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55화 (454/508)

455. 만찬을 즐겨라

“물러나지 마라! 끝까지 몰아붙여라!”

각 조직의 수장들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무인들이 개미 떼처럼 계단을 따라 바글바글 올라갔고, 성벽에는 커다란 사다리를 걸쳐서 달려 올라갔다.

대부분 경공술을 익힌 무인들이다 보니 일반적인 공성전보다 훨씬 격렬한 싸움이 이어졌다.

채채챙! 챙!

“크악!”

“으아아악!”

성벽까지 다다른 무인들이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무인들이 경공을 펼쳐 사다리를 밟아가며 성벽으로 또 올라서곤 했다.

정신없는 사투가 펼쳐지는 와중에 천무류는 성벽 중앙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그 곁으로 하급 무인들이 화살을 한 아름씩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징그럽게 많은 무인들을 내려다보면서 천무류가 사자후를 터뜨렸다.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노부의 화살이 그대의 심장을 뚫지 않으리라! 하나 끝내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사지가 벌집처럼 쑤셔져서 죽을 것이다!”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몇몇 무인들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곧 덕양이 뒤에서 지켜보다가 소리쳤다.

“누구든 물러서는 자가 있다면, 협의를 저버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결국 덕양의 입김이 더 센 모양이었다.

무인들이 다시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내원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다.

“어리석은!”

냉정하게 말을 뱉은 천무류가 곧장 화살 여섯 개를 시위에 걸어 당겼다.

손가락 사이마다 두 개의 화살을 건 것이다.

다음 순간!

패패패패패앵!

그의 손을 떠난 화살이 빠른 속도로 폭격처럼 쏟아져 내렸다.

여섯 대의 화살이 사람들의 몸에 꽂히자마자!

패패패패패패앵!

다시 여섯 대의 화살이 날아갔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이번에는 여섯 대의 화살이 날아가자마자 또 여섯 대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가 놓았다.

패패패패패애앵!

패패패패패패애앵!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투타타타타타타!

천무류의 특기인 속사포가 쏟아져 내린다.

“엎드려엇!”

몇몇 무인들이 소리치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사다리를 타고 경공을 펼치던 무인들은 얼른 사다리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서 성벽 쪽으로 최대한 밀착했다.

정말이지 사람이 화살을 걸어 당기는 속도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석궁 수십 대가 동시에 화살을 쏘는 것 같지 않은가?

“치잇!”

사다리 안쪽에 몸을 숨겼던 무인 하나가 혀를 차고는 재빨리 사다리를 툭 찍어 차며 솟구쳐 올라갔다.

파파파파팟!

장삼 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아우성 친다.

단숨에 성벽에 오른 무인은 제일 먼저 천무류를 노렸다.

절정고수인 그가 무림칠성인 천무류의 상대가 될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속사포를 쏟아내고 있을 때라면, 빈틈을 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쉬이이이잇!

무인이 빛살처럼 달려갔다.

그는 곤륜파 무인이었다.

곤륜파에서도 정예 조직에 속하는 무인이었다.

경공은 누구에게도 쉬이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역시나 바람처럼 달려가는 그의 눈앞에 천무류의 빈틈이 보였다.

‘됐다!’

천무류는 그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쯤이면 자신이 달려든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방심일까?

하나 한 번의 방심이 목숨과 직결되는 곳이 바로 강호가 아니던가?

‘너무 자만하셨소!’

절대고수가 아니라 신이라고 해도 이젠 못 막는다!

그런데,

뚜까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 현상보다 더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크읏!”

손바닥이 찢어지면서 검이 통째로 날아갔다.

‘대체 어떤 놈이……!’

호신위를 가까이에 두고 있었던 건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보는 순간,

서걱!

한 줄기 빛이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결국 무인은 자신을 막아낸 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았다.

한참이나 추락한 그의 머리가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퍽!

세상이 깜깜해진 후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를 잃은 그의 몸이 천천히 기울더니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츄아아아아아!

시체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추락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헉!”

“조, 조장님이!”

한편 무인의 목을 자른 남궁검이 싸늘한 시선으로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어디론가 몸을 훌쩍 날렸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기에 고맙다거나 조심하라는 인사치레 따위는 나누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청풍이 덕양에게 달려갔다.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해선 안 되겠소! 내원에 들어갔을 때를 대비해 힘을 아껴뒀다지만, 이래서야 세월이 흘러도 못 뚫겠소!”

