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52화 (451/508)

452. 만찬을 즐겨라

꼬르르륵.

누군가의 배에서 소리가 들린다. 원주실에 옹기종기 모인 장로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 눈알만 뒤룩뒤룩 굴린다.

“끄음.”

장로원주 우위광이 불편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린다.

장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도 헛기침만 할 뿐이다.

마침 장로 한 명이 먼 산을 바라보듯 시선을 들어 허공을 응시하면서 말한다.

“오늘로 벌써…… 사흘째지요?”

“그렇소. 지난 사흘간 피죽 한 그릇 먹지 못했구려.”

“지금쯤이면 내원도 분위기가 뒤숭숭하겠구려.”

“이제 무너질 일만 남았겠지요.”

장로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우위광을 바라본다.

어느 정도 우위광의 기분을 맞추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나 우위광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허공만 응시할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그때 다시 누군가의 배에서 들리는 소리.

꼬로로록.

결국 참다못한 우위광이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고는 소리쳤다.

쾅!

“거, 배 속에 거지가 들었나? 아니면 마귀가 들렸나? 아니, 그 나이 먹고 주책 맞게 식욕도 관리하지 못해서 시끄럽게 굴고 있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저어…….”

“뭐요?”

“방금 소리는 원주님의 배에서…….”

장로 하나가 조심스레 말하자 다른 장로들이 얼른 우위광의 눈치를 살핀다.

뜨끔한 우위광이 자신의 배를 만지다가 중얼거렸다.

“내 배라고……?”

“예, 뭐 벌써 사흘째니까 그럴 만도 하지요. 저희들은 진작 배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는데요, 뭐.”

장로가 애써 위로하자, 우위광이 불편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돌렸다.

“끄음. 다들 힘내시오. 수양이 깊은 우리가 이 정도면 원 내에 주둔하고 있는 맹원들은 이미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었을 거요. 슬슬 불만이 폭주하고 이탈하려는 자들이 나오겠지. 거지도 사흘을 굶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법. 하물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맹원들이야 이렇게 좋은 냄새를 풍기면서 맛있는 고기를…… 으응?”

말을 하던 우위광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장로들도 연신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이, 이건…… 고기 굽는 냄새입니다!”

“허어! 대체 누가 이 시국에 고기를……! 지금 이 냄새는 고소함이 극에 달한 것이 분명 쇠고기 안창살이오!”

“엇! 저는 지금 코끝을 스친 냄새에서 돼지 족구이를 눈치챘습니다! 아주 골고루 굽는군요!”

장로들이 저마다 고기 도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굶주림이 어찌나 극심한지 이젠 냄새만 맡아도 고기 부위까지 판별이 가능할 정도.

평소 부족함 없이 먹고 지내다가 최근 사흘을 내리 굶었으니 먹음직스러운 냄새만 나도 눈이 휙휙 돌아간다.

우위광이 탁자를 탁탁 두드렸다.

“자자, 이건 필시 외원에서 굽는 고기 냄새일 거요. 일부러 보란 듯이 고기를 구워서 냄새를 풍기는 것일 터. 이 냄새를 맡은 내원의 무인들은 필시 동요할 것이고, 내부 이탈자가 나오게 마련. 그렇게 되면 이 전쟁은 끝난 셈이나 다름없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청풍 진인과 덕양 진인의 계책이 아주 훌륭합니다. 저희들조차 침이 질질 흐를 지경인데, 사투를 벌여서 한껏 예민해진 맹원들은 더 하겠지요. 이제 싸움의 끝이 보이는군요!”

“옳소! 지금쯤이면 내원에 먹을 건 다 떨어지고도 남았을 터니 당연히 동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답답한 장로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군요!”

장로들의 희망 가득한 말에 우위광이 희미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청풍이 머리를 굴리는구나. 하긴 덕양과 정혜도 함께 있으니 이 정도 계책은 어렵지 않게 떠올렸겠지. 어떤가? 맹주. 아직도 버틸 여력이 있을…….’

그때 원주실 밖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소리쳤다.

“원주님! 먹을 것을 좀 가져왔습니다.”

“먹을 것?”

우위광을 비롯한 장로들이 눈알이 휙 돌아가면서 출입문 쪽을 보았다.

우위광이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들어오라.”

