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69화 (469/508)

469. 축배

휘오오오오.

실내에 오묘한 기운이 가득 찼다.

옷가지가 찢어져 너덜너덜한 덕양이 실내 복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행공을 하고 있었다.

휘우우우웅!

일순 주변으로 강한 돌풍이 일어났다.

덜컥! 덜컥덜컥!

창문이 당장에라도 뜯겨 날아갈 것처럼 덜컹거렸고, 탁자와 의자마저 덜덜 떨면서 조금씩 떠밀렸다.

만약 누군가가 이 방으로 들어왔더라면 그 자리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으리라.

무엇보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에 놀랐을 것이다.

따뜻한 봄 날씨의 초저녁임에도 가부좌를 틀고 앉은 덕양의 숨결에서 하얀 김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성성한 수염에서는 얼음 알갱이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현재 덕양이 운공하는 기운이 극음의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극한의 음기를 끌어 올려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익숙지 않은 운기 탓에 호흡이 조금 가빠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덕양은 모든 정신을 운기행공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한편으로는 지난 싸움을 복기하면서 운기 방식에 참고했다.

휘우우우우웅!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듯하다.

여전히 창문을 날아갈 것처럼 덜컹거렸고, 탁자와 의자가 떠는 소리를 내지른다.

그 와중에도 덕양의 마음은 차가운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바위와 같았다.

쩌적…… 쩌적……!

덕양 주변으로 바닥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다.

빳빳해진 그의 수염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팍!

덕양의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뜨끈한 기운이 사방으로 불어 나갔다.

찢어져서 너덜너덜한 옷가지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터져 나갈 것만 같다.

떵! 떠엉! 떵!

기이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잔뜩 응축되어 있던 사물들이 뜨끈한 열기에 팽창하면서 우는 소리를 내지르는 중이다.

쩌적! 쩡!

급기야 덜컹거리던 창문이 앓는 소리를 내지르며 절반 정도 깨졌다.

이제는 실내가 온통 사막의 불볕더위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뜨겁다.

빳빳하게 굳었던 수염은 조각조각 부서지면서 흘러내렸다. 그 바람에 덕양의 턱수염이 볼품없게 변해 버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극음의 기운이 극양의 기운으로 바뀐 것이다.

구오오오오오!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일어나는 열기가 지붕마저 태워 버릴 듯하다.

극양과 극음의 기운을 동시에 운기하는 양의신공!

그렇다. 무당파에서도 제일대제자 중 가장 뛰어난 몇 명에게만 전해진다는 비기다.

하나 익히기가 극히 까다로워서 대성할 수 있는 자가 드물다.

극음과 극양의 기운을 번갈아 가면서 운기하는 것은 양의신공을 익히는 기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두 가지 음양의 기운을 번갈아가면서 운기하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섞어내야 한다.

그때부터 바로 양의무극신공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하나 자칫 내상을 입거나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문에 양의무극신공은 무당파가 세워진 이래 대성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못 할 것도 없지!’

덕양이 어금니를 꽉 다물고는 기운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렇게 극양과 극음의 기운을 얼마나 운기했을까?

마침내 덕양이 오른손을 뒤집고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그곳에 짙푸른 기운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

마치 얼음 구체처럼 영롱한 기운이 덕양의 오른손에 점점 집중되었다.

‘좋아, 이번엔……!’

구우우우우……!

뜨끈한 열기가 단전에서부터 피어오른다. 이미 오른손에는 극음의 기운을 결집시킨 상황이기에 체내에서 아우성을 지르는 것만 같다.

“끄으음!”

덕양이 신음을 참으면서 극양의 기운을 본격적으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혈맥을 따라 거침없이 치달리던 극양의 기운이 마침내 왼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이윽고 오른손에는 극양의 기운이, 왼손에는 극음의 기운이 맺혀갔다.

불처럼 뜨겁다가 얼음처럼 차갑길 반복하던 주변 공기가 이젠 정확히 반반으로 갈라졌다.

