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59화 (459/508)

459. 금선탈각(金蝉脱殻)

“막아랏!”

“죽여엇!”

퍼억! 퍽!

챙챙! 까앙!

“크악!”

“아아악!”

성난 고함소리와 기합성,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마구 어우러진다.

느닷없이 나타난 개방 방도들은 그야말로 물불 가리지 않고 노도처럼 밀려들며 타구봉을 휘둘러 댔다.

퍽! 퍼억! 퍽퍽!

“크억!”

“으아악!”

정말이지 사람을 개 패듯 잡는 개방도들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천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어휴, 저 무식한 것들. 하여튼 개방은 싸우는 것도 더럽다니까.”

문득 전생에 도망 다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도 제일 귀찮은 존재가 바로 개방이었다.

당시에도 개방이 무림맹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진 않았지만, 무림공적만큼은 보이는 대로 신고하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거지만 보면 왠지 모르게 경기가 일어난달까?

게다가 저 거지들이 정말 귀찮은 건 바로 악바리 근성이 있다는 것.

숨통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거나, 어떻게든 아귀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지금도 저 봐라.

옆구리가 베여서 내장을 쏟아내고 있는 거지 한 놈은 무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고, 복부를 관통 당한 거지 한 놈은 날카로운 검신을 온몸으로 끌어안다시피 매달리고 있지 않나?

그 뒤로는 또 다른 거지가 무식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날아와서는 타구봉을 내려친다.

“으아아압!”

퍼어어억!

머리가 깨진 무인은 그 자리에서 뇌수를 쏟아내며 즉사했다.

어깨를 들먹이며 씨근거리는 거지가 동료 거지를 내려다본다.

내장을 쏟아낸 녀석이 주먹을 들어 올리더니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곧 숨을 거뒀다.

복부를 관통당한 거지는 낄낄거리면서 주저앉아 숨만 헐떡인다.

‘하여튼 징글징글한 것들이라니까.’

남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마침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청풍이 일검을 내질러왔다.

“노오오오옴!”

쩌어어어엉!

쿠파파파파!

뒤로 밀려난 남궁천이 그대로 전각 벽에 등을 부딪치고는 멈춰 섰다.

남궁천이 얼른 몸을 뒤틀며 옆으로 피하자,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검첨이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강기를 머금은 공격이었기에 폭음이 터져 나왔다.

전각 벽이 통째로 부서져 나가고 지붕이 우르르르 무너졌다.

가볍게 몸을 날려 피한 남궁천이 어깨를 툭툭 털어내고는 청풍을 보았다.

“오늘은 얼굴에 금칠 안 하셨네.”

“역시…… 어찌 알았느냐?”

청풍이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보자,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거야 뻔한 것 아닙니까? 딱 얼굴이 야비하게 생겼잖아요. 이보다 비열할 수 없을 정도로.”

“흥! 어린놈이 혀만 살았구나!”

“아닌데? 다 살았는데?”

“갈! 수준 낮은 대화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을 게다!”

파아앙!

청풍이 다시 몸을 날렸다.

정말이지 경공술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파밧!

하나 남궁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쉬이이잇! 깡! 쉬깡!

연이어 불꽃이 터지면서 두 사람의 검신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따다다다당!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두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의 쾌검이 오갔다.

“과연 초견파공안이로구나!”

버럭 고함을 내지른 청풍이 그대로 몸을 회전하면서 남궁천의 옆구리를 베어 들어왔다.

하나 남궁천은 그 역시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반대로 회전하면서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따아아앙!

불꽃이 터지면서 남궁천이 몸을 낮게 숙였다.

“어딜!”

청풍이 얼른 검을 거꾸로 쥐고 안으로 파고드는 남궁천을 향해서 검봉을 내려찍었다.

“뒈져랏!”

쑤우우우욱!

검봉이 남궁천의 뒷목을 내려찍으려는 순간!

스슷!

“……!”

청풍이 흠칫거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슈콰앙!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은 검이 진동하면서 청풍의 팔을 아릿하게 저려오게 만들었다.

‘어딜!’

분명 눈앞에서 파고들던 남궁천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시간이 멈춘 그 순간, 청풍은 재빨리 판단을 내렸다.

