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68화 (468/508)

468. 축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요?”

청풍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던졌다.

벌써 하남을 넘어오고도 두 시진이 넘게 말을 타고 달렸다. 그 뒤를 이어 외팔이가 된 우위광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금만 더 가면 여남현(汝南县)이외다. 거기에서 북천상회가 운영하는 객잔으로 가면 언질이 있을 거요.”

“흐음. 틀림없는 사실일 테지요?”

“내가 뭐 하러 허튼소리를 하겠소?”

“뭐, 그거야 알 수 없지. 다 실패로 돌아간 마당에 시간을 끄는 것일 지도.”

“장문인!”

우위광이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자, 청풍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늙은이 성깔하고는.”

“지, 지금 뭐라고 했소! 어찌 감히…… 쿠웁! 쿨럭! 쿠웨에엑!”

우위광이 말에 올라탄 채로 각혈을 하자, 청풍이 입매를 말아 올리고는 차갑게 일렀다.

“거, 늙은 몸으로 조심하시오. 그리 격정적이어서야 어디 몸이나 성하게 유지하겠소?”

“선을 지키시오.”

“당신이 약속을 지킨다면.”

청풍이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자, 우위광이 다시 발끈하면서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후로 청풍은 점점 노골적으로 우위광을 무시하고 있었다.

무림맹을 벗어난 후 단 한 번도 자신을 ‘원주’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을 업신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흥! 네놈이 그 성질을 못 이기고 날 함부로 하다니. 맹이라는 게 홀로 만들어지는 줄 아느냐? 정도맹을 세우고 체제가 안정이 되면 너는 그날로 끝이다!’

마음속으로 각오를 굳힌 우위광이 시선을 슬쩍 돌려서 조금 뒤에 떨어져 오는 덕양을 보았다.

덕양 역시 남궁천에게 일격을 당하고 꽤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본인의 운기조식을 끝낸 후 자신의 운기조식을 돕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번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단 한마디 질책을 하지 않았다.

대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내내 골똘한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덕양이 낫지. 무당의 장문인도 아니니 맹주의 자리에 올라도 여유가 있을 테고.’

우위광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수 세월을 새외 세력으로 지내면서 고집과 편견만 키워 온 청풍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게다가 자신과 뜻도 잘 통할 것이고.

무엇보다 품위가 있지 않은가?

우위광은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채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그렇게 무리를 이끌고 이동하던 세 사람은 다른 장문인과 문도들을 외곽 지역에 남겨두고는 여남현 안으로 들어섰다.

왁자한 저잣거리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초췌한 몰골의 세 사람을 연신 힐끔거렸다.

그나마 다행히 아직은 여남현에 무림맹의 소문이 퍼지진 않은 상태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결국 발 달린 말이 더 빠른 모양이군.”

청풍의 혼잣말에 우위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북성객잔을 찾으면 되오.”

“지금 나보고 찾으란 말이오? 한평생 곤륜산에 처박혀서 도나 닦다가 온 사람에게 생소한 곳에서 생소한 객잔을 찾으란 거요?”

청풍이 사사건건 불만을 터뜨리자, 우위광이 이를 갈면서도 분을 억눌렀다.

“혹시나 보이면 말을 하란 말이외다.”

“뭐, 보이면 그러지.”

청풍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곧 세 사람은 굳이 애써 찾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남현에서 가장 번잡한 저잣거리 중심에 이르자 북성객잔이라는 편액이 큼지막하게 보인 것이다.

모든 길이 북성객잔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찾지 못할 위치가 아니었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한 채의 전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여러 채의 전각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한에서 유명한 신룡객잔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넓고 으리으리한 광경이었다.

“호오, 굉장한 규모군.”

“북천금제의 손길이 직접 닿는 곳이오. 이 정도는 기본일 터.”

우위광은 괜히 자신이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어깨를 폈다.

확실히 북성객잔의 규모를 본 청풍은 조금 더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그래도 북천금제를 잘 끌어들여서 다행은 다행이오.”

