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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461화 (461/508)

461. 고로 존재한다

“장문인!”

마침 인근에 있던 청성파 문도가 기겁을 하며 달려오다가 남궁천을 보고는 멈칫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남궁천의 모습은 정말이지 지옥에서 갓 올라온 야차와 같았다.

어딘지 광기마저 머금은 듯 보이는 표정.

남궁천이 검신을 혀로 핥고는 청성파 문도들을 훑어보았다.

“드루와, 이 새끼들아.”

“이, 이익! 어디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냐!”

“죽어라앗!”

청성파 문도 몇 명이 이를 갈며 덤벼들었다.

남궁천은 히죽 웃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차며 뛰쳐나갔다.

파바바밧!

쉬쉬쉬시이익!

다시 검신이 춤을 춘다.

“크크크! 아름답구나, 아름다워!”

초견파공안 덕분에 오색찬란한 빛줄기가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든다.

보라, 마지막 생명의 빛이 타오르는 이 순간을. 가히 아름답지 않은가!

쉬컥! 쉬커컥!

푸른 광휘가 달려들던 무인들의 목과 가슴을 베며 지나간다.

피츗!

츄아아아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갈라진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진 자들, 머리를 잃고 고목처럼 넘어가는 자들, 최후의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집는 자들까지.

남궁천은 무아지경 속에서 검무를 추었다.

오랜만이다.

이 짙은 혈향! 짙은 살기! 짙은 분노! 짙은 절망! 그리고 짙은 원망까지!

모든 게 짙고, 또 짙다.

이런 걸쭉한 싸움이 얼마만이던가?

서로에 대한 분노와 처절함만이 남았다.

묘한 그리움 속에 젖어드는 기분이다.

전생에 느꼈던 그 생생한 감각이 온몸을 깨운다.

남궁천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싸우면서 상념에 잠기는 것은 전생에도 곧잘 하던 짓이었다.

왜냐고?

워낙 쉴 새 없이 싸웠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잠꼬대도 싸우면서 했을까?

그런 날이 있었다.

꿀잠을 자는 중에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순간.

그때는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올라간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철썩!’ 뺨 때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튕겨 날아가곤 했다.

곤히 잠든 사이에 현상금에 눈이 먼 불나방들이 자신에게 달려들다가 생기는 일이었다.

평생 숙면과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거의 몽유병 증세로 싸웠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머리가 멍해진 상태로 눈을 뜬다.

그때까지만 해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다가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고 나서야 대략의 상황을 짐작한다.

하루하루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싸우면서 생각하는 것쯤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됐다.

남궁천은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각을 거듭했다.

‘왜 이렇게 즐거운가? 이 미치도록 전율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점점 미쳐가는 것인가?’

희열이 이성을 잡아먹는 것만 같다.

검신을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

한동안 이 감각을 누리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싸우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생처럼 다수의 적을 썰어버리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이번에 용취곡에서 마교와 싸울 때 살풀이 좀 하려나 싶었지만, 신실한 적혈마가 엉뚱하게 나오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다시 생각에 잠겨 본다.

‘나는 왜 살육을 즐기는가?’

살을 베는 감각이 전해져 올 때마다 한 사람의 목숨이 스러져 간다. 상대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아, 생각해 보니 너무나 단순한 이치였던가?

남궁천은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이 어째서 살육을 즐기는 것인지.

그건 역시 살아 있다는 생동감 때문이리라.

꿈꾸듯 살육을 저지르면서도 손 끝에 전해지는 감각만큼은 생생했다.

그건 곧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래,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워낙 많은 생사고비를 넘기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인지, 이미 죽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혹시 자신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게 꿈은 아닌지 아리송할 때가 있단 말이다.

그건 환생을 한 후에도 계속됐다.

생각해 보라.

사지가 꿰뚫려 죽었는데, 자식의 몸으로 환생을 했으니 이보다 더 꿈같은 일이 어디 있으랴.

이미 귀신이 되어 꿈을 꾼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 적도 많다.

하나 그럴 때마다 자신이 생동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바로 이 감각이었다.

촤아아아악!

“끄아아악!”

마침 무인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남궁천은 이번에도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살육한다, 고로 존재한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 생생한 살육의 감각.

그것만은 절대적인 진실에 가깝다.

이는 자신이 아직 현실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키햐!”

기분이 좋아진 남궁천이 입매를 길게 찢으며 다시 날아올랐다.

쉬쉬쉬쉬이익!

푸른 광휘가 춤을 출 때마다 반역자들이 피를 뿌리며 몸을 뒤집는다.

‘그런데…… 뭔가 부족해. 살육의 희열은 있으나, 안온함이 부족하다.’

사람은 희열만으로 살 수 없다.

안전하고 온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다.

하면 전생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 또 불나방 한 마리가 눈앞에서 달려든다. 그 순간 불나방의 눈과 남궁천의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뒈져어어엇!”

미간에 세로 주름을 새기며 달려드는 불나방은 주문처럼 고함을 질렀다.

서컥!

하지만 짙푸른 광휘가 불나방의 몸을 세로로 갈라 버리자 몸이 양단되면서 피가 터져 나왔다.

츄아아아아아아!

남궁천은 마지막 순간 불나방의 표정을 되새겼다.

‘그래, 절박함과 처절함. 그것이 지금의 내게는 없다.’

한마디로 너무 쉽다.

하긴. 세상을 상대로 싸울 때와 아군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싸울 때는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전생에는 ‘쉬운 싸움이란 곧 함정’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지나치게 쉽다고 느껴지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태이리라.