적을 시야에서 놓치다니.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청풍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이건 수많은 실전을 겪으면서 몸에 밴 행동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대로 회전하면서 검신을 후려친 청풍!

쩌어어어엉!

놀랍게도 그의 본능은 그의 목숨을 한 번 살리는 데 성공했다.

어느새 측면에서 남궁천이 검을 휘둘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촤츠츠츠츳!

바닥에 발자국을 새기며 길게 미끄러진 청풍이 호흡을 정리하면서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과연. 방금 그건 운룡대구식이군!”

“예, 역시 경공은 운룡대구식이죠.”

“보면 볼수록 네놈은 살려둬선 안 되겠구나!”

“저도 어지간하면 따라하지 않아요. 그런데 먼저 제 목을 노리고 달려드시니 어쩌겠습니까? 우선 좋은 건 훔쳐서 살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갈!”

다시 버럭 고함을 내지른 청풍이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쉬이이이이익!

그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이번엔 남궁천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운룡대구식과 운기 방식이 다르군!’

확실히 청풍의 신위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경공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무공에서 빠르다는 것은 굉장한 우위를 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경공 하나만 잘 익혀도 천하제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떠돌겠나?

이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논리를 철저하게 따른 말이다.

경공이 우수하면 최소한 강적을 만났을 때 죽진 않을 테니까.

즉, 가장 오래 살아남아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어쨌거나 청풍의 경공술은 남궁천으로서도 쉬이 따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네놈이 아무리 흉내를 낸다고 한들, 노부의 움직임에 필적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파바바바바밧!

따다다다다당!

청풍은 쉴 새 없이 남궁천을 몰아붙였다. 동작 하나하나가 몹시 커 보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곤륜의 산세를 닮은 듯한 검법이다.

‘이게……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이었던가?’

묘하게도 태허도룡검은 곤륜파의 운룡대구식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말 그대로 용을 죽인다는 검법이다. 반면 운룡대구식은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용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니 한 문파의 두 가지 무공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청풍은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남궁천이 운룡대구식을 펼치고 있으니, 이를 잡기 위한 수단이었다.

반면 본인은 운룡대구식을 조금 비틀고 강화시킨 다른 경공을 펼쳤다.

운기법을 빤히 보는 남궁천으로서도 쉬이 따라 하기 힘들 만큼 까다로운 경공이었다.

따다당! 땅! 땅!

거울을 보듯 움직이던 두 사람이 조금씩 다른 자세를 취하면서 빈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빈틈은 남궁천에게서 드러나고 있었다.

‘아직은 무림칠성까지 조금 모자라는가?’

이래서 재능만 믿으면 곤란하다.

그간 너무 바빠서 수련을 게을리 했다.

이번 일이 정리되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안가를 찾아가서 묵혀둔 영약부터 좀 복용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청풍이 남궁천의 빈틈을 노리고 검을 내질러왔다.

“끝이다!”

쉬이이이이잇!

청풍의 검신이 용처럼 굽이치며 날아든다. 용을 물어뜯어 죽이는 또 다른 용이다.

텅 비었던 공간이 청풍의 검신으로 꽉 찬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남궁천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급소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청풍의 급소를 노려오는 게 아닌가?

‘미친 건가?’

아주 잠깐 청풍은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면 자신이 당하기 전에 남궁천이 당할 수밖에 없다.

하나 그의 본능이 이번에도 그를 살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튼 그가 뒤에서 날아든 화살을 그대로 쳐낸 것이다.

쉬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청풍의 검신에 튕겨 나간 화살이 그대로 한쪽 전각으로 날아가 작렬했다.

폭음과 함께 전각 벽이 허물어진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쉰 청풍이 얼른 바닥을 찍어 차고는 물러났다.

‘빌어먹을! 짜증 나는 패력궁!’

어디서 날아든 화살인지도 모르겠다.

이기어시를 사용하는 패력궁은 화살을 곡선으로 날리는 것이 가능하니까. 아니, 자유자재로 경로를 바꿀 수 있다.

그게 이기어시니까.

숨을 돌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개방 거지들과 맹원들이 거의 일방적인 살풀이를 즐기고 있다.

