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60화 (460/508)

460. 금선탈각(金蝉脱殻)

촤촤악!

“크아악!”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비명이 터져 나온다.

백무극과 함께 적들 사이를 누비는 남궁검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감히 맹주전에 벽력탄을 퍼부은 놈들이다.

사지를 찢어 죽인다고 한들 세상 사람들은 무림맹의 입장을 이해하리라.

우습게도 이들의 선택은 결국 최악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맹주우우웃!”

대주급의 절정고수 다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가소로운!”

남궁검이 짤막하게 말을 뱉고는 검무를 추었다.

쉬쉬쉬쉬쉬익!

그야말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검술이다.

최근 성취를 이룬 남궁검은 시종 여유로운 자세로 싸우고 있었다. 불필요한 동작이 없다 보니 마치 황군의 싸움을 보는 것만 같다.

“이여어업!”

이번엔 맹주의 배후에서 세 명이 날아들었다.

하나 맹주는 그들에게 일별조차 주지 않았다.

촤촤촤아아앗!

한 줄기 빛이 날아오르더니 뒤에서 달려들던 세 사람이 피를 뿌리며 몸을 뒤집었다.

촤츠츠츠츳!

바닥에 반원을 그리며 멈춰 선 자는 바로 백무극.

어느새 남궁검과 백무극의 호흡은 척척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모자람이나 넘침이 없으니 시종 안정적이다.

“무극아.”

“예, 맹주님.”

“이 전투가 너와 나의 성장을 돕는구나.”

“그렇습니다. 함께 싸워 영광입니다.”

“나도 기쁘다.”

남궁검의 말에 백무극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라니.

남궁검을 호위한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어색하면서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결코 기분 나쁜 감각은 아니다.

두 사람이 워낙 완벽한 합격술을 보여주니, 남궁검을 에워싼 무인들이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그러는 사이 남궁검은 고개를 빼고는 남궁천을 찾아보았다.

마침 저만치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살풀이를 하는 남궁천이 보였다.

정말이지 살귀가 따로 없다.

일검에 목숨 하나가 날아가고, 일검에 처절한 비명과 절규가 뒤따른다.

거기에 남궁천은 희열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입매를 길게 찢으며 어지럽게 검을 휘둘러 댄다.

남궁검이 철저하게 절제된 검무라면, 남궁천은 자유로움이 극에 달한 검무다.

허초와 변초가 난무하고 무질서하게 내뻗는 검신은 오로지 피에 굶주린 뱀처럼 이리저리 굽이친다.

화산의 검초만큼이나 화려하달까?

그래서인지 아군의 입장에서 남궁천이 종횡무진 설치는 것을 보면 넋을 놓고 한참이나 보게 된다.

하나 적의 입장에서는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살풀이일 뿐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두 눈 시뻘겋게 충혈된 약관의 청년이 괴기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살벌하게 검무를 춰대니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흐음…… 너무 즐기는 것 같은데.”

남궁검이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리자, 백무극이 그 시선을 좇았다가 탄성을 터뜨린다.

“크으으! 역시 부럽네요!”

“부러워?”

남궁검이 슬쩍 돌아보자, 백무극이 움찔거리고는 곧 고개를 숙였다.

“아, 방금은 일극이었습니다.”

“흐음.”

남궁검이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침음을 흘리다가 곧 말을 돌렸다.

“여하튼 조심하거라.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 항시 방심은 금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맹주님도 조심하십시오.”

“오냐.”

남궁검이 대답을 하고는 휙 돌아서는데, 마침 그 앞을 막아서는 세 사람을 보고는 눈살을 슬쩍 구겼다.

“또 보는군.”

남궁검이 싸늘하게 말하자, 앞에 나타난 정혜 사태와 정극 진인, 그리고 능허자가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맹주가 성취를 이루었다는 말을 들었소.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시험해 보고 싶어서 말이오.”

능허자의 반응에 남궁검이 차갑게 비웃었다.

“당신 셋이 한꺼번에 덤벼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터.”

“후후후. 자신만만하시구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아이에게 방심하지 말라더니.”

“방심과 확신은 다르지.”

“호오, 원래 맹주께서 이렇게 혓바닥이 긴 체질이셨소? 어딘지 좀 달라진 것 같구려.”

