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51화 (450/508)

451. 만찬을 즐겨라

채채챙! 챙! 챙!

화살비가 쏟아졌다.

내원을 향해 돌진하던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후퇴하자, 청풍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멍청한! 물러나지 마라! 좀 더 압박하란 말이얏!”

슈캉! 슈캉!

바로 곁에서는 점창파의 능허자가 사일검법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마구 썰어버리면서 문도들을 재촉했다.

“불의 앞에서 굴복하지 마라! 정의의 힘을 보여라!”

하지만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무인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보다 못한 청풍이 몸을 훌쩍 날렸다.

파라라라라라!

문도들의 어깨와 정수리를 밟아가면서 단숨에 계단까지 다다른 그가 날다람쥐처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파파파팟!

그 바람에 계단으로 올라가던 몇몇 무인들이 옆으로 떠밀려 아래로 추락했다.

“으아악!”

“우악!”

그러거나 말거나 청풍은 단숨에 내원 정문까지 다다라서는 그 가속력을 이용해 그대로 일검을 내질렀다.

곤륜파의 비전절기인 비응검법(飛鷹劍法)이었다.

삐에에에에엑!

검명이 울렸다.

마치 매가 날카롭게 우는 소리 같다.

꽈아아아아앙!

검봉이 그대로 정문 사이를 내지르자 폭음과 같은 소리가 울리더니 검신이 문짝에 꽂힌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쳇! 철판을 덧대어 두었구나!’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근 후 철판을 덧댄 것이리라.

이 정도의 고강도 철판이라면 애초에 방어전을 위해 특수 제조된 것일 터.

“흥! 그렇다고 노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버럭 고함을 내지른 청풍이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찍어 차더니 새처럼 날아올랐다.

파라라라라라!

그가 몸을 회전하면서 단숨에 성벽을 뛰어넘어 내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내원에 대기하고 있던 비량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쳐랏!”

“와아아아앗!”

무인들이 일제히 청풍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청풍은 몸을 허공에 띄운 채로 이리저리 귀신처럼 유영하듯 싸웠다.

파라라라! 쩌엉! 까강!

파라라라! 투까앙! 깡 촤악!

“크억!”

“으악!”

수십 명의 무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지만 절대고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청풍은 그야말로 일당백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무림칠성이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무위였다.

비량 역시 수하들과 함께 청풍의 요혈을 노리며 덤볐지만 번번이 막힐 뿐이었다.

도저히 빈틈이 드러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자군.’

이만한 실력을 지녔으니 변방에만 머물러 있던 곤륜이 욕심을 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무위를 자랑하지 못해 얼마나 몸이 근질거릴까?

천하를 호령할 만한 신위를 지니고 있음에도 변방에만 머무는 것이 답답할 수도 있으리라.

하나 방법이 잘못됐다.

그토록 무위가 출중하다면 더 옳은 일에 썼어야 할 일이다.

가진 힘을 그저 쓸 수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겪지 않았던가?

청풍과 격렬하게 검을 섞던 비량이 어느 순간 눈을 부릅떴다.

‘아뿔싸!’

잠시 다른 생각을 했더니 빈틈이 생기고 말았다.

“훗, 과연 무림맹의 비량이라는 자가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났다더니 사실이었군. 하나 노부를 상대하기엔 아직 멀었구나!”

쏴아아아악!

촤아아아악!

“크읏!”

등을 사선으로 베인 비량이 피를 뿌리며 물러났다.

자세가 무너진 틈을 타서 청풍이 최후의 일격을 펼쳐왔다.

“가랏!”

그 순간!

쒜에에에에엑!

따아아아아앙!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철시 한 자루가 청풍을 멀찍이 튕겨냈다.

한참이나 미끄러지다가 멈춰 선 청풍이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소리쳤다.

“패력궁!”

“홀몸으로 내원으로 뛰어들다니. 용기는 가상하오만 무모한 짓을 하셨소.”

“흥! 당신이 아무리 신궁이라지만 그깟 화살 한 자루로 날 상대할 것 같소?”

“물론 난 혼자 싸울 생각이 없소. 내가 당신을 견제하는 동안 여기 있는 맹원들이 목숨을 걸고 당신을 노릴 거요. 하면 제아무리 무림칠성이라도 위험해질 터.”

“이익……!”

“결정하시오. 지금이라도 돌아온 길을 되돌아가시던가? 아니면 무모한 싸움을 이어가시던가?”

처처처처처처척!

그러는 사이 맹원들이 일제히 청풍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바로 악후가 이끄는 청랑단원이었다.

청풍이 코웃음을 치고는 악후를 노려보았다.

“너는 배알도 없구나. 네 동생을 죽인 자들을 위해 이렇게 헌신하다니!”

“제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는 전임 맹주였소. 그리고 선배께선 전임 맹주와 닮은 행동을 하는 것 같소만.”

“뚫린 입이라고…….”

패애애애애앵!

쒜에에에에엑!

떠어어어어엉!

촤츠츠츠츠츳!

느닷없이 날아든 철시 때문에 청풍이 다시 한번 미끄러지면서 성벽에 등이 부딪쳤다.

어느새 패력궁이 다시 시위를 당긴 채로 나직이 일렀다.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나이가 드니 어째 성격이 급해지는 것 같소. 이해하시오.”

“흥, 죽을 날이 머지않아서 그런 모양이군. 두고 보겠소! 패력궁!”

씹어뱉듯이 말을 남긴 청풍이 몸을 훌쩍 날리더니 이내 성벽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제야 패력궁도 활을 내리고는 비량에게 일렀다.

“자네가 여기에 있으면, 장로원은 누가 맡고 있는가?”

“천뇌당의 잠형대(潛形隊)가 맡는 중입니다.”