“그럼 방법이 있겠소? 나는 장문인 만큼 경공에 능하지 못해 저 화살을 뚫고 성벽을 오를 방법이 없소.”

“양동 작전을 씁시다! 내가 성벽으로 오를 테니, 장로께서는 계단으로 정문을 치시오! 물론 우리만 가서는 안 될 거요. 능허자와 정극 장문인이 함께 해줘야만 하오. 한꺼번에 밀어붙입시다.”

“하나 정극 장문인은 지금 지객당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그때였다.

“나 찾으셨소?”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렸다.

두 사람이 반색하며 돌아보니 정극진인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물론 그 뒤로는 다른 청성파 문도들도 함께였다.

“오, 나오셨소?”

속내 같아서는 한마디 제대로 구박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와준 게 어딘가 싶어서 반가운 척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정극이 여전히 무거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한심했을 거라는 것 알고 있소. 애쓰지 않아도 되오.”

“허허, 무슨 그런 말씀을. 장문인의 마음을 이해하오. 한순간의 실수로 그런 치욕을 겪었으니 억울하고 분할…….”

“아니. 실수 따위는 없었소. 맹주의 실력은 진짜요.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 아마 두 분도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거요.”

‘쳇, 혼자 깨져놓고 왜 우리까지 물고 들어가는 거야?’

청풍은 내심 불만이 치밀었지만 그저 웃는 낯으로 일관했다.

“알겠소. 명심하지. 그나저나 혹시 아까 우리 대화를 들으셨소?”

“들었소.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더이다.”

“사실 그렇소.”

청풍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내원을 바라보았다.

“문도들이 성문만 뚫으면 우리가 내원으로 밀고 갈 생각이었소. 진짜 싸움은 그때 벌어질 테니 힘을 아껴둘 생각으로. 다만…….”

“도저히 뚫지 못한단 말이구려.”

“그렇소. 해서 덕양 장로와 내가 직접 나설까 생각하고 있소. 장문인이 정혜 사태와 능허자 장문인을 도와서 지휘해 주시오. 하면 우리 둘이 어떻게든 내원 안으로 들어가겠소.”

“들어간 후에는?”

청풍과 덕양이 생각한 바를 간략하게 전하자, 정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반드시 성공하길 바라겠소!”

정극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간 수치심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 감정은 씻어내고 분노만이 남은 듯했다.

“알겠소! 그럼 시작합시다!”

“좋소!”

세 사람이 의견을 모은 후 곧바로 정혜와 능허자를 불렀다.

대략의 의견을 나눈 이들이 곧 행동에 돌입했다.

그들은 각자 통솔하는 조직에게 소리쳤다.

“일군은 계속해서 치고, 이군은 빠진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라!”

“존명!”

그렇게 능허자와 정혜, 그리고 정극이 성벽 아래쪽으로 달려갔다.

투타타타타타타!

다시 허공에서 속사포가 쏟아졌다.

하지만 청풍이 앞서 속삭이며 예견한 대로 위력이 상당히 감소된 상황.

천무류의 공력이 소진되어서가 아니다.

철시가 다 소진된 탓이다.

‘이 정도면 막을 수 있다!’

정혜와 정극, 그리고 능허자가 얼른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면서 화살 비를 마구 쳐냈다.

따다다다다다당!

“와아아아아아!”

문도들이 함성을 내지르면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당연히 정극과 정혜, 그리고 능허자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덕양이 계단을 따라 경공을 펼치며 달렸고, 한쪽에서는 청풍이 운룡대구식을 펼쳐서 사다리를 단숨에 타고 올라갔다.

“어딜!”

천무류가 몸을 휙 돌리고는 곧장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패애애애앵!

쒜에에에엑!

순식간에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천무류가 곧바로 옆에 선 무인에게 버럭 소리쳤다.

“폭시를 내놔라!”

“옛!”

끝이 뭉툭한 화살을 다시 시위에 건 천무류가 제비처럼 날아오르면서 성벽에 거의 다다른 청풍을 노렸다. 이미 아까 날린 화살은 청풍이 가볍게 쳐낸 상황.