능허자가 싸늘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꾸하자, 남궁검이 피식 웃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둔한 것인가? 고인 것은 썩게 마련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사라지게 마련일세.”

“대체 뭔 소리를 하시는지, 원.”

“들어서 이해되지 않으면 직접 몸으로 이해하도록!”

파아아앙!

남궁검이 바닥을 차더니 쏜살같이 날아갔다.

정말이지 눈 깜빡할 사이에 능허자 앞에 다다른 남궁검이 일검을 사선으로 휘둘러갔다.

“헛!”

헛바람을 삼킨 능허자가 바닥을 툭 찍어 차면서 검신을 뽑아 들었다.

슈카아앙!

애초에 발검술이 장기인 능허자였다.

검이 뽑혀 나오기가 무섭게 기가 화살처럼 뻗어나갔다.

파라라라라!

남궁검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물러나자, 그 빈틈을 백무극이 달려오며 메웠다.

“영감탱이가 간댕이가 부었구나!”

파바바바밧!

백무극의 신형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날아들었다.

능허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오, 신기하도다.’

확실히 백무극의 경신술은 특이했다.

분명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것 같은데, 좌우로 격하게 흔들린다. 이는 백무극이 환술을 부리는 것이었지만, 능허자는 그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쉬따아앙!

두 사람의 검신이 부딪쳤다.

그 순간 정혜와 정극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파바밧!

“어른 싸움에 애새끼는 끼어드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궁검이 다시 날아와 반월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쉬까가앙!

빛줄기가 파도처럼 터지자, 날아들던 정혜와 정극이 뒤로 성큼 물러났다.

촤츠츠츳!

정혜와 정극이 가까스로 멈춰 섰다. 그중에서도 정극은 얼른 자신의 옷매무새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난번의 치욕이 반사적으로 떠오른 탓이다.

백무극과 등을 진 남궁검.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염병, 싸움에 어른 새끼, 애새끼가 어디 있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내뱉은 대사에 남궁검과 백무극도 흠칫거리고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또 동시에 말을 뱉었다.

“방금 그 말은 꼭 천이 같구나.”

“방금 그 말은 꼭 남궁 단주 같군요.”

“…….”

“…….”

“허허허!”

“키키킥!”

두 사람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자, 이를 지켜보는 세 사람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뭐가 웃기다고 지금……!’

‘저것들이 미쳐 돌았나?’

약이 바짝 오른 정극이 먼저 바닥을 차며 달려갔다.

“저 애송이는 관두고 맹주부터 노립시다!”

“좋소!”

“갑시다!”

능허자와 정혜도 얼른 바닥을 차면서 달려갔다.

따다다앙! 까강!

다섯 사람이 순식간에 어우러졌다.

불꽃이 터지고 금속성이 울리고, 기합성이 솟구친다.

초절정에 이른 강호 노숙들이 남궁검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달려드니 박빙의 싸움이 이어졌다.

백무극이 이따금씩 그들을 위협했지만, 무정한 강호에서 구를 대로 구른 노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노련하게 백무극의 공격을 흘려내면서도 남궁검을 악착같이 노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어우러지며 싸울 때, 마침 정극의 검신이 사선으로 솟구치면서 남궁검의 옷깃을 찢어냈다.

촤아아아악!

펄럭!

순간 남궁검의 장삼이 풀어헤쳐지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탄탄한 상체가 드러났다.

남궁검이 미간을 좁히고는 찢어진 장삼을 내려다보았다.

“흐음. 즉위한 날 손자 녀석이 사 준 옷인데. 아깝게 됐군.”

부우우우욱!

남궁검이 거추장스럽게 휘날리는 장삼 자락을 거칠게 찢어내고는 검을 고쳐 쥐었다.

그때였다.

저만치 아스라이 들리는 소리.

“니. 이…… 같은 것이…… 가 선물한 장삼을 찢어어어엇!”

목소리가 순식간에 또렷해지더니 한달음에 달려온 남궁천이 그대로 일검을 내리꽂는 게 아닌가?

짜르르르르릉!

천둥벽력이 울리면서 시퍼런 광휘와 함께 벽라검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쩌어어어어엉!

“크으읏!”

느닷없이 나타난 남궁천을 간신히 막아낸 정극이 뒤로 한참이나 떠밀렸다.

콰가가가각!