‘마지막 단계다!’

결심을 굳힌 덕양이 오른손과 왼손을 서서히 결합하면서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파지지지짓! 파지지직!

붉은 구체와 푸른 구체가 서로 뒤엉키면서 묘한 물결을 이룬다.

태극의 문양!

이것이 바로 양의무극신공!

쉬오오오오오!

전혀 다른 성질의 두 기운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점점 구체가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른 몸통만 한 구체가 되었을 때,

“크으읍!”

덕양은 급변하는 기운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그의 몸이 불처럼 달아올랐다가, 얼음처럼 식어가길 반복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꽈아아아아앙!

두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데 실패하면서 폭발이 일어나고 말았다.

콰장창창!

순간 방 안의 잡기가 부서져 나가고, 창문이 떨어져 나갔으며, 탁자와 의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덕양이 걸치고 있던 누더기 같은 장삼도 아예 먼지처럼 조각조각 흩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부서진 문으로 무인들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무당파 무인이 다그쳐 물었고, 그 뒤를 이어 청풍과 우위광도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섰던 정혜 사태는 헐벗은 덕양의 몸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나갔다.

“이게 다 무슨 일이오?”

우위광이 엉망진창 된 실내를 둘러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나 덕양은 쌀쌀맞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별일 아니니 다들 물러가시오. 혼자 운공을 좀 하고 있었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진정 괜찮은 거요?”

우위광이 다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덕양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거, 괜찮다고 하지 않소! 다들 썩 나가시오! 남의 수련을 엿보는 것이 실례라는 것쯤은 아실 텐데?”

“끄음. 알았소.”

우위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돌아섰다.

“다들 돌아갑시다.”

그제야 청풍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무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서야 덕양이 바닥을 짚더니 각혈을 시작했다.

“쿠웁! 쿠웨에에엑!”

시뻘건 피가 토해졌다.

양의무극신공을 익히면서 내상을 입은 탓이다.

‘제길! 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확실히 양의무극신공은 쉽지 않다.

자칫 재수가 없으면 내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주화입마에 빠져 이지를 상실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놈을 이기려면 이 길밖엔 없다.’

애초에 두 가지 성격의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바로 무당의 비기가 아니었던가?

그간 무당은 안일했다.

뛰어난 심법을 두고도 두려움을 내세워 기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젠 물러날 곳이 없다.

‘좋아, 다시!’

눈을 감은 덕양이 다시 정신을 집중하면서 극양의 기운부터 운공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

* * *

덕양이 양의무극신공을 익히는 데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마당에서는 조촐한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흥! 벼락치기를 한다고 갑자기 무공이 올라가는 줄 아는가?”

청풍이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에 앉자, 우위광이 쓴웃음을 지으며 변호했다.

“뭐라도 해보고 싶으신 것 아니겠소?”

“훗, 뭐라도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말이오.”

청풍이 다시 빈정거리자 우위광이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정말이지 생각 같아서는 뒤통수라도 세차게 후려치고 싶었다.

하나 상대는 무림칠성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 무식한 인간과 손을 잡아서는!’

우위광이 속내를 삼키고는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곧 북천금제가 도착할 테니, 그때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을 거요. 내 보기에 이 장원은 부득불 무림맹의 눈을 속이기 위해 구한 것 같소.”

“무림맹을 속이기 위해서?”

“생각해 보시오. 하남 지역이라고는 하나 맹의 감시가 없을 수는 없소.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큰 장원이 있다면 맹이 의심하지 않겠소? 그러니 임시로 여길 쓰게 한 것이겠지.”

“그것 역시 당신의 생각일 뿐 아니오?”

“그렇긴 하나…….”

“그럼 됐소. 북천금제를 만나보고나 말합시다. 나는 이제 당신 말은 믿을 수가 없어서.”

“장문인!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내게도 생각이 있소!”