“말하지 않았소? 모든 계획은 틀어지게 마련이라고. 항시 차선책을 준비해 두어야 하는 법이지.”

“뭐, 이왕이면 차선책이 필요없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오.”

‘이런 빌어먹을! 끝까지……!’

우위광이 다시 발끈했지만 어금니만 꾹 깨물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곳에 가서 접선책을 만나면 우리가 어디로 가면 될지 알 수 있을 거요.”

“하면 그곳이 정도맹의 발원지가 되는 거요?”

“그렇소.”

“알겠소. 그럼 다녀오시오. 우린 밖에서 기다리겠소.”

“같이 가지 않고?”

“여기까지 와서 객잔에서 노닥거릴 생각 없소. 지금 밥이나 넘어가겠소? 다들 어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데. 얼른 집결지로 갑시다.”

청풍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우위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밝은 기색으로 돌아 나왔다.

성격 급한 청풍이 먼저 다그쳐 물었다.

“뭐라고 하오?”

“바로 인근의 천중산(天中山) 바위 절벽 아래에 장원이 마련되었다고 하오. 그곳이 정도맹의 발원지가 될 것이오.”

“오오! 그럼 얼른 갑시다!”

“그럽시다.”

우위광도 이제야 조금 힘이 나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말을 몰면서 소매만 휘날리는 팔을 보며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두고 보자, 맹주. 언젠간 오늘의 수모를 갚으리라.’

그런 중에도 덕양은 말을 몬 채 가만히 뒤만 따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 *

다른 수장들과 문도들을 이끌고 천중산 기슭으로 온 세 사람은 다시 말을 타고 한참이나 이동했다.

그리고 말을 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청풍은 다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더 가란 말이오? 여남현이 벌써 아득히 멀어졌는데!”

“앞으로 세워질 정도맹의 장원이오. 복잡한 마을과 가까이에 있어서 좋을 게 뭐가 있겠소? 당연히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야지.”

“그럼 무한의 무림맹은?”

“그러니 애초에 건립부터 잘못된 게 아니겠소? 게다가 마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어야 장원도 점차 크게 짓지.”

“흐음. 그런가? 하면 곧 도착할 정도맹의 장원은 무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으리으리하겠군.”

“그럴 거요.”

우위광이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북천금제는 자존심이 센 자요. 특히 금왕과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 뭐 하나라도 더 크고 화려하게 하려는 성격이지. 북성객잔을 보지 않았소이까? 분명 준비된 장원도 무림맹에 비할 바가 아닐 거요. 입이 딱 벌어질 거외다.”

실제로 그가 북천금제에게 들은 말이기도 하다. 애초에 계획을 세울 때 북천금제가 했던 말이 있으니까.

“정도맹을 세운다면 확실히 해야 할 거요. 원주, 나는 그 어떤 것도 무림맹에 뒤지지 않을 것이오. 규모든, 명성이든, 신뢰든. 이 북천금제가 나서면 황성도 작아 보일 거요.”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무림맹을 전복시켰다면 무엇보다 깔끔했겠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으로 정도맹에서 새 출발하는 거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저만치 절벽 모퉁이가 나타나자 우위광이 화색을 띠었다.

“오오, 저기인 것 같소. 앞서 접선책이 알려준 장소와 꼭 닮았군.”

“호오, 드디어! 기대가 되는군!”

그제야 청풍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두 사람이 앞다투어 말을 몰고 달렸다.

그렇게 모퉁이를 딱 돌아서는 순간!

“……!”

“……?”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멈추고는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 만에야 청풍이 천천히 우위광을 돌아보았다.

“여기가…… 확실하오?”

“어음…… 아닌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전각 네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원.

물론 외딴 장원치고는 그 규모가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맹을 설립하기에는 절대 충분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마침 두 사람 뒤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수장들과 문도들도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들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두런거리는데, 마침 장원에서 시종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우위광이 속으로 주문처럼 읊어댔다.

‘아니야.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하지만 늘 슬픈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법.

시종이 숨을 헐떡이고는 우위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우위광 원주님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우위광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는 사이 시종이 말고삐를 쥐며 안내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요.”