천근추의 수법으로 겨우 몸을 멈춰 세운 정극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이건 또 뭐야?’

굉장히 특이한 기운이었다.

정공이라기에는 몹시나 살벌하고, 사공이라고 보기에는 더 괴기스럽다. 하지만 마공이라기에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남궁천은 천마신기를 창벽공으로 다스리는 중이었다.

창벽공이 품은 천마신기는 마기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물론 온전한 천마신기의 힘을 다 보여주진 못하지만.

어쨌거나 정극이 생경한 기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남궁천은 그대로 바닥을 차며 거침없이 휘몰아쳤다.

“감히 할아버지 옷을 찢어? 이 변태 같은 영감이!”

“이익! 먼저 찢은 인간이 누군 줄이나 알고 하는 소린가!”

“시끄럽다! 이 변태 영감아!”

“아니, 애초에 옷을 먼저 찢은 게…….”

“듣기 싫다! 변태 영감탱이!”

“아니, 들어야 한다니까?”

“닥쳐라!”

“아니……!”

정극은 기가 막히고 울분이 차올랐지만, 더 이상 말을 이어갈 겨를도 없었다.

남궁천의 검격이 너무 매서워서 말을 뱉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따다다당! 따당!

‘무슨 약관밖에 되지 않은 놈이 이렇게나……!’

정신없이 퍼붓는 검격 때문에 정극은 연거푸 뒷걸음질을 치면서 물러났다.

다른 동료들을 힐끗 보니, 정혜와 능허자는 이미 백무극과 남궁검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

마침내 더 이상 물러갈 곳이 없어진 정극이 벽에 등을 부딪혔다.

“칫!”

혀를 차는 그 순간, 남궁천의 검신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정극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지만, 그때마다 남궁천의 검신이 사라지더니 손찌검이 매섭게 날아왔다.

짜악!

“크윽!”

쉬이이잇!

“이익!”

짜아악!

“으윽!”

짝! 짝! 짜악! 짜아악!

남궁천은 정말로 개 패듯 정극을 두드려 팼다. 뺨과 뒤통수, 가슴과 엉덩이까지 가리지 않고 마구 구타한 것이다.

마치 정극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이이이익! 그마아아안!”

정극이 분에 겨워 소리쳤을 때, 남궁천의 검신이 전신을 베어왔다.

촤촤촤촤촤촤아악!

“끄아아아악!”

정극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털썩!

“변태 영감, 엄살은…….”

그제야 남궁천이 검을 거두며 한 걸음 물러났다.

“헉, 헉, 헉……!”

정극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몸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 멀쩡하다.

분명 검신이 전신을 난자한 것 같았는데.

다음 순간,

촤촤촤촤촤촤촤아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가 입은 장삼 자락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며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알몸이 된 정극.

남궁천이 입매를 비틀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익……! 이 빌어먹을 새끼야! 애초에 먼저 옷을 찢은 것은 네…… 크읍, 쿠웨에엑!”

순간 정극이 바닥에 엎드린 채 피를 한 움큼 토했다.

격렬한 싸움 중에 남궁천이 손바닥에 공력을 실어 요혈을 지속적으로 자극한 것이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구타처럼 보였겠지만, 실은 상당한 공력이 실린 살수였다.

그러다 보니 전신 곳곳에 맺힌 기운이 극도의 울분을 이기지 못해 역류하면서 주화입마의 위기가 찾아온 것.

“크읍! 제기랄!”

탁탁탁!

정극이 엎드린 채로 얼른 손을 뻗어 점혈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제멋대로 폭주하는 기운이 어디 순식간에 얌전해지겠는가?

“끄으읍!”

이마에 핏대가 서면서 정극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 바람에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자세가 되자, 남궁천이 눈살을 푹 찡그렸다.

“어우, 더러워. 안 본 눈을 사고 싶네. 변태 영감, 부끄럽지도 않소? 발가벗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다니. 도대체 무슨 자세람? 거기에 구토도 하고. 이러다 똥도 싸겠소.”

“이이익! 네 이노오오오오옴! 차라리 날 죽…… 큽, 쿠웨에에엑! 꼬로록……!”

격하게 피를 토하던 정극이 마침내 입에 거품을 물더니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물론 엉덩이는 여전히 하늘로 치켜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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