‘빌어먹을. 환생을 하고도 전생의 고리를 끊어낼 수가 없는 건가?’

그때였다.

쒸아아아아아앙!

광풍이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남궁천을 향해 죽음이 들이닥쳤다.

“……!”

남궁천이 저도 모르게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세우며 벽라검을 올려쳤다.

거의 조건반사에 가까운 반응!

쩌어어어엉!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이 울렸다.

상대를 확인한 남궁천이 눈을 부릅떴다.

하나 상대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휘리리리릭!

상대는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남궁천의 힘을 역이용하더니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면서 검을 후려쳐 왔다.

과연 무당파의 무림칠성인 덕양다운 반응이었다.

휘청!

순간 균형을 잃은 남궁천이 얼른 발을 뻗으며 내디디자, 덕양의 검신이 옆구리를 베며 지나쳤다.

츄아아아아!

“끕!”

남궁천이 입술을 꽉 깨물고는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주르르륵!

베인 옆구리에서 피가 흘렀다.

생각보다 깊게 베였다.

탁탁탁!

얼른 점혈을 해서 지혈을 하니, 이번엔 덕양이 다시 남궁천의 품으로 짓쳐들었다.

파바바밧!

타다다닷!

남궁천이 반사적으로 물러나면서 벽라검을 휘둘렀다.

따다다다다당!

금속성이 마구 울린다.

하지만 불꽃이 터지지도 않고, 손끝에 충격이 전해지지도 않는다.

무당파 특유의 검법이다.

힘을 힘으로 받아치지 않는다. 빠름을 빠름으로 대응하지도 않는다.

느림 속에서 빠름을 담아내고, 강함을 부드러움으로 되돌린다.

그러다 보니 남궁천의 벽라검이 연신 허공을 때리는 것만 같다.

공력은 공력대로 소진되고, 실익은 없다.

따다다다당……!

덕양의 몸놀림은 가볍다.

검을 휘두르는 방식도 다른 한 손을 뒷짐 진 채로 툭툭 건드리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남궁천의 자세에서 빈틈이 보였을 때!

쉬이이이잇!

지체 없이 일장을 뻗어 복부를 가격했다.

퍼어어어엉!

“크으읍!”

촤츠츠츠츠츳! 쿠웅!

바닥에 긴 발자국을 남기면서 밀려난 남궁천이 전각 벽에 등을 부딪쳤다.

“쿨럭!”

피가 한 움큼 토해졌다.

슈우우우우.

덕양이 여유만만한 자세로 검을 내렸다.

딱히 방심은 아니다.

이번 공격으로 그의 호흡이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다음 호흡이 이어지면 다시 공격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빌어먹을. 더럽게 아프네. 카아악, 퉤!”

남궁천은 피가 섞인 침을 탁 뱉어내고는 벽라검을 들고 히죽 웃었다.

덕양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어?”

“흐흐흐. 웃어야지. 바로 이거거든.”

“무슨 말을 하는가?”

“이 생동감. 이것은 몽유병도 아니요, 꿈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다. 바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지.”

당연히 덕양은 남궁천이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싸우다 말고 웬 몽유병 타령인가?

하나 남궁천은 드디어 전생의 희열과 안온한 감각을 완전히 되찾았다. 가슴이 뛴다. 아직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말은 곧…….

“이 내가 살아서 숨 쉰다는 것이지!”

파아아앙!

남궁천의 신형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이번의 움직임은 덕양도 놀랄 정도였다.

운룡대구식!

파파파파파파!

한 마리 거대한 용이 구름을 타고 노닌다. 그리고 그 용은 흉포한 악룡이 되어 덕양을 덮친다.

슈아아아아악!

쉬까아아아앙!

덕양이 검을 뻗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자, 벽라검이 그 곡선을 따라 휘청거리며 땅에 박혀들었다.

콰아아아앙!

둔탁한 소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두 사람 모두 얼른 호신강기를 끌어올리자 파편들이 온몸에 부딪치면서 마구 터져 나간다.

파파파파파파팡!

타닷!

남궁천은 다시 덕양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허어!”

덕양은 무모할 정도로 강공일변도인 남궁천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야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자세가 아닌가?

쉬쉬쉬쉬쉬이익!

덕양의 검이 다시 춤을 추었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검결이 흐르다가, 소낙비처럼 빠르고 거칠게 퍼붓는다. 일순 낙엽처럼 어지럽게 흩날리는가 싶다가도 칼바람처럼 매섭게 파고든다.

확실히 덕양의 검법은 세상의 흐름을 담고 있다. 지극히 도가적인 검법이다.

하나 남궁천은 그런 세상을 거스른다. 그리고 부딪치고 싸운다.

봄바람에 살이 베이고, 소낙비에 온몸이 젖는다. 낙엽에 휩쓸리다가 칼바람에 다시 피를 뿌린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덤빈다.

까가가강! 촤아악!

깡! 쩌어엉! 퍼억! 츄아아아!

몇 합이나 겨루었을까?

남궁천은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한데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인가!’

덕양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남궁천은 확실히 이상했다.

궁지로 더 몰아붙일수록 남궁천의 입가에 걸린 광소가 짙어지고 있지 않은가?

얼굴에 온통 피칠갑을 한 남궁천이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바닥을 차고 날아왔다.

“고맙소, 영감!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군!”

쒸에에에엑!

남궁천의 입매가 더욱 귀신처럼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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