철시도 아니었던 만큼 무림칠성에게는 그리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패애애애앵!

쒜에에에에엑!

화살 한 자루가 맹렬한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청풍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몸을 슬쩍 비트는 것과 동시에 검으로 화살대를 살짝 쳐냈다.

티잉!

방향을 바꾼 화살이 오히려 내원 쪽으로 날아가면서 성벽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악!”

석궁을 쏘거나 돌을 던지던 이들이 폭발에 휩쓸리면서 날아갔다.

청풍이 싸늘한 웃음을 머금었다.

‘미련하긴! 한 번 사용했던 폭시에 또 당할 줄 알았나?’

파바바바밧!

청풍이 단숨에 허공을 가르면서 성벽 위로 올라오자, 이번엔 남궁검이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하나 여기까지도 이미 청풍은 예상했던 바.

파바바바밧!

그는 굳이 맞서 싸우지 않았다.

생각을 바꾸면 막혔던 길도 보이는 법이다.

싸워서 이길 생각만 했지 피할 생각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함락을 시켜야 한다는 목적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맞서 싸우지 않고 이리저리 피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남궁검 역시 절대고수의 영역에 올라온 셈이었지만, 경공만큼은 청풍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의 검이 번번이 허공을 갈랐고, 이따금씩 날아드는 천무류의 화살은 청풍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잠시 끌었을 때,

“청풍 장문인! 내가 왔소!”

덕양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면서 내원으로 훌쩍 날아들었다.

덕양이 그대로 남궁검을 향해 달려가자, 이번엔 백무극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측면에서 파고들었다.

“맹주님은 건드리지 마라앗!”

하지만 덕양은 백무극이 상대하기 어려운 절대고수였다.

쉬까앙!

단 일검에 백무극의 신형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날아갔다.

콰당탕탕!

백무극이 무참히 튕겨 나가자, 주변 무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남궁검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노오오오옴!”

순간 그가 일검을 휘두르자 푸른 광휘과 마당을 메우는 듯했다.

“호오, 과연! 대단한 성취요!”

그 와중에도 칭찬을 쏟아낸 덕양이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남궁검의 검을 흘려내더니 그대로 반격을 가했다.

꽈아아아앙!

짧은 순간 덕양은 자신이 남궁검에게 치명타를 날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데 곧 그는 자신이 때린 게 어느 순간 날아든 화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패력궁…….”

덕양이 착 가라앉은 시선을 들어 보니, 어느새 패력궁 천무류는 맹주전 지붕으로 올라가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패력궁의 신위를 온전하게 보일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방금 화살을 막아내면서 덕양이 떠밀렸던 곳은 바로 내원으로 들어오는 정문 앞이었다.

덕양의 입매가 뒤틀리는 순간!

쉬이이이이익!

덕양의 손에 들린 검이 춤을 추었다.

수십 줄기의 강기가 주변을 휘어 감으면서 무인들을 마구 도륙했다.

“크아악!”

“아아악!”

여기저기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는 사이 청풍은 달려드는 남궁검을 막아서면서 맞서 싸웠다.

마침내 정문을 지키는 무인들이 사라지자, 덕양은 재빨리 강기를 내질러서 철판을 치워내고 문을 활짝 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봇물 터지듯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내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는 사이 성벽을 타고 올랐던 정극과 정혜, 그리고 능허자도 도착했다.

마침내 난공불락의 내원이 뚫리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궁검을 비롯한 맹원들이 맹주전 쪽으로 후퇴하면서 무기를 마구 휘둘렀다.

청풍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모두 들어오면 내원 정문을 막는다! 혹여나 적랑단이 복귀해도 이곳으로는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일 군은 곧장 장로원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혹여 장로들이 구금되어 있다면 풀어드리도록 하라!”

“존명!”

이토록 크게 외친 이유는 남궁검에게 들으라는 것이었다. 확실한 좌절감을 심어주기 위해.

청풍이 조금씩 물러나는 남궁검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제 끝이오. 이제 그 누구도 내원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될 거요. 어디 맹주전에서 최후의 발악을 해보시오, 맹주. 남궁천이 돌아오면? 아마 외원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당신의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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