머릿수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

이 짧은 시간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지를 모아온 것인지 피비린내보다 씻지 않은 거지들의 구린내가 더 심할 지경이다.

퍽! 퍼퍽! 채채챙!

“뒈져라앗!”

마침 거지 한 놈이 분수도 모르고 덤벼들었다.

청풍이 코웃음을 치고는 일검을 휘둘렀다.

쉬컥!

한 줄기 빛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거지는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쿠당!

“어이쿠, 형님! 이런 개새끼가 우리 형님을!”

또 다른 거지가 울며불며 청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별 거지 같은 게!”

쉬이이잇!

청풍이 경멸 어린 시선을 던지며 일검을 후려치는 순간!

떠어어어어엉!

빛이 번쩍이더니 고막을 찢을 듯한 타격음과 함께 청풍의 신형이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촤츠츠츠츠츳!

‘이건 또 뭔……!’

청풍이 눈을 부릅뜨고는 고개를 들었다.

감히 무림칠성의 반열에 오른 자신의 일검을 이렇게까지 막아낼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하나 그는 곧 상대를 알아보고는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히꾹! 쯔쯔쯔. 거지 같은 게 아니라 거지라네. 꺼어억! 우리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뭔지 아는가?”

“……?”

“거지 같은 놈이라는 거야. 누누이 말하지만, 우린 거지 같은 놈들이 아니라 거지다 이 말이야. 히끅!”

“만취개 장로. 어찌 시류를 읽지 못하고 저런 놈에게 붙어서는…….”

“클클클. 시류를 누구보다 잘 읽고 적응하는 게 바로 개방이야. 알겠나? 왜인 줄 아는가?”

“……?”

“거지는 어느 시대에든 살아갈 수 있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니까! 크하하하하!”

파아앙!

만취개가 앙천광소를 터뜨리면서 청풍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렸다.

쉬따아아앙!

몸 전체가 휘청거린다.

청풍이 얼른 디딤 발을 딛고는 몸의 균형을 잡았다.

“이 노망난 거지가!”

“거, 곤륜파 도인이 입에 걸레를 물었구나!”

“닥쳐라, 걸레 같은 거지!”

“클클클! 하여튼 도 닦는 놈들은 속이 능구렁이라니까.”

타타타탕! 따아앙!

타구봉과 검신이 연신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어 오른다.

만취개의 종잡을 수 없는 공격을 막아내면서 청풍이 어금니는 꽉 씹었다.

대부분의 거지들은 상대하기가 쉽다.

무공을 깊이 익힌 녀석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취개만은 다르다.

거지 주제에 무림칠성에 오른 돌연변이 같은 자다.

술에 취한 듯 제멋대로 무공을 펼치는데, 어떠한 규칙이나 질서도 없기에 종잡을 수 없다.

허초와 변초가 마구 섞여 있으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만취개와 손을 섞다 보면 같이 취해 버리는 기분이랄까?

‘빌어먹을!’

콰앙!

타구봉을 후려치고는 멀찍이 몸을 날렸다.

얼른 주변을 둘러보니 남궁천은 보이지도 않는다.

“킬킬킬.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 술기운이 확 도는구나.”

“빌어먹을 영감탱이.”

“킬킬. 빌어먹는 게 직업인데, 그런 말은 내게 욕도 되지 않는다네.”

청풍이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 * *

그 시각 남궁천은…….

“죽어라, 이 새끼들아! 감히 맹주님께 벽력탄을 써?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것들!”

촤악! 촤촤아악!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오랜만에 살풀이를 즐기고 있었다.

대살성으로 살았던 감각이 전신의 감각을 통해 스멀스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이 묘한 쾌감!

일방적인 도륙에 무인들은 새파랗게 질린 채로 남궁천을 피하느라 급급했다.

“헉! 살, 살려…… 크아악!”

“비, 비켜! 으아악!”

비명이 차오른다.

전생과 달리 이 얼마나 완벽한 환경인가?

살육이 허용된 현장.

그렇다.

모든 명분은 갖춰졌다.

“이젠 철저한 응징만이 남았을 뿐.”

남궁천이 벽라검을 타고 뚝뚝 흐르는 핏물을 혀로 핥으면서 귀신처럼 웃었다.

“드루와. 이 새끼들아.”

“히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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