“북천금제가 여기로 안내하라던가?”

“예, 모두 지치셨을 테니 먹을 걸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요.”

그나마 먹을 게 준비되었다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우위광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이곳에선 얼마나 머물게 될 것인가? 정도맹을 설립할 곳은 어디라고 하는가?”

“글쎄요. 소인은 잘 모릅니다요. 다만 오늘 아침에 정문에 저런 편액을 걸어놓았습지요.”

“편액……?”

우위광이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다시 굳어버리고 말았다.

정도맹(正道盟).

이런 빌어먹을!

우위광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려 청풍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풍은 열불이 뻗치기 직전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우위광이 얼른 나섰다.

“아무래도 곧 증축을 할 예정인 듯하군! 하하! 그래,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한 법! 북천금제가 어떤 사람인데.”

“으음. 증축이요? 그런 말은 들은 적 없는데요? 애초에 여긴 증축하기에 터가 그리 좋진 않은지라…….”

‘제발 넌 좀 닥쳐!’

우위광이 살벌한 눈빛을 보내는 사이, 청풍의 뺨은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우위광이 다시 나섰다.

“자자, 우선 들어가서 뭐 좀 먹읍시다. 한낱 시종이 뭘 알겠소? 북천금제에게 다 생각이 있을 거요. 분명 원대한 계획이 세워져 있을 거요.”

“맞습니다요. 제가 뭘 알겠습니까요? 다만…… 증축 계획은 확실히 없습니다요. 뭐, 그런 게 있으면 벌써 저희들한테 지령이 떨어졌을 겁니다요.”

하아, 이 새끼. 죽일까?

우위광이 주먹을 바들바들 떠는 사이 일행은 조그마한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마당에는 푸짐한 음식이 잔뜩…….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게 다 뭔가?”

“예, 저희들이 급히 준비한 음식입니다요.”

“풀떼기밖에 없네?”

“에이, 채소가 몸에 좋습니다요. 사실 급히 연락을 받은 거라 고기를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요.”

“그래서 지금 이걸 먹으라고?”

우위광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부들부들 떨며 말하자, 그제야 시종이 눈치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성에 안 차시겠지만 이해해 주세요. 정말 음식 구하기가 어려워…….”

“아니! 북천금제는 남는 게 돈일 텐데! 어찌 이것밖에 차리지 않았단 말이냐!”

“북천금제님이야 남는 게 돈이겠지만, 저희들은 돈이 없습니다요.”

시종이 앓는 소리를 하자, 우위광도 기가 차서 더는 따지지 못했다.

‘뭐, 이런 병신 같은 경우가…….’

하지만 어쩌겠나?

일단 굶주린 무인들이 많으니 뭐라도 먹으라고 할 수밖에.

그렇게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덕양은 차려둔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전각 한 채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당분간 날 찾지 마시오. 혼자 생각을 좀 하고 싶소.”

우위광이 불안한 시선으로 덕양을 쫓았다.

‘이런, 결국 덕양 장로도 화가 난 모양이군!’

하나 그의 짐작과 다르게 덕양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차 있었다.

‘놈은 분명 정공과 마공을 함께 사용했다! 어찌 그럴 수가……!’

그 오묘한 무공의 조화에 자신이 당하고 만 게 아닌가?

물론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나 그 무공을 대성한다면 남궁천은 그야말로 천외천의 존재가 되리라.

이건 강호 전체가 나서서 막아야 할 일이다.

‘소림도 봉문만 해선 될 일이 아니겠어!’

그나저나 도대체 남궁천은 어떻게 정공과 마공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을까?

무당에도 그런 심법이 없는 건 아니다.

서로 다른 성질의 내공 두 가지를 태극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양의무극신공(兩儀無極神功)이 있으니까.

하나…….

‘무림칠성에 오른 나조차 완성하지 못한 심법인 것을. 대체 남궁천은 어떻게?’

모처럼 무에 대한 갈망과 질투심에 덕양의 눈빛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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