뭘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되지도 않은 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면 호통을 치고는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밖에서는 고기를 굽고 있는데 고작 장로원을 대접한다는 게 죽 그릇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지 않겠나?

그런데 문이 열리고 시종 하나가 잡시를 가지고 들어오니, 방 안에 먹음직스러운 고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아닌가?

“헉!”

“이, 이건……!”

꿀꺽……!

저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놀랍게도 시종이 가지고 들어온 접시에는 잘 구워진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놓여 있었다.

장로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물었다.

“고, 고기다……! 고기가……!”

꿀꺽……!

시종이 탁자에 고기 한 접시를 올려두고는 민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겨우 가지고 온 것이라 양이 많지는 않습니다요.”

“이, 이게 어디서 난 것이냐? 혹시 외원에서 은밀하게 너를 통해 보낸 것이더냐? 아니지, 역시 내원의 무인 중 구파일방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 게로구나! 이탈자가 나온 것이야, 그렇지?”

장로 한 명이 다그쳐 묻자, 모두가 시종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하지만 뒤통수를 긁적이는 시종에게서는 전혀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에이, 제가 무슨 재주로 외원까지 들락거리겠습니까요? 게다가 내원의 무인들이 뭐 하러 이탈하겠습니까요. 그건 아닌뎁쇼.”

“하면……?”

“이건 맹주님이 가져다 드리라고 한 겁니다요.”

“맹주가……?”

이쯤 되자 장로들이 서로를 번갈아보면서 눈만 끔뻑였다.

결국 우위광이 먼저 다그치듯 물었다.

“맹주라니? 맹주에게 이런 고기가 어디서 났단 말이냐? 사흘 동안 먹을 게 없어서 굶고 있는 판국에!”

“예? 헉! 사흘이나 굶으셨어요? 그럼 말씀을 하시지 그러세요?”

“누구에게?”

“맹주님에게요.”

“왜?”

“그야…… 내원은 지금 먹을 게 넘쳐나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먹거리가 떨어지고도 남았을 텐데! 먹을 게 넘쳐나다니! 네놈이 지금 나를 능멸하는 것이더냐!”

우위광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자, 기겁을 한 시종이 그 자리에 바짝 엎드리며 오들오들 떨었다.

“어이쿠! 아닙니다요! 제가 어찌 감히 원주님을! 하지만 정말로 내원은 지금 먹을 게 넘쳐나고 있습니다요! 냄새 맡지 못하셨습니까요? 지금 밖에서는 고기 연회가 벌어졌습니다요!”

“뭐, 뭣이라? 그럼 이 냄새가 외원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내원에서 풍기는 것이란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요. 외원은 오히려 먹을 걸 구하지 못해서 지금 난감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요!”

“그게 말이 되는가! 내원은 식량이 떨어진 지 오래일 텐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향이 좋고, 신선하고, 고소하고, 야들야들하고, 맛있는 고기를 구울 수 있단 말이냐!”

“미천한 제가 거기까진 모릅니다요. 그냥 지금 내원은 풍족하게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만 알 뿐이지요.”

시종의 목소리에 우위광이 주먹을 콱 말아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다른 장로들도 입을 딱 벌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로 하나가 불쑥 나서서 물었다.

“하면 외원에서는 왜 먹을 걸 구하지 못했단 것이냐?”

“현재 전쟁 중이라 그런지 상권이 얼어붙어 있습니다요. 저마다 먹을 걸 확보하고서는 내놓질 않고 있지요. 해서 구파일방에서는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형식으로 버티는 것으로 압니다요!”

“허어! 그런……!”

“이거 완전히 상황이 역전됐구려!”

“도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원…….”

장로들이 저마다 한숨 섞인 소리로 한탄했다.

그런 와중에도 고기 냄새는 솔솔 풍기고 있었다.

시종이 그런 고기 접시를 보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저어…… 식기 전에 어서 드시는 게…… 식으면 고기가 질겨질 텐데…….”

“시끄럽다. 너는 그만 나가 보아라.”

“예, 예!”

시종이 얼른 읍소를 하고는 부리나케 원주실을 빠져나갔다.

“…….”

“…….”

남아 있는 장로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기 담긴 접시를 보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아직까지는 식지 않았다.

막 구워낸 고기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저걸 누구 입에 풀칠하라고…….”

“그러게 말이외다. 한 사람에게 하나씩도 돌아가지 않겠소!”