우위광이 더는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청풍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생각? 무슨 생각 말이오? 이젠 내 뒤통수를 치시려고?”

“장문인. 맹주가 될 생각이 없소? 맹주는 혼자 될 수 있을 것 같소?”

“이보시오. 우 선배.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내가 맹주가 되지 못한다면 선배는 목이 제자리에 없을 거요.”

“이익! 어찌 그런……!”

쾅!

우위광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차앙!

그가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는 청풍의 목을 겨눴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풍은 술잔을 입에 가져가다가 피식 웃었다.

“팔 병신이 됐어도 검은 잘 뽑는군. 명을 재촉하는 건 타고난 재능인가?”

“문주. 계속해서 선을 넘으면 나도 참지 않겠소.”

“참지 않으면? 내 목을 치시겠소? 그럼 그러시오. 보아하니 이런 식이면 내가 먼저 당신 목을 칠지도 모르니까.”

“문주우우우!”

우위광이 검파에 힘을 실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하나 그는 차마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지금은 청풍이 고요하지만, 그가 발검하면 순식간에 자신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리라.

상대는 무림칠성.

‘두고 보자! 이 치욕을 언젠간 갚아주마!’

우위광이 속을 억누르면서 애꿎은 시종에게 신경질을 부려댔다.

“도대체 홍 회주는 언제 온다는 것이냐!”

“어이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요! 곧 도착한다고 하셨습니다요!”

시종이 얼른 달려와서 고개를 조아리자, 우위광이 청풍을 쏘아보며 일렀다.

“곧 북천금제가 오면 내게 사죄하고 싶어질 거요. 그땐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거외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청풍이 내심 비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지금 뭔가 심각하게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곧 북천금제가 온다고?

적어도 자신의 생각에 북천금제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들을 이딴 식으로 대할 리가 없지 않겠나?

북천금제는 지금쯤 거사에 실패한 것을 두고 이리저리 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발을 뺄지도 모르고.

그 전에 곤륜파의 향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대로 머나먼 곤륜산까지 되돌아가는 것은 허망한 일.

‘덕양 장로를 따라 무당에 신세를 지는 것도 좀 모양이 빠지고. 흐음.’

그렇게 생각에 잠겼는데, 시종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소리쳤다.

“북천금제께서 오신다고 합니다! 거의 다 오셨다고 합니다!”

“오오! 드디어!”

우위광이 반색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청풍을 돌아보았다.

“내가 한 말 잊지 마시오.”

“흐음.”

청풍이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북천금제가 정말로 온다고?

그렇다면 정말 우위광에게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리라.

‘뭐, 그리만 된다면 사과만 할까? 뇌물이라도 줄 수 있다.’

마음을 굳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위광에게 말했다.

“마중 나갑시다.”

“그럽시다.”

언제 싸웠냐는 듯 두 사람은 조금 들뜬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장원 밖으로 나오자 마침 저만치 절벽 모퉁이를 끼고 돌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는 게 보였다.

우위광은 가슴이 뛰었다.

저 위풍당당한 자태를 보라!

무인들까지 한 무리 이끌고 있지 않은가?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리 늦은 것이리라!

“하하! 내가 뭐랬소? 장문인! 북천금제가 우리와 함께 하는 한 아직 끝난 게 아니란 말이외다! 이제 내게 사과할 마음이 좀 생겼소?”

“흐음. 뭔가 좀 이상한데…….”

“허허,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저리 많은 병력을 이끌고…….”

그때 우위광의 귀에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원주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 버린 우위광이 뻣뻣해진 목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말을 몰고 천천히 다가오는 인물.

마침내 그의 얼굴이 횃불에 비치자, 우위광은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네, 네놈이 어떻게 여길……!”

“제가 마련해 드린 피난처는 마음에 좀 드셨습니까? 그래도 술은 좀 넉넉히 넣어드렸는데.”

“설마 네놈이……?”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생글생글 웃던 남궁천이 일순 서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확 뒈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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