 호국입니다. 진호국.”
“그래, 찐호구. 잘 들어.”
“……예.”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 법이고,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생명을 살리는 의원이 바늘 탓을 해서야 되겠느냐?”
“안 됩니다!”
“비단청록의 뼈로 만든 바늘이 있다면 좋은 것이고, 없으면 꿩 대신 닭이라도 써! 공작필이나 농어 뼈로 만든 침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아! 명심하겠습니다!”
“좋은 기세다. 찐호구.”
“진호국입니다!”
“그래, 찐호구.”
“…….”
의원이 포기하자, 천독노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또 질문 있는 사람?”
“정말…… 약천당주가 되실 겁니까?”
“왜? 싫어?”
“그런 게 아니라, 왠지 이런 곳에 계실 분이 아닌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
확실히 삽시간에 천독노에 대한 생각들이 바뀐 모양이다. 눈빛부터가 다르다.
천독노가 기분 좋게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렇지. 내가 이런 누추한 곳에 어울릴 사람이 아니긴 하지. 왠지 구름 낀 산중에서 유유자적 세월을 낚으며 힘겹게 찾아온 이들을 치료해 주는 신선 같은 분위기가 있단 말이지.”
“그건 아니…….”
“하지만 어쩌겠느냐? 약조해 버린 것을.”
“약조라면?”
“그 빌어먹을 사기꾼 자식이…… 휴우, 됐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다. 그러니 내가 싫어도 약천당주가 되어야 할 상황이다. 다음 질문?”
“앞으로 이 환자는 어떻게 진료해야 합니까?”
“호오, 모처럼 의원다운 질문이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이름까지 알려 드리기에는 미천한 몸입니다.”
진호국 의원이 당하는 것을 본 그로서는 이름을 아끼기로 했다.
천독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매일 밤마다 붕대를 풀어 상처를 점검하고 다시 감아야 한다. 약초 분말을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뿌려줘야 하고, 분말이 떨어지기 전에 새로운 약을 준비해야 한다. 약재를 조합하는 방법은 내가 적어주지.”
“오오, 감사합니다!”
“한 달 정도 쉬다 보면 완전히 회복될 것이야. 다만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무공을 익히지 말아야 하고.”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런데…….”
천독노가 몸을 돌렸다가 멈칫거렸다.
분명 지금까지 악후에게 냉기를 불어 넣으면서 열을 식혀주었던 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그자는 대체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