몇몇 장로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그런 와중에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장로 하나가 눈치를 살피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어…… 원주님 입맛이 없으시면 제가 처리를…….”

탁!

우위광이 그의 어깨를 붙들고는 혀로 입술을 축인다.

“입맛…… 있소.”

“아…….”

“…….”

“…….”

소리 없는 눈치 싸움이 이어진다.

마침내 우위광이 입을 열었다.

“맛이나 봅시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로들의 손이 빛살처럼 뻗어왔다.

파바바바바밧!

* * *

닷새가 더 흘렀다.

남궁검은 내원 정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침 정문에 나와 있던 총군사가 남궁검을 맞이했다.

“상황은 좀 어떤가?”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총군사 제갈승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며 성벽 위로 안내했다.

성벽에 올라서니 외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오오오오……!

웅혼한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훅 올라온다.

천 명도 넘을 것 같은 무인들이 오와 열을 갖춰 도열해 있었다. 다들 투기를 끌어 올려 당장에라도 내원으로 진군할 기세다.

한마디로 약이 바짝 오를 대로 오른 청풍과 덕양이 오늘 날을 잡았다는 뜻이다.

그럴 만도 했다.

내원에서는 계속해서 고기 연회를 벌이며 풍족하게 먹고 있는데, 외원은 오히려 지난 며칠간 굶주려야 했으니까.

혹여나 등하로가 발각될 수도 있는 만큼 사전에 식량을 대량으로 구비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두었다.

결국 청풍과 덕양은 오늘 총공세를 감행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봐야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탓이다.

그나마 그들에게 다행이라면, 우위광이 끌어들인 북천금제가 외원의 식량난을 해결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북천금제의 자금과 지원 덕분에 하마터면 사기가 떨어질 뻔한 외원의 무인들이 다시금 주린 배를 채우고 의욕을 충만하게 다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법.

더구나 이제 슬슬 적랑단이 돌아올 시기가 되었으니, 차라리 그 전에 무리를 해서라도 승부를 보는 쪽이 낫다고 여긴 듯했다.

“흐음. 형산파 장문인도 보이는군.”

“예, 그간 방관만 하던 형산파가 저쪽에 붙었습니다. 아무래도 무당의 덕양 장로가 직접 설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군. 오늘 전투는 역대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겠군.”

“사다리도 준비해서 아주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북천금제가 줄을 잘못 섰다는 걸 알려줘야겠지. 우리 쪽은?”

“일단 장로원은 천응대가 감시 중입니다. 여덟 명의 장로님들도 함께요.”

“그렇군. 천응대주는 상태가 좀 어떤가?”

천응대주 비량의 안위에 대해 물은 것이다.

며칠 전 비량은 청풍과 맞서 싸우다가 등짝을 길게 베이는 중상을 당했기에.

“다행히 잘 회복 중입니다. 다만 오늘 싸움에는 나서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비 대주가 힘을 보탠다면 큰 도움이 될 테지만 어쩔 수 없지. 천 장로님은?”

“일차로 성벽에서 싸우시다가 어느 정도 뚫릴 위험이 보이면 맹주전 지붕으로 이동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겠네. 최후의 최후까지 버텨야 하네. 저들의 공격이 꽤 매섭게 진행되겠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네.”

“물론입니다.”

남궁검이 뒤를 돌아서 내원에 도열한 무인들을 한차례 훑어보았다.

싸늘하지만 심지가 굳건한 눈빛이다.

그 눈빛만 보고도 무인들 상당수는 절로 투지가 생겨났다.

남궁검이 입을 열었다.

“버틴다. 버티고 버티면 남궁 단주가 적랑단을 이끌고 올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힘을 이끌고 올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버틴다. 오늘 이후로 너희들은 무림맹을 지킨 영웅으로 먼 훗날까지 기억될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내원에서 함성이 쩌렁쩌렁 차올랐다.

* * *

탁!

언덕 위에 도착한 백묘가 저만치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무한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사양현(沙洋县).

그리 큰 마을은 아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여 일부러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사양현 저잣거리 구석에서 불명회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말이지.’

현 무림맹 상태를 가장 잘 알기 위해서는 역시 불명회와 정보 거래를 하는 것이 제일 좋다.

한차례 심호흡을 한 백묘가 바닥을 차며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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