“그렇군.”

잠형대는 천뇌당주인 총군사의 직속 부대이다.

원래는 총군사의 호위부대였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그 임무가 조금 변질되어서 총군사의 자잘한 명령을 수행하는 무력 조직이 되어 있었다.

패력궁이 성벽 쪽으로 훌쩍 몸을 날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청풍이 빈손으로 돌아간 효과가 있는 것인지 내원으로 달려오던 무인들도 이제는 포기하고 후퇴하는 중이었다.

마침 비량이 다가와 물었다.

“조만간 다시 치고 올 겁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자네 몸은 괜찮은가?”

아닌 게 아니라, 비량의 혈색이 많이 좋지 않았다. 등짝을 사선으로 길게 베인 탓에 출혈도 상당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말을 하던 비량이 순간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파밧!

천무류가 반사적으로 달려가서는 비량을 부축했다.

“자네, 괜찮은가!”

“끄으음……!”

비량이 대답 대신 여린 신음만 흘리자, 천무류가 고개를 들고 외쳤다.

“어서 비 대주를 옮기게!”

“예, 장로님!”

맹원들이 달려와서 비량을 부축해 옮기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천무류가 외원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들의 발악은 더 심해질 테지. 남궁 단주, 서둘러서 오게나.’

* * *

청풍이 연신 투덜거리며 약천당 대청으로 들어서자, 마침 모여 있던 덕양과 능허자가 고개를 돌렸다.

“오셨소?”

덕양의 말에 청풍이 퉁명스레 물었다.

“다들 여기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시는구려. 여유가 넘치는 게 아주 보기 좋소이다.”

명백하게 비꼬는 어투였지만 덕양이 신경 쓰지 않고는 말했다.

“그보다 지금 문제가 생겼소.”

“내원을 뚫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소?”

“흐음.”

덕양이 침음을 흘리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식량이 부족하게 생겼소.”

“그럼 좋은 일이지, 뭐가 문제란 말이오? 내원의 식량이 지금쯤 다 떨어졌을 거라는 건 약천당주의 말을 듣고 다 아는 사실 아니오? 이제 저들의 사기가 떨어질 테니 곧 내원을…….”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식량 말이외다.”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청풍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들이 외원을 장악해서 봉쇄하는 상황이 아닌가?

식량이 떨어져도 내원에 갇힌 자들이나 그럴 것이지,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자신들이 왜 식량이 부족하겠나?

여차하면 무한으로 나가서 식량을 구해 올…….

“무한에서 식량을 구할 수가 없소.”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외까? 왜 식량을 못 구하는 거요?”

“현재 무한의 식재료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하오. 그나마 가장 많은 식재료를 보관하는 곳이 신룡객잔이라는 곳인데…… 대부분의 상권은 현재 신룡객잔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하오. 그런데 그들이 식재료를 일절 내어줄 수 없다고 버티는 중이오.”

“가만. 그럼 힘으로 빼앗으면……?”

“그랬다간 무림맹을 장악했을 때 명분을 내세울 수 있겠소? 오히려 역풍이 불 거요.”

“제기랄! 신룡객잔은 왜 그리 비협조적이라고 합디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호신룡을 추종하는 자들이 만든 객잔인 듯하오. 그러니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할 거요.”

“그럼 지금 어이없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굶어죽게 생겼단 말이오? 그것도 무한 복판에서?”

“어쩌겠소? 돈을 준다고 해도 식량이 없다는데.”

“허!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원.”

청풍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말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정극진인은 아직도 두문불출이오?”

“그렇소.”

“이런 빌어먹을! 망신을 당했으면 복수라도 할 생각을 해야지! 그깟 옷 좀 찢어졌다고 꽁하니 처박혀서 뭐 하자는 거야!”

“우선 진정하시오, 장문인. 일단은 우리가 버틸 식량을 구해야 할 거요. 무한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우니 밖으로 나가서 구해 와야 할 것 같소. 해서 본 파의 문도들을 우선 보내놓았소.”

“잘하셨구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야 그렇게라도 식량을 구할 수 있다지만, 내원은 방법이 없을 거요. 지금쯤 굶주림이 시작되어서 슬슬 불만도 터져 나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필시 구멍이…… 으응?”

말을 하던 덕양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청풍과 능허자도 느꼈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게 무슨 냄새지?”

“어디선가 고기를 굽는 것 같은데?”

청풍과 능허자가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잖아도 끼니때가 되어서 배가 고프던 차에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나니 입에 침이 고일 참이었다.

덕양이 노기 서린 목소리로 버럭 외쳤다.

“여봐라!”

“예, 장로님!”

마침 대청 밖에서 무당파 무인 하나가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이런 시기에 어떤 미친놈이 고기를 굽는단 말이냐! 식량도 부족해서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모르느냐!”

“그, 그것이 고기를 굽는 것은 저희가 아니라…….”

“아니면?”

“내원에서 굽는 것 같습니다.”

“뭐라?”

덕양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청풍과 능허자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때마침 대청 문이 열리더니 정혜 사태가 씨근거리면서 달려왔다.

“다들 나와서 좀 보시지요! 저놈들이 글쎄 미쳐 돌았는지 고기를 굽고 있다고요!”

청풍과 덕양, 그리고 능허자가 얼른 대청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 저만치 보이는 내원에서는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기를 굽는 냄새는 정말 내원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외원에 모여든 무인들은 그저 부러움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내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청풍이 이를 빠득 갈고는 소리쳤다.

“동요하지 마라! 저것들이 죽기 전 마지막 만찬이라도 즐기는 모양이다! 식량이 다 떨어져서 발악을 하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른 청풍은 뺨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원을 노려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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